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99화 (99/209)

99화

2032년 9월 10일, 어느덧 메이저리그 2032시즌도 고작 38경기를 남겨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크리스, 현재 우리 팀의 성적이 어떻지?”

오클랜드 슬랙스의 단장 조엘 헌트는 뭔가 고민을 하는 듯하다 비서인 크리스 마틴을 불러 물었다.

“현재 2032시즌 165경기 중 127경기를 치렀고, 그중 91승 36패로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업무를 보던 크리스 마틴은 기계적으로 단장의 질문에 답을 하였다.

“2위와의 격차는?”

원하던 답을 들은 조엘은 서부지구 1위를 달리고 있는 자신들과 2등의 승점 차를 물었다.

“2위 LA데블스와는 20게임차로 남은 경기에서 승률이 50%만 되어도 지구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건 LA데블스가 남은 경기를 모두 승리를 한다는 가정 아래에서겠지?”

“물론이죠.”

실제로 대답하는 크리스의 속마음 역시 이미 자신이 속한 오클랜드 슬랙스가 이번 2032시즌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확정지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판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91승 36패를 하고 있는 오클랜드가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하기 위해선 굳이 남은 경기 중 19경기를 승리할 필요 없이 10경기 정도만 이겨도 충분하니까.

나머지 구단들은 100승을 기록할 가능성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작년에 정대호가 합류한 우리들처럼 미친 행보를 보여 준다면 또 모를까… 하지만 나머지 구단에 그런 여력은 없다.’

크리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오랜 라이벌인 LA데블스의 경우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선 남은 38경기에서 29경기를 이겨야만했다.

그러니 사실상 이번 시즌은 지구 우승을 하고 느긋하게 가을 야구에 힘을 쏟으면 된다.

‘하! 이게 정말 몇 년 만인지?’

조엘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단장으로 있는 오클랜드가 정말이지 이렇게 편하게 가을 야구를 하게 된 것이 몇 시즌 만인지 감개가 무량했다.

작년 2031시즌, 오클랜드는 가을 야구를 경험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지구 2위를 하여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르며 겨우 디비전 시리즈에 발끝만 담근 것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힘들게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하자마자 휴스턴에게 허무한 패배를 당하지 않았던가.

정규 시즌 후반기에 너무 전력 소모가 커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2032시즌은 달랐다.

전반기가 끝났을 무렵 이미 작년 2031시즌 40인 확장 로스터 때 거둔 70승을 이루었다.

그뿐만 아니라 후반기 32경기에서 무려 21승을 거뒀다.

전반기의 승률에 비해 좀 떨어지긴 했지만, 이는 주전 선수들을 무리하지 않도록 배려를 하면서 경기 운용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막말로 작년처럼 선수 툴을 가동했다면, 이미 91승이 아닌 100승 고지에 도달해 있었을 지도 몰랐다.

“2위인 LA데블스와 그 정도 승점 차라면 계획대로 대호를 올림픽 한국 대표로 보내도 걱정 없겠군!”

“현재 구단의 분위기라면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조엘의 말에 비서인 크리스 마틴도 동의하였다.

정말 최악에 최악의 슬럼프가 와서 대호가 빠진 일주일 동안 벌어지는 경기에서 모조리 패배한다고 한들, 자신들이 가을 야구에 진출하지 못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정대호 원 맨 팀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는 없을 터.

* * *

대한체육회 회장인 구준모는 올림픽 준비 위원인 허정표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번 올림픽 준비에 부족한 것은 없죠?”

“예, 아무런 부족함 없이 완벽합니다.”

허정표는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야구 대표 팀은 어때요?”

뭔가 생각이 난 것인지 구준모가 올림픽 야구대표 팀에 관해 물었다.

“이상협 KBSA협회장의 말을 들어 보면, 야구 대표 팀도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 누구냐, 으음…….”

어떤 인물을 생각하고 있는데,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아 인상을 찡그리던 구준모를 보며 허정표는 얼른 한 사람의 이름을 꺼냈다.

“혹시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정대호 선수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맞아! 정대호!”

