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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21화 (21/209)
  • 21화

    대만 청소년 야구 대표 팀 감독인 천수이륭은 2라운드 상대인 한국 팀 선수의 정보를 살펴보다 고민에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대회에 참가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뇌리에 한국 팀 따위는 없었으니까.

    최근 몇 년 동안, 대만은 한국과의 대결에서 7:3으로 전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상대가 될 만한 나라는 이제 일본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 한국과 호주의 시합을 보고 그게 완전히 자만심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호주.

    천수이륭이 알고 있는 그 나라는 이번 2030 세계청소년야구대회의 다크호스로 꼽히는 강한 국가였다.

    현재 메이저리그와 계약한 선수 네 명이 엔트리에 포함되어 있고, 그중 한 명이자 에이스 투수인 어거스트 어밍의 실력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무려 156㎞의 포심 패스트볼과 148㎞의 고속 슬라이더를 장착한 위협적인 선수였으니.

    ‘물론 어거스트가 완벽한 선수는 절대 아니지. 당장 내가 돌려 본 자료에서도 약점이 뚜렷하게 나타났으니까. 하지만… 결코 세계청소년야구대회 정도의 수준에서 공략될 정도는 아니었어.’

    더군다나 최근 국제 대회 성적이 하락세인 한국으로써는 힘든 경기를 치르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는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제구가 잘 안 되기는 했지만, 만약 우리 팀 선수들이 어거스트를 상대했다면 그렇게 쉽게 공략할 수 있었을까?’

    천수이륭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한 한국이 올라올 거라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아 호주를 상대하기 위한 전략을 제1번으로 준비해 둔 상황.

    그는 탁자 위에 펼쳐져 있는 자료를 읽으며 골치가 아파 옴을 느꼈다.

    * * *

    한국과 대만, 대만과 한국의 2라운드 경기는 오전 10시에 치러졌다.

    “오늘 선발은 윤열이가 나간다.”

    추인수 감독은 대만전 선발을 광영고 최윤열에게 맡겼다.

    “네!”

    자신이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는 소리에 최윤열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출전 선수에 대한 발표가 끝나고, 추인수 감독은 대만 선수들에 대한 정보와 그들을 상대하기 위한 전략을 간략하게 이야기하였다.

    “아자아자! 파이팅!”

    “아자아자! 파이팅!”

    한국 팀은 전의를 다지고 그라운드로 나섰다.

    잠시 후, 대만 선수들 또한 나와서 주르르 도열했고, 곧 경기가 시작되었다.

    “플레이 볼!”

    한국 팀에게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번 2라운드에도 먼저 공격을 맡게 되었다.

    1번 타자인 대호가 타석에 들어서자, 대만의 선발 투수인 주룽지가 공을 던졌다.

    팡!

    “스트라이크!”

    대호는 초구를 보며 호주전과 마찬가지로 스트라이크 존을 측정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반 개 정도 빠진 볼이었지만 판정은 스트라이크.

    1라운드에 주심을 봤던 심판이라면 볼 판정이 나왔겠지만,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이 후한 사람인지 스트라이크 콜을 불렀다.

    ‘바깥쪽이 넓네.’

    대호는 머릿속으로 네모를 그리며 공이 들어온 위치와 스트라이크 존을 비교하며 새로이 입력하기 시작했다.

    팡!

    “볼!”

    초구 스트라이크에 이어 몸 쪽으로 날아온 공도 반응을 하지 않고 기다렸다.

    이번에는 초구와 반대로 볼을 선언했다.

    ‘역시 안쪽은 인색하고, 바깥쪽이 후한 심판이다.’

    미국 심판들 중 많은 이들이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대략적인 주심의 성향을 파악한 대호는 이젠 느긋하게 투수를 상대하기로 하였다.

    “볼!”

    3구째도 마찬가지로 볼이 되었다.

    이번에는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유인구였는데, 대호는 이를 잘 골라냈다.

    보더 라인 바깥으로 공 하나정도 빠지는 높은 볼이었는데, 주심이 이건 잡아 주지 않았다.

    ‘이거 전체적으로 스트라이크 존이 조금 찌그러진 것 같네.’

    바깥쪽 볼 판정이 후하다고 판단했던 것도 잠시, 대호는 머릿속으로 그리던 네모난 스트라이크 존을 조금씩 수정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스코어는 3B 1S.

    타자에게 매우 유리한 스코어였으니 마운드에 있던 투수의 표정이 잔뜩 굳어 버렸다.

    전적으로 타자에게 유리한 스코어였기에 마운드에 있는 투수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자신이 작정하고 던진 유인구가 통하지 않자 당황한 듯했다.

    ‘이쯤에서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안쪽으로 포심 패스트볼이나 투심이 들어오겠군.’

    대만의 선발 주룽지는 포심과 투심 패스트볼, 두 개를 모두 던질 줄 아는 투수였다.

    그렇기에 3B 1S 상황에서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서 변화구보단 패스트볼을 던질 확률이 높다.

