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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35화 (135/200)

135화

0.01초 소드마스터 135화

“네가 정말 빛의 증표를 받은 기사가 맞긴 하구나. 이것이 라할의 기둥인가?”

내가 타고 온 빛의 기둥을 라일라칸은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곳에서 작은 천사들이 떠다니며 성스러운 찬가를 부르고 있으니, 누구라도 신기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빛의 기둥이 사라지자 플레임이 맹수의 울음을 터트리듯 말했다.

“피 냄새가 그득하군.”

플레임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하자 라일라칸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악마들을 잡고 오는 길이다.”

그리 반박을 했지만, 플레임의 코를 속일 순 없었다.

“이 냄새는 악마의 것이 아니다. 인간의 것이지. 얼마나 많은 인간을 죽였으면, 악마의 냄새가 묻힐 정도란 말인가?”

“······.”

그 말에 플레임 곁에 모여 있던 기사들이 라일라칸을 경계했다.

“글쎄. 나보다는 네놈이 더 많은 인간을 죽이고 다니지 않았나? 그 오랜 세월 동안 말이다.”

“이 플레임 님은 누구처럼 마음대로 학살을 하고 다니지 않는다. 하늘의 제왕이라는 그 명성에 걸맞게 자비로웠지.”

“드래곤이 자비롭다라. 지나가던 개가 웃겠구나.”

“오냐. 내 너한테는 그 자비를 베풀지 못하겠구나. 여기서 한번 드래곤의 분노가 얼마나 뜨겁고 강렬한지 보여 줄까?”

나는 저 둘이 정말 한 따까리하기 전에 앞으로 나섰다.

“그만.”

“아니. 저놈이 먼저 성질을 건들잖아.”

난 둘을 번갈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유치한 싸움은 그만하거라. 너희 둘의 기 싸움은 시시하기 짝이 없구나.”

“······.”

그렇게 한번 허세를 부려준 뒤 나는 먼저 집무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라일라칸. 할 말이 있는 거 같으니, 따라오너라.”

“그러지.”

난 라일라칸과 함께 집무실에 들어왔다.

‘이놈은 갑자기 왜 온 거야?’

심장이 떨리고 입이 바싹 말라 가는 것 같았으나, 그렇다고 여기서 문전박대를 했다가는 저 미친놈이 무슨 짓일 벌일지 몰랐다.

‘그렇다고 이놈을 진짜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인데.’

엘티히는 라일라칸을 죽여야 한다며 이를 바득 갈았지만, 과연 그러는 편이 나을까?

물론, 이놈이 이대로 계속 폭주를 한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멈춘다면 괜찮지 않을까?

“아슬란.”

그때 라일라칸이 내 이름을 불렀다.

머릿속은 무척 복잡하고, 심장이 떨릴 만큼 겁이 났지만, 나는 상석에 앉아 거만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말하라.”

라일라칸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너도 내가 과하다고 생각하느냐?”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면서 말을 이었다.

“네가 엘티히와 함께 나를 지켜봤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엘티히는 아마도 길길이 날뛰었겠지. 내가 저지른 짓을 보면서. 하지만 나는 그저 필요한 일을 했을 뿐이다. 이 대륙에 꼭 필요한 일 말이지. ”

“학살이 언제부터 필요한 일이었지?”

“그들의 사정을 일일이 봐줘 가면서까지 악마를 처치하려 한다면 반드시 패배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악마는 누군가를 봐줄 필요가 없이 몰아치기만 하면 되거든. 악마를 잡기 위해서는 우리도 악마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르다.

내가 알고 있는 라일라칸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저 대사, 꽤나 익숙하게 들렸다.

라일라칸은 악마를 물리치기 위해서 악마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원래 대사에서는 악마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내가 알고 있는 라일라칸이란 캐릭터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하필이면 말이지.’

라일라칸을 살린 건 어디까지나 악마를 퇴치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놈이 악마를 알아서 잘 처단할 수 있게 눈을 감아줘야 하는 건가?

그런데-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 라일라칸.”

내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이놈의 허세가 먼저 치밀어 올라 선수를 쳐버리고 말았다.

“내가 어리석어?”

