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29화 (129/209)

129화

오클랜드 슬랙스와 뉴욕 킹덤즈의 디비전 시리즈 2차전이 열리는 날이었다.

1차전은 오클랜드 슬랙스가 12:1이라는 큰 점수 차로 압살했다.

이 과정에서 대호는 무려 홈런으로만 7점을 뽑아냈다.

아쉬운 것은 메이저리그에서 최초로 홈런 사이클을 기록할 수 있었는데, 투수의 고의 사구로 인해 기회가 무산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이 일로 뉴욕 킹덤즈를 싫어하는 메이저리그 구단 팬들은 악의 제국이 메이저리그 불문율을 어겼다고 손가락질을 하였다.

물론 뉴욕 킹덤즈의 팬들은 코웃음을 쳤다.

이미 게임에서 진 상황에 길고 긴 고통의 희생자가 될 이유가 없다며 매트 크록스를 두둔했고, 타 구단 팬들에게도 너희가 같은 상황이면 정면 승부를 했을 거냐라며 열심히 반박하였다.

킹덤즈 팬들 중에서도 자신들이 메이저리그 2년차인 스무 살 애송이가 무서워 피한 것이냐고 화를 내는 이들도 몇몇 있었다.

그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판단을 했는지, 킹덤즈 팬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 * *

“안녕하십니까? KBC스포츠 아나운서 김승주입니다.”

“해설을 맡은 하구연입니다.”

어제 디비전 시리즈 1차전 시작과는 다르게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는 김승주와 하구연이었다.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은 당연히 어제 있었던 매트 크록스의 고의 사구 때문이었다.

“메이저리그, 어제 오클랜드 슬랙스와 뉴욕 킹덤즈의 디비전시리즈 1차전을 놓고 보면 KBO와 그리 다를 것도 없더군요.”

인사에 이어 첫 멘트 또한 무척이나 매서웠다.

“저희 한국 프로리그를 더블A 수준이라며 폄하하던 이들이 과연 어제 뉴욕 킹덤즈의 플레이를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요? 지금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더군요.”

김승주 아나운서는 작정을 한 듯, 어제 경기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7회 고의 사구만 아니었다면, 어쩌면 대한민국의 자랑인 정대호가 프로야구의 역사를 새로 썼을 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김승주는 당시 분위기를 보면 무조건 기록 달성을 이루었을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 역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머리로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야구 리그라 떠들던 사람들이 이 문제를 두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으니, 오늘처럼 차가운 태도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불만을 토하는 이들은 모두 뉴욕 킹덤즈를 싫어하는 라이벌 구단의 팬과 오클랜드 슬랙스의 팬뿐이다.

“아무리 메이저리그의 불문율이 하나둘 깨지고 있다고 하지만, 대기록 달성 중에 회피한다면 그건 야구라고 할 수 없죠.”

어제는 흥분하는 김승주를 말린 하구연이었지만, 그 역시 단단히 화가 났는지 뼈가 있는 말을 하였다.

“하하하! 하 위원님도 단단히 화가 나셨나 보군요.”

자기 대신 일침을 날린 하구연 덕분에 조금은 화가 풀렸는지, 김승주 아나운서는 그제야 크게 웃어 보였다.

“어제 경기를 지켜보았던 많은 한국 야구팬은 조금 전 저희가 무엇 때문에 분노를 표시했는지 잘 아실 겁니다.”

김승주는 아나운서답게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바로 하고 이야기를 이어 갔다.

“잠시 후 30분 뒤에 오클랜드 슬랙스와 뉴욕 킹덤즈의 디비전 시리즈 2차전이 시작될 텐데, 하 위원님! 오늘 경기 양상 어떻게 보십니까?”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이 오클랜드 슬랙스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날 거라곤 그 누구도 예상하시 못했기에 김승주는 오늘 2차전은 어떻게 예상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런 김승주의 질문에 하구연 해설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 예상으로는 2선발을 내세운 오클랜드 슬랙스가 조금 더 유리하다고 판단됩니다.”

“오클랜드 슬랙스요? 어떤 근거로 그런 예상을 하신 것입니까?”

하구연 해설이 뜻밖에도 오클랜드 슬랙스의 우세를 예상한다는 답변에 김승주는 어떤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물었다.

하지만 하구연 해설의 대답은 간단했다.

