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23화 (123/209)

123화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 우승을 확정지은 오클랜드 슬랙스였지만, 지구 라이벌인 LA데블스와 치른 홈에서의 스윕 승은 오클랜드 팬을 흥분시키기 충분했다.

그리고 또 이 속에 팀의 스타 중 한 명이 메이저리그 역사적 기록을 써 나가고 있음을 깨닫고 더욱 흥분했다.

현재 오클랜드 슬랙스의 시즌 기록은 108승 50패.

그렇기에 60―60을 도전하고 있는 대호를 제외한 많은 주전 선수들에게 휴식이 주어졌다.

주전 선수에게 휴식이 주어진 것은 전적으로 가을 야구를 대비한 조치였다.

부상이 없음에도 주요 선수들을 일부러 IL(부상자 명단)에 올리는 한편, 마이너리그에 있는 유망주에게는 경험을 쌓게 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지구 우승을 확정 지은 오클랜드에게는 남은 경기의 승패가 중요하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팡! 팡!

뉴슬랙스 볼파크에서는 선수들의 토스 훈련을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브렛! 너도 왔구나!”

대호는 반년 넘게 보지 못했던 마이너리그 친구를 보자 반갑게 인사를 했다.

팡!

“응. 드디어 왔네. 하하, 대호 너는 정말이지 이번 시즌에도 인크레더블하더라!”

얼마 전까지 트리플A에서 뛰던 브렛은 오랜만에 만난 대호를 보며 그렇게 말을 걸었다.

“나야 뭐, 언제나 똑같이 했을 뿐이야.”

대호는 담담히 브렛의 말을 받았다.

자신은 작년 마이너리그에서나 후반기 메이저리그로 콜업 되었을 때, 그리고 올 시즌 풀타임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 모두 최선을 다했다.

그러하였기에 마이너리그에서 반 년 만에 단계를 뛰어넘어 메이저리그로 콜업이 되고, 다른 사람은 한 시즌에 기록할 성적을 후반기만에 기록할 수 있었다.

또한 이번 2032시즌에는 풀타임을 뛰면서 야구 역사에 남을 기록을 세웠고, 또 더더욱 위대한 기록에 도전 중이다.

“에휴, 야구 천재한테 이런 말해서 뭐 하겠냐!”

대답을 들은 브렛은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작년 마이너리그에서 함께할 때 보았던 대호의 괴물 같은 활약을 생각하면, 올해 대호가 작성한 기록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 텍사스 촌놈들을 상대로 도루 가능하겠냐?”

브렛은 문득 생각이 난 것인지, 오늘 상대할 텍사스 레이스를 언급했다.

“가능하겠냐라니?”

“너 60―60 도전을 하고 있다면서?”

자신의 질문에 뚱한 표정을 하며 대답을 하는 대호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차 물어보는 브렛이다.

“기회가 되면 언제든 뛸 생각이야! 감독님도 허락한 일이고.”

오클랜드 슬랙스 구단 내에서 대호의 기록 도전은 개인을 떠나 모두가 바라는 일이었다.

그러하였기에 현재 대호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되었다.

모든 면에서 기존 선수들을 능가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는 대호에게 감독이나 코치들이 세세하게 지시를 내릴 필요가 없다는 판단 하에 모든 작전 상황에서 완벽하게 그린 라이트가 주어졌다.

그래서 대호는 루상에 나가 있을 때, 임의로 1루나 3루에 나가 있는 코치들에게 먼저 사인을 보내 작전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작전은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당연히 마이크 감독이나 코칭스태프들이 대호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야구 천재가 팀을 유도하고 있는데, 막을 이유가 없었다.

솔직히 오클랜드 슬랙스가 조기에 지구 우승을 차지한 것의 지분을 따진다면, 거의 70% 이상은 대호의 역할이 컸다.

이제 막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온 브렛으로서는 이러한 자세한 사정까지 알지 못하니, 황당한 표정을 하고 대호를 바라볼 뿐이다.

* * *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가을 하늘,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은 오클랜드 팬들의 표정은 한없이 밝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더 이상 작년처럼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가을 야구를 할 수 있을지 걱정에 떨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오클랜드 슬랙스는 이미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 우승을 확정 짓고, 선수의 개인 기록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리그 홈런 부문 1위와 타격, 타점은 물론이고 모든 공격 지표와 수비 지표 등에서 1위를 하고 있는 대호.

그런 대호의 개인 기록 중에서도 팬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지금까지 한 번도 누구도 가보지 못한 60―60클럽 달성이었다.

