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펑!
“아웃!”
페드로 곤살레스에 이어 쿠바의 마지막 타자인 후안 카를로스 주니어도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의 마무리 오승원과의 대결에서 3B 2S의 풀카운트 접전 끝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과 쿠바의 올림픽 야구 2라운드는 대한민국의 승리로 결정되었다.
“와아! 이겼다!”
“오늘은 진짜 재미있었다고. 솔직히 대만전은 너무 시시했어!”
관중들의 환호성과 기쁨의 외침이 경기장 안에 울려 퍼졌다.
9회 말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의 공격은 필요가 없었다.
9:13으로 앞서며 9회 초 쿠바가 마지막 공격에 들어갔지만,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팀의 마무리 오승원의 공을 극복하지 못하고, 삼자범퇴로 무너지면서 그대로 종료되었으니까.
대한민국은 승자조로, 쿠바는 패자조로 떨어지게 되었다.
한편, 쿠바와 1라운드에서 대결을 하고 패자조로 떨어졌던 일본은 대한민국과 1라운드를 치르다 7회 콜드게임으로 패한 대만과의 패자조 대결에서 10:0 7회 콜드게임을 거두며 완전히 압살하였다.
이로 인해 두 번 패배를 한 대만은 올림픽에서 가장 먼저 탈락하는 나라가 되었다.
물론 패자조에서 대만과 함께 떨어진 나라는 또 있었는데, 그 나라는 바로 캐나다였다.
캐나다는 1라운드에서 네덜란드와의 시합에서 4:3으로 패하여 패자조로 내려왔는데, 호주와 도미니카 공화국의 경기 패자인 호주와의 경기에 패하면서 올림픽 야구에서 대만 다음으로 탈락하게 되었다.
대호는 경기 진행 상황을 지켜보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제 곧 3라운드인데 승자조로 진출한 나라는 개최국 미국, 우리나라, 도미니카 공화국, 그리고 푸에르토리코인가.’
어느 하나 만만한 국가가 없었다.
야구의 종주국 미국, 그리고 그 미국 메이저리그에 심심치 않게 선수를 보내는 중남미 국가들이었으니까.
현재 패자조에는 일본, 호주, 베네수엘라, 네덜란드가 살아남아 있었는데, 승자조 2라운드에서 떨어진 쿠바는 패자조 1라운드 승자인 일본과 호주의 대결에서 이긴 국가와 맞붙을 예정이었다.
‘우리 다음 상대는 푸에르토리코군.’
개최국 시드를 받은 미국은 도미니카 공화국과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현재 전문가들은 각각 대한민국과 미국의 승리 확률이 높다고 점치고 있었고, 패자조에서는 일본과 네덜란드가 올라올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되었다.
대호는 각 나라의 스포츠 뉴스를 보며 자세한 여론을 파악하고 있었는데, 패자조 중 가장 분위기가 나쁜 나라는 일본이었다.
‘당연하겠지. 자신들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하는 우리나라가 승자조에 남아서 연승하고 있는 반면에, 일본은 패자조에서 많은 경기를 치러야 하니까.’
한 뉴스 기사에 일본 올림픽 야구 대표 팀 감독인 쿠리야마 히데키의 기자회견 내용이 적혀 있었다.
― 우리 일본이 패자조로 간 것은 전적으로 저의 계획 때문입니다. 승자조에 남아서 경기를 한다는 것, 그건 계속 이기고 있다는 뜻이니 언뜻 생각할 땐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승자조에 올라간 나라들은 당연히 뛰어난 실력을 가진 국가겠지요? 그런 나라들과 연전을 펼치면 당연히 많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패자조에서 약체 국가들과 경기를 하는 편이 단순 경기 숫자가 늘어나더라도 전력을 온존할 수 있고, 강자들과 만났을 때 힘을 쏟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겁니다.
‘아니 무슨 스포츠가 계획대로 전부 딱딱 이루어지는 건 줄 아나 이 사람은……?’
대호는 기가 찬 듯한 기분을 느꼈다.
댓글을 다는 일본인들도 비슷한 분위기였지만, 만약 쿠리야마 감독의 말대로만 된다면 정말 투수 전력을 아끼며 경기를 할 수 있다는 뜻이었기에 일단 결과가 날 때까지 기다려 보는 듯했다.
‘쿠리야마 히데키라. 이 사람, 올림픽 우승… 못해도 결승까지는 무조건 가야겠네. 안 그러면 멍석말이를 당할지도 모르겠어.’
갑론을박을 나누고 있는 일본의 반응과는 반대로 한국의 뉴스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난리가 난 상태였다.
사실 몇몇 야구팬은 현재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을 역대 최약체라고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존 야구 대표 팀의 베테랑 선수와 이제 새롭게 대표 팀에 뽑힌 선수 간의 갭이 너무도 크고, 또 너무 어린 선수들이 많다는 것이다.
어린 선수 중 한 명이 메이저에서 맹위를 떨치는 대호였기에 그나마 어느 정도 넘어간 것이지, 스무 살인 선수가 무려 셋이나 된다는 건 말이 많았다.
