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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101화 (101/209)
  • 101화

    대만 올림픽 야구 대표 팀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가끔 튀어나오는 야구 영재만 없다면 그리 힘든 상대가 아니라 하였지만, 한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에는 야구 영재가 아닌 야구 천재가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들을 대국(중국인)이라 칭하며 대한민국을 깎아내리기 급급한 나머지 망언을 했을 뿐.

    그리고 망언을 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와아아아!”

    7회 말 대만의 공격, 15:0으로 대만은 대한민국에 15점을 빼앗긴 상황이었다.

    만약 이번에 6점 이상을 내지 못하면 경기는 그대로 끝나고 콜드게임 패를 당하게 된다.

    이번 올림픽의 콜드게임 규정상, 7회에 10점 이상 점수차가 나면 자동으로 경기 패배 선언이 나오게 정해져 있었다.

    ‘쳇, 지난번 18세 이하 대회 같았으면 진작에 콜드게임 선언이 됐을 텐데.’

    대호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미 올림픽 개최 때 정해진 규칙을 혼자 바꿀 수는 없는 법이었다.

    아무튼 7회 말, 대만의 마지막 공격이 될지도 모르는 경기가 시작되었다.

    대만 타자들을 상대하는 대한민국의 마무리 투수는 오승원.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특급 마무리였다.

    중간 계투급에서 나가도 될 테지만, 오승원은 실전을 경험한지가 조금 오래 되어 감각을 유지할 겸 내보낸 것이었다.

    펑!

    “스트라이크!”

    비록 최고 구속은 94마일이라 ㎞/h로 환산하면 151㎞/h에 불과하지만, RPM이 2,700을 넘어서는 공이었다.

    메이저리그 평균보다도 높아 구종 가치가 손에 꼽히는 포심 패스트볼, 오승원의 장기였다.

    구위가 위협적일 정도로 강력하다 보니, 이를 타석에서 보는 타자의 입장에선 스피드건에 찍힌 94마일이란 속도보다도 2~3마일 더 높게 느껴져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저 공이 겨우 94마일이라고?’

    왕자이준은 오승원이 던진 초구를 보며 심장이 떨리는 듯했다.

    휘익!

    “스트라이크!”

    오승원이 던진 패스트볼은 마치 채찍으로 대기를 가르는 듯한 소음을 내며 포수 미트에 날아들었고, 왕자이준은 그런 공을 눈으로 쫓지 못하고 대충 배트를 가져다 휘둘렀다.

    그러다 보니 스윙의 궤적은 공의 방향과는 한참이나 차이 나는 곳을 갈랐다.

    펑!

    “스트라이크, 아웃!”

    메이저리그에서도 투구 템포를 빠르게 가져가는 오승원이라 포수에게서 공을 돌려받자마자 곧바로 다시 공을 던졌고, 그러다 보니 타자는 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선 자세에서 또다시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고 스탠딩 삼진을 당했다.

    “오승원 투수, 역시나 공이 무척이나 위력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승원 투수의 직구는 일명 돌직구라고 불리는데, 이는 공의 회전수가 높다보니 구위가 무척이나 위력적이라 붙은 별명이죠.”

    하구연 해설위원은 방금 전 대만의 타자 왕자이준이 손도 써보지 못하고 스탠딩 삼진을 당하는 것을 보며 그렇게 설명을 하였다.

    “그런데 오승원 투수의 투구 패턴을 보면 상당히 빠르게 공을 던지는 것 같은데, 저래도 상관이 없나요?”

    김승주 아나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네, 오승원 선수의 장점 중 하나가 재빠른 투구입니다. 그 때문에 도루도 거의 허용하지 않죠. 아마 견제사를 시킨 횟수도 리그에서 톱에 꼽힐 겁니다.”

    “하하, 그렇군요. 공을 빠르게 던지느라 타이밍이 깨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김승주는 야구를 잘 모르고, 올림픽처럼 특별한 기간에만 시청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오승원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구연 위원과 나누었다.

    7회 콜드게임까지 아웃 카운트 두 개를 남겨 둔 상태, 대만 야구 대표 팀 코칭스태프들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대만은 경기 시작 전, 그렇게 1라운드 상대인 한국을 그렇게 깎아내렸는데, 미국이나 일본 팀도 아니고 한국 팀에게 콜드게임을 당할 위기에 놓였으니 당황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그냥 패도 아니고 1점도 내지 못한 채 패배할 위기였으니 말이다.

    “후진퉁! 부탁한다!”

    일본 니혼햄의 2군에서 뛰고 있는 후진퉁을 보며 대만 야구 대표 팀 감독 왕칭밍이 소리쳤다.

    타석에 들어서던 후진퉁은 느닷없는 감독의 외침에 살짝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대기 타석에서 왕자이준이 어떻게 아웃되는지 똑똑히 지켜보았다.

