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우와아아아!”
실망했던 것도 잠시, 첫 공격이 다가오자 팬들의 함성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1회 초 위기를 2점으로 막아 내고 공수 교대를 한 오클랜드는 신중하게 경기를 풀어 나가기로 결정했다.
오클랜드의 선두 타자는 유격수 포지션을 맡고 있는 지미 울프.
타율 0.312에 출루율 0.640으로 오클랜드 내 가장 출루율이 높은 선수다.
딱!
지미는 1번 타자이면서도 공을 많이 보지 않고 스트라이크 존 안쪽에 들어왔다는 판단을 내리자 곧바로 배트를 휘둘러 안타를 만들었다.
“와아아아!”
첫 타자부터 화끈한 공격을 펼치자 경기장은 더욱 환호가 넘실거렸다.
펑!
“볼!”
2번 타자 리키 헨슨은 1번 타자인 지미 울프와 함께 키스톤 콤비를 이루는 2루수로, 주루 센스와 작전 능력이 뛰어난 자원이었다.
그러다 보니 바깥쪽으로 흘러 나가는 슬라이드를 잘 구별해 내며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갔다.
한편 대호는 1회 초 2아웃 상황에서 연속해서 본 헤드 플레이를 벌인 살라 반도스와 교체되었기에, 그의 타순인 5번에 들어가게 된 상황이었다.
즉, 그 말은 2번 타자인 리키 헨슨이 출루한다면 중간에 더블 플레이가 나오지 않는 이상 타석에 들어설 수 있다는 뜻과 같았다.
‘흐음. LA데블스 선발이 4선발이라 그런지 제구가 그리 좋진 않네.’
대호가 보기에는 그러했다.
데블스의 선발 패트릭 슐츠의 컨디션이 좋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제구가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공이 조금 가벼운 듯한 느낌을 받았다.
타다다다!
막 패트릭 슐츠가 투구를 하려고 할 때, 1루에 있던 지미가 도루를 시도했다.
“런!”
지미가 도루를 하자 투수의 뒤에 있던 2루수가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이미 투구 동작에 들어간 이상, 패트릭 슐츠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팡!
부웅!
타석에 있던 리키 헨슨은 도루를 하는 지미를 돕기 위해 천천히 헛스윙을 하였다.
“스트라이크!”
아래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잡기 위해 몸을 낮춘 포수.
가뜩이나 어려운 코스로 공이 날아오는 상황이었는데, 스윙하는 배트 때문에 시야가 가리자. 포수는 송구 타이밍을 잃고 말았다.
“세이프!”
지미의 도루 성공으로 오클랜드는 노아웃 2루로 득점 찬스를 맞게 되었다.
따악!
2루에 있는 지미가 또다시 3루로 도루 시도를 하려는 모션을 취하자, 투수는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실투하고 말았다.
이에 리키 헨슨은 힘을 빼고 가운데로 날아오는 패스트볼에 부드럽게 스윙을 했다.
배트의 중심, 히팅 포인트에 맞은데다가 타구의 질도 매우 좋아 2루타를 기록했고, 지미는 여유롭게 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1회 초 점수를 내주긴 했지만, 오클랜드 타선도 LA데블스 4선발을 상대로 점수를 가져가자 뉴슬랙스 볼파크에 운집한 오클랜드 팬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반면, 1회 말에 연속해서 안타를 맞고 점수를 내주자 패트릭 슐츠는 흔들렸다.
그는 제구가 좋지 못하다 보니 종종 방금 전처럼 실투를 하는데, 오늘은 다른 때보다 그 실투가 일찍 나와 당황한 것이 더그아웃에서도 보였다.
“Walk!”
안타를 맞은 때문에 신경이 쓰였던 나머지 어깨에 힘이 들어가다 보니 이번에는 좋지 못한 제구력으로 인해 볼넷이 나왔다.
그러다 보니 분위기는 LA데블스에서 다시 오클랜드 슬랙스로 넘어왔다.
“좋아!”
“그렇게만 하면 내가 경기 끝나고 맥주 한잔 돌린다!”
관중석에서 오클랜드 팬 중 한 명이 패트릭에게 경기 후 맥주를 사 주겠다고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와하하하!”
그 때문인지 장내는 한 순간 웃음소리로 가득해졌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패트릭은 화가 나 얼굴이 붉어졌다.
분명 자신을 놀리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고, 또 고함을 지른 그 야구팬이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관중석에서 팬의 조롱을 들은 패트릭은 조금 전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어깨에 힘을 빼고 투구를 하였다.
