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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55화 (155/200)

155화

0.01초 소드마스터 155화

“폐, 폐하! 폐하!!”

“아니. 대체 이게 무슨······!”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기사들은 당황해 했고, 그 광경을 지켜본 백성들 역시 혼란에 빠졌다.

“방금 그건 분명 교황의 목소리였습니다.”

“나도 똑똑히 들었소. 교단이 폐하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그런데 이렇게 폐하만 데리고 가다니. 대체 무슨 꿍꿍이란 말인가!”

“그래도 플레임 님과 리탈리온 님이 함께 들어가셨습니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다만······. 교황이 폐하만 노려서 데려간 건 부정 못 할 사실이오. 라파엘 공은 어디에 있소? 어서 이 마법을 추적해야 하오!”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은 호레스의 목소리에 라파엘이 뛰어 왔으나, 그녀는 곧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제 힘으로는 교황의 신성력을 감히 마법으로 따라잡을 수가 없어요.”

“그, 그럼 어찌해야 한단 말이오?”

“추격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교황이 있는 곳은 신전일 테니까요. 베라크 제국에 속해 있는 왕국 중 신전과 가장 가까운 곳은 오메르 왕국입니다. 그쪽에 포탈이 설치되어 있으니, 서둘러 군사들을 보내시는 게 어떻습니까?”

호레스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폐하께서 사라지는 제국 초유의 사태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모두의 의견을 묻겠소. 나 호레스가 총지휘권을 가져도 되겠소?”

그러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호레스야 말로 아슬란의 최측근이며, 그에게 가장 충성을 바치는 인물이니까.

“이런 위기일수록 호레스 공께서 지휘를 하심이 옳습니다.”

대기사단장인 아론이 호레스의 편에 서니, 그는 더욱 거칠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전군을 오메르 왕국으로 보내시오! 그쪽 포탈을 이용하여 신전으로 갈 것이오!”

“예!”

호레스는 그리 명령을 내린 뒤 아슬란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부디 무사해야 할 터인데.

물론, 상대는 아슬란이다.

하늘과 땅이 무너져도 아슬란만큼은 살아남을 거라는 강한 확신이 호레스에게 있었다. 더군다나 그와 함께 레드 드래곤과 골드 드래곤이 같이 딸려 갔다.

그 셋만큼 이 지상에서 무서운 조합은 아마 없을 것이다.

교황이 무슨 일로 아슬란을 데려갔는지는 몰라도, 만약 허튼짓을 하려는 거였다면 지금쯤 크게 후회를 하고 있을 것이다.

* * *

“이, 이게 무엇이냐? 분명 아슬란만 소환하라 하지 않았느냐?”

“저도 분명 그랬는데······.”

갑작스럽게 이동을 하는 바람에 머리가 찡하게 아파왔지만, 나는 눈썹 하나 찡그리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섬광이 망막을 멀게 할 정도로 번쩍였으나, 절대 눈을 감지도 않았다.

이런 병신 같은 허세 덕분에,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아슬란······. 그 건방진 눈빛은 여전하구나.”

누구지?

목소리를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그때 빨려 들어가는 나를 붙잡았다가 같이 끌려온 플레임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뭐야 이거. 우릴 부른 게 너희들이냐?”

나는 뒤늦게 시야를 되찾아 주변을 살펴볼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이곳은 신전.

교황이 나를 빛의 부름으로 소환한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뜻밖의 손님이 있었다.

‘미카엘?’

저번 날 나한테 호되게 당해 놓고 빤스런을 친 놈이 아니던가.

미카엘과 더불어 다른 천사들도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왜 천계 놈들이 여기에 있는 거지? 인간 세계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놈들이.”

미카엘은 레드 드래곤과 골드 드래곤을 스윽 쳐다본 뒤 말했다.

“둘은 빠지거라. 이곳은 아슬란을 단죄하기 위해 모인 자리이니.”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는데.”

“지금 인간의 편에 서겠다고 말하는 것인가?”

“인간의 편인 건 모르겠고. 내가 아슬란의 편이라는 건 확실히 알겠네.”

플레임의 말에 감동의 눈물이 줄줄 흐를 것 같았다.

그래. 이놈이 평소 하는 짓이 좀 모자라 보여도 의리 하나는 있는 놈이다.

성으로 무사히 돌아가면 평생 맛있는 것만 먹을 수 있게 해 주마.

“근데 무슨 죄를 물으려는 건데? 얘가 평소에 지은 죄가 많긴 할 텐데.”

갑자기 감동의 쓰나미가 역행하며 팍 식어 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건 그대도 잘 알 것이다. 아슬란은 강력한 악마의 힘으로 죽은 자들을 일으켰으며, 나아가 레드 드래곤, 당신도 폭주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그 힘은 눈을 뜨지 말아야 할 존재도 일으키고 말았지.”

