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오클랜드 뉴슬랙스 볼파크에서 열린 오클랜드와 LA데블스, LA데블스와 오클랜드 슬랙스의 경기는 8:2, 오클랜드 슬랙스의 승리로 끝났다.
물론 오클랜드와 LA데블스의 경기는 아직 두 경기가 남아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라이벌 팀과의 홈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오클랜드 슬랙스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좋았고, 또 홈구장에서 이를 지켜본 오클랜드 슬랙스 팬들 역시 즐겁게 승리를 만끽했다.
그리고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오클랜드의 야구팬들만 아니라 이곳 뉴슬랙스 볼파크의 VIP룸에서 경기를 관람한 N―AGE멤버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와! 대호 오빠네 팀이 이겼어!”
N―AGE의 막내 미나는 볼이 빨갛게 상기되어 소리쳤다.
원래부터 야구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였던지라 사실 오늘 초청 이벤트도 그렇고 이벤트 후 경기 관람도 무척이나 기대가 많던 차였다.
“야! 너는 벌써 대호 씨에게 오빠라 부르냐?”
옆에서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던 은지는 대호 오빠란 말에 정신을 차리고는 미나에게 한소리 하였다.
“맞아. 미나 너, 말조심해.”
스피릿 엔터에서 이번 미국 스케줄에 대한 총책임을 맡고 있는 홍예지는 주변을 살피다 나지막하게 주의를 주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비단 과거의 말을 하는 것에 주의하라는 정도가 아니라 현재에도 통용되는 말이었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속한 연예계는 특히 더 잘 들어맞는 말이기도 했다.
무심코 한 말이 돌고 돌아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곳이 바로 연예계다.
아니, 부메랑 정도가 아니라 때로는 자신의 목을 베는 칼이 되어 날아오기도 한다.
그러니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말조심을 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나 정대호와 같이 국민적 관심을 가지고 있는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의 관계는 더욱 그러한데, 과거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이 엮인 불미스런 사고가 한두 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웃긴 것은 스캔들이 터지면 주로 피해를 보는 쪽이 주로 연예인이란 사실이었다.
스포츠 스타야 방송에 자주 나올 일도 없고, 본업만 잘한다면 저절로 소문이 잠잠해지는 건 물론이고 인지도가 올라가며 영웅시된다.
그에 반해 연예인들의 경우 안티가 생기는 건 물론이고, 스캔들이 터진 스포츠 스타가 성적이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역적 취급을 받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심지어는 그로 인한 악플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고 말이다.
그러니 홍예지 입장에선 소속사의 유일한 수입원이라 할 수 있는 N―AGE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할 수밖에 없었다.
‘어휴! 정대호와 미나가 스캔들이라도 난다면…….’
부르르!
머릿속으로 대호와 N―AGE의 막내인 미나의 스캔들 뉴스가 터지는 것을 상상한 순간을 떠올리던 홍예지는 순간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아무리 대호가 N―AGE의 멤버인 미호의 동생이라고 하지만, 막상 스캔들이 터지면 그 어떤 사람들도 가만히 놔두지 않으리라.
“그만 떠들고 이만 우리도 나가자!”
홍예지는 얼른 소란이 이는 것을 진정시키고 N―AGE멤버들을 이끌었다.
그때 미호가 홍예지에게 말했다.
“실장님! 전 저녁에 대호가 보자고 해서 함께 식사를 하지 못할 것 같아요.”
원칙적으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가족이기도 하고 점심 식사를 끝냈을 때 대호가 직접 홍예지에게 부탁한 것이기에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랬지? 알겠어. …혹시나 하는 얘긴데, 너무 늦게까지는 있지 말고.”
사실 다른 용건이라면 허락을 하지 않았겠지만, 스피릿 엔터의 은인과도 같은 정대호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주의할 점을 미리 얘기하는 건 잊지 않는 홍예지였다.
“물론이죠. 함께 저녁만 먹고 올 거예요.”
미호 역시 불필요한 말이 나오는 걸 경계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은지가 입을 열었다.
“언니, 저도 함께 가면 안 돼요?”
오늘 본 대호의 모습이나 야구팬들의 함성을 들은 그녀는 대호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 되어 한 번이라도 더 대호와 접점을 만들기 위해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은지의 물음에 미호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거절을 하였다.
