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0.01초 소드마스터 154화
“라할이시여. 오늘도 빛으로 저희를 보살펴 주소서. 부디 이 대륙을 지켜주시옵고, 악마들의 손아귀에서 저희를 구원하소서.”
매일 하루에 3번씩 라할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건 신전의 의무였다.
더군다나 교황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레이어스 교단에 소속되어 있는 모든 제사장이 신전에 모여 기도를 올려야만 했다.
당장 이들의 최고봉인 교황이 매일 같이 기도를 올리고 있는데, 어떻게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빠질 수 있을까.
새벽에도 그들은 졸음을 물리치며 교황과 함께 제단에 모였다.
“파견을 나간 제사장들도 매번 이 신전에 돌아오는 이유는 단순히 상징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 신전을 신성하게 여기며, 지키는 건 이곳에 빛의 힘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라할과 이 대륙이 연결되어 있는 통로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기도를 올린 이후에는 교황의 짧은 연설이 있었다.
이것도 무척 지루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모두 그녀의 말을 모두 귀 기울여 경청했다.
경청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 제사장의 의무였기 때문이다.
만약 교황에게 제사장을 파면시킬 수 있는 힘이 없었다면, 그녀가 가진 신성력이 높지만 않았다면 이러진 않았을 것이다.
꽤 많은 제사장이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신성력은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강하니까.
“여러분도 느껴지실 겁니다. 이곳에 강렬한 빛의 힘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건 라할께서 이곳에 축복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우리가 좌나 우로 치우지치지 않고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이곳 신전에는 그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강한 빛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그래서 파견을 나간 제사장들도 주기적으로 이곳에 돌아오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빛의 힘을 충전해 다시 세상으로 나가기 위함인데, 정작 그들도 왜 이곳에만 유독 빛의 힘이 강한지는 알지 못했다.
교황은 라할이 이곳에 강한 빛의 축복을 내려 대륙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녀도 정말 라할의 축복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에서인지는 자세히 아는 것이 아니었다.
“빛으로, 그에 대한 믿음으로, 우리는 그분의 종으로써 마땅히 사명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예, 교황님.”
그렇게 교황은 오늘의 연설을 마치려고 했다.
“······음?”
그런데 무언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머리가 차갑게 아파오고, 몸이 짓눌리는 느낌을 받는 것이 뭔가가 신전으로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아니나 다를까.
신전을 울리는 목소리에 제사장들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교황 역시 하던 것을 멈추고 위를 바라보았다.
[빛이 어둠에 잡아 먹힐 위험에 처했거늘. 너희는 한가롭게 기도나 하고 있구나.]
그 위압적인 목소리에 제사장들은 알아서 바닥에 엎드렸다.
“라할이시여!”
“라할이시여!!”
그들은 라할이 나타난 거라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라할이 아니다. 그분을 섬기는 천사일 뿐.]
“처, 천사?”
“그렇다면······. 천계인가?”
이윽고 신전 위에서부터 여러 명의 천사가 내려왔다.
넓게 뻗어 있는 순백의 날개가 그들이 천계의 족속임을 증명해 주었다.
하지만 그들이 결코 좋은 의도로 오지 않았다는 건 바보도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진한 살기에 제사장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빛의 사자들께서 여기는 어쩐 일로······!”
“빛을 섬기는 사자들이여.”
일단 제사장들은 다시 한번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 천사 중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이들 중에서 가장 크고 위엄 넘치는 이였다.
“나는 라할을 섬기는 대천사, 미카엘이다.”
교황도 그 앞에 고개를 숙였다.
“예.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네가 교황 레헤나로군.”
“그렇습니다.”
“건방진 년.”
“네?”
미카엘은 레헤나에게 손을 뻗었다.
쿠웅-!!
“윽!”
그러자 빛의 사슬이 교황을 묶으며 그녀를 강제로 무릎 꿇렸다.
“너에게는 교황이란 이름이 아깝구나.”
“왜, 왜 이러시는 겁니까?”
“몰라서 묻는 것이냐? 빛을 위협하는 어둠을 섬긴 대가다.”
어둠을 섬겨?
