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2030 WBSC 세계청소년야구대회 1라운드 한국과 호주.
이 경기는 당초, 박빙의 승부거나 호주의 우세가 될 거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결과는 그 반대였다.
아니, 한국의 일방적인 우세로 경기가 이어졌다.
전문가들이 호주가 한국보다 우세할 것이라 예상한 근거도 물론 있었다.
대표 팀 소속 선수들 중 무려 네 명이나 메이저리그 팀과 계약을 맺은 상태였고, 남은 선수들도 모두 호주 프로 리그의 팀과 입단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선발인 어거스트 어밍이 플로리다 블루마린스와 계약한 초특급 유망주였으니.
시속 156㎞의 포심 패스트볼과 148㎞의 고속 슬라이더를 가지고 있는 어거스트 어밍은 호주에서 나온 A급 유망주로서, 제구력이 살짝 떨어진다는 것을 제외하면 비슷한 또래 나이에서는 상대하기 정말 껄끄러운 수준급 선수였다.
하지만 호주의 우세를 예상한 사람들은 2030 WBSC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한국 역시 황금 세대를 출전시켰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즉, 한국은 황금 세대의 실력을 전 세계에 알린 셈이었다.
기대를 모았던 어거스트 어밍은 1회 초부터 한국에게 두들겨 맞아 1회 4실점, 2회 3실점을 하며 마운드에서 물러났다.
더그아웃에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물러나는 어거스트의 모습을 보던 대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거스트 어밍. 컨디션이 좀 늦게 올라오는 타입이지. 전생에서도 초반 실점이 많다는 약점을 극복 못해서 메이저리그에서 떠나게 되었으니까.’
즉, 한국의 강타선과 어거스트 어밍의 약점이 만나며 한국에게는 환희를, 호주에게는 절망을 가져다준 것이다.
그리고 이건 전적으로 1번 타자인 대호가 선발 투수인 어거스트를 상대로 7구 동안 지켜보며 3회차와 다름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의 약점을 다른 선수들에게 알려 준 것이 주요했다.
포심 패스트볼과 고속 슬라이더, 투 피치 투수인 어거스트로서는 참으로 뼈아픈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지난 회차에는 이 정도로 털리진 않았지. 이게 저 선수한테 전화위복이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자기 자신이 약점을 깨닫는 계기는 됐을 테니까 극복하면 좋겠네. 좋은 선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내 실력을 키우기에 좋으니까.’
만약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저 그런 선수로 남아 보직 변경, 그리고 퇴출의 수순을 그대로 밟게 될 것이다.
아무튼 한국과 호주의 경기는 예상과 다르게 싱겁게 끝나버렸다.
호주 팀의 에이스가 초반에 무너진 관계로 2회부터 투수를 소비해야 했기에 호주로서는 완전히 작전이 어긋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어거스트의 뒤를 따라 올라오는 투수들은 미처 준비를 끝내지 못한 상태였고, 그대로 마운드에 올라오다 보니 다시 얻어맞는 악순환의 연속이 계속되었다.
17:0.
호주는 참담한 스코어로 5회 콜드 패라는 결과를 받아 들어야 했다.
그 와중에 대호는 4타수 4안타, 홈런 두 개라는 홈런왕에 걸맞는 성적을 기록했다.
* * *
오클랜드 슬랙스의 단장 조엘 헌트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귓가엔 오클랜드 팬들의 원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팬들의 원성 때문이었다.
저조한 성적은 두말할 것도 없고, 선수의 트레이드도 불발이 되었으니 원성을 피할 길이 없긴 했다.
또한 해외 유망주 계약도 순탄치 않다 보니, 몰려오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계속해서 꼬이기만 하는 한 해가 아닐 수 없었다.
“단장님, 말씀하시던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조엘 헌트가 책상에 머리를 묻고 있을 때, 그의 비서가 콜을 해 주었다.
“응? 무슨 경기?”
그는 스트레스로 인해 아무런 생각도 떠올리지 못하고 멍하게 되물었다.
비서는 그를 담담하게 바라보며 아침에 남긴 메모의 내용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14시 30분에 시작하는 2030 WBSC 세계청소년야구대회, 한국과 호주의 경기 시간이 되면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아!”
조엘은 그제야 생각이 났는지 탄성을 질렀다.
“시작했나?”
“지금이 말씀하신 14시 30분입니다.”
“알았어!”
틱!
정신을 차린 조엘의 말에 비서는 왔던 길로 돌아가고, 그는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오, 지금 나오는군!’
프런트의 집무실답게, TV가 켜지자마자 보인 채널은 스포츠 중계를 해 주는 곳이었고, 마침 경기가 시작된 것을 보았다.
“어, 어……?”
조용히 경기를 지켜보던 조엘 헌트는 1회, 2회 경기가 진행이 될수록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며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조나단이 물건을 하나 건졌군.”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조엘은 봄에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국에서 히데오 소이치로에 버금가는 야구 천재를 발견했습니다. 포지션은 소이치로와 같은 중견수이면서, 하드웨어와 파워가 좋습니다. 또 발도 빠르고 수비 능력도 뛰어나 보입니다.]