“미안. 저녁 약속은 가족 간의 일이라 오늘은 안 되겠다.”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거절을 하는 미호의 말에 은지는 실망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은지의 실망한 표정을 옆에서 지켜본 미나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 * *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의 회장과 위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하고 회의를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이번 2032년 9월에 있을 올림픽 야구 대표 선발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야구팬들은 올림픽에서 나가기만 하면 무조건 메달을 딴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에서 인기 스포츠를 꼽으라면 무조건 포함되는 게 야구지만,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의 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으니까.
그리고 프로 리그를 가지고 있는 나라도 적었으며, 한국은 메이저리그에 많은 선수들을 보내기도 했으니 당연히 메달을 따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란 것이 팬들이 원한다고, 혹은 프로 리그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팬들은 그러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막무가내로 메달을 요구하기 마련이기에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고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디 좋은 의견 없습니까?”
KBSA회장인 이상협은 회의실 내를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 이상협 회장의 물음에 회의실에 모인 위원들은 하나같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위원들 모두 여러 구단과 이런저런 인연으로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먼저 자신이 생각하는 선수를 추천했다가 반격을 당해 올림픽 대표에 넣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자칫 협회 내 자신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가 있으니, 선뜻 말을 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는 것이다.
“위원님들께서 말을 못하신다면 일단 제가 먼저 이야기를 하죠.”
이상협 역시 위원들이 무엇 때문에 의견을 내지 못하는지 뻔히 알고 있었기에 이때다 싶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였다.
“베테랑과 신인 상관없이 최고로만 뽑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KBSA회장인 이상협은 지난 두 차례의 올림픽에서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한 전력이 있기에 이번만은 꼭 메달을 따 야구 협회가 그냥 놀고먹고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고 싶었다.
다른 스포츠 협회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성적을 내고 있는데, 야구 협회만은 생각만큼 성적을 내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이번만은 다르다는 것을… 아니, 자신이 KBSA회장이 된 이후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야구 위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올림픽 메달도 중요하지만,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자신들의 협회 내 영향력이었다.
그렇기에 최고의 실력을 가진 선수를 대표로 선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자신들과 연관된 국내 프로구단에 어떻게 하면 좋은 영향을 주어 이득을 챙길까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 의견도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라도 좋지 않겠습니까?”
이상협 협회장이 안건을 내자 바로 이에 대한 반박이 들어왔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였을 뿐이었다.
대안을 내거나 보완점을 말해야 정상적인 의견을 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밸런스도 중요하고, 국민적 기대감 충족도 중요합니다. 그러니 한 명씩 추천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끝이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이상협은 적당히 타협점을 찾아 선수 구성을 하기 위해 위원들 한 명, 한 명 돌아보며 선수 추천을 해 줄 것을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위원들 하나둘 선수를 추천했다.
사실 이런 것도 오랜 정치질을 하면서 쌓은 노하우였기에 이상협 협회장도, 그리고 위원들도 두루뭉술 넘어갔다.
몇 차례 선수 추천이 있고, 또 그에 대한 반박도 하면서 회의가 진행되던 중, 이상협 협회장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선수 몇 명의 이름이 나오지 않자 표정을 굳히며 언급을 하였다.
“그런데 왜 최서원 선수하고 정대호 선수는 아무도 추천을 하지 않는 것입니까?”
이상협 회장이 언급한 최서원은 메이저리그 구단인 LA다윈스에서 4선발로 뛰고 있는 투수였으며 올해 성적은 2승 3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사실 2승 3패라는 승수만 놓고 보면 그리 좋은 성적이 아니었지만, 세부 지표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았다.
평균자책점(ERA)이 2.32로 4선발치고는 무척이나 좋았다.
또 7경기를 가지면서 40이닝을 소화하였는데, 이는 선발투수가 가져야 할 기본 덕목인 이닝 소화 능력이 매우 뛰어남을 가리켰다.
최소한 퀄리티 스타트, 또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 역시 심심치 않게 기록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언급한 정대호의 경우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현재 2032시즌을 치르고 있는 메이저리거 중 대호만큼 핫한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었다.
시즌을 시작하고 이제 겨우 40경기가 치러진 상황.
그런데 정대호의 타격 지표는 인크레더블이라는 그 별명만큼이나 어마어마했다.
