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02화 (102/209)

102화

승자조 2라운드 쿠바와 대한민국의 경기는 시원한 타격전이 펼쳐졌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처럼, 아마 야구 강자로 불린 쿠바는 그 명맥이 끊기지 않고 꾸준히 발전한 듯했다.

물론 사회적, 경제적 문제로 프로야구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아마 야구로만 지탱하다 보니, 훌륭한 야구 유망주와 야구 영재들은 모두 돈을 벌 수 있는 미국으로 빠져나가 쿠바 야구의 발전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따악! 따악!

“와아!”

명품 투수전도 좋지만, 화끈한 타격전 또한 야구팬을 흥분하게 만든다.

9:10, 대한민국이 1점 앞서고 있는 상태에서 8회 말 공격이 진행되고 있었다.

“정대호 선수, 오늘 4번째 타석에 들어섭니다.”

“와아아아!”

“빅 타이거! 빅 타이거!”

대한민국의 1번 타자인 대호가 타석에 들어서자, 이를 지켜보는 야구팬의 함성 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척!

타석에 들어선 대호는 쿠바의 세 번째 투수인 호세 마르티네스를 노려보았다.

호세 마르티네스는 대호처럼 아메리칸리그 소속이었으며, 보스턴 블루삭스의 4선발 투수로 10승 8패를 기록한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어찌 됐든 메이저에서 두 자릿수의 승을 차지한 투수였으니 말이다.

퍽!

“스트라이크!”

98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호세 마르티네스의 포심은 무브먼트가 많이 걸리며 우측에서 타격하는 타자의 몸 쪽으로 살짝 꺾였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구종이군.’

차라리 투심 패스트볼이었다면 그걸 감안해 스윙을 가져갈 텐데, 투심이 아니면서도 이런 움직임을 보여 주었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포심과 투심의 중간 정도의 변화를 보이는 패스트볼이라 메이저리그 정상급 타자로 올라선 대호도 상당히 까다로운 구종이었다.

펑!

“볼!”

초구와 비슷한 코스로 날아온 투구였는데, 이번에는 스트라이크 존에서 공 하나 정도 빠지는 볼이었다.

‘공의 코스가 참 까다롭네!’

날아오는 투구의 코스가 일정했다면 차라리 나았다.

그런데 호세 마르티네스의 공은 오락가락하며 무브먼트가 걸렸다가 걸리지 않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저걸 호세 마르티네스가 의도한 것이라면 그가 분명 현 세대 최강의 투수일 테지만, 당연히 그런 것은 아니었고 아직 그의 패스트볼이 미완성이었기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방금도 제대로 무브먼트가 실렸다면 대호는 기다리지 않고 오히려 배트를 휘둘렀을 것이다.

하지만 초구보다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스윙을 하지 않아 볼 판정을 받는 공이 되어 버렸다.

‘두 번이나 같은 코스였으니, 이번에는 바깥쪽 공이겠군!’

안쪽으로 두 번이나 공을 던졌는데, 또다시 비슷한 코스로는 던지지 않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호세 마르티네스는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를 던졌다.

이미 바깥쪽 공을 예상하고 있던 대호는 그에 맞춰 스탠스를 안쪽으로 가져가며, 두 팔을 최대한 뻗어 스윙을 하였다.

따아아악!

이미 예상하고 스윙을 했기에 비록 스트라이크 존에서 살짝 빠져나가는 공이었음에도 대호는 배트의 히팅 포인트에 맞힐 수 있었다.

“와아아아!”

“달려!”

관중의 함성과 더그아웃에서 외치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타구가 히팅 포인트에 맞기는 했지만, 탄도각이 살짝 아쉬웠다.

대호가 친 타구는 라인드라이브로 1, 2루 간을 통과해 우익수 방면으로 날아갔다.

이에 우익수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타구를 쫓아 펜스로 뛰었다.

한편 1, 2루에 있던 주자는 대호가 스윙을 가져가고 명쾌한 타격음이 들리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보통 이런 라인드라이브성 타구가 나오면 주자들은 쉽게 런을 하지 못하고 타구의 향방을 확인한 뒤에야 뛰지만, 이미 대호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 주자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최소한 2루타다.’

다음 베이스를 향해 뛰는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 주자는 머릿속으로 그렇게 판단을 하고 뛰었다.

휘익! 휘익!

