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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115화 (115/209)

115화

페이크 번트 슬래쉬로 점수를 또 한 점 뽑아내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미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은 최강이란 이름에 걸맞게 빠른 투수 교체와 적절한 타임으로 선수들을 안정시키며 더 이상 점수를 내주지 않았다.

그래도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대표팀은 1회에 2점을 내며 유리한 고지에 점하며 시합을 이어 갔다.

물론 대한민국에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잘 던지던 선동일은 3회를 맞아 선두 타자부터 안타를 맞았다.

따악!

“와아!”

비록 단타였지만 아웃 카운트 하나 없이 선두 타자가 안타를 치고 나갔기에 미국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선두 타자의 안타에 환호했다.

딱!

“아웃!”

따악!

타자가 일순하면서 이제 선동일의 공에 적응했는지, 미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 선수들의 방망이에서도 안타가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타임!”

당연히 한국의 더그아웃에서 타임 요청이 들어왔고, 투수 코치인 유영진이 마운드로 올라갔다.

“동일아, 힘드냐?”

유영진 코치는 나직한 목소리로 선동일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더 던질 수 있습니다.”

선동일은 이대로 마운드에서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대한민국 에이스이지 않은가?

이제 고작 3회였고, 그런 자존심을 구기고 싶지도 않았다.

비록 4일 전 100개 이상 공을 던지는 바람에 아직 정상적으로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래도 메이저리거도 아닌 마이너리거들로 구성된 미국 올림픽 야구 대표에게 연속해서 안타를 맞고 있는 것이 무척이나 자존심 상했다.

그래서 최소한 이번 회까지 만이라도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래, 그래야 대한민국 에이스지.”

“감사합니다.”

“아니다. 추 감독님께서 전하란다. 이번 회까진 무조건 네가 마무리 하라고 하셨다.”

“알겠습니다. 무조건 이번 회는 제가 마무리 짓겠습니다.”

탁탁!

비록 연속해서 안타를 맞고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선동일은 대한민국 최고 에이스다.

그런 선동일이 숨을 돌리고 자신감을 회복한 모습을 보이자, 유영진은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를 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러면서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네 뒤에는 야수들이 받치고 있다. 그러니 너 혼자 다 짊어지려 하지 말고 좀 짐을 나눠!”

“예.”

유영진 투수 코치의 마지막 말에 선동일도 자신이 잠시 잊고 있던 것을 깨닫고 짧게 대답했다.

“플레이 볼!”

타임 시간이 끝나고 다시금 경기가 속개되었다.

“후우!”

휘익!

펑!

오랜만에 97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 좌타자 무릎 높이 꽉 찬 안쪽으로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휘익!

딱!

다음 공은 3유간으로 향하는 빠른 강습 타구.

파팟!

탓!

유격수 이중호가 몸을 날려 타구를 잡아 몸을 일으키며 급히 3루수에게 던졌다.

“세이프!”

“하앗!”

3루수 이영규는 급히 1루로 공을 던졌다.

퍽!

“아웃!”

3루에서는 세이프가 되었지만, 다행히 1루에서는 아웃이 되었다.

타자가 친 공은 진루타가 되면서 투아웃에 주자는 2,3루가 되어 짧은 안타라도 나오면 동점이 될 수도 있었다.

‘후! 썩어도 준치라고, 역시 미국에서 활동하는 타자라는 건가.’

유격수 앞으로 땅볼을 잘 유도했지만, 타자도 만만치 않았다.

마이너리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강점인 빠른 배트 스피드를 이용해 강습 타구를 만들어 냈으니까 말이다.

한편 선동일의 간담을 잠시 서늘하게 만든 크리스 보아첵은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자칫 좋은 기회에 자신이 친 병살타로 인해 기회를 망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 제가 점수 더 뺄 테니 한 점 준다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던지세요!”

뒤에서 보는 선동일의 뒷모습이 너무 무거워 보였는지, 대호는 큰 목소리로 격려의 응원을 보냈다.

“그래, 동일아. 편하게 던져!”

대호의 응원에 여기저기서 선동일을 응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후!”

동료들의 응원 소리에 선동일은 작게 심호흡을 내뱉었다.