홈런 60개, 도루 60개를 해야만 기록 달성이 가능한 것이 바로 60―60클럽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아시아 최고의 야구 천재는 누구인가를 따지며 한국과 일본의 야구팬은 대호와 히데오 소이치로를 두고 격렬한 토론을 했다.

하지만 대체로 메이저리그 신인상을 받은 일본의 히데오 소이치로가 좀 더 뛰어난 선수라는 게 중론이었다.

그런데 올림픽 이후 그러한 논쟁은 쏙 들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호와 히데오 소이치로의 메이저리그 기록은 그 갭의 차이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물론 히데오 소이치로의 올 시즌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무척이나 훌륭했다.

일본의 역대 최고의 야구 천재란 타이틀이 아깝지 않게 그의 올 시즌 메이저리그 기록은 40―40클럽에 입성한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라이벌인 대호의 성적이 너무도 압도적이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40―40클럽 입성이 대단한 기록이란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50―50클럽 달성과 60―60클럽 도전에는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었으니까.

더욱이 히데오 소이치로는 한 단계 위의 기록인 50―50클럽 입성이 요원하지만, 대호의 60―60클럽 입성은 거의 확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도 평가가 바뀌는데 한몫했다.

이제 남은 것은 불과 도루 다섯 개.

그에 반해 히데오 소이치로가 50―50클럽에 입성하기 위해선 도루 여섯 개와 홈런 여덟 개가 더 필요했다.

남은 메이저리그 경기가 일곱 게임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사실 힘들었다.

히데오 소이치로가 이 남은 경기에서 50개의 홈런을 치기 위해선 매 경기 홈런을 치는 건 물론이고, 그중 한 경기에서는 멀티 홈런을 쳐야만 했다.

거기에 도루까지 여섯 개를 추가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그를 지지하는 일본의 야구팬들도 사실상 이번 시즌에서는 자신들의 영웅이 한국의 야구 천재에게 패배했다고 말하는 중이었다.

“하하하! 정말이지 속이 다 시원합니다.”

김승주는 카메라를 보며 호탕하게 웃으며 중계를 시작했다.

“뭐가 그리 속 시원하다고 하시는 겁니까?”

하구연 해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 하구연의 모습에 김승주는 이가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대답을 하였다.

“작년과 올해 초까지 끊임없이 우리나라와 일본을 달구던 논쟁이 있지 않았습니까?”

“논쟁이요?”

“예. 우리 대한민국의 야구 천재와 일본의 야구 천재 중 누가 더 뛰어난 선수일까, 하는 논쟁 말입니다.”

김승주는 진지한 눈을 하고는 하구연을 보며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 김승주의 이야기에 하구연 해설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아! 그 말씀 말이군요. 하하하!”

이야기를 하다 말고 하구연도 조금 전 김승주가 그랬던 것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그 때문인지 중계 부스 주변에 있던 야구팬들이 이상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람은 자신들의 세계에 빠져 이야기꽃을 피웠다.

* * *

텍사스 레이스의 선발 화이트 윈은 오클랜드의 1번 타자 대호를 맞아 긴장되어 공을 던지지 못하고 있었다.

‘제길, 어떻게 해야 하지?’

메이저리그에서 벌써 4년째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그이지만, 대호를 상대로 공을 던지는 것이 여간 껄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제까지만 해도 솔직히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홈런 기록을 주지 않기 위해 어렵게 승부를 가져가기로 작정을 했고 또 구단에서도 그렇게 지시를 내려왔었다.

하지만 불과 하루 만에 상황이 바뀌었다.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주지 않기 위해 작전을 세웠는데, 그게 모두 헛수고였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대호가 노리고 있는 것이 비단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가 보지 못한 60―60클럽임이 밝혀졌고, 그 달성이라는 대기록까지 불과 도루 다섯 개를 남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즉, 홈런뿐만 아니라 루상에 내보내는 것 자체가 기록 달성에 도움을 주는 행위라는 뜻이었다.

이것도 저것도 허용하지 않으려니 정작 투수가 던질 것이 없어져 버렸다.

그렇다고 몸에 공을 던져 버릴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냥 눈 딱 감고 맞춰 버려?’

순간 그의 머릿속에 악마의 속삭임이 들렸다.

휙휙!

화이트 윈은 고개를 휘휘 저으며 유혹을 뿌리쳤다.

운동선수로서 절대로 해선 안 될 행위였기에 화이트 윈은 타자를 맞춘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후우!”