달리던 주자들은 3루 선상에 서 있는 주루 코치의 수신호를 보며 숨이 턱까지 올라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전력을 다해 뛰었다.

그리고 그건 대호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손에는 아무런 감각이 남지 않아 제대로 정타가 나왔음을 알고 있지만, 각이 너무 낮았다.

홈런이 된다고 해도 펜스를 겨우 넘기는 라인드라이브 홈런일 것이다.

그런데 운이 따랐던 것인가?

일직선으로 날아가던 타구는 그대로 우측 펜스를 넘겨 버렸다.

한편 대호가 친 타구를 쫓아가던 쿠바의 우익수 페드로 곤살레스는 뛰던 발을 멈췄다.

그도 그럴 것이, 타구를 쫓아 뛰던 그는 어느새 워닝 트랙에 도착해 있었고 이젠 타구가 펜스를 넘길지 아닐지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분명히 넘어갈 정도는 아니었는데?’

휘익!

텅!

페드로 곤살레스가 펜스 앞에서 달리던 것을 멈추기 무섭게 그의 귓가로 공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뒤이어 타구가 펜스 너머 스탠스에 부딪히는 소리도 들려왔다.

‘아!’

“홈런!”

심판의 홈런 콜이 들려왔다.

타구의 각이 낮다고 판단해 죽을힘을 다해 뛰던 주자들은 순간 휘청거리며 중심을 잡기 위해 발을 놀렸다.

홈런이란 심판의 선언이 귓가에 들리면서 굳이 사력을 다해 뛸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속도를 줄이다 그리된 것이었다.

이번 대호의 홈런으로 1, 2루에 있던 주자들이 모두 홈으로 들어오며 3점이나 추가시킬 수 있었다.

스코어는 9:13, 이제 대한민국은 쿠바에 4점을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펑! 펑!

“아웃!”

하지만 쿠바에게는 천만다행으로 후속 타자는 허무하게 아웃되었고, 쓰리 아웃으로 공수 교대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9회 초, 아마도 쿠바의 거의 마지막 공격 기회가 되었다.

만약 이번 회에 쿠바가 4점 이상을 내지 못한다면, 경기는 그대로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이 나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굳어 있었다.

그런 쿠바 타자들을 맞아 마운드에는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의 마무리 투수인 오승원이 올라와 있었다.

비록 지난번 대만 경기에 이어 다시 한번 올라오는 것이었지만, 올림픽 같은 단기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오승원이 투구를 하기 전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을 때, 그의 뒤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파이팅!”

중견수인 대호가 외친 소리였다.

오늘 쿠바를 상대로 4타수 4안타 2홈런을 쳤다.

뿐만 아니라 위기 때마다 호수비를 펼치며 투수들을 구원했다.

홈런성 타구를 훔치고, 외야 깊숙한 타구를 걷어 내고, 장타가 될 타구를 막아 타자 주자의 진루를 단타로 막았다.

그런 대호의 맹활약에 힘입어 현재 9:13으로 쿠바를 앞서 나가고 있는 상황.

그런 대호가 파이팅을 외치자 막연했던 두려움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흩어지는 것을 느켰다.

‘그래 막내도 저렇게 힘내고 있는데, 마무리인 내가 중압감에 짓눌리면 안 되지.’

대호의 외침에 힘을 얻은 오승원이 힘차게 키킹을 하며 공을 던졌다.

펑!

“스트라이~크!”

묵직한 오승원 특유의 돌직구가 날아가 포수 미트에 박혔다.

이에 주심도 흥이 났는지, 아니면 곧 퇴근을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심판의 콜은 무척이나 힘이 넘쳤다.

그러자 이를 들은 오승원은 조심스럽게 심판의 뒤쪽에 보이는 전광판을 보았다.

볼 판정과 아웃 카운트, 그리고 투구의 속도를 기록하는 전광판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곳에 적혀 있는 자신이 던진 구속이 보였다.

‘호! 97마일!’

오승원은 전광판에 적힌 자신의 구속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전광판에 적힌 구속은 자신의 최고 구속을 2마일이나 상회하는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최고 구속은 95마일로, 메이저리그 마무리 투수 중에서는 그리 대단한 구속이 아니었다.

다만 회전수가 평균보다 300회 정도 더 높아 타자들에게 보다 빠르게 느껴지게 할 뿐.

그런데 방금 전 공은 실제로 2마일 더 빨라졌고, 메이저리그에서도 강속구로 통할 정도였다.

