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17화 (117/209)

117화

대한민국과 미국의 그랜드 파이널 경기에서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졌다.

원인은 미국 팀 투수인 에릭 헤밀턴의 히트 바이 피치로 인해 3번 타자 최태경이 쓰러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3회 말, 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대호와 부상을 당한 최태경이 전력에서 빠지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에 반해 미국은 대회에 대한 위협구가 한 차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위협구를 던져 타자를 맞춰 부상을 입힌 에릭 헤밀턴만이 퇴장을 당해, 미국 올림픽 야구대표팀의 입장에서 아주 남는 장사를 했다.

“이거 좋지 않습니다.”

벤치클리어링을 지켜본 김성주 아나운서는 심각한 표정을 하고 이야기를 하였다.

“미국의 에릭 헤밀턴 투수, 정대호 선수에게 위협구를 던진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3번 타자 최태경 선수에게 데드볼을 던졌습니다.”

“정대호 선수, 이를 참지 못하고 에릭 헤밀턴 선수를 유도 기술로 바닥에 메다꽂았는데……. 해설로서 이러면 안 되지만, 아주 속이 시원합니다.”

“하하! 저도 방송을 중계하는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위원님과 같은 마음입니다.”

“하지만 주심, 폭력을 행사한 정대호 선수에게 퇴장 명령이 내려집니다.”

“우리 대한민국 입장에서 억울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네. 그렇긴 하지만 스포츠 경기에서 룰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공정해야하지 않겠습니까? 폭력은 좋지 못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미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에선 우리 최태경 선수에게 데드볼을 던진 에릭 헤밀턴 투수만 퇴장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김승주와 하구연 해설은 심판의 조치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대한민국에 억울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이는 어쩔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호와 에릭 헤밀턴 외에는 벤치 클리어링으로 충돌한 선수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대호는 더그아웃으로 돌아와 추인수 감독과 코칭스태프, 그리고 선수들에게 사과를 하였다.

“아니다. 물론 네가 좀 더 참았으면 좋았겠지만, 네가 아니더라도 분명 벌어졌을 일이다. 괜찮다.”

추인수 감독은 대호의 죄송하단 사과의 말에 그렇게 답해 주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선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처음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고 마운드로 선수들이 몰려들었을 때, 대호가 나서서 미국의 투수를 거꾸러뜨리지 않았더라면 누구라도 대신 그리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었기에 선수들도 퇴장을 당하고 더그아웃을 나가기 전 사과를 하는 대호에게 크게 타박하는 이는 없었다.

“그런데 태경이는 괜찮겠죠?”

대호는 조심스럽게 최태경의 상태를 물었다.

“그렇게 크게 걱정할 것은 없을 것 같다. 급하게 방어 동작을 한 덕분에 오른쪽 등 쪽에 맞아 정신은 잃지 않았더라!”

공에 맞은 최태경은 다행히 맞는 순간 몸을 틀어 방어 동작을 취했고, 그 덕분에 위험한 부위에 공을 맞지는 않았다.

다만 94마일이나 되는 빠른 공에 직격하였기에 정밀 검사를 위해 교체되어 빠르게 병원으로 이송한 상태였다.

“하아!”

최태경의 상태를 전해 들은 대호는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부탁드립니다.”

대호는 그렇게 고개를 숙여 다시 한번 사과를 하고 더그아웃을 빠져나갔다.

더 이상 경기장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이탄스 스타디움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더그아웃을 나온 대호는 복도를 따라 계단을 올라 3루 쪽 더그아웃 뒤에 자리를 잡았다.

더 이상 시합에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응원하기 위해 객석으로 올라갔다.

대호가 자리에 앉자, 관중석에서는 큰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

“정대호 선수, 3루 더그아웃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김승주는 그런 대호의 모습을 카메라로 보며 설명을 하였다.

“비록 경기에선 퇴장을 당했지만, 팀을 응원하겠다는 의지가 보입니다.”

“네. 저런 것은 보기 좋습니다. 퇴장을 당했다고 로커에 혼자 있는 것보단, 이렇게 밖으로 나와 동료들을 응원하는 것이 남은 선수들에게 힘이 됩니다.”

관람석으로 나와 팀을 응원하는 대호의 모습에 김승주와 하구연 해설은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였다.

다만 외야 수비의 핵심인 대호가 빠짐으로써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의 수비가 헐거워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만 정대호 선수의 퇴장으로 인해 우리 대한민국 외야 수비가 약해졌고, 또 공격에서도 이전과 다르게 약화되었습니다. 그에 반해 미국은…….”

