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89화 (89/209)

89화

경기 전 행사가 모두 끝나고 N―AGE 멤버들은 게리 뮬러의 안내를 받아 뉴슬랙스 볼파크 VIP룸으로 이동해 경기를 관람했다.

따아아악!

“뭐야!”

막 VIP 관람석에 들어서던 정은지는 느닷없이 들려오는 커다란 타격음에 놀라 소리쳤다.

“와아아아!”

커다란 타격음이 터지고 곧이어 관중들의 환호성이 크게 울리자, VIP 관람석으로 들어오던 사람들은 누구 할 것 없이 급히 전면 창으로 뛰어가 그라운드를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홀로 움직이는 사람을 보았다.

* * *

특별 이벤트가 끝나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라이벌과의 경기는 언제나 대호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어떤 공을 줄 거지?’

선공인 LA데블스의 1회 초 공격은 오클랜드의 2선발인 체프 벤의 맞춰 잡는 투구로 순식간에 끝나 버렸다.

그리고 타석에는 오클랜드의 1번 타자 자리에 닻을 내린 대호가 들어섰다.

LA데블스의 선발은 개막전에서 대호에게 예고 홈런을 맞은 전력이 있는 프랭크 타이라.

LA데블스의 에이스인 프랭크 타이라는 오늘 다시 만난 대호를 보며 눈을 차갑게 빛냈다.

그야말로 개막전의 복수를 할 절호의 찬스가 찾아온 것이다.

‘이번엔……!’

프랭크 타이라는 자신의 주무기인 98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휘익!

1회에 첫 타자, 하지만 지난번에 굴욕을 맛본 적 있는 프랭크는 전력을 다했다.

‘잘 들어갔다!’

프랭크 타이라는 손맛을 느꼈다.

공이 손끝에서 던져지는 감각, 최근 들어 가장 잘 들어갔다고 느낀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따아아악!

그러나 대호가 패스트볼의 구위에 눌릴 거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대호는 고작 메이저리그 콜업 2년차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화끈한 타격으로 이름 높은 타자들 중 한 명이었다.

개막 이후 40여 일이 지난 지금, 대호는 무려 열여덟 개의 홈런을 친 상태였는데, 지금 또 하나를 적립했다.

“빅 타이거! 믿고 있었다고!”

공수 교대가 되자마자 초구를 그대로 받아 쳐 홈런을 만들자, 오클랜드 슬랙스 팬들은 계속해서 대호의 이름을 연호했다.

대형 홈런.

얼마나 잘 맞은 타구인지 125m를 넘는 비거리를 기록했고, 펜스를 넘어 뉴슬랙스 볼파크 2층 관람석까지 가서야 떨어지는 대형 홈런이었다.

웃으며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드는 대호를 보며 프랭크 타이라는 마치 죽일 것처럼 차갑게 노려보았다.

‘제길!’

상대가 그러거나 말거나, 대호는 홈으로 들어왔다.

짝짝짝!

다음 타석으로 들어오기 위해 대기를 하고 있던 2번 타자 지미 울프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자 또다시 팀 동료들의 축하를 받았다.

“으하하! 대호, 이러다 6월이 되기도 전에 20홈런을 치는 것 아냐?”

배트를 들고 대기 타석으로 나서던 3번 타자 리키 헨슨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물었다.

“당연한 것 아니에요?”

“뭐? 당연? 이 녀석 이거…….”

“오늘 느낌이 좋아요. 20홈런을 치는 게 오늘일 것 같은데요.”

대호는 과장된 표현을 하고 있는 리키 헨슨을 보며 별것 아니란 투로 대답을 하였다.

리키 헨슨은 대체 어디서 대호의 자신감이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긴. 저 정도는 되어야 마이크 감독의 원래 구상도 뒤엎을 수 있는 거겠지.’

전통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1번 타자가 맡는 역할은 투수의 성향 파악과 투구 수 소모였다.

