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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118화 (118/209)

118화

WBSC에서 자신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소집된 것도 모르고 대호는 최태경이 입원한 병원을 찾았다.

다른 올림픽 야구 대표 팀 선수들은 이미 시상식이 끝나고 바로 다음날, 대한민국으로 귀국했다.

올림픽 브레이크로 인해 리그가 중단된 상태였지만, 차출된 이들을 제외하면 계속해서 쉬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곧 리그가 재개될 테고,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

다만 최태경의 경우 부상 때문에 정밀 검사를 한 후 안정을 취한 뒤 귀국하기로 결정했다.

또 대호의 경우 메이저리거였기에 굳이 한국으로 귀국할 필요가 없어 이곳에 남았다.

다만 대호 역시 오클랜드로 돌아가야 했는데, 그전에 최태경의 병문안을 하고자 했다.

“몸은 좀 어떠냐?”

병실로 들어간 대호는 침대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최태경을 보며 물었다.

“보면 모르냐? 나 아무 이상 없어.”

대호가 병실로 들어온 것을 본 최태경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네.”

환자복을 입고 있기는 했지만, 겉보기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 같고 또 표정 역시 밝아 안심되었다.

“그런데 너, 괜찮겠냐?”

에릭 헤밀턴의 공에 맞아 자신이 타석에 쓰러져 있을 때, 언뜻 대호가 더그아웃에서 마운드로 뛰어가는 것을 본 듯했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뭐… 상관없어.”

대호는 정말로 상관이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그래도 징계가 내려오지 않겠어?”

최태경은 자신 때문에 대호가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차피 올림픽 경기잖아. 이번 일로 IOC에서 받을 징계는 경기 퇴장으로 끝났어!”

메이저리거인 자신에게 IOC에서 내려질 징계란 별것 없었다.

올림픽에서 불법 약물이라도 사용하지 않은 이상은 말이다.

그렇다면 WBSC의 징계뿐인데, 이 또한 대호는 걱정하지 않았다.

WBSC의 징계라고 해 봤자 국제 경기 몇 게임 출장 정지 정도일 텐데, 그런 건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할 테니까.

조금 전에도 언급을 했듯 대호는 메이저리그 구단 소속이다.

WBSC의 부회장 맥브레드가 리카르도 회장의 말에 분루를 삼켰듯이, MLB 사무국은 여타 다른 스포츠 연맹과는 격이 다른 힘을 지니고 있었다.

어쩌면 세계화되지 못한 종목이라 그런 것일지도 몰랐지만, 근본적으로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철저히 적용되는 리그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선수들에게 불이익을 강제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대호는 WBSC가 이번 일로 자신에 대한 징계위를 소집하고 징계를 한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더불어 에이전시인 제리&맥콰이어에서도 징계 문제는 자신들 선에서 처리할 테니 괜찮다고 말했기에 그런 대답을 한 것이었다.

“그거 네 생각이야? 아님 정말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이야?”

태경은 너무도 이상한 대호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정말로 상관없다니까? 솔직히 말해서 출장 정지 때리면 대회 출전 안 하면 되지. 아마 그러면 구단에선 더 좋아할 걸?”

“…어?”

대호의 이야기를 들은 태경은 순간 머리를 뭔가에 한 방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지금까지 태경은 WBSC에서 징계를 받으면 대호가 무언가 불이익을 받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걱정을 한 것인데, 설명을 듣고 나니 자신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전개가 펼쳐질 듯했다.

어차피 메이저리그 구단은 시즌 중 올림픽 등의 대회 때문에 자신들이 보유한 선수를 출신 국가에 빼앗겨 활용하지 못하는 것에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WBSC가 대회 출장 정지 몇 게임 때리면, 구단 입장으로선 오히려 땡큐였다.

“젠장, 내가 괜한 걱정하고 있었구나! 이래서 메이저리거 걱정은 하지 않는 거라던데, 그 말이 맞았어!”

최태경은 괜히 무안해진 나머지 되지도 않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래. 내 걱정하지 말고 네 걱정이나 해라!”