구준모는 허정표의 입에서 대호의 이름을 듣고서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처음 전해 듣기로는 그 선수도 대표 팀에 합류한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아무런 지장이 없는 건 확실한 거겠죠?”

메이저리그 선수나 프리미어 리그같이 프로 리그가 활성화되고, 또 자본이 풍부한 종목의 선수들은 올림픽과 같은 국제경기에 잘 참여를 하지 않는다.

소속 구단에서 잘 내보내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구단의 입장에서 각 선수들의 나라가 어찌 되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당장 그 해 중요 선수들이 빠져서 타격을 입으면 욕먹는 건 자신들일 텐데 말이다.

“들리는 말을 얘기하자면 정대호 선수도 올림픽 대표 선발에 적극적이라 하고, 또 현재 그가 속한 구단도 메이저리그에서 지구 선두를 안정적으로 달리고 있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예, 그리고…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게 되면 혜택이 있지 않습니까?”

허정표는 대호와 오클랜드 슬랙스의 현 상황을 언급하고, 또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면 대한민국 남자들이 피할 수 없는 병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언급했다.

그런 허정표의 이야기를 들은 구준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스포츠 스타를 꼽으라면, 단연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정대호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왔다.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가 정대호 혼자는 아니지만, 그중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이름을 높이고 있는 선수는 대호였기에 한국에서의 인기도 가장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인기가 어느 정도냐면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의 주역이며, 영국 프리미어 리그 명문 맨채스터 유나이티드의 엠버서더였던 박지성이나 축구 국가 대표 주장을 역임하고 또 프리미어 리그 동양인 최초 득점왕을 한 손흥민에 버금가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 인기는 날이 갈수록 더욱 높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고작 스무 살의 창창한 신성이 올스타에 선정될 정도의 실력을 갖춘 건 물론이고 심지어 인성까지 좋았다.

홈런더비에서의 상금을 모두 기부한 걸 보고 한국인들은 감탄했다.

게다가 그날 경기의 MVP로 선정되며 역사상 두 번째로 아시안 올스타 MVP가 되었으니 인기가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한국인들은 KBO리그가 일본의 NPB보다 밑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고교 야구의 인프라 차이로 어쩔 수 없는 생각이긴 했으나, 그건 반대로 말하면 일본인들 또한 자신들이 미국 다음으로 야구를 잘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음을 뜻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2032시즌 올스타 경기를 치르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 준 대호 덕분에 한국인들의 마음속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게다가 올스타 MVP로 선정된 기록 또한 이전의 일본 선수보다 압도적이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이전까지 아시아인 중 최고의 유망주라 불리던 일본의 야구 천재 히데오 소이치로는 홈런더비에서 잠깐 활약을 하고 올스타 경기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2타수 1안타에 그친 히데오 소이치로와는 다르게 대호는 4타수 3안타 2홈런을 기록하면서 확연한 비교 우위를 차지하였다.

한국인들에게 전해지는 은밀한 이야기가 있다.

가위바위보라도 일본에는 지지 말라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대호가 일본인이 그렇게 자랑하는 야구로, 또 그들이 자랑하는 최고의 야구 천재를 꺾었으니 자랑스럽고 가슴이 벅찰 만했다.

그런 이유로 대호의 인기는 현재 대한민국 최고였기에 구준모 회장 역시 대호의 올림픽 야구 대표 팀에 합류하는 그의 행보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 * *

2032년 9월 13일,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이번 올림픽이 치러지는 장소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대호의 경우 야구 경기가 치러지는 장소가 오클랜드와 같은 주에 있는 샌프란시스코다 보니, 이동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다.

그 덕에 다른 대한민국 야구 대표 팀 선수들이 시차 적응으로 인해 컨디션이 좋지 못한 것에 비해, 컨디션을 조절할 필요성이 없어 상대적으로 편했다.

“대호! 10개월 만에 보는 건가?”

추인수 감독은 대호를 보며 말을 걸었다.

“감독님, 올림픽 대표 감독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인사를 해야 했지만, 뒤늦게 발견을 하다 보니 인사가 늦었다.