당시 전화로 통화를 했는데, 사실 조엘은 아시아에서 고작 1년 만에 히데오 소이치로급의 야구 천재가 나왔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게다가 영화에서나 나오는 것처럼 일본의 라이벌 국가라고 할 수 있는 한국에서 그런 선수를 발견했다는 말에 내심 조나단에게 큰 실망을 했었다.
자신의 실수를 덮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느낀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전해 오는 정보와 영상을 통해 완전히 거짓은 아니란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보다 적극적으로 접촉을 해 보란 지시를 내렸다.
자신들이 놓친 히데오 소이치로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와 비견되는 재능을 가진 천재를 오클랜드로 데려오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드웨어가 더 좋다고 하지 않는가?
그 말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 가능성이 더 높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미국은 피지컬이 좋은 것을 선호하기에, 조금 재능이 부족하다고 해도 덩치가 큰 편이 성공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판단해 스카웃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지금 경기 장면을 확인하니, 그동안 조엘 자신이 조나단의 판단을 평가절하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따아악!
2사 만루 상황에서 큼지막한 홈런이 나왔다.
경기장 2층 상단을 때리는 대형 홈런이었다.
“조나단! 당장 계약 진행해!”
조엘은 TV로 대호가 만루 홈런을 친 것을 보자마자 아시아 스카웃 담당인 조나단 샌더스에게 전화를 걸어 대호와 해외 유망주 계약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는 조나단에게 전화로 지시를 내리면서도, TV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순간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 그라운드를 돌며 홈으로 들어오는 대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 * *
“와하하하!”
플로리다의 한 한인 식당은 몰려든 손님으로 인해 왁자지껄했다.
하지만 가게 주인이나 손님 중, 어느 누구도 이러한 소음에 대해 별다른 불만을 토해 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 있는 손님들은 한 시간 전 있었던 2030 WBSC 세계청소년야구대회 1라운드 한국과 호주의 경기를 관람하고 온 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손님들은 가게 한쪽에 따로 모여 밥을 먹고 있는 야구 선수들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일행들과 오늘 경기에 대한 감상을 나누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많이들 먹어라! 부족하면 고기 더 달라고 하고.”
추인수 감독은 어려운 상대라고 생각했던 호주 팀을 5회 17:0이란 엄청난 차이로 물리치자, 기분이 좋아져 선수들과 스태프들을 데리고 비싼 한인 식당에서 자비로 고기 파티를 열어 주었다.
“네, 감독님. 잘 먹겠습니다!”
“사장님, 여기 고기 6인분 더 주세요.”
“여긴 8인분이요.”
감독의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가게 사장을 호출하며 여기저기서 고기를 추가하였다.
“감독님,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KBSA에서 파견된 예산 담당 직원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추인수 감독은 별것 아니란 듯 편안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애들이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그럽니까?”
‘어차피 돈은 내가 다 낼 텐데, 웬 참견이지?’
추인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앞에 있는 고기를 집어 먹었다.
한편, 오늘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대호가 있는 테이블은 다른 곳과는 다르게 조금 차분한 분위기를 보였다.
“야, 정대호. 넌 대체 어떻게 호주 선발의 약점을 알고 있던 거냐?”
최태경은 고기를 쌈 싸 먹으며 궁금한 점을 물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대호는 몇몇 아이들에게 오늘 상대할 호주의 선발투수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별거 아냐. 어제 코치님이 나눠 준 자료에 다 나와 있는 거였어.”
“뭐? 자료에 다 나와 있었다고? 나도 보긴 했지만, 그런 걸 본 기억은 없는데?”
최태경은 팀의 주전 포수였기에 당연히 코치가 나눠 준 호주 선수들에 대한 자료를 꼼꼼히 읽어 봤다.
하지만 방금 전 대호가 말한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당연히 자료에 상대 투수의 뭐가 약점이라고 나오진 않지. 하지만 거기 적힌 자료를 토대로 유추하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어.”
따지듯 물어 오는 최태경의 질문에 대호는 또다시 담담하게 대답했다.
“정보를 유추해? 어떻게?”
대호가 나름대로 설명해 줬지만, 최태경도 그렇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아이들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료에 보면 어거스트 어밍은 156㎞의 포심 패스트볼과 148㎞의 고속 슬라이더를 가졌는데 초반 실점이 많다고 나와 있어.”
“응. 그런데?”
“그렇다는 말은 초반 제구가 불안하거나…….”
“하거나?”
“어깨가 늦게 풀린다고 생각할 수 있지.”
“그렇지. 초반에 실점이 많다면 그 둘 중 하나일 거야.”
“뭐, 결국 둘 다였지만.”
대호와 이야기를 나누던 최태경이 맞장구를 치며 자신이 아는 상식대로 대답하였다.