“하하하!”

대호의 말을 들은 최태경은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이런 두 사람과는 다르게 대한민국에선 대호에 대한 안 좋은 여론이 다시금 모락모락 피어났다.

* * *

「고선일보 2032. 09. 30.

어린 선수가 국제 경기, 올림픽과 같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큰 대회에서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폭행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아무리 뛰어난 선수이고 인기가 많은 스포츠 스타라 하지만, 이는 결과 좌시할 수 없는 일이다. …(중략) 올림픽 야구 그랜드 파이널 게임에서 J씨(20)는 미국의 투수 에릭 헤밀턴을 상대로 …(하략) WBSC에서는 중징계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J씨는 충분히 반성하고 스포츠 스타로서 어린 팬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길 바란다.」

대호사랑: 아 씨바! 이 새끼 또 이 지랄 하네.

대호부인: 그러게 그럼 우리 편이 공에 맞았는데, 당연 벤클해야지.

⤷벤클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를 폭행했잖아! 폭력 반대.

⤷애들도 보는데, 그건 아니지. 메이저 경기도 아니고.

⤷메이저리그 아니면 그건 야구 아니냐? 상대에게 당했으면 바로 갚아 줘야지

⤷올림픽 정신! 올림픽 정신이 부족한 선수는 올림픽에서 퇴출해야 한다.

그라운드의빅타이거: 올림픽 정신 같은 소리한다. 그럼 타자를 향해 공을 던지는 투수는 올림픽 정신이 투철해서 그런 식으로 공을 던지냐!

* * *

승자조 결선이 끝나고 대호가 결혼 상대인 한나 포커스와 저녁 식사를 하는 모습을 가지고 스캔들 기사를 냈던 고선일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가지고 스캔들 기사를 썼다 된서리를 맞았던 그들은 그것을 만회하고자 이번에는 대호가 그랜드 파이널 경기에서 3회 말, 최태경에게 빈볼을 던진 에릭 헤밀턴을 마운드에 메다꽂아 버린 일을 대서특필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전략은 잘 맞아떨어졌다.

이번 기사에서는 예전과 다르게 많은 이들이 대호를 부정적으로 봤던 것이다.

폭력이라는 행위는 언제 일어나도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사태였다.

또한 프로 리그라면 그나마 어느 정도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올림픽처럼 아마추어리즘이 녹아 있는 대회에서는 누가 원인을 제공했냐를 떠나 일단 폭력을 휘두른 대호에게 부정적인 시선이 더 강했다.

그러다 보니 이번 고선일보의 기사는 대호에 대한 저격 글임에도 많은 사람이 좋아요를 누르고 있었다.

* * *

“이것들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나!”

오클랜드 슬렉스 아시아 지부 담당인 조나단은 고선일보의 기사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

얼마 전 대호에 대한 스캔들 기사로 한차례 홍역을 겪었던 조나단이다.

다행히 스캔들이 아니라 사진 속 여성이 대호의 결혼 상대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제가 달랐다.

올림픽 경기 중 폭력 사태였기에 무조건적으로 편을 들지 않았고, 그 때문에 조나단은 기사의 댓글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대호! 고선일보란 곳에서…….”

기사를 확인한 조나단은 미국에 있는 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기사의 내용에 대해 설명을 하고 어떻게 할지 물었다.

원래 이런 것은 에이전시에서 알아서 해 줄 일이었지만, 대호가 오클랜드 내에서 가지는 위상이 워낙 높다 보니 구단에서 먼저 나서서 케어해 주는 것이었다.

* * *

최태경에 대한 병문안을 마치고 오클랜드로 떠나려고 공항을 찾았던 대호는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 게이트 인근에서 쉬고 있었다.

간간이 대호를 알아본 야구팬이 다가와 사인을 요구하면 사인을 해 주고, 또 사진을 원하면 함께 사진도 찍어 주는 등 팬 서비스를 하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따르릉!

“잠시 전화 좀 받겠습니다.”

