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올림픽에서 야구는 다른 종목과 다르게 전통적인 토너먼트 방식이 아닌 더블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로 치러진다.
야구가 더블 엘리미네이션 방식으로 경기를 치르는 이유는 사실 별다를 게 없었다.
그저 야구라는 종목에 참가하는 국가의 수가 너무 적었기 때문.
그렇다면 어째서 야구라는 종목의 저변 확대가 늦어지냐라는 의문데 다시 도달하게 되는데, 정설로 여겨지는 것은 야구가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라는 것이었다.
구기 종목 중 라이벌이라고 불리는 축구와 비교해 보자면, 축구는 극단적으로 얘기했을 때 단순히 사람 숫자를 채우고 골대 역할을 할 공간, 그리고 공 하나만 있으면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야구는 간단하게 하려고 해도, 글러브를 여러 개 준비해야 하는 등 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야구를 하는 나라들에서는 큰 인기를 끌지만, 야구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국가에서는 야구를 즐기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그러한 이유로 야구는 다른 구기 종목과 다르게 패자부활전 개념으로 승자조 1위가 나올 때까지 패배한 팀은 계속해서 승부를 하고, 패배한 팀은 다시 패자조로 내려가 패자조 생존 팀과 다시 대결을 하여 최후의 1인이 나올 때까지 승부를 한다.
그리고 최종 승자 조 1위와 패자 조 최후의 한 팀이 결승전을 치른다.
이때 승자 조 1위가 승리를 하면 그대로 우승이 확정이 되지만, 패배를 하게 되면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져 한 차례 경기를 더 치르게 되고 이를 ‘if game’이라 부른다.
* * *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의 첫 상대는 대만이었다.
대한민국 야구 전문가들은 대만과의 승부에서는 비교적 우세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었다.
그러나 대만 대표 팀은 그런 예측을 비웃었는데, 한국 측에서 희망적인 결과를 내놓는 데에 합당한 근거기 있는 게 아니라 단순히 대만보다 대한민국에 메이저리거가 더 많다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자세히 뜯어보면 대만 야구 대표 팀은 메이저리거 한 명과 마이너리그에 뛰고 있는 유망주 세 명이 대표 팀에 합류를 하였지만, 대한민국 야구대표 팀에는 대호를 비롯해 메이저리거가 세 명이나 되었다.
사실 한국에도 마이너리그에도 활약을 하는 선수가 있기는 하지만, KBSA에서는 국내 선수를 대표 팀에 뽑기 위해 마이너리거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KBSA가 이렇게 선수 선발을 한 이유는 메이저리거야 국위 선양을 하고 있는 선수란 이미지가 있다면, 마이너리거의 경우 한국 야구 발전보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국내가 아닌 외국을 택했다는 시선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 프로야구를 선택한 선수들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는 마음과 국내 프로야구 활성화란 목적이 겹쳐지며 국내 선수를 대표 팀에 뽑게 되었다.
그중 병역의 의무가 남은 유망주 몇몇을 뽑으며 국내 프로 구단을 다독인 건 덤이었고 말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뽑힌 선수들이 최태경이나 김경제 등이었다.
물론 국내 야구팬들은 이들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고, 이번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의 실력은 역대 1위로 평가받는 수준이었다.
으레 발생하기 마련인 구설수조차 단 하나도 없는 팀 말이다.
“와! 대호 너는 1라운드부터 선발이구나!”
최태경은 주전 선발 발표가 있고 난 뒤 대호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어떤 대호?”
언제 다가왔는지 주장인 김대호 선수가 최태경의 뒤에서 물었다.
“으악! 선배님, 놀랐잖습니까!”
비록 팀은 같지 않았지만, 대한민국 프로야구 판이야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선후배였기에 김대호에게 그리 말을 하였다.
“너도 지명타자로 나가잖아?”
“타석에만 나가면 재미가 반감되지 않습니까?”
최태경의 포지션은 포수지만 이번 올림픽 야구 대표 팀에선 백업 포수로 참가를 하였기에, 1라운드 대만전에는 지명타자로만 뛰게 되었다.
“그럼 내가 장민호에게 얘기해 줄까? 네가 바꿔 달란다고?”
김대호는 뚱한 표정으로 있는 최태경을 보며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농담을 던졌다.
“됐습니다.”
자신에게 농담을 하는 김대호의 말에 최태경은 됐다는 말을 하였다.
“원한다면 내가 감독님께 말씀드려서 바꿔줄 수도 있는데?”
언제 다가왔는지 조금 전 김대호가 언급한 장민호가 와서 이야기를 하였다.