“실제로 상대를 해 보니까 예상대로 공은 빠르지만, 제구도 그렇고 공의 회전수도 예상보다 떨어지더라.”
“아! 맞아. 제구도 형편없고, 패스트볼의 궤적도 그냥 완전 일자로 들어오더라.”
최태경은 마치 회상이라도 하듯 시합 중에 느낀 어거스트의 공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였다.
“아마 좀 더 시간이 지났다면 몸이 풀려서 위협적으로 변했겠지. 하지만 우리가 그전에 점수를 많이 냈잖아? 당연히 호주의 코칭스태프들 마음도 조급해졌을 거고, 그럼 게임 끝이지.”
“맞아. 선발이 2회 만에 내려오니까 당연히 중간 계투들도 몸이 덜 풀린 상태에서 마운드에 올라왔고, 그대로 무너졌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경제도 투수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에 참여하였다.
“모레 우리 상대가 대만이지?”
한참 호주와의 경기에 대해 떠들던 대호는 다음 경기 상대를 떠올렸다.
“맞아. 4번 시드.”
네 장의 시드 중 한 장을 자신들이 아닌 대만이 가져갔다.
예전에는 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이 선두에 서 있었는데,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은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보다 밑이라 생각했던 대만에도 밀렸다.
그리고 오세아니아… 즉, 호주에도 밀리던 상황이었다.
다행히 오늘 경기에서 호주를 압도적인 차이로 이겼지만, 대만은 쉬운 상대가 아니다.
“아마 대만은 우리를 무시하고 4강전을 준비하고 있을 거야.”
대호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였다.
“음…….”
대호의 말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저도 모르게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뭔가 말을 하고 싶기는 하지만, 그 말이 틀리다고 반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들보다 한 수 아래라 평가했던 대만은 최근 몇 년간 자신들의 선배들을 누르고 아시아에서 일본과 선두 경쟁을 펼쳤다.
그렇기에 쉽게 자신들이 더 낫다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전문가들이 우리보다 한 수 위라고 말하던 호주도 5회 콜드게임으로 이겼잖아? 대만이라고 다를까?
최태경은 갑자기 가라앉은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씹어뱉듯 말하였다.
“맞아. 선배들이 대만에 졌다고 해서 우리도 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 다만!”
“다만?”
“호주를 이긴 것에 너무 들뜨지 말고, 오늘처럼 방심하고 있을 대만을 상대로 초반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겠지. 그러면 결과는 오늘이랑 똑같을 거야!”
“아! OK!”
대호는 호주를 너무 쉽게 이긴 것 때문에 아이들이 너무 들떠 있는 것을 깨닫고, 앞으로 있을 대만전을 대비해 일종의 경고를 보낸 것이다.
박빙일 것이란 호주전이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속 빈 강정마냥 너무도 쉬웠다.
더군다나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했다는 호주의 초특급 유망주 어거스트 어밍을 2회 7실점으로 강판시키고, 뒤이어 올라온 투수들도 두들겨 무려 17점을 뽑아냈다.
물론 칭찬할 만한 결과지만, 다들 너무 풀어져 있었다.
‘나도 이번에 쉽게 이겨서 기분 좋지. 하지만 이렇게 헬렐레하다간 내일 질 수도 있어.’
그러하였기에 대호는 다음 대만전에 대한 약간의 불안감이 솟아났다.
3회차에 한국은 어렵게 호주를 물리치고 2라운드에 진출을 했다.
그리고 대만을 만나 긴장을 한 나머지 실수를 하고 지리멸렬하였다.
당시 아이들은 그동안 선배들이 대만에 패배를 한 것에 주눅 들어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결국 패배했다.
하지만 대호가 돌이켜 봤을 때, 대만은 그리 대단한 팀이 아니었다.
더욱이 대만은 자신들을 무시해 에이스를 다음 라운드인 4강전 일본을 상대하기 위해 뒤로 빼놓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그런 대만에 기 한 번 제대로 펴 보지 못하고 패한 것이다.
아니, 자멸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물론 지금 분위기는 그것과 정 반대라 문제였다.
상대의 기에 눌려 주눅 드는 것도 문제지만, 지금처럼 너무 풀어져 상대를 눈 아래로 깔고 방심하는 것도 제대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대호는 아이들에게 그동안 대만과 한국의 전적을 언급하고, 또 그러는 한편 대만이 어떤 상태로 자신들을 상대하려고 하는 중인지 이야기하였다.
그래야 자신들을 무시한 대만에 분노하며 집중을 할 테니까.
예상대로 왁자지껄 떠들며 방만했던 분위기는 한순간에 조용해지며 대표 팀의 전의가 불타올랐다.
‘됐어.’
한편, 추인수 감독은 코치들과 자리하면서 아이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대호가 앉은 자리를 예의주시 하고 있었는데, 조금 전 대호가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역시나 다른 아이들과는 달라!’
시합이 끝났다고 긴장을 푸는 것이 아니라 다음 시합을 대비하고 있는 대호의 모습에 추인수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