팡!
“스트라이크!”
조금 공이 가운데로 몰리긴 했지만, 이번에는 집중을 하였기에 타자의 타이밍을 뺏고 스트라이크를 만들 수 있었다.
한편, LA데블스 포수도 더그아웃에서 내리는 사인을 바로바로 투수에게 보내고, 수비수들에게도 사인을 보내 수비 시프트를 걸었다.
이렇게 수비 시프트 사인을 보내는 것은 오클랜드의 4번 타자 맥 마이크가 한 방이 있는 거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맥 마이크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코스 낮은 커브에 약하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삼진을 당하기 일쑤였고, 어찌어찌 배트에 맞힌다고 해도 70% 이상이 3유간으로 향했다.
그렇기에 이런 약점을 이용하기 위해 시프트를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맥 마이크 또한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팡!
“볼!”
인코스 낮은 볼이 날아왔는데, 스윙을 가져가던 맥은 그 볼이 자신이 쳐 봐야 좋은 코스로 날아가지 않을 것을 알고 힘겹게 배트를 멈췄다.
그러다 보니 운이 좋게도 볼이 되었다.
‘지금은 1점이 중요해! 이 코스로 오는 공은 버린다.’
현재 그라운드의 1, 2루에 동료들이 진루해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약점으로 날아오는 볼을 쳤다가 더블은 물론이고 재수가 없다면 트리플 플레이까지 나올 수도 있기에, 맥은 차라리 그럴 바엔 혼자 죽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약점인 인코스 낮은 코스로 오는 볼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팡!
“스트라이크!”
이번에도 공은 맥의 약점인 몸 쪽 낮은 코스로 들어왔다.
제구가 좋지 못한 패트릭으로서는 운이 좋게 스트라이크 판정이 되었다.
딱!
“파울!”
비슷한 코스였지만, 이번에는 낮은 코스가 아닌 몸 쪽 높은 볼이었기에 스윙을 가져갔지만, 안타깝게도 타구는 3루 쪽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파울이 되었다.
그 때문에 잠시 소란이 일기도 했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에 별다른 마찰은 없었다.
“Walk!”
배드 볼 히터인 맥 마이크는 버릴 공은 버리고 스트라이크 존과 비슷한 코스로 오는 공만 휘두르다 보니, 어느 순간 볼넷을 얻어 냈다.
짝짝짝짝!
맥 마이크의 타격을 지켜보던 팬들은 그가 볼넷을 얻어 나가자 일제히 박수를 쳤다.
팬들도 맥이 어떤 스타일의 타자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이렇게 공을 잘 골라내 1루로 걸어가는 것 자체를 기뻐한 것이었다.
그리고 4번 타자인 그가 1루로 나가고, 타석으로 들어서는 대호를 보며 팬들은 다시 한번 환호했다.
“HO! HO! HO!”
오클랜드의 팬들은 불과 4일 전에 두 눈으로 확인했다.
마이너리그 올스타 경기인 퓨처스 게임에서 보여 준 대호의 엄청난 공격력을 말이다.
이전 마이너리그에서 홈런 사이클을 두 번이나 쳤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분명 홈런 사이클은 야구 역사에 남을만한 기록이 분명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를 지향하는 야구팬들에게는 마이너리그 경기 기록은 분명 놀라웠지만, 몇몇을 제외하면 ‘유망주’ 수준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무명의 선수가 갑작스럽게 큰 업적을 이룬 뒤 기대를 받지만 금세 사라진다.
어떤 의미에선 연례행사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조금씩 대호의 승격을 원하는 팬이 늘어났고, 결정적인 것이 바로 퓨처스 게임이었다.
그런 선수가 이제 메이저리그에 왔다.
그것이 오클랜드의 팬들로 하여금 큰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비록 마이너에서 했던 것만큼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지금 상황을 뒤엎을 수 있는 한 방을 보여 주길 말이다.
“어서 와! 메이저리그는 처음이지?”
LA데블스 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대호를 보며 말을 걸었다.
“당연하죠. 오늘 콜업 됐는데.”
냉소적인 어투로 쏘아붙인 대호는 피식 미소를 짓고 나서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듯 타격 자세를 잡았다.
그런 대호의 모습에 포수 대런 얼티드는 입꼬리를 올리며 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뉴비에 대한 신고식을 하려는 것이다.
‘몸 쪽 높은 볼, 빠르게!’