“맞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은 공수 양면에서 전력이 약화된 반면, 미국은 전혀 영향이 없습니다.”

투수야 언제나 교체할 수 있는 문제이니 미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의 경우 에릭 헤밀턴의 퇴장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영향 받은 것을 하나 꼽아 보라면 준비가 덜 된 불펜 정도였는데, 오늘은 그랜드 파이널에 들어가며 벌써 두 명의 투수가 교체된 상황.

그 말은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는 뜻과 같았다.

비록 에릭 헤밀턴의 교체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지만, 다음 투수가 준비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으리라.

* * *

대한민국과 미국의 올림픽 야구 그랜드 파이널 경기는 접전 끝에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의 6:8 승리로 끝났다.

3회 말, 대호가 벤치 클리어링 상황에서 상대 투수인 에릭 헤밀턴에게 폭력을 행사한 일로 퇴장을 당한 뒤 2점을 더 뽑아내며 0:6으로 6점차 리드를 하였다.

하지만 0:6이라는 차이에도 미국의 저력은 그대로였다.

4회에 1점을 시작으로 매회 점수를 뽑아냈고, 8회 초 공격에서는 2점을 획득하며 동점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한국도 이에 뒤지지 않고 8회 말, 주자가 나가자 김대호가 곧바로 2루타를 쳤다.

그 이후 다시 한번 안타가 터져 한국도 똑같이 2점을 획득하며 스코어가 6:8이 되었다.

대망의 9회 초, 미국의 마지막 공격이 시작 되었을 때 마무리 오승원이 마운드에 올랐다.

오승원은 9회 미국의 올림픽 야구 대표 선수들을 맞아 1안타를 내주긴 했지만, 특유의 돌직구를 꽂아 넣어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며 경기를 마무리하였다.

더블 엘리미네이션 방식으로 치러진 올림픽 야구 종목은 승자조에서 올라온 대한민국이 패자조에서 올라온 미국을 상대로 그랜드 파이널 경기에서 승리를 가져갔기에 이프 게임을 치를 필요 없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 * *

대한민국과 미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의 그랜드 파이널 경기가 끝나고 WBSC(세계 야구소프트볼 연맹)에서는 긴급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징계위원회가 열린 이유는 다름 아닌 올림픽 야구 그랜드 파이널 경기에서 나온 벤치 클리어링 때문이었다.

솔직히 경기가 모두 끝났으니 굳이 징계위원회가 열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WBSC의 부회장인 맥브레드 맥도웰의 강한 주장으로 인해 열린 상태였다.

승자조 결선에 이어 이번 그랜드 파이널에서도 미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이 아시아의 작은 나라인 한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에게 경기에서 패배를 하자, 분을 참지 못하고 어떻게든 경기 결과에 흠집을 내기 위해 그런 것이었다.

“어떻게 올림픽에서 상대 선수에게 그런 폭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까? 이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비매너 행위입니다.”

맥브레드 부회장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런 맥브레드 부회장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징계위원회 소집 위원들도 모두 그랜드 파이널 경기를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부회장님,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희도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KBSA 회장인 이상협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뭐요?”

“그렇게 따지면 에릭 헤밀턴 선수가 3회 말 정대호 선수의 타석에서 위협구를 던졌을 때, 먼저 에릭 헤밀턴 선수에게 징계를 내렸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랬다면 애초에 이런 폭력 사태가 벌어지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상협은 에릭 헤밀턴이 대호를 상대로 던졌던 위협구를 언급했다.

비록 몸에 맞지는 않았지만, 정밀 분석 결과 손에서 빠져 우연히 타석에 있던 대호에게 날아간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대호를 노리고 던졌다는 결론이 나왔다.

지금 이상협은 그것을 언급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위협구를 던진 에릭은 그 당시 어떠한 경고 조치도 받지 않았다.

또한 3번 타자인 최태경에게 또다시 같은 위협구를 던져 부상을 입히지 않았던가.

뒤늦게 대호가 마운드로 뛰어가 주먹을 휘두르던 에릭 헤밀턴의 공격을 피하고 그라운드에 메다꽂았다.

아무튼 대호가 폭력을 사용하긴 했으나, 정작 그 시발점이 된 에릭 헤밀턴은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고 심지어 언급조차 없었으니 이상협으로서는 대호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구성된 것 자체를 괘씸해 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실투를 한 것이지 않나!”

에릭 헤밀턴이 대호에게 던진 위협구에 대해 맥브레드 부회장은 이를 실투라 주장했다.

