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0.01초 소드마스터 156화
고대 드래곤이라 하면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두 존재가 있다.
바로 천상의 드래곤과 혼돈의 드래곤이다.
한때 대륙을 온통 불바다로 만들며 파괴를 일삼았던 혼돈의 드래곤을 막고자 라할이 자신의 빛으로 천상의 드래곤을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게 해서 무려 10년 동안 싸움을 벌인 두 드래곤은 결국 힘이 빠져 각각 땅에 묻혔고,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심지어 그들이 묻힌 자리까지도 말이다.
그런 고대 드래곤 중 하나인 천상의 드래곤이,
“크롸라라라라-!!”
거센 포효를 터트리며 하늘 위로 비상했다.
그 영험한 존재감에 플레임과 골드 드래곤은 제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고, 나 역시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광경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또한 천계의 천사들 역시 마른침을 삼키며, 차마 범접할 수 없는 그 존재를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쿠웅-!
저 하늘을 뚫고 우주까지 나아갈 것처럼 보였던 천상의 드래곤이 곧 신전에 내려왔다. 그는 우리를 굽어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대인가? 나를 오랜 잠에서 깨운 자가.]
그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천상의 드래곤은 고개를 숙여 내게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순수한 빛의 힘을 가진 자여. 그대 덕분에 내가 잠시나마 이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구나. 고맙다.]
그가 내 주변에 펼쳐져 있는 속박 마법에 눈길을 보내자, 그것들이 한꺼번에 깨지면서 나와 드래곤들이 그곳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너희는······. 나와 같은 종족이로구나.]
천상의 드래곤은 내 뒤에 있던 플레임과 리탈리온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 둘은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렇습니다.]
[당신이 정말 실재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가? 후후. 드래곤에게조차 잊힌 존재라니. 그만큼 영겁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인가.]
혼돈의 드래곤과 싸운 지가 벌써 수천 년 전일 테니, 천상의 드래곤은 모든 것이 낯설게 보일 것이다.
[그런데 이건 무슨 상황인 거지?]
천상의 드래곤은 나와 천사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왜 이자를 너희가 핍박하는 것이냐?]
그러자 미카엘이 대답했다.
“그자는 어둠을 다루는 자입니다. 혼돈의 드래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어둠으로 세상을 파멸로 이끌 놈이란 겁니다!”
[어둠?]
천상의 드래곤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자는 내가 이제껏 봤던 그 어떤 것보다 순수한 빛을 가지고 있다. 그런 자가 어둠을 다룬다라······. 그럴 순 없다.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겠지.]
“하, 하지만 당신을 살려내지 않았습니까? 네크로맨시는 어둠의 힘! 그걸 어찌 빛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그 말은 어둠이 날 살려 냈다는 것이냐?]
천상의 드래곤은 무척 언짢다는 듯 미카엘을 노려보았다.
[그 어떤 어둠도 날 살려 낼 수 없다. 또한 그 어떤 어둠도 내 앞에서 버틸 수 없지. 나의 빛은 그런 것이니까. 즉, 이자가 날 살린 힘은 어둠이 아니라 단 한 점의 결점도 없는 빛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자가 가진 힘은 순수한 빛이다. 만일 그 빛에 어둠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었다면 난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장담하지. 만일 이자가 정말 어둠을 다룬다면, 그 역시 빛의 일부인 것이라고.]
나는 입꼬리가 씰룩이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천상의 드래곤이 내 보증을 서줬다.
이것보다 더 완벽한 증인이 어디 있겠는가.
미카엘은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고, 다른 천사들과 제사장들 역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용납할 수 없다.”
그때 이빨을 뿌득 갈며 미카엘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이 일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네가 천상의 드래곤이라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이건 모두 아슬란이 우리를 속이는 것이다. 이미 옛 시절에 사라져 버린 고대 드래곤이 신전 밑에 있었다는 걸 우리더러 믿으라는 것이냐?!”
미카엘은 그 특유의 말빨로 천사들과 제사장들을 선동했다.