그러나 21세기가 지나며 리드오프에게 요구하는 것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강한 1번, 그리고 강한 2번.

단순히 공을 소모시키는 것이 아니라, 클린업 트리오에게 득점의 발판을 만들어 주는 게 1번의 역할이라는 이론이 대두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동안 오클랜드에서는 전통적인 1번의 역할을 수행하곤 했다.

그러나 작년에 대호의 실력을 본 이후, 마이크 감독은 대세를 따라 강한 1번을 추구하게 되었다.

따악!

두 사람이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타석에 들어간 2번 타자 지미 울프가 3B 2S 상황에서 스윙을 가져갔다.

잘 맞은 타구는 2루수의 글러브를 통과해 우익수 앞 안타를 기록했고 주자는 1루에 진루하였다.

대호의 홈런에 이은 연속 안타.

그러나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것일까?

연속으로 안타를 얻어맞았음에도 LA데블스의 선발 프랭크는 자신이 팀의 에이스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했다.

“스트라이크!”

이어지는 오클랜드의 3번 타자 리키 헨슨을 비롯해 주장이자 4번 타자인 홈런 브레드를 각각 삼구 삼진과 내야 플라이로 잡아 낸 것이다.

‘…역시 홈런 한 방으로는 흔들리지 않네.’

프랭크 타이라의 투구를 지켜보던 대호는 홈런 한 방으로는 메이저리그 1선발을 흔들기 부족함을 느꼈다.

‘뭐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 치면 되지.’

자신감 넘치는 생각이었고, 누군가 이걸 알아챘다면 건방지다고 할 만했지만 대호에게는 그저 가능한 수준의 일일 뿐이었다.

“아웃!”

잠시 후 5번 타자도 아웃되면서 오클랜드의 1회 말 공격은 대호의 솔로 홈런과 잔루 1루를 남기고 교대되었다.

* * *

오클랜드 슬랙스와 LA데블스의 경기는 1회 말 대호가 친 솔로 홈런으로 뽑은 점수로 인해 1:0 상황에서 팽팽한 투수전으로 바뀌었다.

1회 말 첫 타석에서 솔로 홈런을 친 대호는 3회 말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섰지만, 3B 1S 상황에서 친 타구가 유격수 라인드라이브로 잡히면서 아웃되었다.

그리고 6회 말, 세 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탁탁!

타석에 들어선 대호는 자신의 타격 루틴대로 배트로 홈 플레이트를 가볍게 터치를 하고 오른쪽 어깨 쪽으로 들어 올리며 준비했다.

힐끗.

그런 대호의 타격 폼을 쳐다본 LA데블스 포수는 투수를 향해 신중하게 사인을 보냈다.

비록 두 번째 타석에서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긴 했지만, 유격수의 호수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지미 프레드는 굳은 표정으로 더그아웃에서 보내 온 사인을 그대로 프랭크에게 전달하였다.

‘신중하게 던져!’

경기 시작 후 홈런을 얻어맞은 첫 공을 빼고는 지금까지 잘 던졌다.

하지만 왠지 이번 타석에선 불안함이 느껴져 최대한 어려운 공을 던지기로 하며 사인을 보냈다.

하지만 그런 지미 프레드의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두 번째 타석에서 대호를 잡은 것에 흥분한 것인지, 프랭크 타이라는 아웃코스로 빼라는 포수의 사인과 반대로 몸 쪽 인코스 낮은 패스트볼을 던졌다.

‘안 돼!’

지금 들어오고 있는 볼은 경기 초반 대호에게 솔로 홈런을 맞았던 코스와 일치했다.

다만 6회가 흐르는 동안 몸이 풀린 것인지, 처음보다 더 잘 제구가 되어 들어왔다.

하지만 몸이 풀린 것은 투수인 프랭크만이 아니었다.

따아아악!