미카엘의 눈동자가 골드 드래곤에게 닿았다.

“골드 드래곤인 당신도 느꼈겠지? 혼돈의 드래곤이 깨어났음을.”

“······그래.”

“바로 그것이 아슬란의 죄악이다. 그는 악마의 힘으로 세상에 파멸적인 혼돈을 불러 왔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아슬란을 두둔하는 것인가?”

이거······좀 위험해 보이는데.

저렇게 말하면 내가 진짜 죽일 놈처럼 들리잖아.

하지만-

“건방지구나.”

드래곤들이 무엇을 판단하기 전에, 저들이 더 나를 옥죄이기 전에,

내 허세가 먼저 발밑에서부터 끓어 올라 혓바닥에 잠식했다.

“감히 누가 누구를 단죄한다는 것이냐?”

“뭐라?”

“이 대륙에서 그 무엇도 짐을 심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오로지 짐을 단죄하고, 심판하는 건 나 자신이다.”

그러자 미카엘이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저것이야 말로 라할의 전지전능하심과 그분의 권한을 능멸하는 발언이다! 이제는 신성모독으로 네 죄를 쌓아 가는구나.”

“그렇다면 라할을 이곳으로 데려와 보거라. 그가 정녕 짐을 심판할 수 있는 힘이 있는지 판단하겠노라.”

“뭐, 뭐라고?!”

미카엘과 천사들, 그리고 신전의 제사장들이 모두 내게 삿대질을 하며 호통을 쳐댔다. 그러나 그 누구도 라할을 불러내진 못하고 있었다.

“왜 그리 망설이는 게지? 너희는 라할의 보좌관이지 않은가. 근데도 이 중요한 순간에 라할을 부르지 못 하는 것인가?”

“······.”

미카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면 천계의 족속인 너희는 이미 알고 있는 거겠지. 라할이 오래전에 사라졌음을.”

“!?”

신전에 있는 모두가 놀란 눈을 떴다.

그들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것을 내가 대놓고 말해 버렸으니까.

이제 그들의 시선은 미카엘에게 꽂혔다.

“그분은······. 너희 모두를 지켜보고 계신다.”

“그렇다면 증명하거라. 라할을 이곳에 불러 감히 짐을 심판해 보라는 것이다.”

“닥쳐라! 이따위 일에 전능하신 분을 부르려 하다니. 건방지다!”

“결국 못 한다는 것이로군.”

나는 한심하다는 듯 비웃음을 지었다.

“가짜 신을 모시는 놈들이 단죄를 운운하다니.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

“이놈!!”

미카엘은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더는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아슬란은 악마의 힘을 빌어 이 대륙에 혼돈을 가져왔으며, 감히 라할의 이름을 욕 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빛의 심판을 놈에게 내리는 것이 곧 정의이다!”

“빛의 근원이라 불리는 라할도 없는 마당에 빛의 심판이라······. 너희는 너희가 섬기는 주인의 의중도 묻지 않고 마음대로 일을 벌이는 것이냐? 그거야말로 반란이 아닌가?”

미카엘이 소리를 지르면 지를수록 내 허세는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다.

“라할의 노예로 태어났으면 평생 그리 살거라. 왜 노예 주제에 주인 노릇을 하려 드느냐?”

“이, 이놈이 끝까지!”

“라할의 보좌관이라는 자들이 이리 썩어 빠졌으니, 그가 견디지 못하고 사라졌을 수밖에.”

“이놈-!!”

미카엘은 결국 내게 손을 뻗어 빛을 쏘아 보냈다.

콰아앙-!!

하지만 그 빛이 내게 닿는 일은 없었다.

플레임이 대신 그 힘을 받아 쳐냈기 때문이다.

“그래. 결국 이러려고 우리를 부른 거였구나?”

플레임의 붉은 힘이 용솟음치며 서서히 웅장한 드래곤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골드 드래곤 역시 플레임과 같이 힘을 합치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곳이 어디인지 망각한 모양이군.”

미카엘과 제사장들은 전혀 겁을 먹지 않고 있었다.

무려 이곳에 드래곤이 2마리나 있는데 말이다.

“여긴 신전이다. 그리고 왜 이곳에 신전이 세워졌는지 모르겠느냐? 이곳은 대륙 그 어느 곳보다 빛의 힘이 강한 곳이지. 이곳에서는 제아무리 너희가 드래곤이라고 해도 함부로 날뛸 수 없다.”

그 말과 함께 미카엘이 손을 뻗자 빛의 사슬이 플레임과 리탈리온의 몸에 묶였다.

