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면 바로 콜업 하겠다는 조엘 단장의 말에 한동안 멍해 있던 대호는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하하하! 그게 정말입니까?”
“물론이지, 현재 우리 오클랜드의 입장에서 가을 야구라도 하려면, 후반기에 40승 이상… 아니, 45승 이상 거둬야 하네.”
조엘은 퓨처스 게임을 관람하면서 비서인 크리스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오클랜드가 가을 포스트 시즌에 진출을 하기 위해 필요한 승수를 계산해 보았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최하 43승~45승 이상을 수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반기 92경기를 승률 50%만 달성했더라면 그보다 적은 승으로도 충분히 가을 야구를 할 수 있었겠지만, 고작 42승을 한 관계로 그럴 수가 없었다.
“좋습니다. 오클랜드가 가을 야구를 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콜업이란 소리를 들은 대호는 그렇게 오클랜드가 가을야구를 할 수 있기까지 필요한 승을 최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좋아! 그럼 우리 나가서 기념이라도 하지 않겠나?”
조엘은 너무도 기분이 좋은 나머지, 대호에게 콜업을 기념하기 위해 조촐한 파티를 하러 가자는 제안을 건넸다.
하지만 대호는 그 제안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침실에는 한나 포커스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한나와의 데이트도 방금 조엘과의 대화로 인해 흥이 식어 버렸다.
아무리 아름다운 미녀와 데이트를 하는 것이 좋다지만, 마이너리거인 대호를 가장 흥분시키는 것은 바로 메이저리그 콜업이었으니.
“조엘, 죄송한데 선약이…….”
물론 그렇다고 조엘을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이로써 그녀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그리고 남자와 콜업 축하 파티를 하기 보단 미녀와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실례를 했군!”
자신의 제안을 거부하는 대호를 보며 조엘도 눈치를 챘다.
그러면서 슬쩍 대호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주었지만, 누가 있는지 보이진 않았다.
“좋은 시간 보내기 바라네.”
“예, 감사합니다.”
“호텔엔 내가 이야기를 해 놓을 테니 걱정 말게.”
조엘은 대호를 좋게 보고 있고, 또 구단주나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드높여 준 선물로 샴페인을 올려 보내기로 하였다.
700만 +a의 계약을 한 대호라 샴페인 정도에 큰 감동을 주진 못하겠지만, 축하하는 자리에 샴페인만한 선물도 없다는 생각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그렇게 메이저리그 콜업이란 선물을 남기고 떠난 조엘, 그리고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고 바로 후반기부터 메이저리그에서 활약을 하게 된 대호는 그 기뿐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바로 침실에서 기다리는 한나에게 가서 그 소식을 알렸다.
“한나, 방금 전 제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알아요?”
마치 시험지 100점을 받은 것을 자랑하는 초등학생처럼, 대호는 침실로 달려가서 자신이 오길 기다리던 한나에게 물었다.
물론 불과 몇 m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모든 이야기를 들은 한나였지만, 대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되물었다.
“무슨 말을 들었기에 그래요?”
자신보다 7살이나 연하였지만, 대호를 대할 때면 언제나 정중한 한나였다.
이는 그녀가 리포터인 점도 어느 정도 한몫했다.
“하하, 후반기부터 제가 메이저리거가 된다고 하네요.”
“메이저리거요?”
“네. 조금 전 조엘 단장이 와서 직접 전해 줬어요.”
“어머! 그거 잘됐네요. 그럼 7월 25일부터 시작되는 후반기에는 라스베이거스가 아닌 오클랜드에서 생활하겠네요?”
한나는 기뻐하는 대호를 보며 물었다.
“아마도 그렇게 되겠네요.”
질문에 답하는 대호를 보며 한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그녀는 인지도가 작아 메이저리그 취재를 하지 못한다.
이직을 하면서 아직 새 직장에서 경력을 쌓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았기에, 아직까진 마이너리그 취재에 열중해야 할 시기였다.
‘아!’
뒤늦게 한나의 처지를 깨달은 대호는 표정을 굳혔다.
그런 대호의 표정을 본 한나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대호, 내 생각은 하지 말고 앞으로 대호만 생각해요!”
쪽!
자신 때문에 기쁜 마음을 표현하길 자제하는 대호를 본 한나는 그렇게 대호에게 키스를 하며 축하를 해 주었다.