또 함께 뽑힌 선수들 중 크게 성적이 좋은 선수도 없었기에 더욱 논란이 되었고 말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예상 밖으로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은 승승장구하며 의문의 눈초리를 보내던 이들을 모두 침몰시켰다.
비록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메이저리거는 없지만, 그래도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과 자국 프로 리그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는 선수들 위주로 야구 대표 팀을 구성한 대만을 상대로 7회 콜드게임을 이룬 것은 물론이고, 썩어도 준치라 불리는 아마 야구 강국인 쿠바를 상대로 접전을 펼치기는 했지만, 9:13으로 승리를 거뒀으니까.
또, 3라운드 상대가 이름도 생소한 푸에르토리코라는 점에서 한국인들은 3라운드 승리를 확신했고, 그러면서 올림픽 메달은 확보라는 말을 하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그건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중 3라운드에서 푸에르토리코에 질 거라고 상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상대를 얕보지 않는 대호조차 마찬가지였다.
물론 스포츠란 게 의외의 변수가 작용을 하고, 그건 야구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 선수 전력을 보면 푸에르토리코에 질 수가 없다는 자체적인 결론이 나왔기에 현재 팀 분위기는 무척이나 좋았다.
* * *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 감독인 추인수와 코칭스태프들은 한 자리에 모여 회의를 하였다.
“이번 3라운드에 누굴 내보내는 것이 좋을까?”
추인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코칭스태프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다음 3라운드 상대인 푸에르토리코가 자신들에 비해 약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을 할 수는 없었다.
많지는 않지만 메이저리그에도 선수들을 배출하고 있는 나라였기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쉽게 볼 나라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올림픽이라 해도 완전 무명의 나라가 승자조 3라운드에 진출을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방심했다가 지기라도 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선수들이 마음 놓고 있는 것과 감독인 나는 다른 입장이지.’
추인수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유영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제경이 어떻습니까?”
“제경이? 아무리 푸에르토리코가 상대라 해도 경험이 적은 제경이로 되겠어?”
투수 코치인 유영진의 이야기에 추인수가 걱정이 되어 물었다.
“현재 선발급에서 제경이 말고 다른 선수는 선동일이 정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분명 4라운드 상대는 미국일 텐데, 그때 제경이를 내보내긴 더 어렵지 않겠습니까?”
유영진은 현재 남은 선발진인 선동일과 김제경 중, 경험 많은 선동일보단 그래도 김제경을 3라운드에 내보내는 것이 최선이라 판단해 다시 한번 언급했다.
그런 유영진의 말에 다른 코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음…….”
추인수 감독은 고심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았다.
3라운드 상대인 푸에르토리코를 이기면 다음 4라운드 상대는 금메달 후보인 미국이었다.
비록 미국의 야구 대표 팀이 메이저리거 한 명 없이 모두 마이너리거들로 꾸려졌다고는 하지만,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인 것은 맞았다.
그러니 경험이 부족한 김제경을 미국을 상대로 4라운드에 내보내기보단, 푸에르토리코를 상대로 3라운드에 내보내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었다.
“모두 유 코치와 같은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지, 그리고…….”
3라운드에서 마운드에 오를 선발투수가 결정이 되자 그 다음 야수들을 선발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1,2라운드를 치르는 동안 부상을 당한 선수나 부상이 예상되는 선수는 후보와 교체를 해 주면 되었기에 그리 어려운 선택은 아니었다.
* * *
감독과 코칭스태프들이 3라운드를 대비해 회의를 하고 있을 때, 대호와 친구들은 이른 저녁을 먹고 있었다.
덜그럭!
“이번 대회에 나도 나갈 수 있을까?”
좀처럼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던 김제경이 밥을 먹다 말고 작게 중얼거렸다.
“왜? 설마 올림픽 대표팀에 차출했는데, 한 번이라도 마운드에 안 올릴까?”
올림픽 대표 팀에 뽑히고, 또 메달을 땄다고 해서 모두가 병역 면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형평성 문제로 인해 올림픽 기간 동안 시합에 단 한 번도 나가지 않은 선수에 한해서는 병역면제 혜택을 주지 않기로 규정을 수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대회 무임승차로 혜택만 쏙 빼먹는 행위를 막기 위한 취지였고,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선수들에게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현역 장병들에게 어느 정도 해명할 수 있게 만든 조치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김제경의 불안감에 차 내뱉은 말을 이해한 최태경이 격려를 한 것이었다.
“제경이 너, 아마 내일 선발로 출전할 거다.”
대호는 밑도 끝도 없이 김제경에게 3라운드 선발이 될 것이란 말을 하였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대호 너, 혹시 감독님에게 무슨 말이라도 들었냐?”
대호의 말에 깜짝 놀란 김제경이 물었다.
“아니, 그건 아닌데… 생각해 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어보는 제경을 직시한 대호는 자신의 추리를 풀어냈다.
“현재 선발투수 중 남은 사람은 선동일 선배와 너뿐이지. 그런데 설마 푸에르토리코를 상대로 너 대신 선동일 선배를 내보내겠냐?”