    비록 자신이 대만 야구 대표 팀에서 5번을 맡고 있기는 하지만, 4번 타자인 왕자이준보다 타격 능력이 더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왕자이준보다 뛰어났으면 4번 타자의 자리에 있었으리라.

    그러다 보니 지금 자신에게 한국 팀 마무리의 공을 치라고 하는 감독이 원망스러워졌다.

    괜한 말을 들은 것 때문에 부담감만 더욱 늘어났다.

    ‘제길, 감독이란 자가 분위기도 파악하지 못하고…….’

    오늘 경기는 철저하게 한국 팀에 말렸다.

    정신을 차리고 철저히 대비를 했어도 상대하기 힘들었을 팀인데, 감독은 청소년 대표 팀에서 거둔 한 번의 승리에 취해 무시하고 방심하였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저러는 걸 보니 참으로 꼴불견이라고 생각했다.

    ‘될 대로 되라!’

    후진퉁은 그냥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었다.

    펑!

    “스트라이크!”

    오승원은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의 모습을 보며, 상대가 자신에게 기가 죽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과감하게 가운데로 공을 던졌다.

    이미 한 수 접고 들어온 타자는 정중앙에 꽂힌 타구에도 배트를 내지 못했다.

    펑! 펑!

    “스트라이크! 아웃!”

    공을 더 던질 것도 없었다.

    아웃 카운트 하나를 잡기 위해선 공 세 개면 충분했으니까.

    “나이스!”

    외야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렸다.

    마무리 오승원이 공 여섯 개로 아웃 카운트 두 개를 따내자, 기쁨을 참지 못한 대호가 큰 소리로 외친 것이다.

    4타석 3안타 홈런 1개 볼넷 1개를 기록한 대호가 뒤에 든든히 받치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 오승원은 어깨가 가벼워졌다.

    ‘…응? 그러고 보니 올림픽이 끝나면 바로 저 녀석과 대결을 해야 하잖아?’

    문득 오승원은 머릿속에 올림픽 이후 소속 구단으로 돌아가 치러야 할 경기가 생각났다.

    지금이야 같은 팀에 속해 있지만, 올림픽이 끝나면 다시 메이저리그의 다른 팀에서 대결해야만 하는 상대였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 대호는 결코 쉬운 타자가 아니었다.

    오늘 대만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의 투수들을 상대로 대호가 펼친 활약만 보더라도 그러했다.

    ‘그냥 야구 천재가 아니라…….’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그에게선 프로에서 10년 이상 활약한 베테랑의 여유가 묻어 있었다.

    애초에 대만 팀과의 승부가 압도적인 우위로 흘러간 것 자체가 대호 덕분에 알아낸 약점을 공유한 이후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무려 15점을 뽑아낼 순 없었으리라.

    오승원은 만약 이러한 대호의 야구 지능이 자신을 향해 조준한다면 이겨 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절레절레.

    엉뚱한 상상을 하다 순간 공포가 밀려오자, 그는 고개를 휘휘 흔들고는 잡념을 떨쳤다.

    ‘우선 대만의 마지막 타자를 상대하고 생각하자!’

    7회 말을 끝내기까지 남은 아웃 카운트는 오직 하나.

    그 하나만 잡으면 경기가 종료되는 것이다.

    휘익!

    하지만 미처 떨치지 못한 께름칙함이 남아 있어서일까.

    손끝에서 빠져나가는 공의 감각이 그리 좋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리 대만 타자들의 실력이 비교적 뒤떨어진다고 하지만, 이 정도는 쳐 낼 능력이 있었다.

    썩어도 한 국가의 대표 팀이니 말이다.

    대만의 6번 타자 칭즈하오는 전력을 다해 배트를 휘둘러 공을 타격했다.

    ‘이게 뭔… 분명 아까 왕자이준과 후진퉁한테 던질 때랑은 다른 분위기였는데, 그런데도 공의 힘이!’

    따악!

    타격음이 들리고 대호는 빠르게 앞으로 달렸다.

    비교적 실투에 가까운 공임에도 배트에 맞은 타구가 길게 뻗지 못했다.

    2루와 자신이 있는 센터 방면 중간에 떨어지는 빗나간 안타가 될 가능성이 높아 아슬아슬했다.

    다다다닥!

    그나마 다행이라면 대호가 오승원의 공을 믿고 있었기에 수비 위치를 그리 뒤쪽에 두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다.

    빠르게 대시를 하며 공이 떨어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촤악!

    그러고 나서 글러브를 펼치며 떨어지는 공을 향해 슬라이딩을 하였다.

    퍽!

    꾸욱!

    살짝 짧은 감이 있었지만, 대호는 최선을 다해 팔을 뻗어 글러브를 벌리고 공이 웹에 들어오자 손아귀를 오므리며 꾹 쥐었다.

    “와아!”

    방송용 카메라에 방금 전 수비 장면이 느린 화면으로 송출되었다.

