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9화 (19/209)

19화

2030 세계청소년야구대회의 대진표는 전년도 우승국인 일본이 제1시드를 받아 부전승으로 올라갔고, 득점 포인트 2위인 미국은 2번 시드, 3등인 쿠바가 3번 시드고 4번 시드는 대만이었다.

한국은 아쉽게도 시드 배정을 받지 못해 호주와 1라운드 경기를 치러야만 했다.

예전의 호주는 그저 대회라는 구색을 갖추기 위해 초청하는 정도에 그쳤지만, 2009년 프로 리그를 출범하면서 꾸준히 인재를 양성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실력도 쑥쑥 늘어났고, 이제는 프로야구의 인기가 일본, 한국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향상이 되었다.

심지어 메이저리거도 종종 배출하고 있어, 마냥 무시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우리의 상대는 호주다.”

추인수 감독은 선수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하였다.

“호주는 작년에는 8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올해 전력은 작년과 비교해 더욱 향상되었다.”

2029년에 치러진 대회에서 호주팀은 열두 개 팀 중 가장 먼저 탈락한 국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는 올해 4순위로 시드 배정을 받은 대만에게 패배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한국보다 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 이유로는 일본과의 경기에서 콜드 패를 당한 한국과 달리 4강에 들어간 대만과 명승부를 펼친 게 꼽혔다.

1위와 형편없이 싸운 한국, 4위와 좋은 승부를 펼친 호주.

두 팀 중 어느 쪽이 높은 평가를 받을지는 뻔한 이야기였다.

즉, 한국에게 이번 1라운드 경기는 결코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것이란 이야기였다.

“자신 있습니다.”

한국 팀의 분위기 메이커인 최태경은 추인수 감독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자신만만한 얼굴로 대답했다.

물론 포수인 그 역시 호주 팀이 결코 약하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심 자신들의 전력이 좀 더 우위에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렇게 생각한 가장 큰 근거가 바로 괴물 타자인 정대호 때문이었다.

물론 투수력도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뉴월드배와 황금사자기라는 두 대회에서 격돌 해 봤던 대호는 절대로 고3의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처음 만났을 땐 성남고 강보석 따위와 우리를 비교하지 말라는 생각에 정면 대결을 했다가 홈런 두 개를 헌납했었지.’

그렇기 때문에 황금사자기에서 세운 제1작전이 바로 정대호의 배제였다.

녀석만 없다면 영광고의 나머지는 자신들 광주상고의 수준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고, 실제로 우승기를 거머쥘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 우승은 우리 광주상고에서 차지했지만, 홈런왕은 두 번 다 대호 녀석이었지.’

작년까지만 해도 대회 홈런왕은 광주상고 출신 선수의 차지였다.

그렇기에 올해도 타격에는 자신 있었는데, 대회마다 매번 대호를 넘지 못해 홈런왕 타이틀을 되찾지 못했다.

더욱이 대호는 타격만 강한 것이 아니었다.

수비 범위는 또 얼마나 넓은가?

과장 조금 더 보테서 외야를 혼자 보는 것 같았다.

또,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성 타구도 여러 번 잡아 아웃을 만들기도 했다.

이런 대호가 있고, 막강한 투수력까지 갖춰졌으니 아무리 요즘 뜨고 있는 호주팀이라고 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래. 우린 질래야 질 수 없는 전력을 갖췄다. 국내에선 너희를 황금 세대라 부르더구나.”

추인수는 한 점의 긴장도 없는 최태경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시합에서 안방을 책임질 최태경이 전혀 긴장하지 않으니, 배터리를 맺은 김경제 또한 계속해서 평온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좋아, 파이팅을 외치고 나가 보자!”

“파이팅!”

“파이팅!”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 팀 주장인 최태경의 선창에 모여 있던 아이들은 동시에 파이팅을 외쳤다.

* * *

WBSC 주관 세계청소년야구대회 1라운드.

이에 국내 중계를 맡은 MBS 스포츠 채널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를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MBS 스포츠 채널의 아나운서 김성주입니다.”

“해설 이범수입니다.”

이번 경기를 중계하기 위해 김성주 아나운서와 이범수 해설은 많은 준비를 했다.

두 사람은 모아 온 자료를 꼼꼼히 체크하며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한국의 이번 1라운드 상대는 호주인데, 이범수 위원님. 호주 팀은 어떤 팀입니까?”

야구에 관심이 많은 팬이더라도 솔직히 국내 프로야구나 미국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있지, 다른 해외 리그에는 그리 관심이 많지 않다.

또한 호주가 아무리 떠오르는 야구 강국이라 해도, 리그 자체 경쟁력은 대만과 비슷한 수준이었기에 많은 이들이 알지 못했다.

이런 점을 파악하고 있는 김성주 아나운서가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질문을 한 것이다.

“호주 팀은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년 메이저리그에 유망주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호주 팀에는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한 유망주가 무려 네 명이나 포함되어 있죠.”

“아니,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한 선수가 네 명이라고요?”

김성주 아나운서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 놀랍다는 반응을 내보였다.