“실투라니요? 그게 어떻게 해서 실투일 수 있습니까? 실투가 95마일이 나올 수 있습니까?”

최고 구속이 95마일인 에릭 헤밀턴이 전력을 다해서 던진 공이 실투일 리가 없다는 이상협의 주장은 옳았다.

그 증거로 맥브레드 부회장의 얼굴이 붉어졌으니 말이다.

사실 그 또한 그게 실투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것을 인정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원래 목적인 대호에 대한 징계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에릭 헤밀턴이 벌을 받고 끝날 가능성이 컸던 것이었다.

정말 운이 좋아 그의 계획대로 대호가 징계를 받는다 해도 어느 정도 정상참작이 되어 낮은 수위의 벌 밖에 받지 않게 되리라.

“투수가 포수의 미트가 아닌 타자의 몸을 목표로 공을 던지다니, 이는 살인미수나 마찬가집니다. 이는 스포츠가 아니에요.”

말을 하는 이상협의 목에는 강하게 핏대가 서 있었고, 그는 어떻게든 징계위원회의 위원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그의 생각에 동조를 하는 이들이 하나둘 나왔다.

“맞습니다. 타자를 목표로 공을 던지는 투수라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그 투구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문제가 많은 투구였다고 말한 위원은 멕시코 협회에서 나온 위원으로서, 그는 이상협의 주장처럼 투수가 포수의 미트가 아닌 타자의 몸을 목표로 해서 투구를 한다면, 그것은 야구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 생각해 그러한 말을 한 것이다.

“으음!”

회의장 분위기가 점점 자신의 뜻과 반대로 흘러가는 듯한 분위기에 맥브레드 부회장은 저도 모르게 작은 신음을 흘렸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요즘 자신의 뜻에 반기를 드는 협회가 많아진 듯했기 때문이다.

“맥브레드 부회장!”

“예, 회장님!”

리카르도 프라커리 WBSC 회장의 부름에 맥브레드는 조심스럽게 대답을 하였다.

자신이 비록 부회장이라 하지만, 회장인 그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함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올림픽도 끝났는데, 굳이 문제를 끄집어낼 필요가 있습니까?”

리카르도 회장은 무심한 듯 물었다.

하지만 이를 들은 맥브레드 부회장은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떤 의도에서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인지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MLB 사무국이 주시하고 있습니다.”

어떤 설명도 없이 뜬금없이 이곳에서 MLB 사무국을 언급하는 리카르도 회장의 말에 맥브레드는 할 말을 잃었다.

미국 야구소프트볼 협회 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그로서는 방금 전 MLB 사무국이란 언급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맥브레드 본인은 이번 올림픽 야구 대표 팀에 메이저리거를 대거 투입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MLB 사무국은 메이저리거에 대한 선발은 선수 본인의 의사에 따르고, 어떤 것도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사실상의 거절이었다.

WBSC는 그동안 야구 종목의 인기 상승을 위해 많은 노력과 정책을 펼쳤다.

그리고 그들의 목표는 FIFA와 같이 각국 협회에 A매치 경기에 대해 선수들을 강제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야구의 세계화를 이룰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걸림돌은 다른 국가의 야구 협회도 아니고, 바로 자국의 MLB가 최고의 난적이었다.

세계의 야구 인재가 모이는 메이저리그, 그곳의 사무국은 힘이 강할 수밖에 없었고, 앞으로 협회 차원에서 여는 대회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눈치를 봐야 했다.

그렇기에 맥브레드는 리카르도 회장의 말에 조용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제길!’

잘 생각해 보니, 만약 여기서 자신이 억지로 정대호에 대한 징계를 주장한다면 분명 MLB 사무국 측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또한 징계를 내린다고 한들 실질적으로 어떤 불이익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국제 대회 출전 금지?

이번 금메달로 인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선수들에게 가장 걸림돌이 되는 병역 문제까지 해결했으니, 그냥 WBSC에서 주관하는 경기에 나가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인기 메이저리거를 한 명 없애 버리는 것에 불과했기에 대회 흥행에도 적신호가 켜질 게 분명했다.

‘정대호의 메이저리그 위상을 간과했군…….’

인기 스포츠 스타가 참가하고, 하지 않고는 그 대회의 화제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런 것을 모두 감안하면 그랜드 파이널에서 폭력을 행사했더라고, 정당방위로 감안할 면이 있는 선수에게 징계를 내리는 건 자가당착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맥브레드는 깨달았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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