“흐음… 그럼 일단 자기 메이저리그 콜업 축하부터 해야겠네요. 축하해요!”
“응, 고마워요 한나.”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하고 배시시 웃었다.
“그런데 부모님께는 연락했어요?”
“아!”
대호는 자신이 너무 기쁜 나머지, 연인에게만 이야기하고 아직 본가에 메이저리그 콜업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럼 잠시 집에 전화 좀 하고 우리 나가서 축배를 들어요!”
“좋아요! 그럼 난 이 소식을 먼저 회사에…….”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한나의 입장에서도 그녀가 소속된 울프TV에 대호의 메이저리그 콜업 소식을 전한다면, 분명 가산점을 받을 게 뻔했다.
물론 어차피 오클랜드의 프런트에서 대호의 메이저리그 콜업 소식을 공지할 테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소식을 전달한다면 한나의 경력에 도움되는 것은 당연했다.
어디서 이런 소스를 구했냐는 의문은 품을 수도 있겠지만.
* * *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고 곧바로 후반기에 들어선 메이저리그.
그중 가장 분주히 움직인 것은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4위에 위치한 오클랜드 슬랙스였다.
부족한 투수 자원을 마이너리그에서 콜업 한 게 아니라, 아직은 안정적인 외야 자원을 콜업 시키고, 또 일부 선수를 트레이드로 보내기까지 하였다.
이 때문에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는 의혹의 눈으로 오클랜드를 지켜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클랜드 프런트에서 콜업 한 선수가 현재 미국에서 가장 핫한 마이너리거였기 때문이다.
비록 마이너리그라고 하지만, 전반기에 무려 60개 이상의 홈런을 쳤다.
물론 하이 싱글A부터 시작을 했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전반기만 홈런이 60개 이상이란 것은 무시할 만한 성적도 아니었다.
이 때문에 오클랜드 슬랙스가 속한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의 경쟁자들은 물론이고, 후반기에 오클랜드와 경기를 치러야 하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대호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똑똑똑.
“감독님!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에서 온 정대호라고 합니다.”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에서 바로 올라온 대호는 오클랜드 슬랙스의 감독인 마이크 케세이를 찾아와 인사를 하였다.
“허허, 정말이지 놀랍기 그지없군!”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인사를 온 대호를 보며 호탕하게 웃으며 환영해 주었다.
올해 초, 스프링캠프에서 처음 대호를 보았을 때만 해도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프런트에서 역대 최고의 계약금을 주고 들여온 해외 유망주라는 말에 약간의 호기심을 가졌는데, 보면 볼수록 대호에게 빠져들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역대 최고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만큼 건방지거나 콧대가 높을 법도 하지만, 대호는 매사에 적극적이며 솔선수범을 보이는 워크애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한 10대가 마치 메이저리그에서 몇 년을 구른 베테랑과 같은 모습을 보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솔직히 스프링캠프가 끝났을 때는 곧바로 메이저리그에서 시험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형평성이란 측면도 있으며, 선수 보호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마이너를 겪지 않고 바로 메이저로 진출을 했다가 무너진 유망주들의 사례가 있다 보니, 욕망을 억누르고 대호를 마이너리그에서 담금질하기로 결정한 뒤 내려보냈다.
마이크 감독은 아무리 빨라도 내년에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눈앞에 나타난 대호를 보니 여간 기꺼운 것이 아니었다.
“내 예상보다 더 훨씬 훌륭하게 성장을 했군.”
잠시 대호에 대한 보고서를 흩어 본 마이크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으니 이만 나가서 선수들과 인사하게.”
대호는 오전과 감독과 인사를 나눴으니, 이젠 훈련 전에 로커 룸에 가서 선수들을 볼 차례였다.
“참! 오늘은 5회나 6회부터 대수비로 나갈 테니, 각오하고 있어!”
막 나가려던 대호에게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
솔직히 경기 출전은 기대도 하지 않았던 대호였다.
마이너리그야 어차피 유망주에게 경험을 쌓기 위한 역할도 있으니, 콜업과 동시에 실전에 투입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이렇게 시험적으로 선수를 기용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아직 순위 싸움의 역량이 남아 있는 시점에서는 말이다.