“하하하, 호주도 이번 대회에 나름대로 사활을 건 듯합니다.”

* * *

세계청소년야구대회 1라운드.

먼저 공격하게 된 팀은 한국이었다.

‘호주 팀 선발 어거스트는 강속구 투수로 156㎞의 포심 패스트볼과 148㎞의 고속 슬라이더를 던지는 투 피치다. 간간히 체인지업을 던진다고 하지만, 체인지업은 생각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형편없지. 그러니 패스트볼과 고속 슬라이더, 둘 중 하나만 노려라.’

한국 팀의 1번 타자로 나선 대호는 시합 전 추인수 감독이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포심 패스트볼과 고속 슬라이더를 사용하는 투 피치라고 했지만, 솔직히 그것도 제구가 잡히지 않은 공이라 크게 주의할 것도 없지.’

호주의 선발은 이미 3회차에 상대를 해 본 경험이 있다.

메이저리그의 플로리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지만, 메이저리그 승격은 해 보지 못하고 결국 호주 프로 리그로 돌아간 선수.

팡!

“볼!”

초구는 볼 판정을 받았다.

구속은 역시나 156㎞라는 말처럼 빨랐지만, 회전수가 낮아 밋밋한 직구에 불과한 듯했다.

팡!

“볼!”

이번에도 대호는 투구를 그냥 지켜보았다.

전혀 배트를 휘두를 가치가 없는 공이었기 때문이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두 개 정도 빠지는 공이라… 유인구라고 하기에는 너무 허접하군.’

두 번째 공도 볼이 되자 호주 팀 선발은 무어라 욕설을 내뱉으며 마운드의 흙을 거칠게 비볐다.

아마도 제구가 잘 되지 않는 것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팡!

“스트라이크!”

몸 쪽 낮은 볼이었는데, 이번에는 스트라이크 콜이 들어왔다.

‘이 정도가 안쪽 스트라이크라는 말이지?’

대호 스스로가 설정한 스트라이크 존에서 반 개정도 낮은 볼이었는데, 스트라이크 판정이 내려졌다.

씨익.

‘이제 스트라이크 존이 어떻게 그려지는지 대충 파악했어.’

팡!

“스트라이크!”

이번에도 스트라이크 판정이 내려졌다.

몸 쪽 높은 공이었고, 이런 건 쳐 봤자 제대로 날아가지 않았다.

어느새 카운트는 투 볼 투 스트라이크.

경기를 중계하던 아나운서와 해설도 이런저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 대한민국 대표 팀의 선두 타자인 정대호 선수. 어느새 어거스트를 상대로 다섯 번째 공을 맞이합니다.”

“볼!”

거의 바닥에 패대기치듯 바운드되어 들어온 공.

아직도 호주 선발 어거스트는 제구가 안 되는 듯했다.

“풀카운트네요.”

꿀꺽.

아직까지 대호가 한 번도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기에 중계석에서는 긴장감이 흘렀다.

휘익!

“파울!”

대호는 보더 라인에서 살짝 빠진 공을 맞춰 파울을 만들어 냈다.

괜히 볼이라고 생각해서 가만히 지켜보다가는 공 반 개 정도 스트라이크 존을 넓게 잡아 주는 심판 때문에 아웃이 될지도 몰랐으니까.

‘어거스트, 저 녀석도 지금쯤 초조할거야. 제구는 제대로 안 되지, 심판이 잡아 줄 법한 공은 내가 커트하지. …다음이 승부겠네.’

따악!

대호는 고속 슬라이더를 그대로 밀어 쳐 2루수 키를 넘기는 안타를 만들어 냈다.

타다다다닷!

호주의 우익수가 빠르게 달려와 공을 잡았지만, 그 사이 대호는 1루를 돌아 2루에 안착한 상태였다.

보통 선수였다면 1루 진출에 그쳤겠지만, 노리던 공이기에 출발이 빨랐고, 주력이 뛰어난 대호이기에 2루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우와와아!”

선두 타자부터 2루에 진출하며 득점권에 들어서자, 이를 지켜보던 관중은 물론이고, 한국 팀 더그아웃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오오! 1번 타자인 정대호 선수, 호주의 선발 어거스트 선수의 일곱 번째 공을 받아 쳐 2루타를 만들어 냅니다.”

“예, 방금 어거스트 선수가 던진 것은 그의 특기인 고속 슬라이더였는데, 참 잘 받아 쳤습니다.”

“과감하게 2루까지 달린 것을 보니,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 알고 배트를 휘두른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김성주 아나운서의 말에 이범수가 웃으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어거스트 선수는 포심 패스트볼과 고속 슬라이더를 주 무기로 삼는 투 피치 투수인데, 6구까지는 포심 패스트볼만 던졌거든요. 그래서 7구째에 슬라이더를 던질 거라고 예상한 듯싶습니다.”

중계석에 있던 김성주와 이범수는 조금 전 대호가 친 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중계를 하는 도중, 한국 팀의 2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부산정보고 출신의 나연호.

