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미들랜드 락하운즈는 오클랜드 슬랙스의 산하 더블A 팀으로, 텍사스 리그에서 무려 열여섯 번이나 우승을 한 명문 팀이다.
1972년 창단 당시에는 미들랜드 캅스로 시카고 캅스의 산하 마이너리그 구단이었지만, 1985년에는 LA 데블스 산하 미들랜드 데블스로 팀명을 바꾸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1999년에 오클랜드 슬랙스 산하 더블A 팀으로 옮기면서 지금의 미들랜드 락하운즈로 팀명을 확정 지었다.
하이 싱글A에서 더블A인 이곳 미들랜드 락하운즈로 콜업 된 대호는, 한 단계 수준 높은 곳으로 왔음에도 랜싱 러그너츠에 갔을 때보다 적응이 쉬웠다.
대호가 락하운즈에 적응이 쉬웠던 원인은 다름이 아니라, 이곳에 오클랜드 슬랙스의 스프링 캠프에 참가했을 때 함께했던 아론 헤들러가 있었기 때문이다.
“헤이, 대호! 락하운즈에 온 것을 환영해!”
그는 콜업 첫날 나서서 하이 싱글A에서 올라온 대호와 브렛을 데리고 다니며 락하운즈의 이곳저곳을 안내해 주었다.
덕분에 대호는 보다 쉽게 락하운즈의 시설과 분위기를 알게 되었고, 선수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아론 때문에 대호가 락하운즈에 쉽게 적응하는 동안 그와 함께 콜업 된 브렛은 아론의 눈치를 보느라 적응이 쉽지 않았다.
브렛이 아론의 눈치를 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와 포지션이 겹치기 때문이다.
하이 싱글A인 랜싱 러그너츠에서는 2루수를 보던 브렛이었다.
하지만 이곳 락하운즈에서는 아론이 주전 2루수를 보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2루수 자리를 두고 경쟁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 모두 서로 눈치를 보았다.
‘아론은 이번에 스프링 캠프에 초청될 정도로 실력이 있으니까 조만간 트리플A로 올라가겠지. 그러고 나면 브렛도 조금 편해질 거야.’
대호는 가볍게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브렛은 긴장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의 경우 하이 싱글A에서 3년이나 묶여 있다가 겨우 콜업 된 상황.
당연히 눈치를 더 볼 수밖에 없었으니까.
아론과 브렛의 상황을 지켜보던 것도 잠시, 대호는 콜업 된 다음 날 곧바로 경기에 투입되었다.
이는 전적으로 오클랜드의 단장인 조엘의 요청에 의해 그리된 것이었다.
보통 싱글A나 하이 싱글A에서 올라온 선수의 경우, 며칠 정도 훈련을 두고 보면서 시합에 투입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대호는 급하게 투입되었음에도 자신이 어째서 오클랜드와 7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는지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락하운즈의 코칭스태프는 물론이고, 팬들까지 미치게 만들었다.
* * *
휘이익!
“와아아아!”
함성이 터지고 있는 경기장.
“빅 타이거! 한 방 때려!”
락하운즈의 홈 팬은 대호를 빅 타이거라고 부르며 홈런을 치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래, 맞아. 빅 타이거, 홈런 한 방이 필요해!”
옆에서 다른 팬도 함께 소리를 질렀다.
‘나 참. 랜싱에서는 슈퍼 보이더니 이제는 빅 타이거네.’
대호는 피식 웃으며 배터 박스에 들어섰다.
현재 락하운즈는 원정 팀인 프리스코 러프라이더즈에 2점 뒤진 3:5 스코어였지만, 주자 1사 1, 2루로 역전의 기회를 맞이한 상황.
랜싱 러그너츠에서 콜업 된 이후, 대호는 미들랜드에서 6번 타순을 부여 받았다.
‘3번 아론이 안타를 쳤고, 4번 벅스 베키나가 번트를 댔지. 솔직히 4번이 번트를 대서 좀 놀랐어.’
그러고 나서 5번 타자 클락 데이비슨이 볼넷을 얻어 주자 1, 2루가 된 상황이었다.
대호는 방금의 볼넷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요즘 상승세인 클락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이제 막 하이 싱글A에서 올라온 병아리인 날 상대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겠지… 본때를 보여 줘야겠네.’
대호는 이를 악물었다.
러프라이더즈의 배터리, 그리고 코칭스태프들도 분명 하이 싱글A를 폭격하고 올라온 신인이라는 정보 정도는 알고 있었으리라.
그럼에도 자신을 무시한 것은 분명 하위 리그에서 갓 올라온 신입이기에 그러한 것임이 분명했다.
‘솔직히 우리나라로 치면 KBO 2군을 폭격하다가 1군에 막 올라온 거니까 이해할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지는 않아.’
하이 싱글A의 기록 10경기 41타석 32타수 28안타 6홈런.