두근두근!

자신이 던진 공의 속도를 확인한 오승원은 저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동안 마무리 투수치고는 좀 느린 편이란 말을 듣던 그였다.

이제 성장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구속이 2마일이나 증가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조금 전 느낌 그대로…….’

잠시 템포를 줄이고 심신을 안정시키면서 조금 전 자신이 어떻게 던졌는지 복기하였다.

그리고 그 느낌 그대로 다시 한번 던졌다.

펑!

96.5마일.

2구째 던진 오승원은 초구 던졌던 느낌을 생각하면 손끝에 정신을 집중해 투구를 한 결과 초구보단 조금 낮아졌지만, 그에 접근한 구속의 공을 던졌다.

“잘한다 오승원~!”

또 다시 들린 대호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는 오승원에 대한 확신이 들어 있었다.

‘좋았어!’

오승원도 오늘 자신의 컨디션이 다른 그 어느 때보다 좋다는 것을 깨닫고 투구를 하였다.

휘익!

펑!

“스트라이크, 아웃!”

삼구 삼진, 오승원은 첫 타자를 상대로 공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직구를 꽂아 버렸다.

이에 쿠바의 타자는 어떻게 손도 써 보지 못하고 스탠딩 삼진으로 타석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앞 타석에 있던 동료의 어처구니없는 아웃에 다음 타자 페드로 곤살레스는 굳어진 표정으로 타석에 섰다.

‘콜로라도 마운틴스의 수호신이라더니 엄청나군!’

페드로 곤살레스도 오승원의 이름은 들어 보았다.

구속은 빠르지 않지만, 분당 회전수가 메이저리그 평균인 2,400RPM을 훨씬 웃도는 2,700RPM 이상이라 상당히 까다로운 투수라 알려졌다.

특히나 투수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콜로라도에서 매년 60세이브 이상을 기록하고 있었다.

고도가 높은 콜로라도는 타자는 물론이고 투수도 힘든 구장이다.

그렇지만 투수보단 타자에 유리한 구장으로 많이 알려졌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다른 구장에서 외야 플라이가 될 타구가 콜로라도에서는 홈런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툭 가져다 댄 안타도 쭉쭉 뻗어 나가 장타가 되어 버리는 구장.

그러다 보니 콜로라도 마운틴스의 홈구장은 투수들의 무덤이란 이명으로 불렸다.

그런데 그런 투수들의 무덤에서 타자들을 학살하는 투수가 있다.

평균 자책점이 불과 0.231에 불과한 투수.

비록 마무리 투수라고는 하지만, 그렇기에 1점만 내줘도 자책점이 확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 와중에 마운드에 있는 오승원은 철벽 마무리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당연히 페드로 곤살레스는 타석에 들어서는 것이 심히 부담스러웠다.

‘어떻게든 진루해야 해!’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주눅이 들다 보니 안타를 쳐야 한다는 생각보단, 어떻게든 나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먼저였다.

스윽!

그는 저도 모르게 홈 플레이트 가까이 접근했다.

몸에 맞아서라도 나가겠다는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위험해 보이는데… 안쪽으로 던져야겠네.’

오승원 역시 페드로의 모습을 보고 신중하게 공을 던졌다.

그러나…….

퍽!

아니나 다를까, 페드로 곤살레스는 안쪽 깊이 들어오는 공에 허리를 틀어 일부러 엉덩이를 가져다 댔다.

“스트라이크!”

하지만 주심은 히트 바이 피치가 아니라 스트라이크 콜을 불렀다.

“아니, 잠깐. 어떻게 이게 스트라이크입니까? 몸에 맞는 게 똑똑히 보였지 않습니까?”

자신이 공에 맞았음을 어필하는 페드로였다.

그와 더불어 쿠바의 더그아웃에서도 감독이 나와 항의를 하였다.

“투수의 공은 제대로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왔다. 네가 엉덩이를 들이밀어 일부러 맞지 않았다면, 당연히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을 테니까.”

심판은 단호했다.

페드로 곤살레스와 쿠바 감독이 항의를 했지만 처음 내린 판결을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중계 화면에서 조금 전 상황이 느린 화면으로 반복되어 송출되고 있었는데, 확실하게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가는 공에 페드로 곤살레스의 엉덩이가 깊이 들어와 맞는 모습이 보였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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