긴장이 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이 쉬어졌다.

한편, 타석에 있던 대호는 망설이고 있는 화이트 윈의 모습에 속으로 웃었다.

투수가 타자를 상대로 압박감에 눌려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신은 위대한 기록을 향해 달리는 중이지 않은가?

긴장하고 있는 투수를 보며 대호는 방심하지 않았다.

어차피 투수는 자신을 상대로 좋은 공을 던지지 않을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떤 공을 던지던 난 내 스윙을 가져가면 돼!’

마운드 위에서 망설이던 투수가 투구동작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꾸욱!

전신의 근육에 적당히 긴장을 주면서 투구를 지켜보았다.

휘익!

팡!

“볼!”

역시나 좋은 공이 날아오지 않았다.

다만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 것인지 판정은 볼이었다.

‘좋은 공이야!’

비록 볼이 되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본 공 중 가장 좋은 볼이었다.

‘주심의 바깥쪽 판정이 다른 심판들에 비해 깐깐한 편이네.’

메이저리그에 있는 심판들은 대체적으로 바깥쪽 공에 후한 편이고, 상대적으로 몸 쪽 공에 판정이 인색했다.

그런데 오늘 주심은 바깥쪽 판정이 다른 일반적인 메이저리그 심판들에 비해 타이트했다.

‘이러면 내겐 좋지.’

그랬다.

안쪽 코스에 대한 판정은 어떨지 모르지만 바깥쪽 공에 대해 스트라이크 존이 좁다는 것은 타자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휘익!

조금 전 코스와 비슷한 바깥쪽 공이 날아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안쪽으로 공 반 개 정도 더 들어온 공이었다.

‘이건 참을 수 없지.’

자신이 정해놓은 스트라이크 존에 비슷하게 날아오는 공을 보자 대호는 그대로 스윙을 가져갔다.

따아악!

배트의 스윗 포인트보다 살짝 벗어났지만, 대호는 구위에 밀리지 않게 손아귀에 힘을 주며 팔로 스윙을 끝까지 가져갔다.

손아귀에 묵직한 타격감이 느껴졌지만, 대호는 배트를 휘두르자마자 타구의 방향을 깨달았다.

‘홈런 하나 추가요.’

스윗 포인트에 맞아 아무런 느낌도 없는 홈런과는 다르지만, 이번 타격도 분명 홈런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타다다다.

타격을 끝낸 대호는 가볍게 조깅을 하듯 뛰었다.

“와아아아아!”

대호의 타구는 큰 포물선을 그리며 우중간으로 날아갔다.

다만 탄도각이 33°를 이루면서 이상적인 홈런 각을 이루었기에 이를 지켜보는 팬은 물론이고 고개를 돌리던 투수도 타구를 쫓던 우익수도 날아가는 타구를 보다 멈췄다.

그들도 깨달은 것이다.

66호 홈런을 친지 이틀 만에 또다시 홈런 하나를 추가했다는 걸 말이다.

“와우! 우리의 정대호 선수, 67호 홈런을 쳤습니다.”

“예. 화이트 윈 선수 잘 던졌지만, 정대호 선수의 배트 끝에 걸리면서 홈런이 되었습니다.”

하구연 해설은 방금 전 대호의 홈런이 배트 중심이 아닌 끝에 걸렸지만, 홈런이 된 것을 이야기하였다.

“정대호 선수, 정말로 무섭습니다. 어떻게 배트 끝에 걸린 공이 저렇게 홈런이 됩니까?”

김승주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보았다는 것처럼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평범한 타자라면 불가능할 테지만, 정대호 선수처럼 선천적으로 손목 힘이 강한 타자라면 가능합니다. 대표적으로…….”

대호의 홈런을 두고 하구연 해설은 정확한 분석을 하며 설명을 이어 갔다.

“정대호 선수로 인해 한 시즌 최대 홈런 순위에서 순위가 밀리긴 했지만, 소사 세미 선수나 KBO에서 활약을 했던 후이그 선수와 같이 손목 힘만으로 홈런을 칠 수 있는 몇몇 선수는 방금 전 정대호 선수가 그랬던 것처럼 배트 중심부에 공이 맞지 않더라도 힘으로 홈런을 만들기도 합니다.”

“듣고 보니 정대호 선수 엄청나군요.”

김승주는 설명을 듣고 나니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저도 모르게 머릿속에 떠올린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이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부스 밖 오클랜드 야구팬들은 대호의 67호 홈런에 열광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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