“오클랜드의 마운드와 야수들의 공격력이 뉴욕 킹덤즈보다 우세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 디비전 시리즈 1차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뉴욕 킹덤즈의 우세라 판단했다.

비록 2선발이 나온다 하지만 뉴욕 킹덤즈는 모두가 알아주는 명문 구단이지 않은가?

그에 비해 오클랜드 슬랙스의 에이스 에디 프랭크는 오클랜드이기에 에이스 취급을 해 줄 뿐이지, 뉴욕 킹덤즈나 다른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이라 불리는 팀에선 잘해야 2선발급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야수들의 공격력을 따져 봐도 오클랜드에서 봐줄 만한 선수는 대호밖에 없었다.

대호야 메이저리그 양대 리그를 통틀어 최고의 시즌을 보낸 선수이지만, 그를 제외하면 오클랜드 슬랙스의 야수진은 겨우 메이저리그 야수 평균을 살짝 웃도는 정도다.

오클랜드 슬랙스가 올 시즌 메이저리그 최다승을 거두었다고는 해도, 공격력의 대부분이 대호에게서 나온 홈런과 장타, 그리고 수비 능력으로 인한 것이라 여겨졌기에 야수진 역시 저평가되었다.

당장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별다른 차이는 없었고 말이다.

그러나 2032시즌 오클랜드의 기세는 너무나 무서워, 뚜껑을 열어 보니 일방적인 승리를 얻어 내는데 성공하였다.

이 때문에 많은 야구 전문가들이 야구팬들에게 욕을 먹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평가를 내린다고 말이다.

그런 굴욕을 당해서인지 일부 전문가들은 어제 오클랜드와 뉴욕 킹덤즈의 경기는 오클랜드 선수들의 플루크일 뿐이라고 떠들었다.

하지만 하구연 해설은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생각지 않은 이유는 대호의 뒤이어 타석에 들어선 타자들의 연속 안타에 기인했다.

플루크였다면 결코 그런 장면이 계속해서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플루크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동안 자신들이 쌓아 놓은 반석이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는 아집에 쌓인 이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렇습니까?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강경한 하구연 해설 위원의 말에 김승주도 동의하는 시그널을 보냈다.

어찌 되었든 오클랜드 슬랙스에는 대한민국 출신 메이저리거가 한 명 뛰고 있으니 당연한 것이다.

* * *

좁고 지저분한 로커 룸, 이곳은 뉴욕 킹덤즈의 홈구장인 킹덤즈 스타디움에 있는 원정팀 로커였다.

같은 시설이지만 어느 구단이나 그렇듯 원정팀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을 방해할 목적으로 원정팀에게 주어지는 로커는 무척이나 더럽고 지저분했다.

“모두 들어 봤겠지?”

“……?”

마이크 케세이 감독이 말을 하자 모두 그를 주목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 봐라!”

촤악!

이야기를 하던 마이크 감독은 들고 있던 신문을 크게 펼쳤다.

거기에는 커다란 경기장 사진과 함께 큰 글씨로 ‘FLUKE’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신문은 뉴욕의 대표 일간지인 뉴욕타임이었다.

이를 본 선수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화가 났다는 것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티가 났다.

그런 선수들의 모습을 돌아본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낮게 물었다.

“어제 경기, 정말로 이렇다고 생각하나?”

“아닙니다!”

그 어느 때보다 선수들의 목소리가 컸다.

이는 프로 계약을 하고 이들이 낸 가장 큰 목소리였을 것이다.

“나도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감독은 들고 있던 신문을 흔들어 보이며 이야기를 하였다.

“감독님! 어제 저희는 악의 제국이란 킹덤즈를 12:1로 이겼습니다. 2:1도 아니고 무려 11점 차로 말입니다.”

듣고 있던 대호가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였다.

자신들은 2:1도 아니고 무려 11점 차이나 나는 12:1로 뉴욕 킹덤즈를 이겼음을 역설했다.

작은 점수 차로 그들을 이겼다면 기자들이 떠드는 것처럼 플루크가 맞을 수도 있지만, 자신들은 2:1이 아닌 12:1이란 큰 점수 차로 그들을 이겼으니 플루크가 아니란 뜻이었다.

“말 잘했다. 우린 12:1이란 엄청난 차이로 악의 제국을 짓밟았다.”