“그래, 이 한심한 놈.”

“······!”

라일라칸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내 목을 칠 기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들끓기 시작한 내 허세는 마음껏 떠들어댔다.

“악마를 몰아내기 위해선 악마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느냐? 웃기는 일이구나. 본좌의 손끝 하나면 먼지처럼 사라지는 놈들이거늘. 고작 그따위 놈들을 없애려고 본인도 그 저급한 악마가 되겠다?”

“자신감이 넘치는군. 테키나 족속은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다. 만일 그들이 믿고 따르는 레메게톤이 살아나게 된다면······.”

“결국 본좌의 손에 죽게 되겠지.”

“!?”

허세에 절여진 내 머리와 혀는 이미 이성을 벗어난 상태였다.

“레메게톤이 깨어나게 된다면, 그것이 그의 마지막 실수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후회가 될 터.”

“······.”

“그런데 악마가 되겠다? 그렇다면 라일라칸, 네놈도 본좌의 손에 죽을 수밖에 없다. 정녕 그걸 바라는 것이냐?”

이 허세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간을 배 밖에 내놓은 것처럼 지껄이는 중이었다.

하지만 우스운 것은,

“······.”

라일라칸이 입술을 꾹 깨문 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설마 이 말빨이 또 기가 막히게 먹혀들어가는 것인가?

그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허세가 한번 더 들끓어 올랐다.

“본좌의 진노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그쯤에서 그만두거라, 라일라칸.”

“그쯤에서 그만두라고?”

“이미 선을 넘었어도 본좌가 너를 아직까지 살려 두고 있는 건, 300년 전 대륙을 구한 그 공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이상 넘는다면 그땐 본좌도 더 이상 널 과거의 영웅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

“그러니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대륙의 영웅다운 라일라칸으로 돌아오너라.”

그래. 이 정도면 됐다.

내가 봐도 아주 적절한 워딩이었다.

심하게 상대를 자극하지도 않고, 또 얼른 대륙의 영웅으로 다시 돌아오라는 말도 남기고.

‘캬~ 이 정도면 청산유수지.’

나는 내심 스스로를 뿌듯해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을까?

“아슬란. 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날 비참하게 만들 생각이더냐?”

뭐, 뭔가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지는 거 같은데?

파직-! 파지직-!!

라일라칸의 몸에 전류가 미친 듯이 튀기 시작했고, 그의 손에는 제 마력으로 만들어진 검이 들려 있었다.

“나는 라일라칸. 300년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이 대륙의 최강자로 남을 사내다.”

놈의 힘이 용솟음치듯 끓어 올라 그 공포스러운 기세가 몸을 떨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감히 네놈이 날 능멸하는 것이냐? 네가 정녕 이 라일라칸을 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그의 목소리에도 강한 마력이 실려 하마터면 고막이 터져 피를 줄줄 흘릴 뻔했다.

“늘 궁금했었지. 과연 네놈과 싸우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그것을 여기서 증명할 수 있겠구나.”

그렇게 심장을 움켜쥐어 트는 듯한 살기가 흘러나고 있었으나, 나는 겉으로 아주 태평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재롱을 부리려는 것이냐?”

그 말에 라일라칸이 실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재롱인지, 아니면 네놈의 목을 치는 죽음의 선고인지 어디 한번 받아 보거라.”

그러고는 라일라칸의 검이 냅다 내 앞으로 떨어졌다.

콰아아아앙!!

* * *

라일라칸은 혼신의 힘을 담은 일격을 날렸다.

정말 상대를 죽일 생각으로 말이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자들은 그냥 가볍게 힘도 별로 들이지 않고 죽여왔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힘을 불어 넣은 것이었다.

그런데-

촤아아아-.

이 집무실 전체가 통째로 날아갈 만큼 강력한 일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 어떻게······.”

아슬란은 여전히 멀쩡하게 제 앉은 자리에서 라일라칸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한심하다는 듯이.

“고작 그따위 힘으로 본좌를 죽일 수 있겠느냐? 조금은 다른 놈들과 다를 줄 알았더니. 쯧쯧.”

라일라칸의 이마에 혈관이 솟아올랐다.