    그러니 대호도 패스트볼만 생각하고 타격 준비를 하였다.

    ‘와라!’

    당겨진 시위마냥 온 몸의 근육을 팽팽히 당기면서도 부드럽게 타격할 수 있도록 관절을 이완시켰다.

    마치 교과서에 실릴 법한 완벽한 타격 자세였다.

    따아악!

    주룽지가 던진 공은 역시나 패스트볼이었다.

    예상한대로 포심 패스트볼이 날아왔고, 대호는 곧바로 배트를 힘차게 휘둘러 히팅 포인트에 제대로 맞췄다.

    “홈런이다!”

    더그아웃에서 순간적으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손에 어떠한 타격감도 남지 않는 아주 이상적인 타격이었다.

    대호 역시 때리자마자 홈런임을 직감했다.

    “와아! 와와!”

    시합이 시작한지 불과 3분도 되지 않았는데 홈런이 터졌다.

    이에 관중석에 있는 관중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호는 베이스를 돌면서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이는 전적으로 투수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덩치는 다 컸지만, 이들은 아직 10대 청소년들이다.

    정신적으로 아직 성숙하지 못하기에 보통 홈런을 치면 흥분하고 감정이 밖으로 잘 드러난다.

    하지만 프로들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에 익숙하고, 어떤 때 상대가 압박을 느끼는지 잘 알고 있다.

    방금처럼 대형 홈런이 나왔을 때, 타자가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히 그라운드를 돈다면 투수는 더욱 압박감을 느낀다.

    그렇기에 대호는 홈런을 쳐 기분이 좋았지만, 그 감정을 완전히 숨겼다.

    그러면서 홈으로 들어와 살며시 마운드 위에 있는 투수를 한 번 힐끗 쳐다봐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투수를 압박하는 행위였다.

    “연호야, 저 심판 스트라이크 존 살짝 들쭉날쭉하니까 그거 감안하고 쳐.”

    대호는 다음 타석을 위해 들어오며 축하해 주는 나연호에게 조언을 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따악!

    대호에게 대형 홈런을 맞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 주룽지가 던진 공은 힘없이 날아가 가운데로 몰렸고, 나연호는 쉽게 그 공을 쳐 냈다.

    경험 많은 포수였다면, 홈런을 맞자마자 마운드에 올라가 투수를 진정시켰을 테지만, 대만의 포수 역시 아직 10대였기에 멘탈 관리 부분에서 미흡함을 보였다.

    따악!

    대만팀의 수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연속해서 안타가 나오면서 나연호가 빠르게 홈으로 들어와 1점은 보탠 것이다.

    노 아웃 상황에서 연속 안타가 나오자 분위기는 한국으로 완전히 넘어왔다.

    마치 1라운드에서 호주를 상대하던 것처럼 한국은 대만을 상대로 처음부터 맹타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타임!”

    4번 타자까지 연속해서 안타를 때리며 타점을 올리자, 그제야 대만 더그아웃에서 타임 요청이 들어왔다.

    마운드에 올라간 대만 코치가 투수를 진정시키고 있을 때, 한국 팀 더그아웃에서도 작전지시가 내려지고 있었다.

    “좋아, 투수가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드러났으니, 이제부터 스트라이크 존을 좁히고 배트를 짧게 잡아. 무슨 말인지 알겠지? 히팅 포인트를 앞으로 가져간다!”

    추인수 감독은 투수가 흔들리고 있을 때 더욱 흔들기로 하고, 한 방을 노리는 큰 스윙보다는 자잘한 연속 안타를 쳐 상대방을 자멸시키기로 결정했다.

    “예, 알겠습니다.”

    5번 타자인 강릉제일고 소속 강성원에게도 전달되었다.

    그는 196㎝에 100㎏석의 거구로, 선구안은 조금 떨어지지만 올해 고교 야구 대회에서 홈런 스물다섯 개를 때려 낸 타자였다.

    그 정도의 강타자에게 이러한 지시를 내렸으니 불만이 나올 수도 있었지만, 강성원도 왜 지금 타이밍에 그런 작전을 세웠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 저 녀석을 흔들어 놔야 오늘 경기가 전체적으로 편하지.’

    한편, 주룽지는 강성원의 덩치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그래서 타자가 배트를 짧게 잡고 있다는 것도 확인하지 못한 채 몸 쪽으로 파고드는 슬라이더를 던졌다.

    쉬이익!

    ‘됐다!’

    공을 던진 주룽지조차 깔끔하게 느껴질 정도의 공.

    딱!

    그러나 강성원이 휘두른 배트 끝에 걸렸다.

    짧게 잡고 친 만큼 평소라면 단타로 끝났을 안타.

    그러나 대만 팀이 더블플레이를 위해 수비 시프트를 걸어 놓은 상태였고, 공은 1루를 빠져나가 외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결과는 노 아웃에 주자 2, 3루.

    시프트가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 주는 일이었다.

    * * *

    일본야구협회(NPB) 소속 직원인 야마다 토루는 오후에 있을 일본과 캐나다의 2라운드 경기 전, 오전에 있는 한국과 대만의 경기를 관찰하기 위해 나왔다.