그는 부산정보고에서 1번을 맡고 있는 테이블 세터 중 한 명으로, 배트 컨트롤이 뛰어나고 작전 수행 능력도 좋은 선수였다.

타석에 나연호가 들어서자 대호는 조심스럽게 더그아웃으로 시선을 주었다.

아무래도 작전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런 앤 히트!’

대호의 예상대로 추인수 감독과 코치는 사인을 보냈다.

루상에 있는 주자가 먼저 달리고 타격하는 것으로, 발이 빠른 주자가 진루해 있을 때 많이 사용되는 작전이기도 했다.

대호가 투수의 투구 동작을 보고 곧바로 스타트를 끊었다.

타석에 있던 나연호는 대호가 뛰는 것을 확인하고 투수가 던진 공에 배트를 가져다 댔다.

딱!

그 타구는 투수 왼쪽을 지나 뒤로 흘러갔다.

만약 주자가 없을 때 같은 코스로 공이 날아갔다면 2루수가 정면으로 받아 냈을 테지만, 지금 2루수는 대호를 견제하기 위해 베이스와 가까이 붙어 있어 정상적인 수비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공은 1루수와 2루수 사이로 데굴데굴 빠져나갔다.

“달려!”

미친 듯이 달려가던 대호는 공이 배트에 맞는 소리를 듣자 3루 베이스를 밟고도 멈추지 않고 홈으로 돌진했다.

촤아악!

그러고 나서 홈베이스가 가까워지자 곧바로 슬라이딩했다.

“세이프!”

그제야 대호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며 그라운드를 돌아보았다.

팡!

공을 받는 소리가 들리며 2루로 방향을 틀던 나연호가 다시 1루로 복귀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호주의 수비는 대호가 빠르게 홈으로 쇄도하는 모습을 보고 무리한 홈 승부를 걸지 않고, 주자를 진루시키지 않기 위해 공을 2루에 던진 것이다.

그 판단은 정확했다.

런 앤 히트 작전이 성공한 상태였고, 대호의 주력은 웬만한 프로 선수급이었기 때문에 어시스트를 위해 홈으로 공을 던졌다간 나연호를 더 진루시켰을지도 몰랐다.

비록 적이지만 메이저리거가 네 명이나 포함되어 있는 호주 팀다운 판단 능력이었다.

대호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선취점을 먼저 냈고, 노 아웃에 주자 1루라는 좋은 상황이었으니까.

“호주 선발이 아직 제구가 잡히지 않았으니까 구속에 연연하지 말고, 존을 좀 작게 잡아!”

더그아웃으로 들어오기 전, 대호는 타석으로 들어서는 타자에게 호주 선발에 대한 정보를 넘겼다.

“OK!”

3번 타자는 휘성고에서 유격수를 보고 있는 김일권이었다.

그 또한 휘성고에서 1, 2번을 맡고 있으며 타격감과 작전 능력이 탁월한 선수였다.

특히나 대통령배에서 타율 0.365를 기록한 강타자였다.

팡! 팡!

따악!

대기 타석에서 선취점을 먼저 낸 상황을 지켜보고, 또 대호에게서 조언을 들은 김일권은 공 두 개를 지켜보다 3구째에 몸 쪽으로 들어오는 패스트볼을 잡아당겨 외야로 날려 버렸다.

“우와아아악! 김일권!”

선두 타자인 대호를 필두로 계속해서 안타를 만들어 내자, 더그아웃에서 함성이 쏟아졌다.

그리고 1루에 있던 나연호는 빠르게 달려 홈으로 쇄도했다.

촤아앗!

김일권이 친 공은 우익수 방면 깊은 곳으로 굴러갔고, 우익수가 공을 잡아 홈으로 송구했다.

“세이프!”

심판의 판정은 세이프.

그 사이에 김일권은 빠르게 달려가 3루까지 진출했다.

깊게 빠진 타구긴 했지만, 원래라면 2루타였을 것이다.

하지만 1회 초부터 더 점수를 주면 안 된다는 호주 팀 우익수의 판단으로 홈 승부를 걸었고, 어부지리로 김일권이 3루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는 김일권의 주루 센스가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하하, 김일권 선수. 2루에 도착하고 나서 잠깐 공의 행방을 찾다가, 공이 홈으로 날아가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3루로 뛰는군요.”

“잘했어요. 정말 잘했어요.”

해설을 맡은 이범수는 김일권의 주루 플레이에 잘했다며 연신 칭찬을 보냈다.

스코어는 2:0

1회 초이지만 벌써 한국 팀이 2점을 뽑아냈다.

노 아웃에 2점을 앞서 나가자, 한국 팀의 공격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처음 시합이 있기 전까진 추인수 감독이나 지금 중계를 맡은 아나운서와 해설 모두 호주를 경계해야 한다고 떠들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다.

한국이 먼저 점수를 내며 앞서 나가는 게, 이 정도로 긴장할 필요가 전혀 없을 경기력인 것이었다.

더그아웃에서 지켜보던 주장 최태경은 자신의 예상이 맞아들었음을 깨닫고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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