인코스 높은 직구, 즉 눈에서 가까운 포심 패스트볼을 요구한 것이다.
처음 메이저리그에 콜업 되어 첫 타석에 서는 타자에게 아주 잘 통하는 볼로, 경험이 적은 이일수록 이 코스에서 날아오는 빠른 공을 빈볼로 착각해 엉덩방아를 찧는 이가 상당했다.
그러니 대호도 그런 케이스로 착각을 하고 몸 쪽 높은 빠른 직구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매우 처참했다.
대런은 마이너리그에서 조금 전 그와 같은 생각을 했던 투수나 포수들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악의를 가지고 덤빈 적들은 대호에게 호되게 당했다는 사실도 말이다.
따아아악!
“와아아아!”
데블스 배터리는 악의를 가지고 몸 쪽 높은 직구를 던졌고, 대호는 이를 기다렸다는 듯 받아쳤다.
그랜드 슬램.
만루 홈런이라고도 불리는 대호의 타구 덕분에 뉴슬랙스 볼파크는 한순간에 축제의 도가니가 되었다.
“크하하하! 역시 인크레더블!”
“HO! HO! HO!”
이제 갓 메이저리그에 콜업 된 뉴비에게 솔로 홈런도 아닌 그랜드 슬램을 맞은 패트릭은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조금 전 오클랜드 타선에 연속 안타를 얻어맞고 점수를 내줬을 때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충격이 그의 멘탈을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런 패트릭의 상태를 LA데블스 코칭스태프들도 눈치챘는지, 얼른 타임을 요청하고 바로 투수교체를 하였다.
이로써 오클랜드 슬랙스뿐만 아니라 LA데블스도 1회에 선발을 내리는 진기한 장면이 벌어져 이를 지켜보는 야구팬들에게 흥미로운 광경을 만들었다.
한편, 마운드를 돌아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대호는 이상하게 조용한 더그아웃 분위기를 보고는 그냥 빠르게 선수들 앞을 지나갔다.
더그아웃에 있는 선수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런 대호의 행동에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선수들이 구석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은 대호를 둘러싸 축하를 해 주었다.
“이런, 애늙은이 같은…….”
“하하! 귀엽지 않은 뉴비 같으니라고.”
대호의 그랜드 슬램을 축하하는 선수들 속에는 선발 투수인 프랭클린과 살라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살라는 대호와 교체가 되었으면서도 그랜드 슬램이라는 활약에 전혀 질투를 하지 않고 축하를 해 주었다.
그가 그런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어이없는 플레이로 인해 팀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을 대호가 바로 뒤집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현재 스코어는 한순간에 2:1에서 2:5로 역전되었다.
더군다나 아직도 아웃 카운트는 제로, 여전히 오클랜드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었다.
따악!
급하게 투수가 교체되면서 제대로 몸을 풀지 못하고 마운드에 오른 데블스 투수는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신중하게 공을 던졌는데, 오클랜드의 6번 타자 켐프 버드가 힘차게 배트를 휘둘렀다.
앞선 1회 초, 오클랜드의 투수와 비슷한 상황이지만 다른 선택을 내렸는데,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켐프 버드는 대호가 그랜드 슬램을 치는 것을 지켜보고 자신도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에 크게 스윙을 가져갔고, 운이 좋았는지 배트 중심에 맞았다.
다다다다!
켐프가 친 타구는 쭉쭉 뻗어 나가며 우익수 방면으로 날아갔다.
1루를 돌아 2루로 가던 켐프는 달리면서 고개를 돌려 공의 행방을 찾았다.
그런 그의 눈에 아직도 공을 쫓아 외야 펜스 구석으로 뛰고 있는 데블스 우익수의 모습이 띄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팔을 돌리고 있는 주루 코치의 모습도 눈에 들어오자, 욕심을 내고 2루를 돌아 3루까지 뛰었다.
중간 정도 왔을까, 주루 코치가 양손을 뻗고 있는 동작을 취하는 게 보였다.
‘슬라이딩!’
그 동작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켐프는 바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였다.
부상 위험이 큰 슬라이딩 기술이었지만, 3루까지 뛰는 지금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슬라이딩 기술이기도 했다.
촤아악!
툭.
손끝에 베이스의 촉감이 느껴지고, 곧바로 허벅지 쪽에 글러브가 터치되는 것이 느껴졌다.
“세이프!”
“와아아아!”
대호의 그랜드 슬램에 이어 6번 타자인 켐프까지 3루타를 치자, 오클랜드의 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