    대호는 자신의 글러브에 공이 잡힌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면서 글러브에서 공을 꺼내 이를 심판이 볼 수 있게 자신의 근처로 달려오던 2루수 이영규에게 가볍게 토스를 하였다.

    “아웃! 게임 종료!”

    대호의 글러브에서 공이 나오는 것을 확인한 주심이 아웃 콜을 하고 이어 게임이 끝났음을 선언했다.

    7회 말 대만의 공격은 세 타자 모두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하고, 마무리로 올라온 오승원에게 삼진 두 개와 중견수 플라이를 얻어 냈을 뿐이었다.

    삼자범퇴에 이은 콜드게임 선언.

    “우와!”

    한국 대표 팀은 누구 할 것 없이 경기가 끝나자마자 환호성을 지르며 마운드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게임은 콜드게임이 선언되면서 쉽게 이긴 것처럼 보였지만, 선수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한 회, 한 회, 그리고 한 타석, 한 타석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큼이나 긴장되는 경기였다.

    이기면 이기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한국에 있는 야구팬은 경기 내용이 조금만 부족하다 싶으면 야구 대표 팀에게 질타를 아끼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만 정도는 가볍게 이겨야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만이 한국보다 인구도 적고 프로야구가 활성화되지 못했다고 해서 결코 약한 팀은 아니었다.

    비록 감독 왕칭밍이 망언을 내뱉었다고는 해도, 어쨌든 지난 대회에서 패배해 4강에서 떨어진 것이 그 예였다.

    문제는 그럼에도 한국의 야구팬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사실 대한민국 야구 대표 팀을 맡는 감독, 코칭스태프들이나 대표 팀에 승선하는 선수들의 경우 어떻게 보면 독이 든 성배를 드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병역을 해결하지 못한 젊은 선수들이야 그걸 감안하고 참가하는 것이지만, 나이 든 선수의 경우 정말 얻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다만 대회에 성적을 낸다면 또 칭송을 하는 것이 야구팬이기에 이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

    그러니 선수들은 한 타석, 한 타석을 살얼음을 걷는 심정으로 신중하게 경기에 임하다 보니 7회 콜드게임이 선언이 되었음에도 무척이나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다.

    “자자, 정리하고 얼른 호텔로 가서 쉬자!”

    추인수 감독은 대만을 상대로 콜드게임 승을 한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승리를 만끽하고 있을 때, 그렇게 말을 하였다.

    일단 경기를 완벽하게 끝내고 난 뒤 뒤풀이를 하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수들은 휴식을 취하지만, 그와 코칭스태프들의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내일 있을 B조 승자와의 경기도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 * *

    다음 2라운드 상대는 쿠바였다.

    쿠바는 1라운드에서 일본을 꺾고 2라운드에 진출하였다.

    “일본이 떨어지고 쿠바가 2라운드 상대로 올라왔다고요?”

    대호는 2라운드 상대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쿠바가 야구 강국이긴 하지만, 이는 2000년대 전후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프로야구가 활성화되면서 프로야구가 없는 쿠바의 경우, 많은 인재가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위해 미국으로, 혹은 돈을 많이 주는 일본 프로야구로 빠져나가면서 점점 내리막을 걷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올림픽이나 세계야구선수권대회처럼 성인 무대에서도 가끔 상위의 성적을 거두더라도 예전 아마 야구 최강이라는 명성에 비하면 부족한 실적을 얻고 있었다.

    그런 쿠바가 일본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을 이기고 승자 2라운드에 올라왔으니 대호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대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은 이번 2032년 올림픽에 진심을 보이며 최고의 야구 선수들만 뽑아 역대 최강의 선수단을 꾸렸다고 선전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야구 올림픽 대표 팀 구성을 보면 그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일본의 역대급 야구 천재 히데오 소이치로를 비롯해 NPB 올스타에 뽑힌 경력이 있는 수많은 선수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물론 사회인 야구 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선수도 포함시키며 명목상 아마 야구를 표방하기도 했지만, 소속 선수들 명단을 지켜본 야구팬들은 일본 대표 팀을 미국과 함께 금메달 후보로 놓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대호로서는 일본이 쿠바에 패배하고 패자조로 내려간 것에 의아해할 뿐이다.

    ‘2회차나 3회차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그가 떠올리기에는 분명 이번 올림픽에서 일본은 미국을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

    비록 승자조 3라운드에서 미국에 져서 패자조로 떨어지긴 했지만, 패자조에서 쿠바를 이기고 올라와 최종전에서 승리를 하여 브라켓 리셋을 만들고, 두 번째 이프 게임에서 승리하게 되었으니까.

    그런데 역사가 바뀌었다.

    2라운드에서 이겼어야 할 일본이 쿠바에게 지면서 패자조로 내려간 것이다.

    이 때문에 대호는 순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뭔가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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