말을 마친 감독은 선수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눈으로 물었다.

자신들이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을 이긴 것이 결코 플루크가 아님을 증명해 보이라고 말이다.

“오늘 다시 한번 저들에게 보여 주면 증명이 되겠습니까?”

막내인 대호가 제일 먼저 앞장서며 묻자, 감독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오! 그래, 인크레더블. 다시 한번 킹덤즈를 이곳 킹덤즈 스타디움에서 이긴다면 증명이 되겠지. 어제 우리가 해낸 일이 플루크가 아니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오클랜드 슬랙스 선수들의 표정도 결연한 표정이 되었다.

“표정을 보니 마음에 드는군! 가자!”

“넷!”

다다다다!

결연한 표정이 된 오클랜드 슬랙스 선수들은 감독의 말에 대답하고 라커 밖으로 당당하게 나갔다.

* * *

경기 식순이 끝나고, 본격적인 경기가 시작되었다.

오늘도 선두 타자로 나온 것은 오클랜드 슬랙스의 부동의 1번인 대호였다.

마운드에는 뉴욕 킹덤즈의 3선발인 라이언 홈즈가 서 있었다.

6피트 5인치(195.5㎝) 110㎏의 하드웨어에 우투 우타, 96마일의 포심 패스트볼과 90마일 커터, 그리고 88마일 슬라이더를 갖고 있는 쓰리 피치 투수.

올 시즌 13승 8패의 성적과 자책점 3.12를 거둬 3선발로는 꽤나 괜찮은 수준이었다.

팡! 팡!

연습 투구를 하는 모습을 대기 타석에서 가만히 지켜본 대호는 어제 1차전 선발로 나왔던 레리 킹에 비해 그리 떨어지는 투수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뛰어난 부분도 없는 투수이기도 했다.

‘내가 킹덤즈로 트레이드 되었을 때는 없었지.’

문득 기억을 떠올려 본 대호는 3회차 때, 자신이 킹덤즈로 트레이드 되었을 때는 팀에 없던 투수란 것이 떠올랐다.

“플레이 볼!”

투수의 연습 투구가 끝나고 심판이 경기 시작을 선언했다.

척!

타석에 들어선 대호는 간단한 타격 루틴을 하고는 자세를 잡았다.

‘던져 봐!’

힘을 빼고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마운드 위를 쳐다보자, 라이언 홈즈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겨우 메이저 2년 차인 대호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건방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디 한 번 당해 봐라!’

건방진 애송이를 교육하겠다는 생각을 한 라이언 홈즈는 안쪽 깊은 곳에 95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퍽!

“볼!”

몸 쪽 가까운 곳으로 강력한 포심 패스트볼이 날아왔지만, 대호는 그것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뭐야?’

자신의 몸에 가까이 붙이는 위협구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대호의 모습에 오히려 공을 던진 라이언이 더 놀랐다.

씨익.

겨우 이 정도냐? 라는 듯한 대호의 미소에 라이언 홈즈의 순간 굳어 버렸다.

기선 제압을 위해 던진 위협구에 당황하지 않는 20살 애송이, 그 애송이가 지은 미소를 본 라이언 홈즈가 오히려 압박감을 느꼈다.

‘장난이 아니군!’

‘라이언, 장난하지 말고 신중하게 던져.’

오늘 라이언 홈즈와 배터리를 이룬 포수 벤트 로베르트가 신중히 사인을 보냈다.

‘알았어.’

벤트의 사인을 읽은 라이언 홈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중하게 투구를 하였다.

펑!

“스트라이크!”

바깥쪽 공 반 개 정도 빠지는 볼이었지만, 오늘 주심은 이런 공도 스트라이크로 잡아 주었다.

‘오늘 주심의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이 넓네.’

방금 전에 볼이라 판단하고 스윙을 가져가지 않은 대호는 자신의 판단과 다른 주심의 판정에 고개를 끄덕였다.

팡!

“스트라이크!”

방금 전에는 몸 쪽 높은 볼이었다.

이번에도 반 개 정도 높았기에 볼이라 판단했는데, 이번에도 주심은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렸다.

이 때문에 대호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 판정으로 바깥쪽과 높은 쪽에 공 반 개 정도 넓게 스트라이크 존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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