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4:13.
오클랜드 슬랙스와 LA데블스의 경기 스코어였다.
1회 초, 2점이나 어이없는 플레이로 점수를 내주었지만, 공수 교대를 하고 바로 1회 말에 만루 홈런을 포함해 이어진 안타 세례로 6점을 데블스에게 뺏어 내며 역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클랜드의 공격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2회에는 삼자범퇴로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지만, 3회 들어 다시 한번 터진 화력에 힘입어 3점을 뽑아내고, 5회와 7회, 8회 말에 각각 2점, 3점, 2점.
이렇게 7점을 더 뽑아내며 승기를 굳혔다.
그에 반해 LA데블스의 경우, 오클랜드의 롱 릴리프 캣 피셔가 물러나기 전까지 단 한 점도 내지 못하다 투수가 바뀌고 나서야 6회에 1점, 그리고 8회에 1점을 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9회 초.
데블스의 마지막 공격이었지만 현재 2아웃으로 경기 종료까지 아웃 카운트 하나만이 남은 상태였다.
따악!
잘 맞은 타구가 외야 우익수 방면으로 날아갔다.
다다다다!
타구는 우측 폴대가 있는 깊은 곳까지 나아가고 있어, 타구를 친 타자도 자신이 친 공이 홈런이 되는 건 아닌지 잠시 지켜볼 정도였다.
데블스의 더그아웃도 이대로 경기가 끝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 상태에서 타자가 홈런성 타구를 치자 일제히 난간에 매달려 타구를 지켜보았다.
“우우!”
라이벌 팀의 타자가 친 홈런성 타구 때문인지,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은 오클랜드 홈팬들 중 일부는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우익수를 보고 있는 대호가 타구를 쫓아 달리자 야유는 조금씩 변해 갔다.
“어… 어어어!”
야유에서 뭔가 기대가 섞인 탄성으로 바뀌던 중 큰 환호성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와아아아!”
파앗!
“아웃!”
홈런이 유력시되던 타구는 펜스를 밟고 뛰어 오른 대호의 글러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펑! 퍼엉!
홈런성 타구가 대호가 뻗은 글러브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뉴슬랙스 볼파크의 전광판 상단에서 축포가 터졌다.
이 축포는 홈팀인 오클랜드 슬랙스 소속 타자가 홈런을 쳤을 때나, 혹은 홈팬을 흥분시킬 정도로 슈퍼 플레이를 펼쳤을 때 터지는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그런 축포가 지금 경기 종료를 알리는 알람처럼 장식하고 있었다.
“경기 종료!”
동시에 심판의 게임 종료 선언이 울렸다.
심판의 게임 종료에 뉴슬랙스 볼파크는 한 순간에 축제의 장이 되어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LA데블스는 오클랜드 슬랙스와 지역 감정이 있는 건 물론이고, 오클랜드가 지구 우승을 하는데 많은 고춧가루를 뿌리던 저주받을 악연이 있는 라이벌 구단이다.
더욱이 2031시즌 들어 LA데블스로 인해 순위도 서부 지구 4위로 밀리고 있기에, 오늘의 승리는 그저 승수를 하나 쌓는 것보다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 * *
경기가 끝나고 로커 룸으로 들어온 선수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왁자지껄 떠들었다.
그중 가장 큰 목소리로 떠드는 이는 오늘 선발이었던 프랭클린이다.
1회 초 겨우 1아웃을 잡고 부상 때문에 곧바로 내려온 뒤 팀의 고의 사구 작전까지 실패해 점수를 내주게 되었다.
그 악몽의 시작이 자신의 손가락 부상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조용히 구석에 처박혀 있어야 했을 수도 있는데, 수비수 교체라는 카드 사용 이후 완전히 달라져 승리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분위기를 더욱 만끽하고 있던 것이었다.
사실 프랭클린은 팀 타자들의 활약을 지켜보면서 후회가 들기도 했다.