“아니, 선배님까지 제게 왜 그래요?”
태경은 김대호에 이어 장민호까지 나타나 자신을 놀리자 울상이 되었다.
“하하하!”
울상이 되어 말을 하는 최태경의 모습에 주위에 있던 선수들은 뭐가 그리 웃긴지 하나같이 커다랗게 웃었다.
사실 김대호와 장민호가 최태경에게 다가와 이러는 것은 전적으로 첫 상대인 대만전을 앞두고 긴장했을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최태경은 정말로 자신을 놀리는 것으로 알고 울상을 지은 것이었다.
그와는 연차가 꽤나 차이나는 선후배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대호는 지금 대표 팀 선수들의 표정을 보며 감탄을 했다.
‘역시 주장이고 베테랑이다.’
자연스럽게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 주는 김대호와 장민호, 두 사람의 모습에 대호는 절로 존경심이 일었다.
비록 자신과는 2, 3회차에는 별다른 인연이 없어 함께하진 않았지만 두 사람이 본받을 만한 선수라 느꼈다.
* * *
1라운드 대만전에 돌입해 선두 타자로 나온 대호는 조금 전 경기가 시작되기 전 추인수 감독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 대호야. 대만의 선발투수인 양야오신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그러니 경기 초반에 네가 많은 공을 던지게 만들어 주라!
오늘 상대할 대만 야구 대표 팀의 선발투수는 LA다윈스 산하 싱글A 구단인 란초쿠카몽가 퀘이크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투수였다.
더블A만 되었어도 어느 정도 정보 수집이 되었을 텐데, 그가 속한 리그가 싱글A다 보니 자료가 너무도 부족했다.
그래서 추인수 감독이 대호에게 그런 부탁을 한 것이다.
팡!
바깥쪽으로 하나정도 빠지는 공이었기에 대호는 초구를 그냥 지켜보았다.
“볼!”
‘이 정도는 볼이군!’
자신이 설정한 스트라이크 존과 비슷한 판정이 내려지자, 대호는 그 정보를 머릿속에 입력했다.
휘익!
“스트라이크!”
이번에는 몸 쪽 낮은 볼이었는데, 주심은 이것에 스트라이크 콜을 불었다.
‘음, 약간 낮은 공인데 이건 스트라이크를 잡네?’
대호가 판단하기에 이번 공은 스트라이크 존에서 반 개 정도 낮은 볼이었다.
하지만 심판은 스트라이크라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안과 바깥쪽 공에는 정확하게 존을 보지만, 낮은 쪽에는 조금 후한 편인 듯 보였다.
‘혹시 모르니 좀 더 두고 보자!’
아직 겨우 공 두 개만 본 상황.
대호는 섣부르게 판단을 내리긴 이르단 생각에 좀 더 지켜보기로 하였다.
팡!
“스트라이크!”
이번에도 주심은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렸다.
그렇지만 방금 공도 대호가 판단하기에는 바깥쪽 낮은 볼이었다.
‘아직 높은 쪽은 모르겠지만, 확실히 낮은 볼에 후한 판정을 내린다.’
공 세 개를 지켜보며 대호는 주심의 판정 성향을 어느 정도 알아낼 수 있었다.
‘스트라이크 존에 가까운 볼은 걷어 내야겠군.’
벌써 볼 카운트가 1B 2S로 타자에게 불리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추인수 감독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선 존에 붙는 공은 커트를 해야 할 상황이었다.
팡!
“볼!”
다행히 네 번째 공은 안쪽 높은 볼이었는데, 확실히 이것을 보면 전체적으로 공 하나에서 반개 정도 스트라이크 존이 낮은 편이라 할 수 있었다.
‘높이도 알아냈으니…….’
이로써 어느 정도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을 알아낸 대호는 제대로 타격 자세를 잡았다.
경기 전 추인수 감독이 했던 부탁은 이제는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투수인 양야오신에 대해 대충 알아냈기 때문이다.
구속도 93마일에서 왔다 갔다 하는 정도고, 구위도 그리 위력적이지 않았다.
볼 컨트롤은 겨우 위아래 2분할 정도의 실력인 것 같아, 한국 대표 팀 선수라면 충분히 찍어 누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굳이 더 공을 볼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따아아악!
“와아아아!”
한국과 대만의 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 야구장을 찾은 야구팬들은 첫 타자부터 홈런이 나오자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특히나 대호가 대한민국 야구 대표로 올림픽 야구 경기에 나온다는 정보를 알아낸 오클랜드 슬랙스의 야구팬은 이미 지구 2위와 현격한 승점차를 보이는 구단의 경기보단 구단의 스타가 뛰는 경기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가 뜻하지 않은 홈런을 보며 열광했다.
