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대호가 메이저리그에 콜업 된지도 어느덧 2개월이 지나 9월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7월 25일, LA데블스와 가졌던 데뷔전과 홈 3연전은 대호의 활약에 힘입어 오클랜드는 스윕을 거둘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3위인 텍사스 레이스와 가진 3연전도 LA데블스에 이어 또다시 3승을 하는 쾌거를 이뤘다.
오클랜드 슬랙스는 이렇게 후반기의 여섯 경기를 모두 승리하면서 팬들과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클랜드의 후반기 돌풍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모든 게 대호 덕분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의 퍼포먼스와 이에 자극받은 다른 선수들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팀 성적이 상승해 지옥의 원정 열두 경기에서도 9승 3패의 호성적을 기록했다.
홈 6연승과 원정 9승 3패의 성적을 거둔 덕분에 오클랜드는 57승 53패로 승률 50%를 넘길 수 있었다.
오클랜드의 팬들에게 더 기쁜 일은 이 기간 동안 라이벌인 LA데블스를 2경기 차이로 따돌리며 지구 3위에 올랐다는 점이었다.
그게 8월까지의 일이었다.
“하하! 요즘 야구하는 거 보면 살맛이 난다니까?”
“빅 타이거가 올라오고 나서 다른 선수들도 뭔가 의욕이 달라졌다는 게 딱 보여.”
그저 꿈으로만 느껴졌던 가을 야구도 한번 노려볼 만하다는 평가를 받는 시점.
오클랜드는 또다시 돌풍을 일으켰다.
홈 8연전에서 7승 1패를 거두는 걸 시작으로 원정 12경기에서 8승 4패를 하면서 72승 58패라는 성적으로 2위였던 텍사스 레이스를 1게임차로 따돌리며 단독 2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1위인 휴스턴 스트로스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그런데 후반기 경기력이 좋은 것은 비단 오클랜드뿐만이 아니었다.
사실 후반기로만 가정했을 때, 오클랜드의 승률은 80%가 넘었다.
이 정도라면 지구 1위도 충분히 노려볼 만했는데, 휴스턴 역시 미친 경기력을 선보이며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선두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메리칸 리그 서부 지구는 말 그대로 피 튀기는 격전장이 되었다.
선두와 그 뒤를 쫓는 2위, 그리고 3위의 격차가 서로 겨우 1게임차뿐이었기에 자칫 삐끗하면 순위가 뒤바뀔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31시즌 162경기가 모두 끝났을 때, 오클랜드 슬랙스가 포함된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의 순위는 1위 휴스턴 스트로스, 2위 오클랜드 슬랙스, 3위 텍사스 레이스, 4위 LA데블스, 그리고 마지막 5위 시애틀 마린스 순으로 8월 후반에 정립된 순위가 굳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클랜드 슬랙스의 성적이 92승70패로 승률 0.568점으로 와일드카드에 뽑혔다는 것이다.
지구 1위는 못했지만, 승률이 높아 와일드카드로써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2031년 정규 시즌이 끝나고 오클랜드 슬랙스는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하기 위해서 또 다른 와일드카드 진출자인 동부 지구 소속인 템파베이 레더스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러야했다.
* * *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치러지는 오클랜드.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2031시즌 162경기를 치르느라 지친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더욱 지치게 하고 있었다.
“와… 무슨 10월 날씨가 이렇게 덥냐?”
2031시즌 전반기를 마쳤을 때까지만 해도 42승 50패로 사실상 가을 야구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고 시작된 후반기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기적과도 같이 와일드카드에 선정되어 여기에 왔다.
다른 시즌 같았으면 자신들이 거둔 성적이면 충분히 지구 우승도 가능했을 테지만, 이번 시즌은 그렇지 못했다.
겨우 1승이 부족해 휴스턴에게 우승 자리를 넘겨주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오클랜드 슬랙스의 주장인 홈런 브레드는 기분이 좋았다.