    “어디 얼마나 하는지 두고 보자.”

    야마다는 그저께 있었던 한국 팀과의 트러블로 인해 앙금이 남아 있어 차가운 눈빛으로 한국의 공격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느긋하게 의자 등받이에 누워서 한국을 깔보던 그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시합에 집중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니…….”

    자신에게 쓴소리를 내뱉은 선수가 1번 타자로 나왔는데, 3B 1S의 유리한 볼카운트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곧바로 투수의 패스트볼을 받아 쳐 대형 홈런을 만든 것에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연속해서 2번 타자와 3번 타자, 그리고 4번 타자까지 연속해서 안타를 때려 내며 득점을 올리는 모습에 자연히 긴장할 수밖에.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 그가 알고 있는 한국의 야구 실력은 최근 몇 년간 계속해서 하향세를 걷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 엄청난 화력과 집중력을 가진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아닌가?

    ‘이거…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아직 경기 초반이기 했지만, 야구가 좋아 야구 협회에 입사를 한 그였기에 한국의 타자들이 보이는 타격이나 집중력이 마냥 무시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띠리링!

    “감독님, 야마다입니다.”

    판단이 서자 야마다는 바로 일본팀 감독인 토미야스 시게루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조금 전 본 것을 그대로 전달했다.

    * * *

    3타석 1타수 1홈런에 볼넷 두 개를 가지고 있는 대호가 다시 한번 타석에 들어섰다.

    그러자 대만의 투수는 크게 긴장했다.

    벌써 투수가 세 명이나 교체가 되었고, 마운드에 있는 투수는 대만의 네 번째 투수였다.

    12:3.

    무려 9점 차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찌어찌 역전한다고 해도, 대만에게 남은 투수는 전무하니 3라운드에 올라가도 만신창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솔직히 우리가 역전할 가능성도 전혀 보이지 않지만 말이야.’

    그럼에도 스포츠에서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

    1사 만루 상황에서 오늘 홈런을 기록하고 있는 대호가 타석에 들어서니, 투수는 바짝 얼어붙었다.

    1회 이후 계속해서 고의 사구로 내보내고 있었는데, 이미 경기가 한국으로 기울어진 이상, 대만 더그아웃도 더 이상의 작전이 무의미하다고 느낀 듯했다.

    ‘승부해!’

    추하게 시간을 끄는 것보단 빨리 경기가 끝나는 편이 덜 창피하다고 판단한 천수이륭 감독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더그아웃의 분위기를 읽은 것인지 투수가 공을 던졌다.

    팡!

    “볼!”

    몸 쪽 낮은 볼이었다.

    코스는 좋았지만, 안쪽 공에 인색한 주심이다 보니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 판정을 내린 듯했다.

    파앙!

    “스트라이크!”

    조금 전과 비슷한 코스였지만, 이번에는 가운데로 공 한 개 정도 더 들어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승부를 하려나 보네?’

    이전까지만 해도 타석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바깥쪽으로 공을 빼던 것과 다르게, 이번 타석에서 연속으로 몸 쪽으로 공이 들어온 것을 느낀 대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참을 수가 없지.’

    대호는 기회가 찾아오자 눈을 반짝였다.

    물론 승부가 기울었긴 하지만, 자신을 다시 한번 어필할 기회가 아닌가?

    ‘이번에는 바깥쪽 낮은 볼이나 백 도어 슬라이더가 들어올 공산이 크겠다.’

    왼손 투구를 하는 대만의 투수를 보며 다음에 어떻게 들어올지를 예측한 대호는 신중한 모습으로 공을 기다렸다.

    슈웅!

    투수가 던진 것은 패스트볼이었다.

    다만 제구가 잡힌 140㎞ 초반의 바깥쪽 낮은 패스트볼이었기에 쉽게 볼 공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호의 재능은 단순히 청소년 야구 대표정도가 아니라, 이미 마이너리그 평균… 즉 AA+급이었다.

    더블 A보다는 높고, 트리플 A보단 낮은 정도의 스탯을 보유하고 있는 대호에게 140㎞대 패스트볼은 쉬운 먹잇감이나 다름이 없었다.

    따아악!

    경기장 안을 울리는 맑은 타격음은 그것이 홈런이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게 만들었다.

    이번 홈런으로 한국과 대만의 스코어는 16:3으로 더욱 벌어졌다.

    WBSC의 규정상 6회 이전에 점수 차가 15점 이상이 나게 되면 콜드게임이 선언된다.

    현재 6회 초가 진행이 되고 있으니, 규정대로 콜드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국 팀이 대만을 상대로 콜드 게임을 하기 위해선 앞으로 2점이 남은 셈이었다.

    물론 6회 말 수비를 무실점으로 막아 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또 하나 있었지만.

    “와아아아!”

    웅성웅성!

    방금 전 대호의 만루 홈런으로 경기장은 더욱 흥분의 도가니로 들어섰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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