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오클랜드 슬랙스 스카우트 팀장인 데이비드 포트는 급히 단장인 조엘 헌트를 찾았다.
똑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업무를 보고 있던 조엘 헌트는 느닷없이 들린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들어와! 그런데 어쩐 일인가?”
아직 시즌이 시작된 지 2주도 되지 않았는데, 스카우트 팀장이 자신을 찾아온 것에 의아해진 조엘이 물었다.
“그게… 마이너리그에 있는 유망주들을 좀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데이비드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오클랜드가 유망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기에, 말하는 그의 모습은 어쩐지 초조해 보였다.
“유망주를 정리한다? 그게 무슨 말인가?”
예상 밖의 말이 나오자 조엘의 표정이 굳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음…….”
조엘은 스카우트 팀의 팀장인 데이비드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라고 판단해 물어보았다.
“그래, 어느 정도나?”
자신의 의견을 좀 더 들어 보겠다는 조엘의 대답에 데이비드는 자신이 정리한 명단을 내밀었다.
“AAA에 두 명, AA에서 세 명, A에서 두 명입니다.”
모두 7명의 유망주를 정리해야 한다는 데이비드의 말에 조엘은 깜짝 놀랐다.
“뭐야? 이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페이 롤이 작은 오클랜드에게 유망주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런데 무려 일곱 명이나 방출해야 한다는 소리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고, 데이비드가 그렇게 판단한 이유를 꼭 들어야 만했다.
“AAA의 두 명은 나이가 너무 많아 한계가 보입니다.”
“그럼 AA는?”
“…AA의 세 명은 도핑을 하는 것 같습니다.”
더블A의 유망주에 관해 물었던 조엘은 데이비드의 입에서 도핑이란 말이 나오자 질겁했다.
“뭐야! 도핑?”
프로 스포츠에서 도핑은 무척이나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구단 이미지가 나락으로 처박히는 것은 물론이고, 팬들의 마음마저 대거 돌아서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게 사실이야?”
조엘은 믿을 수 없어 다시 한번 확인 차 물었다.
“거의 확실합니다.”
“검사는?”
“두 개 기관에 의뢰를 위해 보냈습니다.”
“음…….”
사실 팀장인 데이비드가 단장인 자신에게까지 보고를 하고, 또 기관에 의뢰를 보냈다면 사실상 100% 확정이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하아! 설마 싱글A도 그런 것은 아니겠지?”
조엘은 더블A에서 무려 세 명이나 도핑을 했다고 의심된다는 말에, 혹시 남은 싱글A의 두 명도 그런 것인지 물었다.
“다행히도 그건 아닙니다. 싱글A에서 정리하려는 유망주들은 포지션이 너무 겹치기 때문입니다.”
유망주가 많다 보니, 포지션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조엘은 그걸 스카우트 팀장이 정리를 하려고 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런 일은 단장인 자신의 일인데, 갑자기 이런 보고를 하자 당황했다.
“그건 내 일인데, 무슨 일이 있나?”
월권을 하면서까지 유망주를 정리하려는 데이비드의 주장이 이상해 물었다.
“LA에서 마이너리그 유망주를 트레이드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 왔습니다.”
“응? 어느 LA?”
LA에 있는 구단에서 데이비드에게 트레이드 의향을 타진했다는 소리에 궁금해졌다.
“내셔널 리그인 LA 다윈스의 팀장이 그러더군요.”
“아! LA 다윈스의 팀장이라면 브랜든 고스를 말하는 건가?”
조엘은 잠시 LA 다윈스의 스카우트 팀장의 이름을 떠올려 보다 브랜든 고스를 기억하고 물었다.
“예. 자신들 산하 마이너리그에 잉여 유망주들이 있어, 혹시 생각이 있냐고 합니다.”
LA 다윈스는 대체로 투수 욕심이 많아 투수 유망주에 많은 투자를 하는 구단이었다.
그러다 보니 전미 투수 유망주들은 특별한 선호 구단이 있지 않은 이상, LA 다윈스와 계약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특정 포지션의 유망주가 많아지면 필연적으로 다른 포지션에 구멍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LA 다윈스가 비싼 돈을 주고 야수들을 트레이드하거나, FA로 많은 계약금을 지불하고 데려오는 것이다.
“저쪽이 외야 자원이 부족하다고 트레이드하지 않겠냐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싱글A에서 두 명을 정리하자고 한 것인가?”
데이비드 팀장은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하였다.
LA 다윈스는 투수를 잘 키우기로는 메이저리그에서 두 번째라고 하면 서러울 구단이다.
그게 메이저리그든, 아니면 산하 마이너리그 구단이든 말이다.