“보아라. 아슬란은 어둠을 다루며 이 대륙에 파멸을 가져왔다. 그런데 뜬금없이 고대 드래곤이 나타나 아슬란의 빛은 순수한 것이라고 변호를 해 준다? 이걸 믿으라는 것이냐? 너희가 봐도 이상하지 않느냐?”
그러자 천상의 드래곤이 인상을 찌푸렸다.
[다른 건 몰라도 감히 나를 부정하는 것이냐? 이 땅에 빛이 가득하도록 한 것이 바로 나의 영혼이거늘. 그분의 보좌관이라는 자들이, 그분께서 만든 창조물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가?]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천상의 드래곤이 말했다.
[그분의 존재가······느껴지지 않는구나. 역시 그분도 죽음이란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신조차도 죽음을 이겨내지 못하다니. 참으로 덧없음이로다.]
“!?”
그 말에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른 이도 아닌, 천상의 드래곤에게서 라할이 죽었다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닥쳐라! 그분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신다. 그런데 넌 감히 그분의 이름을 헛되이 말하는구나. 그러므로 넌 아슬란이 만든 가짜다!”
천상의 드래곤은 결국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듯 보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정말 가짜라면, 너희가 그 가짜의 힘을 한번 막아 보거라.]
그러고는 미카엘과 그 천사들을 향해 브레스를 쏘아냈다.
콰아아아-!!
“헉!”
그들은 방어막을 펼쳐 휘몰아치는 브레스를 막아냈지만,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전부였다.
“크헉!”
“우욱-!”
브레스가 사라지자 그들은 일제히 제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토악질을 해댔다.
미카엘 역시 비틀거리는 몸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가볍게 브레스를 날렸을 뿐인데, 천사들이 버텨내지 못할 수준의 힘이라는 것이다.
[네놈들의 목숨을 앗아가려 했으나, 그분의 보좌관들이기에 살려 준 것이다.]
“······.”
[만약 더 의심이 된다면 언제든 얘기하거라. 내 이 길로 천계에 올라가 너희 모두를 짓밟아 줄 터이니. 두 번 다시 내 존재를, 그리고 순수한 빛의 힘을 의심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겠다.]
감히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의기양양하게 선동을 하던 미카엘 역시 알아서 고개를 숙였다.
무섭게 눈을 치켜뜨던 천상의 드래곤은 내 쪽을 바라보면서 부드럽게 표정을 풀었다.
[그대의 이름이 아슬란인가?]
“그렇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아슬란.]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토록 순수한 빛은 내 이제껏 라할 말고는 본적이 없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라할의 존재가 지금은 느껴지지 않아. 혹시······. 네가 라할의 화신인 건가?]
“······!?”
“라, 라할의 화신?”
“그, 그럴 수가.”
제사장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교황도 놀란 얼굴로 다가와 물었다.
“천상의 드래곤이시여. 아슬란 황제가 정말로 라할이라는 겁니까?”
[저 빛은 내가 라할에게서 느꼈던 빛이다. 오직 라할만이 가질 수 있는 빛을 인간이 가지고 있다라······. 그게 무슨 의미이겠느냐?]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이럴 수가······.”
“라할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셨단 말인가······!”
“하긴. 그동안 아슬란 황제의 행보를 떠올린다면 충분히 납득이 되는군.”
“괜히 악마 사냥꾼이란 칭호가 붙은 게 아니지.”
내가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천상의 드래곤에게 선동당한 제사장들이 나를 라할의 화신이라 부르고 있었다.
나를 증오하고, 또 끝없이 의심하던 그 눈동자는 온데간데없어지고, 경외와 존경이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더군다나 아무리 네크로맨시를 쓸 줄 아는 마법사라고 해도 나를 일깨우려면 라할에 버금가는 빛의 힘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마법사가 모인다고 한들 날 절대 살려낼 수 없다.]
“그, 그렇다는 건 정말로······.”
[그래. 아슬란 저자는 라할의 화신이 분명하다. 본인은 뭐라고 대답할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아닌데요.