“음… 그럴 수도 있지 않아? 제경이보다 선동일 선배가 당연히 안정적이잖아?”
최태경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호의 말에 반박하며 이야기하였다.
“물론 선동일 선배를 내보낼 가능성이 0은 아니지. 하지만…….”
“하지만?”
“푸에르토리코 다음 상대는 미국이잖아.”
“아!”
이야기를 듣고 있던 두 사람은 그제야 잊고 있던 최강국 미국을 떠올릴 수 있었다.
‘푸에르토리코를 이기면 올림픽 메달은 확보하겠지만, 감독님이나 코치님들 성격을 보면 그 정도로 만족하진 않을 것이 분명하니…….’
최태경과 김제경은 대호의 말을 듣고 머릿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떠올린 결론은 대호의 말이 감독님과 코치님들의 성향상 가장 잘 들어맞는다는 것이었다.
“네 말이 맞는 것 같네.”
최태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호에게 이야기를 하였다.
“푸에르토리코의 선발은 마이너리거가 대부분이야. 그러니까 제경이 네 공이면 6~7회까진 막을 수 있을 거다.”
대호는 김제경의 공을 믿고 있었다.
비록 김제경의 공을 본 것이 2년 전이기는 했지만, 2, 3회차에서 경험한 것까지 통틀어서 생각해 본다면 김제경은 푸에르토리코 야구 대표 팀을 상대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투수였다.
“정말로 내가 통할까?”
김제경은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대호에게 확인을 받고 싶었던 것인지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그런 제경의 모습에 대호는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충분해!”
“그래, 나도 도울 수 있으면 최선을 다해 도울게. 제경아 힘내라!”
“…둘 다 고맙다.”
대호에 이어 단짝인 최태경의 말에 김제경은 뭔가 울컥했는지 억누르는 듯한 발음으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대호는 순간 이들과 시합을 하던 때를 떠올려 보았다.
그러면서 자신에게도 이런 우정을 나눌 친구가 있었는지 떠올렸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동기들 중 이 두 사람만큼 우정을 나눴던 친구는 없었다.
다만 이들과 비슷한 감정을 공유할 만한 친구로 몇 명이 떠오르긴 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이 메이저리그에 진출을 하면서 연락이 두절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태경과 김제경은 그 재능만큼이나 실력도 출중해 프로계약을 함과 동시에 후보이긴 하지만 1군에 합류해 성적을 내고 있다.
그에 반해 대호의 동기들은 아직 2군에서 실력을 쌓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대호와 연락이 닿는 이는 몇 없었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한 번 연락을 해 봐야겠다.’
3라운드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또 고교 시절 이야기를 하며 저녁을 먹은 이들은 식사를 마치고 잠시 소화를 시키기 위해 가볍게 저녁 운동을 한 뒤 숙소로 돌아왔다.
* * *
저녁과 자유 시간이 흐르고, 한 자리에 모인 선수들을 보며 추인수 감독은 내일 있을 3라운드 선발 출전 명단을 발표했다.
“내일 푸에르토리코를 상대할 선발투수는 김제경이다. 그리고 포수는…….”
말을 하다 말고 추인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대표 팀 주전 포수인 장민호를 돌아보았다.
“민호에게는 양해를 좀 구해야겠다.”
“예? 양해라니, 그게 무슨…….”
느닷없는 감독의 말에 장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내일 김제경과 합을 맞출 포수로 너 대신 태경이를 내보내려 한다.”
대표 팀 주전 포수인 그를 놔두고 후보 포수인 최태경을 주전으로 내보낸다는 감독의 말에 선수들 대부분은 동요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장민호는 대표 팀의 주전 포수이기 이전에 김대호와 함께 대표 팀의 맏형격 선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장민호의 반응은 간단했다.
“아무래도 같은 학교 출신이라 합도 더 잘 맞을 테니 그게 낫겠군요.”
“그렇게 이야기해 주니 고맙다.”
“아닙니다. 올림픽 무대같이 큰 대회를 처음 겪을 텐데, 합이 잘 맞는 태경이와 경기를 치르는 편이 더 안정되겠네요.”
장민호는 거듭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김제경과 최태경 두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보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본 추인수와 다른 대표 팀 관계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그 실력만큼이나 기본 예의를 갖춘 사람으로써 지금 장민호가 어떤 마음으로 포지션을 양보했는지 알고 있음을 느꼈을 테니까.
‘분위기 좋네.’
뒷자리에서 이러한 모습을 지켜본 대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되는 집안은 될 이유가 있는 것처럼, 현재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너무도 좋았다.
비교적 약체라 평가를 받고 있고, 현재 3라운드에 진출한 것이 기적에 가깝다고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선수 하나하나가 최고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 있고, 또 그렇지 않은 집단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시합에서 이기는 팀은 화합이 잘된 팀이지 실력이 뛰어나지만 콩가루와 같은 팀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은 최강이라 불리는 미국과 붙어도 전혀 밀리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는 대호다.
‘남들이 뭐라 떠들어도 우린 충분히 금메달을 딸 수 있다.’
대호의 목표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정도가 아니었다.
최고.
언제나 그의 목표는 최고의 자리였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