홈런 18개에 현재 타율은 5할을 기록하고 있었으며, 장타율을 비롯한 세이버 매트리스 상의 수치도 메이저리그에서 탑을 차지하고 있는 타자였다.
또한 수비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는데, 작년 2031시즌 후반기에 메이저리그로 콜업 된 이후 지금까지 110경기에서 단 한차례의 에러도 기록하지 않았으며, 수비율에서 중요한 요소인 어시스트(보살)의 경우 무려 78개를 기록하며 경기당 0.7개 꼴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한마디로 공수 양면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는 선수인데, 이상협은 야구 위원이라는 사람들이 정대호를 추천하고 있지 않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아! 물론 그들도 추천하려고 했습니다. 다만 국내 선수가 우선이다 보니 잠시 뒤로 미뤄 둔 것뿐입니다.”
이상협 협회장이 화난 표정을 짓자, 위원들은 얼른 머리를 숙이며 대답하였다.
“그런 선수들을 뒤로 미루기 보단, 확실히 뽑을 만한 선수부터 미리 선정해 놓아야 빈자리에 선수를 채우기 편하지 않겠습니까?”
양보를 하는 위원들을 보며 이상협은 더욱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밀어붙였다.
그런 협회장의 모습에 위원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방금 협회장의 선수 언급으로 인해 대표 팀 자리에 두 자리나 메워졌다.
이제 남은 것은 고작 스물세 자리.
그러니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누굴 추천해야 하지!’
국내 각 구단별로 어느 정도 선수를 공평하게 차출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 구단들의 불만도 막을 수 있고, 팬들의 성화도 버틸 수 있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기만 하면 대한민국 남성들, 특히 스포츠 스타들이 민감한 병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반대로 올림픽 종료 후 순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만큼 조심할 필요성이 있었다.
게다가 자신들에게 떨어질 떡고물에도 신경 써야 했고 말이다.
“일단 회장님께서 언급한 최서원 선수와 정대호 선수는 대표 팀에 차출하는 것으로 하고,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소속 구단에 통보를 하기로 합시다.”
국내 구단과 다르게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에 속한 선수들을 차출하기 위해선 참으로 까다로운 협상을 해야 하기에 미리 대표 팀 차출에 대해 조율해야만 했다.
특히나 이제 겨우 프로 2년차에 들어가는 정대호를 생각하면 소속 구단인 오클랜드 슬랙스가 어떤 조건을 걸지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현재 오클랜드는 메이저리그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만큼 협상이 난항을 겪을 건 분명해 보였다.
* * *
오클랜드 슬랙스의 단장인 조엘 헌트는 대한민국 야구소프트볼협회에서 걸려 온 전화에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금방 정신을 차렸다.
‘아! 올해가 올림픽이 치러지는 해였군.’
메이저리그 구단을 운용하다 보니 모든 정신이 구단 운용에 치우쳐 있었다.
“그러니까 저희 소속인 정대호 선수를 한국 대표 팀에 차출하고 싶으시다는 말씀이죠?”
재능에 반해 구단 사상 최고 계약금으로 데려온 해외 유망주 정대호.
사실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활용하기 위해 최소 2년은 기다려야 할 거라고 생각한 조엘 헌트와 프런트였다.
그러나 그 예상을 깨고 첫 해에 곧바로 메이저리그 승격은 물론이고, 가을 야구에 진출하는데도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올해는 지구 선두를 달리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고 말이다.
물론 대호 혼자서 만든 결과는 아니었지만, 중심에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불안정한 외야 수비의 보강, 타격에서의 도움 등등.
조엘이 생각하기에도 이런 선수를 데려가지 않는다는 건 직무유기죄로 보였다.
‘현재 2위 텍사스 레이스와… 음! 5게임차군.’
통화를 하며 서부지구 2위인 텍사스 레이스와의 경기차를 계산한 조엘은 올림픽 기간 동안 대호를 한국 대표로 보내도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야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한국인 특유의 애국심과 병역 문제 해결을 생각하면 지금 보내 주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란 판단을 내릴 수 있던 것이다.
또한 억지로 거부해 봤자 정대호와의 향후 관계에 악영향을 줄 것도 당연한 일이었고.
“좋습니다. 다만 부상당하지 않게 무리한 출전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단장인 조엘은 KBSA의 우려와는 다르게 흔쾌히 올림픽 대표에 대호를 보내 주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