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92화 (92/209)

92화

2032시즌 전반기 95경기가 끝나고 오클랜드 슬랙스의 시즌 성적은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1위로 70승 25패를 거뒀다.

승률이 무려 73%가 넘는 엄청난 수치였다.

전반기가 끝나가는 7월에 들어서면서 몇몇 선수들이 피로가 누적되어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이기는 했지만,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 휴식을 취한다면 후반기 40인 로스터 확장 기간까지 어찌어찌 꾸려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조금 성적이 떨어지더라도 가을 야구는 거의 확정적으로 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73%라는 승률은 지금까지 오클랜드 슬랙스가 전반기에 올린 것 중 최고의 성적이었기에, 프런트는 물론이고 팬들 또한 안심하며 올스타 브레이크를 즐겼다.

한편,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을 어떻게 보낼지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던 대호는 뜻하지 않은 일 때문에 바빠지게 되었다.

자세히 말하자면, 올 시즌이 끝나고 결혼 계획을 잡은 대호는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 동안 한나의 가족들과 만나 자신을 소개하고, 결혼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호가 올스타에 뽑히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한나의 가족과는 저녁에 보기로 하였다.

* * *

찰칵! 찰칵!

올스타 브레이크에 참가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선수들 앞에 카메라를 든 기자들과 야구팬이 몰려와 선수들을 촬영하였다.

대호도 선수들 사이에서 사진 촬영을 하는 팬과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팬 서비스를 하였다.

“확실히 넌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군!”

오클랜드에서 대호와 함께 이번 시즌 올스타에 뽑힌 체프 벤이 대호의 귀에 대고 한마디 하였다.

처음 올스타에 뽑히는 대호였는데,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안한데 체프, 난 처음이 아니라고.’

당연히 그가 대호의 속에 수십 년을 묵은 베테랑이 있다는 것도 알 리 만무했다.

또한 대호는 현재 아메리칸리그 홈런 1위를 달리고 있었기에, 홈런더비에도 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파트너로 체프 벤이 공을 던져 주기로 약속했기에, 두 사람은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대화를 하였다.

“그런데 체프, 정말로 홈런더비에서 공을 던져 줘도 돼요?”

체프 벤은 전반기에만 100이닝을 넘게 던졌다.

팀의 2선발로써 상당한 이닝을 먹어 주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올스타에 뽑혀 출전하게 된 상황에서 홈런더비에서 대호에게 또다시 공을 던져 줘야 하니, 대호로서도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투수의 어깨는 공을 던질수록 소모된다는 것이 이미 정설로 굳어졌기에, 혹시라도 무리하면 팀의 후반기 마운드 운용에 무리 가는 게 아닐까 그런 의문도 들었고 말이다.

“하하하! 대호, 뭣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지 잘 알겠는데, 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컨디션 정도는 다 조절하고, 정말 힘들면 당연히 말하지. 내 선수 생명이 걸린 문젠데 말이야.”

체프 벤은 자신을 걱정하는 대호를 보며 그렇게 말하였다.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투수의 어깨는 쓰면 쓸수록 마모가 되는 소모품이란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올 시즌 전반기에 다른 해보다 많은 이닝을 소화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무리를 하면서까지 이닝을 소화한 것은 아니었다.

대호의 미친 활약 덕분에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승수를 쌓았음에도 투구 수는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옆에 있는 대호의 도움이 크다고 생각한 체프 벤은 대호가 올스타 브레이크에 홈런더비에 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일 먼저 대호에게 다가가 공을 던져 주겠다고 자원했다.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들은 대체로 홈런더비에 공을 던져 주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같은 팀이라고 하지만, 타자에게 홈런을 맞는 것은 꺼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체프 벤은 본인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대호의 일에는 먼저 나서서 도움을 주기로 한 것이다.

“빅 타이거! 사인 좀 해 주세요.”

“벤! 사인이요.”

포토 타임을 가지는 중에도 어린 팬들은 선수들에게 사인을 요구하였다.