교황은 억울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신전에서 자랐고, 평생 빛을 경배하던 그녀였으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전 평생 빛에 순종했습니다!”
“닥쳐라! 네가 어둠에 타락한 아슬란을 섬긴다는 걸 내 이미 알고 왔거늘!”
“네? 그, 그게 무슨······.”
미카엘은 그녀를 더욱 강하게 속박하며 말을 이었다.
“아슬란은 깊은 어둠을 가지고 있다. 너도 놈의 어둠을 봤을 텐데? 사람들은 그를 빛의 기사라 부르며 칭송하지만, 어찌 그런 짙은 어둠을 가진 자가 빛의 기사라 할 수 있겠느냐? 그는 어쩌면······. 어둠의 주인인 레메게톤의 화신일지도 모른다.”
레메게톤의 화신?!
설마······. 이 말이 나오는 건 저번 그 일 때문에 그런 건가?
아슬란이 강한 마기를 뿌리며 죽은 자를 일으켰던 그 일 말이다.
“마, 말도 안 됩니다! 만일 그랬다면 제가 진작에 눈치를 챘을 겁니다!”
“쯧쯧. 그러니 네게 교황이란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눈앞에서 보고도 진실을 알지 못하다니. 벌써 악마들은 레메게톤이 인간의 몸으로 돌아왔다며 기뻐하고 있다. 근데 교황인 네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사슬은 레헤나의 목을 강하게 조여 왔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겠지. 네가 무능하거나, 혹은 알면서도 그에게 협조를 하고 있거나. 그렇다는 건 네가 곧 악마의 하수인이란 뜻이 아니겠느냐?”
이윽고 사슬이 풀리면서 교황은 바닥에 엎드려 토악질을 해댔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아슬란은 악마가 아닙니다. 제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한때 레헤나도 아슬란을 의심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가 품고 있던 빛을 보고 난 이후에는 의심을 거두었다.
그토록 강렬한 빛을 품은 자가 결코 악마일 리 없을 테니까.
“그리 확신을 한다면 증명해 보거라.”
“네?”
“네게는 빛의 부름이라는 능력이 있지 않느냐? 그 능력이라면 아슬란을 이곳에 소환할 수 있을 터. 이곳에 아슬란을 불러라. 우리가 직접 그를 판단하고 심판할 것이다. 과연 네가 옳은지, 우리가 옳은지, 살펴보자꾸나.”
천사들의 강압적인 눈동자에 이어 평소 교황을 아니꼽게 보던 제사장들도 그녀를 다그쳤다.
얼른 아슬란을 이곳에 불러 증명하라고 말이다.
“저는······.”
목걸이를 매만지는 레헤나의 손이 잘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 * *
“황제 폐하 만세!!”
“만세!!”
황제로 즉위된 이후 처음으로 도시에 나왔다.
그러자 백성들은 나를 보고 두 팔을 높이 들며 만세를 외쳤다.
“폐하! 부디 베라크 제국에 무궁한 영광을-!”
“앞으로도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나는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치안도 무척 안정적이고, 경제 상황도 바닥에 금은이 굴러다닐 정도로 풍족했으며, 백성들의 행복도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최고조를 뚫고 있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퀘스트가 없네.’
황제가 된 이후부터는 소소한 일상 퀘스트가 완전히 끊겨 버렸다.
왕일 때는 그래도 몇 개씩 도시에서 진행할 수 있는 퀘스트가 나왔었는데, 이놈의 시스템이 내 지위와는 맞지 않다고 여겼는지 그런 퀘스트들을 원천 차단해 버렸다.
아참. 그리고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여긴······. 내가 봤던 그 어느 도시보다도 제일 풍족하고 행복해 보이는군.”
골드 드래곤이 플레임처럼 아예 이곳에 못을 박았다는 것이다.
“네. 그리고 맛있는 음식들이 넘쳐나지요. 저번에 갔던 꼬치집 괜찮았죠?”
“그래. 그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봤다.”
“후후. 고작 그 정도로 그러시다니. 더 맛있는 게 여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그, 그게 정말이냐?”