저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듯했다.
사실 3회차에는 마이너 생활이 거의 없었던 만큼 조금 신선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하위 리그인 하이 싱글A에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곳에서 0.875의 타율을 치고 OPS가 무려 3을 넘어서는 강타자를 무시하면 안 되었다.
타석에 들어선 대호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미들랜드 락하운즈의 5번 타자인 클락이 잘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를 거르고 자신을 상대하려는 프리스코 러프라이더즈의 코칭스태프들의 선택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기로 마음먹었다.
팡!
“볼!”
우타자인 대호의 시선에서 가장 먼 바깥쪽 낮은 직구였다.
하지만 스트라이크 존에서 공 하나는 빠진 볼이었다.
“뉴비가 잘 골랐는데?”
초구를 그냥 보내자 포수가 대호를 상대로 트래시 토크를 하기 시작했다.
하이 싱글A에서 콜업 되었다고는 하지만, 대호에 대한 리포트를 보았기에 집중력을 흩트리기 위해 말을 건 것이다.
그렇지만 대호는 다른 뉴비와는 달랐다.
아니, 지금 포수를 보고 있는 그보다 더 많은 경험과 프로 생활을 해 보았다.
그런 대호에게 조금 전 프리스코 러프라이더즈의 포수가 한 트래시 토크는 트래시 토크 축에도 끼지 못했다.
쉬잉!
따아악!
포수의 방해에도 대호는 투수가 던진 2구를 정확히 받아쳤다.
초구가 바깥쪽 낮은 볼이었다면 2구는 안쪽 높은 볼이었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공 반개 정도 높은 볼이었는데, 대호는 이를 거르지 않고 바로 당겨 쳐 버렸다.
타구의 각도는 가장 홈런이 많이 나는 35°보다 각이 큰 40°였지만, 너무나 정확하게 히팅 포인트에 맞은 탓인지 쭉쭉 뻗어 나갔다.
“해냈어! 빅 타이거가 해냈다고!”
미들랜드 락하운즈의 팬들은 대호가 친 타구를 보며 크게 환호했다.
대호가 친 타구는 그 끝을 확인하지 않아도 그게 홈런임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대호를 무시하고 그와 승부를 보려고 했던 프리스코 러프라이더즈의 코칭스태프와 배터리는 고개를 숙였다.
하위 리그인 하이 싱글A에서의 기록이나 콜업 되어 몇 경기 치르지 못하였다고 하지만, 대호가 더블A에서 치른 경기에서 보여준 성적은 결코 플루크가 아니었다.
그런데 프리스코 러프라이더즈의 코칭스태프들은 이런 것을 무시했다.
그리고 그 대가를 홈런으로 치르게 된 셈이었다.
이제 스코어는 6:5.
홈런 한 방으로 역전시켜 버렸다.
원정 팀인 프리스코 러프라이더즈를 상대로 연승이 확정되는 순간, 락하운즈의 팬들은 대호의 이름을 연호했다.
“호!”
“호!”
대호의 이름 끝 자를 계속해서 불렀다.
‘호’라는 외자를 몇 천 명이 다 함께 연호를 하자, 정말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기운은 한데 모여 그라운드에 있는 프리스코 러프라이더즈 선수들을 압박했다.
따아악!
대호의 홈런 이후 다시 재개된 경기 미들랜드 락하운즈의 7번 타자 벅 시걸이 백투백 홈런을 쳤다.
“와아아아아!”
대호의 홈런에 이어 7번 타자인 벅 시걸까지 연속해서 홈런을 치자,팬들은 경기장이 떠나갈듯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프리스코 러프라이더즈 투수의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뒤이어 올라온 8번 타자 피터 맥캔도 뒤질 수 없다는 듯 홈런을 때려 낸 것이다.
백투백투백 홈런이 나온 것이다.
8회 원 아웃을 잡았지만 연속으로 안타, 볼넷, 심지어 3연속으로 홈런을 맞고 5실점을 하게 되자, 프리스코 러프라이더즈의 투수는 더 이상 마운드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교체가 된 투수는 자신들의 더그아웃으로 들어간 뒤 뒷문에 끼고 있던 글러브를 집어던지고 문을 걷어차고 나가 버렸다.
참으로 꼴불견이 아닐 수 없었지만, 투수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두 명만 더 잡으면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상승세인 강타자를 피해 콜업 된지 얼마 되지 않은 뉴비를 상대하려다 도리어 당해 버렸다.
미들랜드 락하운즈의 5번 클락 데이비슨을 피해 6번 타자를 상대해 유인구를 이용해 내야 땅볼을 유도해 더블 플레이를 만든다는 계획은 정답인 듯 보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그게 아니었다.
맹수를 피했더니 그 뒤에는 맹수보다 무서운 괴물이 있었던 것이다.
이를 알지 못했던 것이 패배의 원인이었다.
