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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69화 (69/209)
  • 69화

    7월 24일, 메이저리그 2031시즌 후반기가 시작되는 날.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고 첫 경기지만, 오클랜드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은 야구팬은 프런트가 발표한 오클랜드의 희망인 선수를 기다렸다.

    웅성웅성!

    “오늘은 2031시즌 후반기 경기가 시작되는 첫날입니다.”

    장내 아나운서 제레미 화이트가 경기 시작을 알리는 멘트를 하였다.

    “후반기 첫날이지만 이곳 뉴슬랙스 볼파크에는 오클랜드의 팬들로 가득 차 있는데요. 아마 이곳에 오신 팬 분들은 슬랙스의 경기 결과보다는 다른 곳에 더 관심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하하, 사실 저도 그 선수가 궁금하네요.”

    해설인 존 쿠거도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에서 콜업 된 대호에 관한 공지를 알고 있기에,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이는 비단 해설인 존 쿠거만의 생각이 아닌 듯, 이곳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은 오클랜드의 팬들도 눈빛이 반짝반짝했다.

    마이너에서는 괴물과도 같은 활약을 펼친 대호가 현재 불안한 경기력을 보이고 있는 오클랜드 슬랙스에 와서 분위기 쇄신을 일으켜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득했다.

    “플레이 볼!”

    경기 시작을 알리는 주심의 선언이 뉴슬랙스 볼파크 장내를 가득 울렸다.

    “주심의 경기 시작 선언이 울려 퍼지고 1회 초 공격은 LA데블스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전통적인 라이벌 구단인 LA데블스의 공격으로 경기가 시작 되었다.

    * * *

    팡!!

    “스트라이크!”

    오클랜드의 선발 프랭클린 에디스는 초구 포심 패스트볼을 던져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선발 투수가 초구에 스트라이크를 잡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데, 오늘 출발이 좋은 듯했다.

    “스트라이크!”

    초구에 이어 두 번째 공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노볼 투 스트라이크로 투수에게 무척이나 유리한 볼카운트가 되었다.

    “오늘 프랭클린의 출발이 좋은데요?”

    그렉 헥슬러 수석 코치는 선발인 프랭클린이 초구에 이어 두 번째 공까지 스트라이크를 잡자, 눈을 반짝이며 마이크 케세이 감독에게 말을 걸었다.

    “프랭클린의 출발이 나빴던 적이 있었나?”

    들떠 있는 그렉 헥슬러와 다르게, 마이크 감독의 표현은 냉소적이었다.

    하기야 시작할 때 언제나 기대감을 주지만, 타자가 일순한 이후에는 얻어맞는 게 프랭클린의 패턴이니까.

    그렉 수석코치는 입을 다물고 마운드에 서 있는 프랭클린을 쳐다보았다.

    “아웃!”

    다행히 1번 타자는 별다른 힘도 써 보지 못하고 삼구 삼진으로 물러났다.

    한편 더그아웃 구석에서 투수의 투구 동작을 가만히 보고 있던 대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타자를 공 세 개만으로 잡은 상황에서 투수의 표정이 살짝 찡그려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무슨 문제가 있나?’

    대호가 자신이 정확히 본 게 맞나 고민하고 있을 때, 투구를 마치고 공을 돌려받은 프랭클린은 손가락을 보았다.

    ‘제길!’

    그의 눈에 검지 손톱이 살짝 들린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후반기 경기가 시작되고 첫 선발로 출전하는 것에 너무 힘이 들어간 것인지,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어떻게 하지?’

    경기 초반에 이런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하기가 힘들었다.

    솔직히 정직하게 말하는 게 맞지만, 초장부터 컨디션 관리도 못한 선수로 찍힐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지만 프랭클린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면서 더 이상 머리를 굴릴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신체에 문제가 생긴 채 투구한 결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팡!

    “볼!”

    첫 타자를 상대할 때와는 너무도 다른 폭투가 나왔다.

