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19화 (119/209)

119화

대한민국의 여론이 어떻든지, 대호는 원래 소속인 오클랜드 슬랙스로 돌아왔다.

원래 계획은 올림픽 경기가 끝나면 바로 팀에 합류하는 것이었는데, 뜻하지 않은 문제로 인해 대호의 팀 합류는 며칠 늦어지게 되었다.

바로 구단에서 대호를 배려해 휴식 기간을 준 것이었다.

‘이렇게 배려해 주지 않아도 상관없는데.’

그러나 대호는 남은 시간을 매우 지루하게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구단은 원정을 떠난 상태고 자신은 구단에 남았다.

오전에 구단에 남은 후보 선수들과 훈련을 하고 오후에는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이런 경우가 절대 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보면 큰 특권이었지만, 대호의 성격상 딱히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애인인 한나 역시 시즌 취재를 위해 다른 주에 있어 만날 수 없기에 더욱 그러했다.

“뭐 하냐?”

결국 심심함을 참지 못한 대호는 병원에 혼자 있을 최태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 퇴원한다고?”

시간이 많이 남아 비행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 태경을 만나 보려 했는데, 퇴원한다는 소리에 놀랐다.

“좀 더 결과 지켜보기로 한 거 아니었냐?”

분명 태경은 겉으로 멀쩡해 보였지만, 그래도 94마일 패스트볼에 직격한 만큼 좀 더 자세히 검사를 한 뒤에 돌아가기로 했었다.

그런데 고작 하루 사이에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으니, 대호로서도 당황스러웠다.

[어쩌겠어? 구단에 선수가 없다는데, 내가 가야지. 여기서 거절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고 말이야. 그리고 뭐, 정말로 큰일은 아닌 것 같으니까.]

“와! 너희 구단도 참… 가지가지 한다.”

태경의 이야기를 들은 대호는 어처구니가 없어 중얼거렸다.

주전 포수에 이어 백업 포수까지 이상이 생겨 태경을 급히 찾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정이 급하다고는 하지만, 시합 중 공에 맞아 정밀 검사가 필요한 태경에게 곧바로 돌아오라고 했다니 구단의 처사가 정말 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대호였다.

“태경아, 너도 포스팅 조건 완료되면 그냥 포스팅 신청해라!”

급기야 대호는 포스팅을 언급하기까지 했다.

이제 겨우 프로 1년 차에 올라온 태경에게 이런 얘기는 아직 한참 먼 것인데, 대호가 얼마나 당황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무튼 가서 조심해. 그리고 조금 전 내가 한 말 잊지 말고.”

탁!

“에잇!”

태경과 통화를 마친 대호는 순간 짜증이 났다.

한국도 프로야구가 시작된 지 어언 50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시스템이 주먹구구식이었다.

선수 보호는 아직도 전근대적인 면이 많았다.

예전보다는 좋아졌다고 하지만, 조금 전 태경의 경우만 보더라도 메이저리그와는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태경에게 포스팅에 대해 농담처럼 이야기했지만, 그 안에 진심도 섞여 있었다.

KBO와 다르게 메이저리그는 선수 보호나 권리에 대한 보장이 철저했다.

기본적으로 리그의 근간이 선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선수협의 힘도 강하니 구단도 무리하게 선수들을 혹사하지 않았고, 선수 본인도 언제나 자신을 대신할 선수가 밑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부상 중 무리하게 구단이 원한다고 해서 시합에 나가지 않았다.

‘역시 바로 메이저리그로 온 것은 100% 잘한 선택이야!’

태경의 경우를 보며 대호는 자신이 목표로 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을 위해 국내리그가 아닌 바로 메이저리그 도전을 한 것이야말로 이번 4회차 최고의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선일보와의 신경전과 이번 태경의 일로 인해 대호는 한국에 대한 생각을 잊고 메이저리그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 * *

“와아아아아!”

“빅 타이거! 빅 타이거!”

“오클랜드 슬랙스! 오클랜드 슬랙스!”

뉴슬랙스 볼파크에 야구팬이 만원으로 들어찼다.

이곳 뉴슬랙스 볼파크가 이렇게 팬으로 꽉 찬 것은 10여일 만에 자신들의 자랑인 인크레더블, 빅 타이거란 별칭을 가진 대호가 홈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팬들은 돌아온 대호를 환영하며 경기장 안이 떠나가라 환호성을 질렀다.

“헤이! 빅 타이거! 오늘 10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한 방 보여 줄 거지?”

외야 펜스 뒤쪽에 앉은 반백의 배불뚝이 아저씨가 몸을 풀고 있는 대호를 부르며 물었다.

“대호! 내 공을 받아 줘요.”