꿈에도 그리던 가을 야구를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과 내일 치러질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승리해야만 본격적인 가을 야구라 할 수 있는 디비전 시리즈를 치를 수 있었다.
‘분명 그런데… 어째서인지 전혀 걱정이 되지 않아.’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주장으로 있는 오클랜드 슬랙스에는 괴물 같은 선수가 있었으니까.
아시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하드웨어, 감독의 지시를 척척 수행하는 야구 지능에 힘입어 타격과 수비에서 최상위 레벨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가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지도 어느새 10년이 되었지만, 대호와 비견되는 선수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라고 생각했다.
가장 최근에 본 선수는 재작년에 자신의 팀이 계약을 하려다 보스턴 블루삭스에 인터셉트 당한 히데오 소이치로 정도일까.
히데오는 현대 동부 지구에서 비교 대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훌륭한 선수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풀 시즌을 치르는 건 올해가 처음인데 벌써 보스턴을 대표하는 선수가 된 것이다.
‘하지만 대호도 내년이 되면 그 정도로 사랑받는… 아니, 오클랜드에서 만큼은 히데오 소이치로를 넘어서는 인기를 얻게 될 거야.’
그러니 우선은 지금 경기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주장! 뭐하고 계세요?”
언제 들어왔는지 혼자 사색에 잠겨 있던 홈런 브레드의 앞에 조금 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던 주인공이 와 있었다.
“아, 대호 왔구나.”
벌써 함께한 지도 3개월 정도 되어 가니, 주장인 홈런은 편하게 대호를 부르고 있었다.
“다 갈아입으셨으면 그라운드에 나가 몸이라도 풀고 계세요.”
“무슨 벌써부터 몸을 풀어!”
두 사람은 잠시 빤히 바라보다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전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대호는 그렇게 주장인 홈런을 뒤로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바로 운동장으로 나갔다.
그런 대호의 뒷모습을 보는 홈런의 표정은 놀람으로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이번 2031시즌의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벌어지는 날인데, 대호의 모습에서는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정규 시즌 경기 중 하나를 준비하는 것처럼 너무도 평온해 보였다.
‘마치 몇 번이나 이런 경기를 치러 본 사람처럼 행동하는군.’
홈런 브레드가 느끼기에, 대호는 자신처럼 베테랑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오직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는 선수들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거… 오늘 또 뭔가가 벌어질 것 같네.’
그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예감이 느껴졌다.
* * *
따아악!
팀의 3번 타자로 자리 잡은 대호는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템파베이 레더스의 선발이 던진 공을 받아쳤다.
잘 맞은 타구였지만, 살짝 아쉽게도 탄도각이 살짝 부족했다.
라인 드라이브로 3유간을 지나 좌익수와 중견수의 사이로 날아가, 펜스 상단을 맞추고 그라운드 안으로 떨어졌다.
타다다다!
짧은 내야 안타를 쳐서 1루에 나가 있던 지미 울프는 대호의 타격을 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2루와 3루 베이스를 돌아 홈으로 달렸다.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라 홈으로 들어가기 힘들어 보였지만, 런 앤 히트 작전이 걸린 상태였기에 지미가 곧바로 홈으로 뛴 것이다.
잘만 하면 홈에서 승부를 볼 수도 있었기에 과감하게 뛰었다.
그 사이 대호도 빠르게 1루를 찍고 2루로 들어갔다.
하지만 대호의 발은 2루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중견수가 던진 공을 받은 유격수가 2루가 아닌 홈으로 송구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승부는 홈에서 벌어졌다.
촤아악!
“세이프!”
휘이익!
“세이프!”
템파베이의 포수는 유격수의 공을 받아 곧바로 터치했으나, 지미가 한 발 빨랐다.
그에 곧바로 3루에 있는 대호에게 공을 던졌으나, 너무 급한 나머지 송구가 조금 높게 들어갔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며 들어오는 대호를 정확하게 태그하지 못했고, 결국 홈과 3루 모두 세이프 판정이 나오게 되었다.