“저흰 하이 싱글A에 확실한 외야 자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4~5년은 외야 자원은 걱정 없으니, 부족한 투수 유망주를 받고 트레이드했으면 합니다.”
“아!”
단장인 조엘로선 참으로 좋은 의견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조엘은 요새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바로 오클랜드의 팜에 투수 유망주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투수 유망주들이 대체로 LA 다윈스에 많이 가고, 또 선호하는 구단이 있더라도 그게 스몰 마켓인 오클랜드는 아니었다.
그런데 스카우트 팀장인 데이비드가 이렇게 좋은 제안을 가져오자, 조엘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리할 자원은 정리하고, 말 나온 김에 대호도 더 두고 볼 필요 없이 더블A로 콜업 해야겠어.’
마침 도핑이 의심되는 더블A 유망주 중 하나가 대호와 포지션이 겹치는 중견수 포지션에 있는 유망주였다.
조급함에 자신의 커리어를 망칠 선택을 한 그들을 얼른 처리하고 미래의 기대주에게 올인 하기로 결심한 조엘은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선택을 내린 순간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 * *
랜싱 러그너츠는 홈에서 그레이트 레이크 룬스를 상대로 승리하여 팀 창단 사상 10연승을 이룩했다.
그것도 9:3으로 가볍게 말이다.
1회 말, 선두 타자로 나섰던 대호의 장외 홈런을 비롯해 3번 타자 브렛 헤리스가 투런 홈런을 치며 3점을 앞서 나갔다.
또한 그 뒤에도 일곱 개의 안타를 뽑아내며 무려 2점을 더 얻어 내 5:0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초반부터 5점이나 리드를 해서 그런지, 랜싱 러그너츠의 5선발 브래드 바쓰는 그레이트 레이크 룬스의 타자를 상대로 6회까지 고작 1실점을 하며 마운드를 튼튼하게 지켰다.
그 뒤로도 불펜으로 나온 오스발도 리오스가 7회에 나와 1이닝 무실점으로 막아 냈다.
그러나 8회에 마운드를 이어 받은 리드 발메이가 아웃 카운트 하나를 남기고 1실점에 잔루 2, 3루를 남기고 마무리 브래드 워터스에게 공을 넘기며 위기가 찾아온 듯했다.
그리고 8회 2사에 공을 넘겨받은 마무리 투수 브래드 워터스는 잔루 때문에 1실점을 하긴 했지만, 거기에서 마무리하고 9회는 철벽같이 마운드를 지켜 승리를 얻었다.
그렇게 랜싱 러그너츠는 3실점을 하는 동안 9점을 뽑아내며 10연승을 이어 갔다.
이 과정에서 대호는 5타석 4타수 3안타를 쳤으며, 홈런도 하나 기록했다.
“대호, 감독님이 부르신다.”
크레이그 콩클란 보조 타격 코치가 대호에게 다가와 감독이 찾는다고 전달했다.
“예, 알겠습니다.”
휴식 시간에 찾아와 말을 전달한 것이기에, 대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필립 폴 감독이 있는 사무실로 갔다.
* * *
똑똑똑!
대호는 감독 사무실에 도착해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부르셨습니까?”
“어서 와! 여기 앉지.”
필립 폴 감독은 처음 대호를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를 맞았다.
“커피 마시겠나?”
한번도 이런 적이 없던 필립 폴 감독이 처음으로 대호에게 음료를 권했다.
하지만 대호는 솔직히 약간 껄끄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다가 시즌 중이라 몸을 관리하고 있기에 거절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닙니다.”
“그래? 그럼 전할 말이 있으니 바로 용건을 말하지.”
억지로 담담하려고 하는 척을 하는지, 필립 폴 감독의 모습은 어쩐지 조금 부자연스러웠다.
‘무슨 일이지? 혹시……?’
이상한 행동을 하는 필립 폴 감독의 모습을 보며 의아해하던 대호는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는지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
개막전부터 지금까지 10경기에 나가 대호는 매우 훌륭한 행보를 걸어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콜업이다.”
“……!”
대호는 살짝 미소를 지었고, 필립 감독 역시 그 웃음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 사무실을 나가면 바로 짐을 싸서 텍사스로 떠나면 된다.”
오클랜드 슬랙스 산하 더블A 구단인 미들랜드 락하운즈로 콜업 되었다는 뜻이었다.
“크흠!”
대호는 필립 폴 감독으로부터 텍사스로 떠나라는 소리에 예상대로 자신이 콜업 되었다는 것에 짧게 헛기침을 하였다.
“괜찮나?”
“예, 예, 괜찮습니다.”
“그래… 그동안 내 편견 때문에 꽤나 힘들었을 거야.”