자신이 팀 타자들을 믿지 못해 데블스 타자와 빠르게 승부를 벌이려다 부상으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만약 차분하게 승부를 했다면, 손톱이 들리는 부상도 입지 않았을 것이고 또 오랜만에 승리를 쟁취할 수도 있었을 터.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그렇지만 프랭클린은 그저 기뻤다.
자신 이후 안정적으로 마운드를 지킨 캣 피셔와 불펜진에게 감사하고, 또 오랜만에 타격력을 폭발시켜 승리를 안겨 준 타자들에게도 감사했다.
비록 오늘 승은 챙기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라이벌인 데블스를 이긴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이런 프랭클린과 다르게 조금은 위축된 사람도 있었다.
바로 두 번의 본 헤드 플레이를 하고 데블스에게 2점을 헌납한 살라였다.
그는 팀의 대승으로 축제 분위기인 로커와는 다르게 온전히 승리를 기뻐하지 못했다.
분명 만루 홈런을 때렸을 때까지만 해도 사심 없이 축하해 주었는데, 이닝이 지날수록 그의 얼굴은 딱딱해져 갔다.
‘정대호… 분명 주 포지션은 중견수라고 했지. 하지만 오늘 우익수를 본 걸 생각하면 외야는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게 맞아.’
물에서 빠진 사람을 구해 줄 때와 나왔을 때가 다르다고, 살라는 어느새 대호를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경쟁자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만루 홈런 뿐 아니라 오늘 4타수 3안타에 2루타 두 개를 쳤으니 공격력은 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나마 아웃된 하나도 데블스 유격수가 호수비를 하며 막힌 것이니 운이 좋았다면 4타수 4안타가 될 뻔했다.
더군다나 수비 또한 멍청한 실수를 한 자신과는 다르게 마지막 슈퍼 플레이를 포함해서 엄청난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까 주전으로서 활동하기도 충분했다.
메이저리그 데뷔 무대에서 이런 활약을 보인 뉴비는 솔직히 찾아보기 힘들었다.
가끔 이런 선수가 나오지만, 그들은 대부분 메이저리그의 스타가 되었고, 또 명예의 전당까지 입성하는 것도 당연시되었다.
즉, 정대호 역시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살라는 자꾸만 자신감이 떨어지고 다음 경기에서 자신이 주전으로 경기에 나갈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오늘 모두 수고 많았다.”
선수들이 웃으면서 떠들고 있을 때, 마이크 케세이 감독이 들어왔다.
감독이 들어와 이야기를 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들 조용해졌다.
“다들 봤나?”
“……?”
감독의 뜬금없는 말에 모두 의아한 표정이 되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데블스 감독의 얼굴 말이다.”
“아!”
마이크 감독의 말에 그제야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닫고 탄성을 질렀다.
“으하하하! 경기 끝나고 보니 악마라도 본 것처럼 질려 있더군.”
뭐가 그리 좋은지 마이크 감독은 한바탕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배를 붙잡았다.
“감독님도 보셨습니까? 저도 봤는데, 참 볼만했습니다.”
조용히 감독의 말을 경청하던 주장이 한마디 했다.
“하하, 자네도 봤다고? 그 하얗게 질린 모습을?”
“물론이죠. 그런데 그 악마놈들의 두목이 자기 동료를 봐서 질렸겠습니까? 여기 악마들도 어쩌지 못한 우리 인크레더블한 새끼 고양이를 보고 질린 거겠죠.”
주장인 홈런 브레드는 대호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소리쳤다.
“오오! 인크레더블한 새끼 고양이!”
원래 대호를 ‘빅 타이거’라고 팬들이 불렀는데, 이제 막 콜업 된 뉴비인 대호를 호랑이 대신 고양이에 비유한 것이었다.
또한 이는 라이벌인 LA데블스를 놀리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제 갓 메이저로 올라온 뉴비를 막지 못해 무너진 데블스 마운드와 타자들을 조롱하는 것이며, 그동안 그런 데블스에 맥을 못 쓰고 순위가 밀린 자신을 반성하는 의미를 담았다.