“와아아!”
대호의 3루타로 먼저 1점을 선취한 오클랜드 슬랙스, 그런 오클랜드의 가을 야구를 보기 위해 오늘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은 오클랜드 팬들은 일제히 환호를 보냈다.
현재 스코어는 0:1, 1아웃에 잔루는 3루.
여전히 오클랜드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었다.
스윽.
대호는 다른 선수들보다 길게 리드를 하며 홈을 힐끗힐끗 바라보았다.
이는 투수의 리듬을 방해하기 위한 것이다.
상대 투수를 자극함으로써 타자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하여 실투를 유발하는 작전이다.
대호가 엄청난 공격력만큼 덩치도 커다란 타자였다면 사실 투수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리드를 길게 가져간 순간 3루에서 견제사 당할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대호의 몸짓은 그저 엄포가 아니었는데, 템파베이의 투수도 대호의 도루 기록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7월 25일에 메이저리그로 콜업 된 이후 기록한 도루가 28개.
고작 두 달 만에 이뤄 낸 기록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였다.
두 개만 더 도루를 성공했더라면 데뷔 시즌에 30―30 클럽에 들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그건 실패했다.
그럼에도 20―20 클럽에 들어간 만큼 조심해야 했다.
후반기에 콜업 되어 70경기 동안 대호가 친 홈런의 개수가 무려 31개.
오클랜드의 팬들은 처음부터 함께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황홀한 망상에 빠지곤 했다.
그러니 템파베이의 투수도 평정을 찾기가 어려운 게 당연했다.
투구를 하려고 하면 홈 쪽으로 중심을 이동하는 대호 때문에 발판에서 발을 빼기를 수차례, 이 때문에 투수는 경기 지연 행위로 주심에게서 경고를 받기도 했다.
‘아오!’
정말이지 템파베이 투수 입장에서 모기보다 더 귀찮은 존재가 바로 대호였다.
한편, 오클랜드의 타석에는 대호보단 못하지만 그래도 오클랜드의 거포인 4번 타자 맥 마이크가 있었다.
선구안이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원체 힘이 좋아 걸렸다 하면 외야로 날아가니 투수가 상대하기 힘든 타자다.
‘빌어먹을. 맥도 만만한 녀석이 아닌데…….’
계속해서 흔들리는 멘탈을 겨우 꽉 잡았다.
경고를 받은 이후, 대호에게 눈을 떼고 공을 던졌는데, 스트라이크 존 중심에 공이 몰려 버렸다.
딱!
분명 큰 한 방이 터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타구는 예상과 달리 멀리 뻗지 못하고 내야를 굴러가는 땅볼이 되었다.
데구르르.
공이 2루와 1루수 중간으로 빠르게 굴러가자, 대호는 곧바로 홈으로 달렸다.
맥 마이크가 친 타구가 내야를 뚫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내 주력이라면… 충분히 홈 스틸이 가능해!’
혹자는 과감한 판단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대호는 결코 무리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평소보다 긴 리드에 자신의 스피드가 합쳐진다면, 2루에서 홈으로 송구하는 것보다 더 빨리 도착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촤아아!
“세이프!”
대호는 홈으로 쇄도하며 몸을 시계 방향으로 회전시키며 홈 플레이트를 손끝으로 터치했다.
그 때문에 2루수가 던진 공을 받아 태그를 하려던 포수의 글러브는 허공을 갈라 버렸고.
또한 맥 마이크 역시 내야 땅볼을 쳤음에도 1루에 안정적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즉, 이번 오클랜드의 득점은 전적으로 대호의 발로 만든 점수라 할 수 있었다.
짝!
그런 대호의 노고를 아는지, 타석으로 들어서던 5번 타자이자 오클랜드의 주장인 홈런 브레드가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탁탁탁!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서는 내내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에게서 환영의 인사 세례를 받았다.
템파베이 레더스는 이렇게 경기 초반부터 대호의 흔들기에 휘말려 점수를 내주며,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