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촤아아아악!
투수의 투구 모션과 공을 던지는 패턴을 읽은 대호는 과감하게 도루를 시도했다.
아무리 괴물과 야구 천재들이 모인 메이저리그라 하지만, 투수가 계속해서 패스트볼만 던질 수는 없는 일이다.
당연한 것이 메이저리그에서 선발로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들의 수준은 하나같이 높지만, 그들을 상대하는 타자 또한 괴물이라고 불리는 이들 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흔히 야구에서 말하길 투수와 타자는 가위바위보 싸움이라 한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강하지 않고 방심하거나 자만을 할 때, 혹은 상대의 수를 먼저 읽었을 때, 그때는 어쩔 도리가 없다.
지금도 그랬다.
방금 전 대호가 1루에서 2루로 도루를 시도한 것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투수와 포수의 사인을 읽고 그 빈틈을 파고든 것이다.
팡!
포수가 던진 공이 2루수에게 날아왔지만, 대호가 먼저 2루 베이스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들어가며 왼쪽 손으로 베이스를 감아쥐었다.
“세이프!”
포수가 던진 공을 받은 2루수가 빠르게 글러브로 대호의 몸에 태그를 해 보았지만, 먼저 베이스를 쟁취한 대호를 잡을 수는 없었다.
최근 선수들의 부상 위험으로 인해 가을 야구 등의 중요한 경기가 아니라면 거의 보기 힘든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이었지만, 대호는 거리낌 없이 시도하며 경기를 뜨겁게 만들었다.
“와아아아!”
탁탁탁!
슬라이딩으로 2루에 들어간 대호는 베이스를 밟고 몸에 묻은 흙을 털었다.
‘이로써 도루 53개. 목표까지 일곱 개 남았다.’
정면 승부를 하지 않겠다면 자신은 다른 것을 노리면 되었다.
오늘 경기만 해도 앞으로 최소한 두 타석 더 남아 있었다.
‘후후후!’
2루 도루를 성공한 대호는 입가에 미소를 가득 품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근육을 풀었다.
다시 마운드 위에 있는 투수가 공을 던지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대호는 또 다시 기회를 보기 위해 2루 베이스에서 떨어져 리드를 가져갔다.
노아웃, 볼넷 하나가 2루가 되어 버렸다.
1회 말 공격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득점 기회를 잡은 오클랜드는 2루에 있는 대호의 적극적인 공격 가담에 좋은 기회를 잡았다.
2루 베이스에서 떨어져 마운드 위의 투수를 자극하는 대호, 다니엘 가자는 이미 한 번 도루에 성공했음에도 계속해서 저런 모습을 보여 주자 짜증이 솟구쳤다.
하지만 볼카운트가 2B 노 스트라이크로 투수에게 불리한 상황이었기에 이번에는 어떻게든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예감이 좋지 못했다.
‘…맞을 것 같은데.’
다니엘은 이상하게 이번에 스트라이크를 던지면 지미 울프에게 한 방 얻어맞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쉽게 공을 던지지 못했다.
‘후우!’
그런 자신의 심정도 모르고 포수는 계속해서 인코스 스트라이크를 던지라고 사인을 보내니, 그로서는 답답했다.
한편 대호는 마운드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다니엘 가자의 모습을 보며 그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투수의 생각을 읽은 대호는 급히 1루를 향해 사인을 보냈다.
‘코치님! 투수가 이번에 던질 공은 몸 쪽 스트라이크입니다.’
포수가 현재 어떤 공을 주문할 것인지 예상한 대호는 투수의 심리까지 읽고는 그렇게 사인을 보냈고, 2루에 나가 있는 대호의 사인을 받은 1루 선상에 나가 있던 주루 코치는 바로 타석에 있는 지미 울프에게 사인을 전달했다.
보통 선수였다면 이런 상대의 사인이나 투수의 심리를 알지 못해 타자의 타격 후에나 반응했겠지만, 대호는 그렇지 않았다.
‘인코스 스트라이크? 하긴, 조금 전 볼이 바깥쪽 높은 볼이었으니…….’
1루 주루 코치의 사인을 받은 지미 울프는 사인을 확인하고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결론은 코치의 사인이 맞을 확률이 높다는 판단을 내렸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다니엘 가자가 던진 공은 몸 쪽 허리 높이로 날아드는 스트라이크 코스의 패스트볼이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코스였기에 지미 울프는 당황하지 않고 앞에 놓인 왼발을 바깥으로 한 스텝 이동을 하고 허리를 회전하며 스윙을 가져갔다.