    “무슨 일이지?”

    포수가 몸을 날려서야 겨우 잡아낼 수 있는 볼이었기에, 더그아웃에서 이를 지켜보던 선수들이 의아해했다.

    “아무래도 무슨 문제가 있는 듯한데……?”

    프랭클린의 투구를 지켜보던 대호는 자기도 모르게 속마음을 입으로 내뱉었다.

    혼잣말이었지만 근처에 있던 선수들은 이를 들을 수 있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문제라니?”

    올해 외야 백업으로 활약을 하고 있는 욘 헤그리드가 대호를 보며 물었다.

    그냥 혼잣말을 했을 뿐인데, 질문이 들어오자 대호는 순간 당황했다.

    이제 겨우 콜업 된 선수가 선발 투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그리 좋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자칫하면 안 좋은 인상을 심어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더그아웃에 있는 선수들의 시선이 모여들자 어쩔 수 없었다.

    심지어 그렉 수석 코치까지 대호를 향해 물어봤으니까.

    “그래,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지? 뭐라 하지 않을 테니 말해 봐.”

    “LA데블스의 1번 타자를 삼진으로 잡고 잠시 손가락을 쳐다보더군요. 그리고…….”

    대호는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하면서 끝말을 흐렸다.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의사 표시였다.

    ‘아!’

    끝말을 마치지 않았지만, 이를 들은 사람들은 그게 어떤 뜻인지 알 수 있었다.

    “타임!”

    그렉 수석 코치는 마이크 감독에게 이야기를 하고 바로 타임을 요청했다.

    그러는 사이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더그아웃에 비치된 전화기를 들어 불펜에 연락하였다.

    혹시라도 대호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투수를 교체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마운드로 올라간 그렉은 프랭클린의 손가락을 확인했는데, 곧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검지는 방금 전 공을 던진 것 때문인지 이제는 피가 새어 나오기까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작이 좋았던 프랭클린이 그렇게 강판당하자 쉬고 있던 불펜에는 비상이 걸렸다.

    할 수 없이 마이크 감독은 우선 몸을 풀면서 고의사구로 타자를 내보내란 지시를 내렸다.

    ‘…이거 오늘 중간에 출전을 시켜주겠다고 하기는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그 말이 지켜질까?’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대호의 생각이었다.

    감독이 약속하긴 했지만, 결국 말 뿐인 약속.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었기에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2번 타자에 이어 3번 타자까지 무리하게 승부하지 않고, 볼넷으로 내보내서 1사 1, 2루 상황.

    드디어 완전히 몸이 풀렸는지 스트라이크를 던지기 시작했다.

    탕!

    한편, 겨우 타자 한 명을 상대하고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마운드를 내려온 프랭클린은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글러브를 글러브 박스에 집어 던져 버렸다.

    이는 마인드 컨트롤을 제대로 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화를 내는 것이다.

    그렇지만 팀 케미스트리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였다.

    “Walk!”

    마운드의 상황은 1회 초부터 경기의 분수령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차피 고의사구로 2번 타자와 3번 타자를 1루와 2루로 내보낸 상황에서 오클랜드는 만루 작전을 쓰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만루 작전이라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LA데블스의 다음 타자는 중심 타선 중 하나인 5번 타자였으니 지켜보고 있던 마이크 감독과 그렉 코치의 마음은 불안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데블스의 5번 타자 바비 그렌치가 배드 볼 히터라는 건가…….’

    좋게 말하면 장타력이 있는 공격적인 타자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무 공에나 배트가 나간다는 뜻.

    다만 워낙 손목 힘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타자라 배드 볼 히터임에도 5번 타자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주의해야 했다.

    따악!

    바깥쪽 낮은 볼이었는데, 배드볼 히터답게 바비 그렌치는 스윙을 가져갔다.

    그런데 배트에 튕겨 나간 공은 하늘 높이 떠올라 날아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뜬공이 될 게 뻔하다는 것이었다.