한바탕 웃음소리가 로커를 울리고 어느 정도 진정되자, 마이크 감독의 연설이 다시 이어졌다.
“기분 같아서는 오늘 저녁에는 파티를 하고 싶지만, 내일도 악마들과 경기가 있으니 적당히 맥주 한 병 정도만 허용하기로 하지.”
경기 중에 좀처럼 술을 허용하지 않는 마이크 케세이 감독이 오늘은 어쩐 일인지 맥주 한 병을 허용하겠다는 이야기를 하자, 선수들은 물론이고 감독의 뒤에 서 있던 코치들까지 깜짝 놀랐다.
“아니 감독님, 그게 정말입니까?”
“설마…….”
너무나도 뜻밖의 상황에 선수는 물론이고 코치들까지 놀라서 반문했다.
“설마는 무슨. 후반기 첫 경기에서 마이너에서 콜업 된 대호가 바로 적응한 것 같아 이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허용하겠다는데, 싫어?”
“아닙니다.”
“와우!”
명분도 충분하지 더 이상 물어볼 필요는 없을 듯했다.
선수들은 좀처럼 없는 일이기에 기뻐하며 일제히 환호했다.
물론 이 자리에 있는 선수들이 맥주 한 병을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은 아니다.
내일 당장 경기가 있기 때문에 경기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마시지도 않을 것이고.
수석 코치 그렉 헥슬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공식적으로 감독님이 맥주 한 병을 허락했다는 게 중요한 거지.’
몰래 홀짝거리는 것과 공식적으로 허용되어 마시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으니까.
그때였다.
“맛도 없는 맥주 말고, 우리 인크레더블의 성공적인 데뷔 축하를 위해 내가 돔 페리뇽 열 병 내놓지.”
언제 왔는지 로커 룸 입구에는 오클랜드의 단장인 조엘이 와 있었다.
수행원으로 비서와 수석 스카우터까지 대동하고 말이다.
“조에… 아니, 단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반갑게 이름을 부르려다가 선수들 앞이란 걸 인지한 마이크 감독이 존칭을 쓰며 물었다.
“무슨 일? 하하하! 내가 오늘 경기를 누구랑 봤는지 아나? 구단주님과 함께였어!”
“구단주님?”
조엘은 VIP 라운지에서 구단주와 함께 오늘 경기를 지켜보았다.
처음 계약할 때만 해도 너무 큰 거금을 쏟았다며 질책하던 구단주도 이제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심지어 조엘 자신에게 사과를 하기까지 했으니, 대호의 존재가 얼마나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는지 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살짝 놀란 눈길로 조엘을 바라보던 마이크 감독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말했다.
“그래도… 돔 페리뇽 열 병은 조금 과한 게 아닐까요? 아직 3연전이 끝난 것도 아닌데…….”
“하하, 전혀 아닐세.”
살짝 눈치를 보고 있던 주장이 끼어들었다.
“그렇죠! 역시 축하 파티에는 샴페인이죠. 단장님이 뭘 좀 아시네요, 흐흐.”
적절한 어시스트로 인해 샴페인 파티가 기정사실화 되었다.
“우와아아!”
선수들 역시 환호했고 말이다.
“힐튼 가든에 축하 자리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조엘의 비서 크리스가 장소까지 말하자, 마이크 감독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참! 그리고 이건 미스터 정의 메이저리그 첫 홈런 볼입니다.”
크리스는 언제 챙겼는지 대호가 첫 타석에서 쳤던 만루 홈런 볼을 찾아 가져왔다.
사실 대호의 홈런 볼을 주웠던 팬은 처음에는 이 공을 주지 않으려 했다.
가지고 있으면 가격이 오를 것이란 예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호가 메이저리그 콜업 데뷔 이후 친 첫 홈런 볼이라고 설명을 하며 양해를 구한 뒤, 대호의 유니폼이 만들어지면 가장 먼저 사인과 함께 챙겨 주겠다고 약속하자 넘겨받을 수 있었다.
물론 이 또한 팬이라면 양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지, 유명 선수의 홈런 볼을 재테크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수집가였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