“그렇다니까요?”
플레임 저 정신 나간 놈이 골드 드래곤을 옆에 끼고 맛집 투어를 다니면서 저놈은 쭉 이곳에 눌러 살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과연 폐하의 위엄이 대단하십니다. 그 어느 역사에서도 드래곤 둘을 수하로 거느린 자는 없었습니다.”
저놈이 내 수하로 보이냐.
언제든 수틀리면 날 한입에 씹어 먹을 수 있는 놈인데.
내 그런 속도 모르고 호레스는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어찌 보면 이게 나은 걸 수도 있지.’
플레임이 저렇게 열심히 골드 드래곤을 데리고 다니며 세속적인 것에 물들이게 만든다면 우리 베라크 제국을 위해 놈이 싸워 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렇게 되면 악마 군단 100만이 무섭지 않다.’
······진짜 100만이나 몰려온다면 무섭긴 하겠다만.
무려 드래곤 두 마리다.
저거 하나만 있어도 왕국 하나가 통째로 날아갈 판인데, 두 마리면 그 위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거기다 골드 드래곤은 드래곤들의 왕 역할을 했던 놈이라, 저놈을 따르는 다른 드래곤들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터.
‘그럼 나야 바랄 게 없지.’
그 드래곤의 왕인지 뭔가 하는 퀘스트도 있긴 한데, 그건 사실상 클리어가 불가능한 거라 이미 포기한지 오래였다.
그리 생각하며 길을 가던 중.
투웅-!!
갑자기 내 앞에 난데없이 빛의 기둥이 떨어졌다.
‘엄마야.’
이놈의 허세가 아니었다면 화들짝 놀라 뒤로 자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그렇고, 이놈의 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과연 무시무시한 허세였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주변을 경계해라!”
“폐하를 지켜라!”
그제서야 호위 기사들이 호들갑을 떨며 내 주변을 철통같이 방어했다.
대체 뭐야 이건?
[빛의 기사이시여. 대륙 최초의 제국을 일으킨 황제이시여. 라할과 빛을 따르는 교황 레헤나가 당신의 도움을 청합니다.]
이 목소리는 레헤나의 것이었다.
[우리 레이어스 교단이 폐하의 자비로운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디 저희를 도와 이 신전을 구해 주십시오. 진실한 빛께서 당신을 인도하실 겁니다.]
갑작스러운 레헤나의 요청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기둥은 분명 레하나의 것이다.
빛의 부름이란 스킬을 쓴 것인데, 이 기둥을 타고 가면 레헤나 앞으로 갈 수가 있다.
그렇다는 건-
‘교단에 악마들이 쳐들어 왔다는 건가?’
그럼 내가 가기보다는 차라리 내 정예 멤버들을 보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괜히 갔다가 내가 악마들한테 둘러 싸여 맞아 죽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라일라칸.”
“예.”
“너는 플레임과 골드 드래곤을 데리고 가서······.”
그래서 라일라칸을 시켜 빛의 기둥을 따라 신전에 보내려고 하는 때였다.
[새로운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갑자기 내 앞에 퀘스트 알림이 떴다.
[레헤나의 요청]
-교황 레헤나가 당신의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교황의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보상으로 10골드를 얻습니다.
그래. 뭔가 이상하다 했다.
이런 일이 그냥 발생할 리 없지.
“모두 따르거라.”
“예. 폐하!”
하는 수 없이 나는 기둥에 가까이 다가갔다.
“우리 모두 가겠다. 기둥을 펼쳐라.”
[······미안해요. 아슬란.]
그런데 기둥에서 나오는 교황의 목소리가 무척 수상했다.
미안해? 뭐가?
파앗-!!
그리고 우리 군대 전체를 데려가야 할 기둥은 의도한 것처럼 나만 쏙 데려가는 것이 아닌가?
‘이, 이년이 지금 뭐 하는 짓이야?’
하지만 내 옆에 있던 플레임이 기둥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내 발목을 붙잡았다.
“잠깐! 으어억!”
그러자 반사적으로 골드 드래곤은 플레임을 붙잡으면서 딱 우리 셋만 기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