    다다다다!

    높게 솟은 타구를 보며 우익수 살라 반도스가 뛰었다.

    퍽!

    “아웃!”

    “세이프!”

    상반된 심판의 콜이 울렸다.

    바비 그렌치가 친 플라이 볼을 살라 반도스가 잡자, 3루에 있던 데블스의 2번 타자 루이스 히포는 이를 지켜보다 태그 업을 하여 홈에 들어왔다.

    ‘이런!’

    조금 전 살라의 플레이를 지켜본 대호는 순간적으로 안타까움을 느꼈다.

    작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살라 때문이었다.

    굳이 플라이를 곧바로 잡지 않고, 공을 떨어뜨려 인플레이 상태를 만들고 경기를 진행하는 게 이득일 텐데, 그냥 1아웃을 잡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인 것은 분명한 감점 요소였다.

    ‘…아닌가. 오클랜드는 지금 공격과 수비가 다 망가진 상태라고 들었어. 그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2아웃을 잡는 것보다는 그냥 안전하게 1아웃만 잡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지도…….’

    대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아쉬움을 지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닝을 끝낼 기회를 놓친 여파는 곧바로 이어졌다.

    따악!

    LA데블스의 6번 타자가 또다시 안타를 친 것이다.

    다다다닷!

    촤악―!

    “세이프!”

    데블스의 2루 주자는 안타를 치자 곧바로 스타트를 끊고 3루를 돌아 홈으로 달렸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번 살라의 본 헤드 플레이가 이어졌다.

    “어엇!”

    1루 주자도 3루로 갔고, 이미 6번 타자가 2루를 향해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1루에다 송구를 한 것이었다.

    홈 승부를 보기는 힘들다고 생각했어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실수였다.

    “우우우우!”

    1루 쪽 관중석에서 어마어마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살라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이해하는 팬들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이해해서는 안 될 플레이였다.

    돈을 주고 경기장에 입장한 팬들을 기만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행동이었으니까.

    “살라! 정신 안 차려!”

    그래도 첫 번째 플라이 볼은 신중하게 1아웃을 잡기 위해서 그랬다고 변명할 수 있었지만, 이번 실수는 치명적이었다.

    야수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당연히 팀 전체에 영향을 미쳤고, 투수의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팡!

    “볼!”

    팡!

    “볼!”

    “Walk!”

    결국 멘탈이 흔들린 롱 릴리프 캣 피셔는 결국 볼넷을 주고 말았다.

    “타임!”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주심에게 타임을 요청하고 선수 교체를 하였다.

    “대호!”

    어이없는 플레이에 얼굴을 굳힌 채 앉아 있던 대호는 느닷없이 자신의 이름을 호명하는 감독의 목소리에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예!”

    “우익수 살라와 교체한다.”

    연속해서 실책을 한 우익수 살라 반도스와의 교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고 첫 출전이지만 대호의 표정은 여전히 펴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본 포지션이 중견수이기는 하지만, 외야의 모든 포지션을 커버할 수 있는 대호는 얼른 우익수 자리로 뛰어갔다.

    한편, 교체를 당한 살라는 굳은 표정으로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더그아웃 구석으로 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머리를 묻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도 자신이 어떤 실수를 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있는 다른 선수들도 섣불리 위로하지 못했다.

    그들도 저 마음을 이해하긴 하지만, 어설프게 말을 건넸다 상태가 더 악화될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딱!

    “아웃!”

    수비수 교체가 있고 바로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며 길었던 1회 초 LA데블스의 공격이 끝났다.

    그럼에도 마이크 감독의 얼굴은 구겨진 채 펴질 줄을 몰랐다.

    ‘출발은 좋았는데… 야수의 수비 때문에 이번 경기를 망쳤군.’

    우익수의 능력 부족으로 인해 2점을 내준 1회 초.

    결코 만족스럽지 못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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