그런데 방금 감독은 그런 관행을 무시하고, 오늘 경기에서 교체 선수로 출전시키겠다는 말을 한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담대한 대호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생각지도 못한 경기 출전을 하게 됐네.’
“감사합니다.”
콜업이 된 당일, 교체 선수로 출전하게 된다는 사실에 대호는 기뻐하며 고개를 숙여 감사인사를 하였다.
그렇게 감독과 면담을 마치고 나온 대호는 바로 로커로 향했다.
물론 중간에 집으로 오늘 경기에 출전할지도 모른다고 알려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감독의 말과 달리 상황이 좋지 못하면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첫 출전을 가족이 놓치는 것보다야 나을 테니까.
부모님과 통화를 마친 대호는 다시 원래 목적인 로커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에서 올라온 정대호입니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 덕분에 선수들의 시선이 모두들 대호에게 향했다.
“응? 신입인가?”
막 옷을 갈아입은 바비 존스가 대호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안녕하십니까?”
자신을 보며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대호는 얼른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였다.
“아, 그래. 반가워.”
트리플A에서 막 올라온 대호를 본 바비 존스는 무심하게 인사를 받아 주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오클랜드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선수가 구단에 온 것은 환영하지만, 현재 오클랜드 슬랙스의 분위기는 썩 좋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들의 머릿속에 신입 한 명 따위가 들어올 자리는 없었다.
전반기 경기에서 그리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만큼, 가을 야구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프런트나 팬들은 어떻게 해서든 팀이 가을 야구를 하기를 바라지만, 현재 선수들의 컨디션이나 경기력을 보면 결코 쉽지 않았다.
불안정한 마운드와 저조한 성적의 타선으로 인해 5점 이상 점수를 내는 경기가 적고, 또 마운드가 약하다 보니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한 적도 거의 없었다.
그러니 로커 룸의 분위기도 잔뜩 가라앉아 있을 수밖에.
제일 처음 대호의 인사를 받은 바비 존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친구가 트리플A에서 홈런 사이클을 기록했다던 정대호군.’
하지만 이곳에 있는 선수들 중 마이너를 폭격하지 못한 사람은 없다.
더군다나 마이너에서 괴물 같은 성적을 낸 선수라도 메이저에 올라온 순간, 죽만 쑤다가 내려간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한국에서도 2군에서만 엄청난 성적을 보여 주는 이들더러 ‘2군 본즈놀이’ 따위의 별명을 붙이니까.
대호도 이런 분위기를 읽고 있었고, 선수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선 자신이 실력을 보이는 수밖엔 없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오! 이거 인크레더블 아니야?”
대호가 구석에 있는 임시 로커에 옷을 정리하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팬들이 부르는 자신의 별명에 고개를 돌린 대호은 순간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클랜드의 주장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홈런 브레드였기 때문이다.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일곱 번째 픽으로 오클랜드에 선발 된 이후, 10년 동안 활약하고 있는 선수.
통산 홈런 개수도 무려 389개로 팀 내 최다였고, 올해도 전반기에만 23홈런을 친 강타자다.
팀을 대표하는 선수 중 하나가 대호를 환영해 주니, 당연히 대호로서는 기쁜 감정 뿐이었다.
‘설마 마이크 감독님이나 코칭스태프 쪽에서 주장에게 부탁한 건가? 좀 더 일찍 팀에 녹아들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자의적으로 한 일이든, 그렇지 않든 큰 도움이 되는 만큼, 대호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주장! 저도 다시 만나서 무척 기쁩니다.”
대호는 스프링캠프 때 자신에게 도움을 준 적 있던 것을 기억하며 감사 인사를 했다.
“하하! 그땐 그냥 국제 유망주였는데, 슈퍼 루키로 여기까지 올라오게 되다니. 나도 다시 보게 돼서 반가워.”
사실 주장인 그도 대호를 다시 보게 되어 반가웠다.
스프링캠프 당시 가장 어린 선수이면서도 누구보다 일찍 운동장에 나와 훈련을 하고, 또 가장 늦게까지 남아 운동을 하는 모습에 감탄한 적이 있었다.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해 하는 게 아님을 금세 알 수 있었기에, 주장인 그는 대호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 뉴비가 승격했을 때 주장으로서 도움을 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