천상의 드래곤이라더니 완전 까막눈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 말을 진짜 믿기 시작했다.
“오오. 라할이시여!”
“과연 그러셨군요. 우리 인간들을 보살피기 위해 친히 이 자리에 내려오셨다니!”
“라할이시여!!”
아니. 아니라고.
내가 무슨 라할이야.
웃긴 건 이들의 경배와 칭송에 나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추켜들며 꼿꼿하게 서 있다는 것이었다.
병신 같은 허세와 심취, 그리고 천상의 드래곤에게 선동당한 제사장들의 대환장 콜라보가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저, 저자가 라할의 화신이라니. 어디서 그런 말 같지도 않은 거짓말을······!”
그중에서 유일하게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는 건 바로 미카엘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옆에 있던 천사들조차 갈팡질팡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제 창조주의 빛을 보고도 부정하는 꼴이라니. 이래서 라할이 너희를 떠났던 것이구나. 반성하거라. 너희는 그의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장 추악해졌구나.]
“······!”
미카엘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의 눈치를 보던 천사들도 서서히 동조하기 시작했다.
“저, 정말 라할이시라고?”
“천상의 드래곤을 다시 살려낼 정도의 빛이라면 라할밖에 없잖아!”
“대체 왜 라할께서 인간의 몸으로······!”
“그보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감히 그분을 핍박했다니.”
이걸 대체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아니. 이미 수습하기에는 늦은 듯 보였다.
그렇다면 그냥 뻔뻔하게 나가면 되지 않겠는가.
“천계의 자식들은 들으라.”
그래서 나는 근엄한 목소리를 저들을 불렀다.
천사들은 일제히 말문을 닫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동안 너희가 지은 죄를 묻진 않겠다. 그러니 지금 당장 천계로 돌아가 스스로의 죄를 깨닫고 성찰하라.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형벌이다.”
“그, 그 말씀은······.”
“만약 그것이 싫다면 언제든 얘기하거라. 천계를 이 손으로 사라지게 만들어 줄 터이니.”
“!?”
그들은 얼른 내 앞에 달려와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전능하신 자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그동안 당신을 몰라봤던 죄를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그중에서 미카엘만큼은 끝까지 내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풀지 않았다.
난 그런 그에게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미카엘. 너의 대답이 들리지 않는구나.”
“······.”
하지만 끝끝내 그조차도 내 앞에 무릎을 꿇고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명령을······따르겠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몇 번이고 더 내게 허리를 숙이다 천계로 돌아갔다.
미카엘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한 것처럼 보였지만, 상관없었다.
당분간 천계가 이곳 일에 관여하진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라할이시여!”
“정말로 당신이 이 땅에 계셨군요!”
이윽고 제사장들이 엉엉 울음을 터트리며 바닥에 엎드렸다.
이런 뻔뻔한 대사기극에 헛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이들이 이러면 이럴수록 나의 허세는 강렬해지고, 황제의 위엄도 덩달아 올라갔다.
나는 이들의 경배와 찬사를 당연시여기고 있었다.
[이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끝난 것 같군.]
천상의 드래곤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네가 그때 내게 말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넌 이곳에서 반드시 마쳐야 할 일이 있다고 했지.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해줘도 모를 거라면서 말이다. 그리 인간의 몸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 그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거겠지?]
“······.”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천상의 드래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던 까닭이다.
라할이 반드시 마쳐야 할 일? 그게 뭐지?
[그 뜻을 꼭 이루길 바라겠다. 언제든 내 힘이 필요하면 그때 또 부르거라. 내 영혼은 항상 이곳에 있을 터이니.]
그렇게 천상의 드래곤도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려는 때였다.
[메인 퀘스트, ‘내가 하늘에 되겠다’의 진척도가 올라갔습니다.]
-라할을 소멸시키고 천계의 왕이 되십시오.
뭐? 라할을 소멸시켜?
원래 그런 말은 없었잖아.
잠깐.
그렇다는 건······.
‘라할이 진짜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