그 옆에선 9살짜리 꼬마가 대호를 보며 공을 들고 소리쳤다.

그런 소년의 모습에 대호는 빙그레 웃으며 글러브를 낀 왼손을 들어 보였다.

공을 던지란 신호였다.

자신의 목소리에 반응해 주는 대호의 모습에 소년은 즐거운 표정으로 공을 힘껏 던졌다.

팡!

휘익!

팡!

단거리 토스를 몇 차례 주고받은 대호는 소년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더그아웃으로 달려갔다.

준비 시간이 끝났기에 경기 준비를 하러 들어간 것이다.

그런 대호의 등 뒤로 조금 전 공을 주고받던 소년이 소리쳤다.

“빅 타이거! 홈런 하나 쳐 주세요!”

오늘 경기에서 홈런을 쳐달라는 소년 팬의 요구에 대호는 뛰던 것을 멈추고 뒤로 돌아 양 손을 모아 스윙 동작을 해보였다.

소년의 요구에 홈런을 치겠다 답변을 한 것이다.

그런 대호의 모습에 소년은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좋아했다.

* * *

시작 전 식순에 의해 국가와 시구가 진행되었다.

며칠 떠나 있지 않았지만, 대호는 무척이나 오랜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오늘 대호는 구단의 배려로 기존 타선이 아닌 8번 타자로 출전을 하게 되었다.

본인은 어느 타선에 들어가건 상관이 없었지만, 코칭스태프들의 판단은 그게 아니었던 듯 대호를 포수의 앞인 8번 타선에 넣은 것이다.

현재 오클랜드 슬랙스는 106승 50패로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 1위를 달리고 있었다.

대호가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로 빠진 기간 동안 승보다 패가 늘어나긴 했지만, 2위와는 아직도 승차가 많이 났다.

아니, 사실상 서부 지구 우승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오늘 경기에서 이기면 남은 경기에 상관없이 우승을 확정 짓게 된다.

그렇기에 오클랜드 슬랙스의 홈구장인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은 오클랜드의 팬들은 경기 후 벌어질 우승 축하 퍼레이드를 기대하고 있었다.

퍽!

“아웃!”

우중간으로 날아온 공을 가볍게 잡아낸 대호는 그것을 백업으로 들어왔던 시몬 몬세스에게 토스했다.

그러자 시몬은 곧바로 선발 레프리 그로스에게 송구하였다.

레프리 그로스.

그는 원래 오클랜드 슬랙스의 2선발을 맡고 있던 사람으로, 시즌 초 데드 암 부상으로 인해 선발진에서 이탈했었지만, 대호가 올림픽에 가 있던 시기에 복귀하였다.

레프리 그로스의 데드 암은 다행히 회전근개 파열까진 아니고 과도한 어깨 근육 사용으로 인대가 늘어난 것이라 수술이 필요없었다.

보존적 치료와 근육 강화로 어깨 관절을 안정화시키고 휴식을 취하며 재활 치료를 병행하였다.

그 덕분에 100%의 몸 상태는 아니더라도 90%까진 돌아온 상태였다.

이미 거의 우승을 확정지은 상태라 실전 감각도 되찾을 겸, 오늘 경기에 출전시킨 마이크 감독이었다.

지구 우승은 물론이고 월드시리즈까지 노리고 있는 오클랜드 슬랙스의 입장에서는 천군만마와 다름없는 지원군이었다.

더군다나 이번 레프리 그로스의 부상은 작년 2031시즌 후반기에 무리해서 입은 것이었는데, 올해는 선발진이 탄탄해져 같은 일이 반복되지도 않을 듯했다.

따아악!

잘 맞은 타구가 외야로 날아왔다.

다다다다!

타격음을 들은 대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펜스로 뛰었다.

공이 배트에 맞는 소리만 듣고도 타구가 어디까지 뻗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타닷!

펜스가 가까워지고 대호는 망설임 없이 뉴슬랙스 볼파크의 외야 펜스를 밟고 뛰어올랐다.

그러고 나서 글러브를 낀 왼손을 위로 쭉 뻗어 날아오는 공을 향해 웹을 벌렸다.

퍽!

웹에 묵직한 느낌이 느껴지자 바로 글러브를 오므렸다.

공이 착지하는 충격으로 글러브를 벗어나지 못하게 쥔 것이다.

“와아아!”

관중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대호는 순간적으로 펜스를 밟고 거의 5m를 뛰어올라 홈런이 되려던 타구를 잡아낸 것이었다.

묘기와도 같은 장면에 장내의 관중들은 눈을 비비며 중계 화면에서 비춰 주는 리플레이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언빌리버블! 믿을 수 없는 플레이가 나왔습니다.”