사인을 요구하는 팬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발신자는 오클랜드의 스카우터인 조나단이었다.

자신을 오클랜드로 스카우트한 스카우터였고, 단장인 조엘만큼이나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이기도 했기에 전화기에 번호가 저장되어 있는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어쩐 일이에요?”

아시아 담당 스카우터인 그가 시즌 중 자신에게 전화를 할 일이 뭐가 있을까, 대호는 그런 생각하며 물어보았다.

구단 프런트 직원이 전화를 했다면 이해가 갈 텐데, 스카우터인 조나단이 전화를 한 것은 조금 의아했다.

“아니 거기서 또 그런 기사를 냈다고요?”

조나단의 이야기를 들은 대호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 번도 아니고 이번에는 그랜드 파이널 게임에서 벌어졌던 벤치 클리어링을 가지고 자신을 무식한 폭력배로 일컬으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여론이 자신에게 부정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호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미 세 번이나 회귀한 대호였음에도 아직도 이런 부정적인 여론 형성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가?

메이저리그에서 잘 나가고 있음에도 국가에서 올림픽 대표 선수로 차출했을 때, 국위 선양을 위해 흔쾌히 대표 팀에 합류했다.

그렇다고 대표 팀에 와서 농땡이를 피운 것도 아니다.

자신의 최대 역량을 발휘해 약체라 평가받던 대한민국의 금메달에 큰 공헌을 하지 않았던가.

물론 그랜드 파이널에서 벤치 클리어링이 이루어졌을 때 폭력을 쓴 것은 잘못된 일일지도 모른다.

하나 그것도 앞뒤 사정을 따져 보면, 충분히 납득 가능한 수준의 일이었다.

그런데 여론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으니, 대호로서는 배신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스타의 몰락을 바라는 것이 사람들의 욕망이라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상관없습니다.”

대호는 차갑게 눈빛을 빛내며 그렇게 대답했다.

프로로써 그러면 안 되는 말이었지만, 팬들이 외면하겠다면 대호는 그것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굳이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까지 팬이라며 보듬어 안을 생각은 없었다.

자신을 좋아해 주는 팬이 훨씬 많기에, 그들을 신경 쓰기에도 부족하다고 대호는 판단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에서 아무리 욕해 봤자 자신에게 실질적인 타격은 없었으니까.

이번 4회차, 자신의 모든 기반은 한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곳 미국에 있었다.

누나가 살짝 걱정되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누나와 자신은 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일로 누나에게 뭔가 불이익이 간다면, 그때야말로 참지 않아도 되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끌어모아 때려 부수면 되는 문제였다.

그러니 지금은 자신의 일만 생각하면 되었다.

“선을 넘는 것만 아니라면, 굳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번 조나단에게 전달하고 통화를 마쳤다.

물론 가만히 손을 놓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한 대호는 바로 자신의 에이전시인 맥콰이어에게 전화를 걸었다.

“맥콰이어 씨! 다시 한번 움직여 주셔야겠습니다.”

제리&맥콰이어에 전화를 한 대호는 자신의 담당자인 맥콰이어에게 조금 전 조나단에게 들었던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고, 부정적인 이야기가 더 퍼지기 전에 팩트로 고선일보에 다시 한차례 철퇴를 내려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있는 자신의 가족들에 대한 조치도 부탁했다.

에이전시와 통화를 마친 대호는 또 다른 곳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건 상대는 다름 아닌 올림픽 야구 대표 팀 감독인 추인수였다.

이번 올림픽 그랜드 파이널에서 벌어진 벤치 클리어링을 문제로 자신을 까고 있는 고선일보,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WBSC와 IOC에서 무언가 징계를 준비하고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최태경을 문병했을 때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조나단에게서 연락을 받고 난 이후 그냥 넘길 수 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확실히 칼보다 펜이 더 무섭네!’

추인수 감독에게 전화를 하면서 든 생각은 펜이 칼보다 무섭다는 것이다.

기사 하나로 자신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바로 뒤집어 버렸으니 말이다.

이것을 보면 기자들의 펜대는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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