따악!
배트의 중심에 정확하게 맞은 것은 아니었지만, 타구는 유격수 키를 넘기며 좌익수 방면 중간 지점에 떨어졌다.
다다다다!
2루에 있던 대호는 지미 울프의 타구가 나오기 전 먼저 뛰었다.
이는 지미 울프가 다니엘 가자의 투구를 타격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무조건 뛰겠다는 시도였다.
지미 울프가 타격을 하면 런 앤 히트가 되는 것이고, 안타를 치지 못하고 헛스윙을 하면 도루 시도가 되는 일이니까.
다행인 점은 지미 울프의 타구가 좌익수 앞 안타가 되었다는 것이다.
미리 스타트를 끊은 대호는 타구가 유격수를 통과하기 전 이미 3루 베이스를 밟고 멈춤 없이 홈으로 뛰었다.
“와아아!”
3루 쪽 오클랜드 더그아웃 뒤쪽에 있던 홈팬들은 그런 대호의 주루에 열광했다.
겨우 2번 타자가 나와 타격을 했는데, 주자가 3루를 돌아 홈으로 쇄도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촤아악!
지미 울프의 안타가 비교적 짧은 안타였기에 대호는 홈으로 들어가며 다시 한번 슬라이딩했다.
길목에 LA데블스의 포수가 자신을 막기 위해 대기를 하고 있었지만, 대호의 빠른 손놀림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세이프!”
주심은 대호가 홈 플레이트를 손바닥으로 치고 미끄러지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양손을 옆으로 벌리며 ‘세이프’를 선언했다.
홈에서 접전이 예견되었지만, 결과는 생각보다 싱겁게 결판 지어졌다.
분명 타이밍으로 접전, 내지는 수비가 유리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포수가 공을 받기 전 대호는 그 옆을 통과해 홈으로 들어갔다.
이에 놀란 포수가 홈으로 들어간 대호를 쳐다보았을 때, 1루에서 멈췄을 것이라 생각했던 지미 울프가 2루로 뛰기 시작했다.
“2루! 런!”
포수의 뒤로 백업을 들어왔던 다니엘 가자가 급히 소리쳤다.
뒤늦게 다니엘의 목소리를 들은 포수가 고개를 돌려 2루로 송구를 하였다.
팡!
그러나 이미 한 발 늦은 상태였다.
“세이프!”
“후우! 후우!”
2루에 들어간 지미 울프는 베이스를 밟고 일어나 가쁜 숨을 쉬었다.
안타를 치고 1루로 전력을 다해 뛰던 그는 1루에 나가 있는 주루 코치가 급히 손을 돌리는 모습을 보고 곧바로 오른발로 베이스를 찍은 뒤 몸을 틀어 2루로 뛰었다.
2루를 향해 뛰는 그의 눈에 공을 잡은 좌익수가 홈으로 공을 던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본 지미 울프는 주루 코치의 판단이 틀리지 않다 판단하고 다시 한번 젖 먹던 힘까지 짜내 2루로 뛰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가 되었다 싶었을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였다.
그런 그의 귀에 2루수의 글러브에 공이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팡!
촤악!
그와 동시에 그의 손끝에 2루 베이스의 감촉이 느껴졌다.
“세이프!”
손끝에 베이스의 감촉이 느껴짐과 동시에 심판의 선언이 들려왔다.
“하아! 하아!”
너무도 숨이 찼다.
하지만 자신이 해냈다는 성취감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 뒤이어 팬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와아아아!”
한편 홈으로 들어온 대호는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비록 도루를 하나 더 추가하진 못했지만, 득점을 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짝!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던 대호는 대기 타석에 나가기 위해 바깥으로 나오던 홈런 브레드와 손바닥을 마주쳤다.
“시작부터 달리는구나!”
“투수가 절 상대해 주지 않으니 제가 할 수 있는 게 달리는 것뿐이네요.”
“하하! 아무래도 지금 상황에선 그렇지!”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에 도전하는 대호에게 투수들이 정면 승부를 피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 때문에 조언을 해 주기 위해 멈췄던 브레드는 대호의 대답을 듣고 웃었다.
팀의 주장으로서 대호가 초조해하거나 스트레스 받을 기미가 보인다면 다른 방법에 대해 알려 주려 했지만, 자신이 조언해 주지 않더라도 이미 다른 길을 찾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둘의 대화를 더그아웃 입구에서 들은 그렉 헥슬러 수석 코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인크레더블은 인크레더블이군!’