하지만 추인수가 올림픽 대표 팀 감독이 된 것에 대해선 축하 인사를 확실하게 하였다.

“하하하! 다 네 덕이지.”

추인수는 빙그레 웃어 보이며 이번 자신의 감독 등극의 공을 대호에게 돌렸다.

“설마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다 감독님의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 것이죠.”

두 사람은 서로를 치켜세우며 덕담을 주고받았다.

“아, 참. 인사해. 여긴 대표 팀 주장인 김대호다.”

추인수는 올림픽 대표 팀 주장인 김대호를 대호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주장의 이름은 정대호와 동명이인이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정대호입니다.”

대호는 고개를 숙이며 꾸벅 인사했다.

김대호는 부산 타이탄즈의 차기 주장으로 내정된 선수로, 팀에서 4번 타자에 위치한 홈런 타자였다.

비록 타이탄즈가 올해도 성적이 그리 좋지 못함에도 주장인 그가 올림픽 대표 팀 주장으로 뽑힌 것에는 그만큼 능력이 특출 났기 때문이다.

“그래, 대호! 이름값을 하는 후배라 관심 있게 보고 있었다.”

대호의 인사를 받은 김대호는 미소를 지으며 농담 반 진담 반 섞은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참! 대호 네가 반가운 얼굴도 몇 있을 거다.”

주장인 김대호와 인사를 마친 대호를 보며, 추인수가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올림픽 대표 팀에 자신과 반가운 얼굴이 있을 것이란 추인수 감독의 말에 대호는 눈을 반짝였다.

‘반가운 얼굴이라… 대체 누굴까?’

그리고 잠시 후, 추인수 감독이 말한 주인공들을 보게 된 대호는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이 모여 있는 곳에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얼굴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대호! 역시 너도 여기 왔구나!”

식당으로 들어오는 대호를 보고 먼저 말을 건 사람은 바로 재작년에 함께 WBSC U―18 대회에 출전을 했던 광주상고의 최태경이었다.

“어이, 최태경. 오랜만이네. 네 단짝은?”

최태경의 얼굴을 확인한 대호는 예전부터 그와 배터리였던 김경제에 대해 물었다.

“하하, 경제는 잠시 볼일을 좀 보러 갔지.”

친화력이 좋은 최태경은 오랜만에 본 대호를 보면서도 밝게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역시나 최고 재능을 타고난 야구 영재들이니 이번 올림픽 야구 대표 팀에도 선발이 되었구나!’

자신이야 회귀와 야구 시스템이 도움을 줬기에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지만, 앞에 앉아 있는 최태경이나 김경제의 경우 타고난 야구 재능만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것을 상기한 대호는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시스템의 도움으로 이 자리에 있는 자신과 다르게 재능만으로 스무 살의 어린 친구들이 올림픽 대표 팀으로 선출되었으니, 그것만 봐도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역시나 대한민국에는 인재들이 많아!’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인구 5,100만의 인구를 가진 대한민국, 매년 많은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재들이 탄생한다.

인문, 스포츠, 과학 등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탄생하는 인재들로 인해 대한민국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었다.

“너희 얼굴을 보니 왠지 이번 올림픽도 기대가 되네.”

대호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모습에 어떻게 하면 올림픽에서 성적을 낼까, 그렇게 지금껏 했던 고민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뭐야! 인크레더블이 우리를 보고 기대가 된다고? 이거 정말로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 아냐?”

대호의 밝은 얼굴을 보며 최태경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떠들었다.

“뭐야 여기, 무슨 일 있어?”

소란스러운 막내들의 자리에 무슨 일이 있나 김대호가 찾아왔다.

그런 김대호의 모습에 최태경이 조금 전 있었던 대호의 말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그러자 김대호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조금 전 최태경이 한 말을 그대로 반복했다.

“메이저리그의 빅 타이거가 그렇다면 이번 올림픽에 메달을 기대해도 되겠군!”

인크레더블과 빅타이거, 다른 별명을 불렀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같았다.

그 때문인지 커다란 김대호의 목소리를 들은 선수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와아아아!”

4회차는 명전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