성인 팬이라면 다른 일이 있을 경우 양해를 구하겠지만, 어린 야구팬에게는 절대로 거절을 하면 안 된다.

“좋아! 뭐라고 써 줄까?”

대호는 어린 팬의 사인 요구에 얼른 내미는 종이를 받아들고 어떻게 써 줄지 물었다.

“제 이름은 마이클이에요. 저도 빅 타이거처럼 메이저리거가 될 거에요. 그러니 응원해 주세요!”

이제 겨우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만한 어린아이가 자신도 나중에 메이저리거가 될 거라며 포부를 밝히자, 대호는 빙그레 미소를 짓고는 종이와 함께 야구공까지 건네주며 응원의 메시지를 적어 주 었다.

“그래, 마이클. 너도 나중에 나처럼 훌륭한 야구 선수가 되면 좋겠네!”

방금 전 사인을 받아간 어린아이가 커서 메이저리거가 될지, 아니면 그렇지 못할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사람이 되든 오늘 받아 간 사인 볼은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야구에 대한 관심을 나중에도 꾸준히 가져갈 테고.

“참! 대호 너 이번 홈런더비에서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한다며?”

체프 벤은 팬에게 사인을 해 주면서 대호에게 질문을 하였다.

“네. 홈런 하나당 100달러씩 오클랜드에 있는 푸드뱅크에 기부를 하기로 했어요.”

메이저리거가 하는 기부금이라기엔 100달러는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홈런더비에서 홈런 한 개당 100달러라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호가 시즌 중 20개 미만의 홈런을 치는 똑딱이형 선수도 아니고, 무려 메이저리그 양대 리그를 통틀어 전반기에 가장 많은 홈런을 친 선수이지 않은가?

전반기만 무려 48개의 홈런을 치면서 오클랜드 슬랙스의 팬뿐만 아니라 야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모든 야구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중이었다.

만약 현재의 흐름을 그대로 후반기에도 가져간다면, 어쩌면 2001년 게리 본즈가 세운 한 시즌 통산 홈런 73개란 기록을 30여년 만에 갈아 치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물론 게리 본즈의 73개의 기록이 불법 약물로 더렵혀진 기록이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한 시즌 최고 홈런인 건 맞았다.

그렇기에 약쟁이의 기록을 없앨 가능성이 있는 대호의 인기는 이제 오클랜드를 벗어나 미국, 그리고 대한민국까지 퍼져 있었다.

그렇기에 체프 벤은 대호의 홈런 기록 흐름이 올스타 브레이크로 깨지지 않게 도움을 주려고 나선 것이다.

* * *

“뉴욕 킹덤스의 3번 데이브 루이스, 열두 개의 홈런으로 홈런더비 1차를 마쳤습니다.”

장내 아나운서는 방금 전 홈런더비 1차를 끝낸 뉴욕 킹덤스의 데이브 루이스의 기록을 소개했다.

홈런더비 1차는 아웃 카운트 일곱 개를 먹을 때까지 홈런의 개수를 가지고 치러진다.

그렇기에 열두 개의 홈런을 친 데이브 루이스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만은 않았다.

최소한 열다섯 개는 쳐야 1차 예선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선수들이 그 미만으로 친다면 열두 개라는 기록으로도 통과할 수 있겠지만, 최근 타고투저 현상이 두드러지는 메이저리그다 보니, 홈런더비에서 열두 개라는 수치는 그리 안심할 수 있는 개수가 아니었다.

따악! 따아악!

뉴욕 킹덤스의 데이브 루이스 뒤에 올라온 보스턴 블루삭스의 타자 히데오 소이치로가 투수가 던져 주는 공을 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시도에서 장타가 나오긴 했지만, 펜스를 넘기지 못하고 아웃 카운트가 올라갔다.

그러나 두 번째 타구부터 펜스를 넘기는 홈런이 나오기 시작했다.

따악! 따아악!

히데오 소이치로는 타율이 좋고 장타도 많이 치는 타자이기는 하지만, 전형적인 홈런 타자는 아니었다.