그는 이제 겨우 스무 살의 어린 선수가 메이저에서 10년 이상 구른 베테랑 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것에 깜짝 놀랐다.
1회부터 대호의 볼넷과 도루에 이은 2번 타자 지미 울프의 안타로 득점을 하면서 오늘도 오클랜드 슬랙스는 지구 라이벌인 LA데블스를 리드해 갔다.
이날 LA데블스와 홈 2차전에서 대호는 한 개의 안타도 때리지 못했지만, 세 개의 도루를 성공하면서 도루의 숫자를 55개로 늘렸다.
그리고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오클랜드 슬랙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대호를 상대하는 구단이나 투수들에게 때 아닌 비상이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뒤늦게 대호의 도루 숫자가 언급되면서 현재 대호가 메이저리그 소속 선수 중 홀로 50―50클럽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 50―50이 가능한 선수들에 대한 언급이 있은 뒤, 다시 한번 대호가 60―60클럽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실 50―50도 거의 불가능하다 여겨지던 기록이었다.
한 시즌 50개 이상의 홈런을 치는 타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리고 50도루를 하는 선수는 또 몇이나 될까?
그런데 이것을 한 사람이 한 시즌에 기록한 것이다.
200년이 넘는 야구 역사에서 지금까지 기록한 적 없던 것을 메이저리그 2년 차에 수립한 선수가 나왔으니 사람들의 열광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 어린 선수는 비단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50―50클럽을 통과해 이제는 60개의 홈런과 60개의 도루가 필요한 60―60클럽에 도루 다섯 개만 남겨 둔 상태였다.
남은 경기는 앞으로 일곱 번.
즉, 한 경기에 도루 하나씩만 기록하면 달성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인 73개를 넘기는 것보다 더 대단한 기록일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타력이 뛰어난 건 물론이고, 빠른 발과 작전 수행 능력까지 갖춰야 어찌어찌 도전해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40―40클럽만 기록해도 대단한 것이다.
야구 천재와 괴물들이 모여 있는 메이저리그에서 그러한 기록을 달성하는 건 자신이 괴물 중의 괴물임을 증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심지어 40홈런을 기록할 수 있는 강타자라면 도루하다 다치는 게 더 손해이기에 최근 추세는 아예 도루를 시도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부는 도전하고, 또 기록하곤 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그런 기록을 세운 이들은 모두 명예의 전장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대호 역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시즌 종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홈런을 치기 보다는, 보다 쉬운 목표인 60―60클럽 입성을 노리는 것이었다.
이는 한 시즌에 하나의 기록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기록을 쓰는 것이니, 자신의 목표에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 * *
오클랜드 슬랙스의 주장인 홈런 브레드는 뒤늦게 뉴스를 보고 대호의 신기록에 대해 깨달은 뒤, 다음날 구장에서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이런 욕심꾸러기 같은 녀석!”
은퇴를 눈앞에 두고 있는 홈런 브레드는 팀의 막내인 대호가 자신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야구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 놀랍고, 또 부러우며 한편으로는 질투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곧바로 사그라들었고, 가장 크게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자랑스러움이었다.
자신의 나이가 5년만 더 젊었더라면 가장 크게 든 감정은 질투였겠지만, 은퇴를 앞둔 지금은 자랑스러움, 그것이 가장 컸다.
앞으로 최소 20년은 더 메이저리그에서 역사를 써 나갈 스포츠 스타와 함께하니 어찌 자랑스럽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자신이 몇 년 뒤에 은퇴를 하고 자식이 커서 손자가 태어났을 때도 두고두고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정도였다.
위대한 야구 역사를 쓴 전설과 자신이 함께 경기를 뛰었다고 말이다.
“대호, 하나만 물어보자.”
브레드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 물어보세요.”
“그래. 그럼 너 뉴스에 나온 것처럼 정말로 60―60클럽에 도전하는 중이냐?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 아니라?”
사실 팀에선 대호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 달성을 두고 내기가 한창이었다.
대부분 기록을 하지 못한다가 우세했고, 대호라면 가능하다라는 의견도 소수 존재했다.
그런데 대호의 행보를 보면 홈런에는 그리 관심이 없는 듯 보여 홈런 브레드가 직접 물은 것이다.
“그건…….”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