무거워지던 어깨가 어느 정도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아직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기에 선동일은 심기일전하고 투구에 들어갔다.

선동일이 동료들의 응원에 침착하게 투구를 한 것처럼 미국 팀 3번 타자 타이거 홈즈도 각오를 다지고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집중해 선동일의 투구에 스윙을 하였다.

따악!

2루수의 키를 넘기는 안타.

다다다다!

타자의 배트에서 울리는 타격음이 들리자 베이스를 밟고 있던 주자들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비를 하던 대호도 타구의 방향을 읽고 뛰었다.

팟!

휘익!

공을 잡은 대호는 2루에 있던 주자가 욕심을 부리며 홈으로 뛰는 것을 보고 바로 홈으로 송구했다.

퍽!

촤악!

“아웃!”

비록 3루에 있던 주자가 홈을 밟아 1점을 내주긴 했지만, 2루에 있던 주자가 홈으로 들어가는 것은 막았다.

게다가 이미 투아웃이었던 상황.

컨디션이 내려가 있던 상황에서 1점으로 잘 막은 셈이었다.

“수고했다.”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선동일을 가장 먼저 맞은 것은 추인수 감독이었다.

그는 3회를 마무리하고 들어오는 그에게 수고했다며 격려해 주었다.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선동일은 1점을 내준 것에 대해서 사과했다.

“아니야. 고생 많았다. 뒤는 이제 불펜에 맡기고, 넌 그만 아이싱 해라!”

“예.”

추인수 감독이 3회를 마무리하고 들어온 선동일을 격려하고 있을 때, 대호는 빠르게 더그아웃으로 돌아와 자신의 배트를 들고 타석으로 들어갔다.

3회 말 공격의 시작이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후우… 선동일 선배한테 맡기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제대로 승부를 해 줄 것 같지가 않네.’

1회 말 첫 타석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의 감독이나 코칭스태프들이 자신을 두고 정면 승부를 피한다는 것을 말이다.

또 그라운드에 내보내 놓고도 편하게 놔두지 않았다.

성가신 선수란 것을 알기에 일단 내보내 놓고 견제를 하려고 할 것이다.

물론 1회에는 너무 신경 쓴 나머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쳐 실수를 했지만, 이번에도 그렇다고 볼 수는 없었다.

팡!

“볼!”

예상대로 초구는 볼이 들어왔다.

스트라이크와 비슷한 코스로 들어오면 자신에게 얻어맞을 것이라 예상하고 보더 라인에서 확실하게 공 하나 이상 빼 버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고의 사구처럼 보이지 않게 던지고 있지만, 지금 투구는 배트에 맞히더라도 제대로 된 타구가 나오기 어려운 공이었다.

그래서 대호는 가만히 이를 지켜보았다.

아무래도 투수의 공을 최대한 많이 보고 많이 던지게 만드는 것이 다음 타자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기에 3볼까진 지켜볼 생각이었다.

“볼!”

어느새 세 번째 공이 들어와 3볼이 되었다.

‘이젠…….’

휘익!

“스트라이크!”

공 두 개 정도 바깥으로 빠졌지만 대호는 가볍게 배트를 휘둘렀다.

그런데 여기에 자극받은 인물이 있었다.

‘아니!’

에릭 헤밀턴은 대호를 고의 사구로 1루에 내보내기 위해 일부러 공을 빼고 있었는데, 거기에다 대고 배트를 휘두르는 모습에 분노했다.

더군다나 방금 전 대호의 스윙에는 아무런 힘도 들어가 있지 않아 마치 연습을 위한 체크 스윙을 하는 듯했다.

이 때문에 그는 대호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 새끼가!’

승자조 결선 무대에서 솔로 홈런을 맞았던 기억이 있는 그였기에 방금 전 대호의 스윙에 화가 더더욱 단단히 났다.

‘어디 죽어 봐라!’

조금 전까지 더그아웃의 지시대로 설렁설렁 던지던 것에서 자세를 바꿔 제대로 공에 힘을 실어 던졌다.

다만 던지는 방향이 정상적인 포수의 미트가 아닌 타석에 서 있는 대호를 향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엇!’