“빅 타이거! 빅 타이거!”
대호의 홈런에 관중석은 난리가 났다.
비록 이곳 샌프란시스코가 대호의 홈그라운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국 팀과 붙는 것도 아니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경기에서 홈런을 치자 야구팬들은 좋아했다.
홈런을 치고 적당한 속도로 달려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돈 대호는 홈을 밟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기 전, 타석으로 들어서는 2번 타자 이중호에게 조금 전 자신이 알아낸 양야오신의 정보와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을 전달했다.
“양야오신의 공은 빠르긴 하지만 구위도 밋밋하고 걱정할 필요 없어요. 아, 그리고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이 공 반 개 정도 내려와 있습니다.”
“그래? 스트라이크 존이 공 반개 정도 내려왔다고?”
“예, 투수의 공은 밋밋하니 배트 중심에 맞추기만 하면 쭉쭉 뻗어 나갈 겁니다.”
“OK!"
대호의 이야기를 들은 이중호는 자신감 있게 타석으로 들어갔다.
그런 이중호의 모습을 지켜본 대호는 대기 타석으로 나오고 있는 이영삼에게 조금 전 이중호에게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려주고는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타석에 들어선 2번 타자 이중호는 대호에게 들었던 정보들을 되새기며 투수의 공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낮은 볼이라 가만히 지켜본 투구를 심판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리자 고개를 끄덕였다.
대호에게 듣기는 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시나 낮은 볼에 후하단 대호의 말처럼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이 내려와 있는 것이 맞았다.
‘좋았어!’
정보를 확인한 이중호는 날카롭게 눈을 반짝이며 양야오신의 투구를 기다렸다.
휘익!
같은 코스로 공이 날아오자, 이중호는 기다리지 않고 바로 스텝을 앞으로 반걸음 나가며 스윙을 가져갔다.
따아악!
이중호가 친 타구는 유격수 키를 넘기는 좌중간으로 빠지는 깊숙한 타구를 만들어 냈다.
타다다다!
잘 맞은 타구이기는 하지만, 탄도각이 낮아 홈런이 되지 못할 것을 알기에 빠르게 스타트를 끊었다.
촤아아악!
1루를 지나 2루로 뛴 이중호는 2루에 레그 슬라이딩을 하며 여유롭게 들어갔다.
선두 타자 솔로 홈런에 이어 터진 2번 타자의 2루타.
“출발이 좋은데요.”
이강철 타격 코치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는 추인수 감독을 보며 이야기를 하였다.
하지만 추인수에게선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입가에 한 가득 미소를 짓고 있는 추인수는 조금 전 대호가 선수들을 향해 전달한 내용이 그대로 들어맞았다는 것을 방금 전 이중호가 친 타구를 보며 확인했다.
“이번 기회에 대만이 우리에게 기어오르지 못하게 확실하게 밟아 놓자고.”
무슨 생각인지 좀처럼 과격한 표현을 하지 않는 추인수가 느닷없이 선수들을 향해 그렇게 이야기를 하였다.
너무도 뜻밖의 말이었기에 선수들은 순간 당황해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무슨 이유로 그러한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재작년에 이어 작년에도 U―18세 감독을 맡았던 추인수는 뜻하지 않게 대만의 U―18 대표에게 덜미를 잡히며 대회에서 4강에 멈췄다.
스포츠란 게 얼마든지 패배할 수도 있으니, 그냥 올해는 안 좋았다고 넘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이 정도로 급발진을 하게 된 데에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대만 감독이 한 말이 화근이 되었다.
― 한국은 어쩌다 나오는 야구 영재가 아니면 별로 어렵지 않다.
2030년 한국U―18 대표에게 져 예선 탈락한 대만이었는데, 2031년 대회에서 설욕을 하자 곧바로 기고만장해져 그러한 인터뷰를 한 것이었다.
그러니 올림픽 대표 팀을 맡은 추인수가 대만 팀을 상대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예, 알겠습니다. 확실하게 밟아 놓겠습니다.”
대기 타석으로 나가기 전 지명타자인 최태경이 그렇게 대답을 하였다.
비록 이번 올림픽 야구 대표 팀에서 막내 라인이긴 하지만 최태경의 국내 프로 성적은 홈런 서른두 개 타율 0.325로 장타력은 물론이고 타격에서도 상당한 위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