잘못된 구멍에 단추를 끼려고 했으니 결과는 당연한 것이었다.
8번 타자인 피터 맥캔까지 홈런을 치면서 락하운즈로 완전히 분위기가 넘어왔지만, 9번과 1번 타자가 새로 마운드에 오른 프리스코 러프라이더즈의 투수에게 아웃되면서 공수 교대가 되었다.
하지만 9회 초, 마지막 공격을 하는 프리스코 러프라이더즈는 대호를 필두로 7, 8번 타자들이 3연속 홈런을 치면서 이미 기가 완전히 꺾인 상태였다.
그 결과 미들랜드 락하운즈의 마무리 버기 라이스에 막혀 삼자범퇴 되었다.
그렇게 경기는 마무리되고 스코어는 8:5, 미들랜드 락하운즈의 승리로 끝났다.
* * *
덜그럭!
즐거운 식사시간.
이 시간이 즐거운 것은 음식의 맛이 좋은 것도 있지만, 경기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한 뒤에 식사를 하는 것임이 분명하리라.
“대호, 오늘 역전 홈런 쳤다며?”
언제 다가왔는지 브렛 헤리스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브렛은 아직까지 시합에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 미들랜드 락하운즈로 콜업 된지도 어느새 5일이 지났지만,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도착하고 다음 날부터 곧바로 시합에 출전하는 대호에게 전혀 질투하지 않았다.
자신의 진정한 경쟁자는 같은 포지션에 있는 아론 헤들러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3년을 참고 참아서 겨우 콜업 되었는데… 이 정도야.’
그랬다.
브렛은 절대로 조급해하지 않았다.
한 달 하고도 보름 전, 자존심을 내려놓고 대호에게 조언을 구할 때, 대호는 타격 자세뿐만 아니라 마음가짐도 가르쳐 주었다.
메이저리그를 목표로 한다면, 결코 조급한 마음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 브렛, 마음이 조급해지면 당연히 시야가 좁아지고, 그러면 선구안이 나빠져서 이상한데다가 배트를 갖다 대기 십상이야.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대호의 말이 맞았다.
마음이 조급해져 좋지 못한 공에 배트를 휘두른 경우가 꽤 많았다.
당연히 성적도 떨어지고, 또 그러다 보니 마음이 조급해지는 악순환이 계속 되었다.
뒤늦게 이런 자신의 상태를 깨달은 브렛은 대호의 조언에 따라 명상도 하고 최대한 느긋한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로 하이 싱글A리그에서 0.412의 타율을 기록하고 이에 힘입어 꿈에서만 그리던 더블A로 콜업까지 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그런 경험을 했으니, 비록 콜업 되고 5일이 지나도록 시합에 나가지 못하고 있음에도 그리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응. 프리스코 러프라이더즈의 배터리가 겁도 없이 클락을 볼넷으로 거르고 날 상대하겠답시고 덤비잖아?”
대호는 스테이크 조각을 하나 찍어 입에 가져가며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큭큭! 러프라이더즈 배터리가 잠자는 괴수의 잠을 깨웠군.”
브렛은 대호를 괴수라 표현하며 웃었다.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클락 데이비스가 잘 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대호와 비교를 하면 한두 단계 정도는 정도 차이가 난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그런 클락을 거르고 대호를 상대하려고 했다는 러프라이더즈 배터리들의 머릿속을 구경하고 싶어졌다.
차라리 만루 찬스를 주는 한이 있더라도 거르려면 대호까지 걸러야 했다.
아니면 그냥 클락을 상대하고 대호는 거르든가 말이다.
“그런데 대호, 오늘도 홈런을 쳤으면… 음. 네 경기 만에 벌써 홈런이 세 개나 되네?”
브렛은 말을 하다 보니 대호의 홈런 개수를 깨닫고 깜짝 놀랐다.
이 정도면 하이 싱글A때 보다 더 나은 홈런 페이스였다.
하이 싱글A에서는 열 경기에 홈런을 여섯 개 쳤었다.
그런데 더블A에서 네 경기 만에 3홈런인 것이다.
“이러다 더블A도 열 경기 만에 탈출하는 것 아냐?”
브렛은 너무도 무서운 대호의 상승세에 농담처럼 열 경기를 언급했지만, 순간적으로 대호라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놀랐다.
“뭐,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아마 힘들지 않을까?”
목표가 목표이다 보니, 대호도 빠르게 콜업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메이저리그의 분위기를 보니, 유망주는 최소한 1년 동안 마이너리그에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다.
이는 선수가 원한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유망주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구단, 그리고 선수협 모두가 합의를 본 사항이기에 억지를 부릴 수도 없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팬들도 무엇 때문에 이런 규정을 만들었는지 그 취지를 알기에 슈퍼스타를 원하면서도 이를 감내하였고, 대호도 이런 흐름에 따라야만 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