투수의 공을 기다리던 대호는 순간 뭔가 섬뜩한 느낌으로 인해 급히 타석에서 물러났다.

쌔애앵!

거의 뒤로 몸을 날리듯 타석에서 물러난 그의 가슴 위로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공이 지나갔다.

“이런 Fuck!”

공을 피해 뒤로 쓰러졌던 대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투수를 향해 욕을 하며 걸어갔다.

“헤이! 헤이!”

포수 톰 로빈슨은 급히 마운드로 걸어가는 대호의 앞을 막아서며 투수를 보호하려 하였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살인 투구를 한 투수를 가만 놔둘 수 없는 대호는 만류하는 그를 뿌리치며 계속해서 걸어가 투수를 노려봤다.

한편, 갑작스런 사태에 주심은 급히 대호를 불러 세웠다.

“타자, 어서 타석으로 돌아와!”

분명 위협적인 공이긴 했지만 심판은 투수가 실투를 했다 생각하고 일단 타자인 대호를 먼저 불러 세운 것이다.

메이저리그 무대였다면 분명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졌겠지만 여기는 프로 무대가 아닌 올림픽이었다.

‘하!’

심판의 부름에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추고 타석에 들어섰지만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볼넷! 1루로 가라!”

타석으로 돌아오는 대호를 본 주심은 얼른 말을 바꿔 볼넷 선언을 하고 1루로 가라는 지시를 하였다.

그런 주심의 말에 대호는 걸음을 멈추고 뭔가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투수를 노려보다 1루로 걸어갔다.

우우우우!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장내에는 야유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소리가 대호가 아닌 위협구를 던진 에릭 헤밀턴에게 향했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대호가 1루에 도착하자 야유는 금방 환호성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호! 대호!”

“빅 타이거! 빅 타이거!”

한국을 응원하는 이들은 한국말로 대호의 이름을 연호했고,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의 경우 대호의 영어식 별명을 연호했다.

“쟤는 메이저 올라오기 힘들겠네.”

팬들의 성원에 대호는 어느 정도 화를 삭이고 1루 수비를 보고 있던 타이거 홈즈를 보며 말을 걸었다.

그런 대호의 말에 타이거 홈즈도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대답을 하였다.

“실력은 좀 있는 것 같은데, 스포츠맨십이 부족한 것은 맞는 것 같아!”

대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잘 알고 있는 타이거 홈즈는 대호의 말에 수긍을 하며 대답했다.

아무리 지금은 같은 올림픽 야구 대표 팀에 있다고 하지만, 소집 해제가 되면 바로 각자 팀으로 복귀를 해야 하는 처지이기에 사실상 큰 동료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쩌냐?”

“왜?”

“저 새끼 때문에 나 발동 걸렸는데.”

“뭐?”

“너 못 들어 봤냐? 작년 내가 마이너에서 활동할 때, 내게 빈볼을 던진 놈들에게 어떻게 했는지.”

“으음…….”

대호의 말에 타이거 홈즈는 흠칫했다.

뭔가 싸한 느낌이 올라오는 것이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미국 팀에 악마가 강림했다.

“뛴다!”

대호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도루를 하려면 조용히 투수가 느끼지 못하게 타이밍을 뺏고 2루로 달려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대호는 그런 상식을 깨고 본인이 직접 2루로 도루를 한다고 광고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대호의 이런 황당한 행동이 투수인 에릭에게는 먹혔다.

막 투구를 하려던 그는 느닷없이 들린 뛴다는 소리에 투구를 하려던 것을 멈추고 1루로 급히 공을 던졌다.

하지만 이런 그의 행동은 반칙이었다.

“보크!”

그냥 대호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공을 던졌는데, 방금 에릭 헤밀턴은 투수판을 밟고 투구를 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기본적인 상식이지만, 정대호에 관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하던 에릭이 그만 보크를 저질러 버렸다.

‘이런!’

뒤늦게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깨달은 에릭은 2루로 조깅을 하듯 가볍게 뛰어가는 대호의 옆모습을 보며 애써 화를 삭였다.

한편 방금 전 상황을 옆에서 지켜본 타이거 홈즈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에릭 헤밀턴과 2루로 뛰어가는 대호의 뒷모습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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