이런 수모는 처음이었다.

감히 나 라일라칸 앞에서 저런 표정을 짓다니!

그는 방금 전보다 훨씬 더 크게 힘을 불어넣으며 그대로 아슬란에게 내려쳤다.

콰아아앙-!!

집무실을 무너뜨린 일격이 이번에는 그 바깥에 있는 건물들까지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고작 이것뿐인가?”

“······!”

라일라칸의 공격은 아슬란에게 결코 닿지 못했다.

그의 앞에 펼쳐진 방어막이 모든 공격을 흡수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럴 순 없다. 혼신의 힘을 담은 일격이었거늘.”

그 말에 아슬란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이 고작 네놈이 가진 힘의 전부였다면······. 실망이군.”

스르르릉-!

그리고 가벼운 손짓에 아슬란의 검이 검집을 빠져나와 허공 위를 비행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보여 주마. 이 아슬란이 가진 힘의 일부를.”

바로 그 순간.

우우우웅-!!

검이 강렬한 울음을 터트리며 진동했다.

그 진동이 퍼져 나가면서 라일라칸이 붙잡고 있던 마력검 역시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이윽고,

⎯⎯⎯!

하늘을 가를 것만 같은 검강이 허공을 찢으며 라일라칸 앞으로 쇄도했다.

본능적으로 라일라칸은 마력장을 펼쳤으나,

콰콰콱-!!

“!?”

마력장은 허무하게 뚫려 버렸다.

이번에는 라일라칸이 검을 들어 다가오는 검강과 부딪혔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무리였던 것인가.

“으헉!”

콰콰콰콰쾅-!!

무지막지한 검강의 힘에 밀려 그는 저 먼발치까지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그가 펼친 마력장, 마력검, 몸에 심어져 있는 모든 마력이 튀어나와 검강을 막아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라일라칸은 주마등이라는 것이 생전 처음으로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최강자가 되어 대륙을 호령하고, 악마들을 물리치며 화려한 부활을 꿈꿨으나 현실은 새로운 최강자에 의해 목숨을 잃기 직전이었다.

‘이럴 수는······!’

그렇게 눈이 질끈 감기려 할 때였다.

키이이잉-!!

끝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던 검강이 라일라칸의 목숨을 앗아가려는 순간 제자리에 멈춰 섰다.

“······?”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발악을 하듯, 검강이 몸부림을 치고 있었지만.

촤악-!!

무언가가 뒤에서 붙잡고 있는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라일라칸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검강이 갑자기 왜 멈춰서 소멸된단 말인가?

‘설마······.’

그때 그의 눈에 닿은 건 저 멀리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아슬란이었다.

‘네가 날 살려준 것이냐?’

대체 왜?

“크읍-!”

그러나 그의 몸은 성치 못했다.

라일라칸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검강이 몸을 쪼개 버리기 전에 사라지긴 했으나, 그의 모든 방어력을 무력화시키고 파고들었었기 때문이다.

만약 조금만 더 늦었다면 그대로 검강이 라일라칸의 몸을 자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아슬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슬란의 힘이 무척 뛰어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설마 이 정도 차이가 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륙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천하의 라일라칸이 고작 저 손끝 한번에 이 지경이 될 줄은 말이다.

‘그래서 그런 말을 했던 건가?’

악마든 레메게톤이든, 자신의 손가락 하나로 다 지워 버릴 수 있다고 한 것이?

“후우-”

라일라칸은 길게 심호흡을 했다.

끝없는 마력의 저주로 인해 다 써버렸단 마력이 빠르게 채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라일라칸의 몸을 회복시키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것이 성흔인가?’

오직 라할과, 그 신성한 힘을 온전히 다룰 수 있는 자만이 남길 수 있다는 성흔.

라일라칸은 제 상처에 담겨진 성흔에 의해 제대로 치유가 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터벅- 터벅-

라일라칸은 아슬란을 향해 터벅터벅 걸음을 이어갔다.

아직 끝이 아니라는 투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이제야 느껴지느냐?”

그때 아슬란의 목소리에 발걸음이 멈췄다.

“너와 나의 힘의 차이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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