즉, 그는 빠른 배트 스피드와 정확한 타격으로 홈런을 만들어 내는 타입이라 타구의 비거리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래서 홈런을 쳐도 펜스를 살짝 넘기는 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히데오 소이치로는 일곱 개의 아웃 카운트를 먹는 동안 열일곱 개의 홈런을 쳤다.

더그아웃 한 쪽에서 이를 지켜보던 대호는 눈을 반짝였다.

‘역시 타격이 정교해! 하지만 아직은 설익었어. 힘이 부족하네.’

라이벌의 홈런 레이스를 본 대호의 소감은 그게 전부였다

아직은 설익은 선수.

해가 갈수록 성적이 오르겠지만, 현 추세라면 히데오가 전성기에 오르기 전에 자신은 훨씬 더 높은 곳에서 그를 내려다 볼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생겼다.

‘오늘로써 너에 대한 생각을 접겠다.’

그동안 대호는 많은 부분에서 자신과 비교되는 히데오 소이치로에 대한 라이벌 의식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물론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4회차 회귀에 큰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히데오와 연관되는 것 자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팬들의 비교는 이번 회차에 더욱 심각해졌고, 대호도 알게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가장 많이 언급이 되던 때가 바로 작년 신인상을 놓쳤을 때고, 결국 대호가 올 시즌을 더욱 악착같이 준비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2032시즌 전반기만 마친 상태지만, 홈런 순위 1위에 오른 대호.

그제야 히데오에게 느끼던 감정, 은근히 신경 쓰이던 느낌을 모두 떨쳐 버릴 수 있었다.

사실 히데오 소이치로도 이번 전반기에 친 홈런의 개수가 적지 않았다.

스물두 개의 홈런을 쳐 일본에서는 홈런왕까진 아니더라도 홈런 타자라 부를 수 있는 마흔 개의 홈런은 칠 수 있지 않을까 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도 대호가 전반기에 40호 홈런을 친 뒤로 쏙 들어간 상태였다.

“빅 타이거! 준비해!”

슬슬 대호의 차례가 다가오자 체프 벤이 대호에게 말을 걸었다.

“보스턴의 애송이도 별것 아니군.”

그도 히데오 소이치로가 막 홈런 레이스를 끝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1차는 서른 개만 치죠.”

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자신의 1차 예선 목표를 이야기하였다.

그런 대호의 어처구니없는 포부에 체프 벤은 황당한 말을 들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뭐?”

홈런 레이스의 1차 예선 평균이 열다섯 개였다.

뉴욕 킹덤스의 데이브 루이스처럼 평균 이하를 치는 타자들도 많았는데, 지금 대호는 무려 그 두 배를 치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어?”

체프는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흐름을 보면 스무 개만 쳐도 1차 예선을 충분히 통과할 수 있을 듯했고, 동양에서 라이벌이라고 불리는 히데오를 넘기 위함이라는 목표 달성도 스무 개면 충분한데 무리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체프! 아까 제가 이야기했잖아요. 홈런 한 개당 100달러 기부라고. 그리고 열 개를 치면 보너스 500달러가 더해진다고요!”

라이벌의 타격을 본 뒤 심장이 뛰기 시작했지만, 대호는 이런 감정을 속이고 변명을 하였다.

자신이 홈런을 많이 치는 것은 단순하게 홈런을 많이 치는 게 아니라, 기부를 하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네가 그렇다면야…….”

체프 벤은 대호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대호를 돕기 위해 나왔으니 최대한 말을 들어주는 편이 좋기도 했다.

대호의 차례가 되고 타석에 들어서자, 마운드에 선 체프 벤이 적당한 구속으로 공을 던졌다.

구속은 80마일 후반 대에 코스는 스트라이크 존을 9분할했을 때, 1~3번에 해당하는 높은 위치였다.

구종은 포심 패스트볼, 대호라면 가볍게 홈런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손쉬운 공이었다.

따아아악!

“홈런!”

초구부터 홈런이 나왔다.

27°의 이상적인 홈런 각 안에 들어가는 깔끔한 타구였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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