그 옆으로 천사들과 제사장들이 주문을 외우자 우리 바닥 아래로 새겨진 마법진이 튀어나와 우리 셋을 그 자리에서 속박해 버렸다.

“뭐, 뭐야. 힘이 안 들어가잖아.”

“이런. 그래서 우릴 여기로 부른 거였나?”

잠시 잊고 있었다.

이곳은 신전.

그것도 대륙에서 가장 강한 빛의 힘을 지닌 곳.

알려진 바로는 라할이 이곳이 빛의 은총을 내려 이리되었다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여기가 이토록 강한 신성력을 가진 이유는, 이 밑바닥에 묻혀 있는 무언가 때문이다.

‘여기서는 천계 놈들이 제일 세지.’

빛의 힘이 가장 강한 곳이니, 당연히 천계 놈들의 힘도 덩달아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빛 보다는 어둠의 힘에 가까운 드래곤들에게는 쥐약 같은 곳이었다.

“어떠냐, 아슬란. 이제 이곳에서 네놈을 심판해 그 오만방자한 얼굴을 짓이겨 놓을 것이다.”

확실히 큰일은 큰일이었다.

이런 함정에 빠지다니.

플레임과 골드 드래곤이 몸부림을 치며 이 족쇄를 깨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어 보였다.

내가 찰나의 괴력을 쓴다면?

그럼 봉인을 잠시 풀 수는 있겠지만, 결국 같은 상황을 반복할 뿐이다.

이 땅의 근원이 되는 빛을 파괴하지 않는 한 말이다.

‘잠깐. 이 땅의 근원?’

그때 내 뇌리에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내 허세가 황제의 위엄을 등에 업고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고작 이딴 것으로 짐을 심판할 수 있으리라 믿는 너희가 불쌍할 지경이구나.”

“허세 부리지 말거라. 네놈은 거기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래. 그러니까 네가 아직도 그 모양, 그 꼴인 게지.”

“뭐야?!”

나는 미카엘의 신경을 박박 긁으며 손을 앞으로 들었다.

그러자 내 손바닥 위로 타락한 원혼의 불이 떠올랐다.

그 사악한 힘에 내 주변을 둥그렇게 막고 있던 빛의 원형이 타들어 갈 정도였다.

“저걸 보거라! 저것이 악마의 힘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맞다. 지금 보기에는 악마의 힘처럼 보일 것이다.

내 어둠 속성의 힘이 이곳에 깃들어 있으니까.

하지만,

“이게 정말 어둠의 힘이라 확신할 수 있는가?”

내가 이곳에 빛 속성 힘을 부여하자, 그것은 더 이상 검게 타오르지 않고 눈이 멀 것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아니?!”

“이, 이토록 강렬한 빛이라니!”

“이건······. 빛의 힘?”

제사장들은 물론 천사들까지 그 강한 빛을 보고 동요하기 시작했다.

미카엘은 그런 그들의 동요를 막고자 소리쳤다.

“놈이 속임수를 쓰는 것이다. 어둠의 힘을 다루는 자는 결코 빛을 다룰 수 없다! 눈속임으로 우리를 속이려 들다니. 어림도 없다!”

“그렇다면 너희에게 짐이 친히 보여 주겠다. 짐의 손바닥 위에 있는 이 빛의 힘이 무슨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뭐······?”

미카엘은 불안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는 왜 이곳이 신성력으로 가득한지, 무엇이 이토록 강한 빛을 발산하게 하는지 생각해본 적 있느냐? 정녕 라할이 내린 은총으로 이리되었다고 생각하느냐?”

“무,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보여 주마. 왜 이곳이 신성한 땅이 되었는지를. 그리고 짐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나는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는 원혼의 불을 신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그것이 찰나의 괴력과 함께 퍼져 나가면서 신전 저 밑바닥에 있는 무언가에 닿았다.

“대체 무얼 하려는······.”

미카엘이 말을 하는 것도 잠시.

쿠구구구구-!!

신전 전체가 흔들리면서 무언가가 힘차게 위로 솟구쳐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 이게 무슨!”

“으아아아-!”

“미, 밑에서 강렬한 힘이······!”

천사들과 제사장들 모두 균형을 잃고 쓰러지며 저 아래에서 올라오는 힘을 느꼈다.

이윽고,

콰아아앙-!!

거대한 드래곤 한 마리가 바닥을 꿰뚫으며 높이 솟아 올라왔다.

그것이 날개를 활짝 펴자 차마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빛이 사방에 퍼졌다.

“저, 저건······!”

미카엘은 그 존재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천상의 드래곤?!”

고대의 드래곤 중 하나이자, 빛의 수호자로 알려진 천상의 드래곤.

그것이 내 네크로맨시로 다시 눈을 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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