대호는 느닷없는 필립 폴 감독의 말에 순간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활약을 펼치더라도 필립 감독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인상을 구기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렇듯 갑작스럽게 사과를 하니, 오히려 대호가 할 말이 없었다.
보통 감독이 이러면 한국인인 대호는 괜찮다고 빈말이라도 했을 테지만,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사과를 받는 바람에 아무 말도 못하고 침묵만 지켰다.
“내 할 말은 다 전한 것 같으니, 그만 나가보게.”
대호는 커피를 마시는 필립 감독을 한 번 더 돌아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대호에게 팔립 감독이 한마디를 더 했다.
“아, 혹시 가는 길에 브렛 헤리스를 보면 지금 나한테 찾아오라고 좀 전해 주게.”
“알겠습니다.”
브렛 헤리스를 보면 감독실로 찾아오라는 말을 전달해 달라는 부탁에 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 그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러고 나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다른 동료들과 잡담을 하고 있는 브렛을 발견하고 감독의 말을 전했다.
“브렛! 감독이 찾는다.”
“그래? 고마워.”
대호는 브렛에게 말을 전하고 바로 짐을 싸기 위해 숙소로 향했다.
‘…한 달 정도 됐나? 내가 애리조나에서 이곳 미시간 랜싱에 온 게…….’
아직 이곳으로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또다시 미국 남부에 위치한 텍사스로 가게 된다는 사실에 대호는 비행기 마일리지가 쌓이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숙소에 도착한 대호는 짐을 챙기고 밖으로 나와 픽업해 줄 필 잭슨을 기다렸다.
처음 이곳 랜싱에 왔을 때, 새벽같이 나와 자신을 이곳에 내려 주었던 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시 공항으로 가야 한다.
“역시 대호 너도 텍사스로 가는구나!”
숙소 앞에서 픽업해 줄 필 잭슨을 기다리던 그때, 대호는 자신의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자신처럼 짐을 챙겨 나오는 브렛 헤리스의 모습이 있었다.
‘역시 브렛 정도 실력이면 더블A로 콜업 되는 게 맞지.’
대호도 감독이 브렛을 불러 달라는 감독의 부탁을 들으면서 어떤 용건일지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텍사스까지 가는 게 혼자가 아니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짐작은 해 보았지만, 실제로 브렛과 텍사스까지 동행하게 되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혼자 가는 줄 알았는데, 누군가 함께 간다니 정말 다행이다.”
처음 랜싱에 도착해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걸어 준 브렛과 동행하게 된 대호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지만, 그동안 실력은 늘지 않고 3년이나 하이 싱글A에 머물고 있던 브렛 헤리스의 마음은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는 야구를 계속해야 하나 하는 고민으로 머릿속이 복잡했었다.
그러다 대호의 타격 폼이 정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타격 코치의 말에 자존심을 내려놓고 조언을 구했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브렛은 설마 대호가 순수하게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거라곤 생각 못했다.
그냥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했던 부탁인데, 아무런 조건 없이 대호가 이를 들어주고, 또 자신의 잘못된 자세를 교정해 준 것에 너무도 감사했다.
3년 동안 늘지 않던 타격 능력이 성장한 것은 물론, 선구안까지 늘어 예전 같았으면 속았을 유인구 역시 잘 걸러 낼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적이 올라가고, 결국 더블A로 콜업까지 되었다.
무려 3년 만에 하이 싱글A를 졸업하고 더블A로 승급한 것이다.
“대호! 텍사스에 가면 네 아침은 내가 책임지지.”
너무도 고마운 대호였기에 브렛은 텍사스 미들랜드 락하운즈에 도착을 하면 아침은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호언장담을 하였다.
브렛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바로 텍사스가 바로 그의 고향이었고, 가족 모두 텍사스에서 농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렛이 대호처럼 보너스 베이비가 아니면서도 더블A도 아닌 하이 싱글A에서 3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의 집안이 부유했기 때문이다.
텍사스에서 대규모 농장을 하고 있어 질 좋은 소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어 다른 마이너리그 선수와는 그 출발선부터 달랐다.
물론 대호는 700만 달러라는 계약금이 있었기에 먹는 것에 고민이 없었지만, 브렛이 먼저 그러한 제안을 하였기에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
“그럼 나야 땡큐지!”
“기대하라고. 내가 최고급 스테이크의 맛을 보여 줄게.”
“그래, 기대할게!”
비록 브렛이 자신보다 여섯 살이나 많은 형이었지만, 이곳은 미국이었다.
나이를 떠나 친구와 같은 관계가 된 대호와 브렛이었기에 편하게 말을 하였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