웬만한 타자라면 치기 어려운 몸 쪽 꽉 찬 포심 패스트볼이었지만, 대호는 몸에 바짝 붙어오는 공을 앞에 놓인 왼쪽 발을 살짝 오픈함으로써 공간을 확보하며 공을 배트 중심으로 가져와 타격하였다.

대호가 휘두른 배트의 히팅 포인트에 정확하게 맞은 포심 패스트볼은 너무도 정확하게 맞다 보니 아무런 반발도 느껴지지 않고 33°의 이상적인 홈런각을 이루며 공간을 갈랐다.

‘헉!’

대호가 배트를 휘두르는 순간, 지미 프레드는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그리고 타격음을 듣자마자 자신의 불안함이 현실화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젠장!’

“홈런!”

귓가에 심판의 홈런 콜이 들렸다.

콜이 들리고 마운드에 서 있던 선발 프랭크 타이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클랜드의 신성 대호에게 1회 말 초구 홈런을 얻어맞은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실책을 보이지 않고 완벽하게 오클랜드 타선을 막아 오던 프랭크였다.

하지만 같은 타자에게 작심하고 던진 포심 패스트볼이 두 번 다 홈런을 맞다 보니, 정신이 나가 버렸음을 느꼈다.

“타임!”

투수의 상태를 깨달은 지미 프레드는 얼른 심판에게 타임을 요청하고는 마운드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더그아웃에서도 투수 코치가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솔로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돌아 홈으로 들어온 대호는 고개를 돌려 마운드를 돌아보았다.

‘결국 바꾸는군.’

1회 말 초구 홈런 말고는 6회 말 원아웃까지 잘 던졌던 LA데블스 선발 프랭크 타이라는 대호에게 또다시 솔로 홈런을 맞고 정신 줄을 놓아 버렸다.

야구란 참으로 재미있는 스포츠다.

이렇게 잘 던지던 투수가 어느 순간 어떤 이유로 무너져 버리고, 또 어떤 투수는 이런 것을 극복하고 더욱 불타올라 9회까지 던지기도 한다.

다만 프랭크 타이라는 극복하는 타입의 투수는 아니었다.

그것을 보면서 대호는 프랭크 타이라가 비록 LA데블스에서 에이스라 불리긴 하지만, 진정한 메이저리그의 에이스 축에 속하는 투수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진정한 에이스라면 이런 위기도 금방 극복해 낼 수 있어야 하는데… 프랭크는 그 정도는 안 되네.’

겨우 솔로 홈런 두 방에 멘탈이 무너질 정도라면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지미! 데블스의 투수가 바뀌었어. 알았지!”

대호는 더그아웃 자신의 자리로 들어가기 전 LA데블스의 투수가 바뀌는 것을 지켜보면서 타석에 들어설 지미 울프에게 큰 소리로 응원을 하였다.

“우와아!”

느닷없는 대호의 외침에 지미 울프는 물론이고 더그아웃 뒤쪽에 있던 오클랜드 팬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그동안 잘 던지던 라이벌 구단의 에이스로 인해 꽉 막혔던 타선이 바뀐 투수를 상대로 잘 풀리기를 기원하는 함성이었다.

탁탁!

대호의 응원에 타석 밖에서 대기하던 지미 울프는 마치 자신의 각오를 보라는 듯 배트로 자신의 헬멧을 두드렸다.

그리고 연습 투구가 끝난 투수를 상대로 타석에 들어서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따아악!

야구의 속설 중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리라는 말이다.

이제 막 올라온 구원투수와는 달리, 타자들의 몸은 완전히 풀려 있는 상태인 만큼 승부에서 이길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지미 울프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코스로 공이 날아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받아쳤다.

“우와아!”

“오클랜드 슬랙스 2번 타자 지미 울프, 정대호 선수의 솔로 홈런에 이어 백 투 백 홈런을 쳐 냅니다!”

이로써 오클랜드와 LA데블스의 스코어는 3:0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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