장내 아나운서는 대호의 슈퍼 캐치에 바로 믿을 수 없다는 표현을 쓰며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홈팬들의 환호성을 뒤로하고 대호는 글러브에서 공을 꺼내 펜스 뒤에서 환호하는 팬에게 공을 던져 주었다.

한편 LA데블스의 3번 타자 스테판 렌포는 1루를 지나 2루로 뛰던 중, 자신이 친 홈런성 타구를 대호가 펜스를 밟고 뛰어 걷어 내는 것을 보고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왓 더 헬!’

무슨 슈퍼맨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나 높이 뛰어올라 홈런이 될 공을 잡아낸단 말인가?

도저히 상식적으로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제자리에 멈춰 섰다.

“헤이, 스테판. 뭐 해! 얼른 수비 준비하라고.”

수비를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뛰어가던 시몬 몬데스가 멍하니 1루와 2루 중간에 멈춰서 있는 그를 보며 살짝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아!”

시몬 몬데스의 말을 듣고서 정신을 차린 스테판 렌포는 1루 LA데블스 더그아웃으로 뛰어갔다.

“대호! 멋졌다.”

짝!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던 대호는 입구에서 자신을 맞아주는 레프리 그로스의 말에 미소와 함께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선발인 그가 조금 전 자신의 플레이에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이니 대호로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거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신고식을 거하게 하는군!”

오클랜드 슬랙스의 주장 홈런 브레드는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대호를 보며 웃으며 맞아주었다.

“우리의 2선발이 돌아왔는데, 어깨를 가볍게 해 줘야죠.”

“그렇지. 작년엔 무리하게 어깨를 사용하게 했으니 올해는 쉬게 해 줘야지.”

대호의 말에 홈런 브레드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맞받았다.

그런 두 사람의 만담 같은 대화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던 레프리 그로스는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어깨를 가볍게 해 주겠다는 대호의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LA데블스를 상대로 가볍게 삼자범퇴를 만들어 냈던 레프리 그로스는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 마운드로 올라가야만 했다.

LA데블스의 선발 앤더슨 루프도 순식간에 오클랜드 슬랙스 타자들을 삼자범퇴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다만 앤더슨은 레프리 그로스가 6구만에 세 명의 타자를 잡아낸 것과 다르게 세 명의 타자를 상대로 열여덟 개의 공을 던졌다.

2회에도 LA데블스와 오클랜드 슬랙스 두 팀은 모두 별다른 공격 포인트 없이 이닝을 마무리 지었다.

3회 초, 데블스가 1안타를 뽑아냈지만 더블플레이, 즉 병살을 치며 빛이 바랐다.

그리고 오클랜드의 3회 말 공격이 시작되었다.

선두 타자는 우익수인 시몬 몬데스부터 시작되었는데, 초구 바깥쪽 패스트볼을 받아쳐 3유간을 통과하는 안타를 쳤다.

대호는 드디어 다음 타석에 들어섰다.

날짜로 따지면 10일 만에 서는 메이저리그 타석.

현재 대호는 메이저리그에서 예순다섯 개의 홈런으로 홈런 부문 선두에 위치해 있었다.

10일 전에도 1위였는데, 대호가 결장한 뒤에도 아직 그의 홈런 기록을 능가하는 선수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열 개 이상 차이가 났던 숫자가 세 개 차로 좁혀지긴 하였다.

척!

오랜만에 메이저리그 타석에 들어선 대호는 자신의 루틴대로 천천히 타격 자세를 잡았다.

그러고는 매서운 눈으로 투수를 노려보았다.

팡!

몸 쪽 깊은 곳 높게 날아오는 볼이었다.

언뜻 보기에 얼굴로 날아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높은 볼이었지만, 대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공을 보았다.

“볼!”

어깨 높이로 들어왔기에 볼 판정을 받았다.

이에 포수는 엔더슨 루프에게 공을 낮게 던지라는 표시를 했다.

장타력을 가지고 있는 메이저리그 홈런 타자에게 높은 공은 위험했다.

그랬기에 포수는 이를 투수에게 주지시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포수가 그런 노력을 한다고 해서, 바로 고쳐질 수는 없었다.

따아아악!

바깥쪽 낮은 볼을 요구했지만, 엔더슨의 공은 바깥쪽으로 높게 들어왔다.

그리고 대호가 그런 공을 놓칠 리도 없었다.

대호는 초인적인 시력으로 스트라이크 존 안에 들어온 공을 치며, 배트의 히팅 포인트에 맞는 것을 확인한 뒤 팔을 힘차게 휘둘렀다.

“와아아아!”

복귀전에서 수비로 기막힌 홈런을 잡아냈던 대호가 이번에는 공격에서 큼지막한 홈런을 치자, 장내는 흥분과 환호성으로 뜨거워졌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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