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0.01초 소드마스터 134화
“대체 내 왕국에서 이게 무슨 짓이냐!!”
나타샤의 앙칼진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녀를 따라 출진한 마법 부대는 이미 잿더미가 되어 버린 성과 마을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카르만! 왕국끼리 분명 서로 협력하고 연합하여 악마에 대항하기로 약속을 했을 텐데? 모든 왕국이 그때 분명히 하나가 되기로 협약을 끝냈거늘. 이게 무슨 짓이냐!”
칼라 왕국의 군대이니, 당연히 카르만에게 모든 책임이 있을 터.
하지만 나타샤에게 대답하는 것은 카르만이 아니었다.
파직-! 파지직-!!
끝없이 마력이 흘러넘치는 능력.
그로 인해 생겨나는 스파크.
나타샤는 그 마력을 통해 하늘을 천천히 비행하고 있는 라일라칸을 올려다보았다.
“저건······.”
마법에 통달한 나타샤이기에 상대방의 몸에서 흐르는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저것이 영원의 마력?”
마력이라는 것은 한번 쓰고 나면 포션, 혹은 휴식을 통해 충전을 해줘야 한다.
체력과 같은 개념이라는 것.
하지만 영원의 마력은 그야말로 무한대의 마력을 자랑한다.
끊임없이 생성되고, 아무리 마구잡이로 써대도 마르지 않는 마력.
그 힘은 마법사들이 선망하는 능력이기도 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저주이기도 했다.
마력을 계속 내보내지 않으면 몸이 한계에 다다라 터져 죽을 수도 있고, 그 주체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정신이 미쳐 버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원의 마력이라는 저주에 걸린 사람들은 전부 꽃을 피우기도 전에 죽어 버렸다.
하지만 단 한 명.
오직 단 한 명 만은 그 저주를 버텨냈고, 대륙 최강자가 되었다.
그가 바로,
“설마······. 라일라칸?”
라일라칸은 나타샤 앞에 내려왔다.
“날 알아보는군.”
“그 영원의 마력에 잡아 먹히지 않은 사람은 라일라칸, 당신이 유일하거든. 그런데······. 대체 어떻게 당신이 살아 있을 수 있는 거지? 분명 300년 전에 죽었잖아.”
“그저 잠들어 있었을 뿐. 아직 이 대륙에 악마들이 날뛰는데 내가 어떻게 죽을 수 있겠나.”
나타샤는 황폐화가 되어 버린 땅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당신이 이렇게 만든 거야?”
“그래.”
“대체 왜!?”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악마들이 이 땅을 더럽히고 있는 것을 내가 막아 주었으니.”
라일라칸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가책도 없어 보였다.
“역겨운 새끼. 네가 한 짓이 뭔지도 모르는 거지?”
그녀의 말에 라일라칸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나타샤. 너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다. 악마의 꾐에 넘어가 죄 없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일 뻔했다지? 그런 년이 감히 나한테 무어라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나타샤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래. 그럼 한 번 더 해봐야겠네. 그때 사실 죽은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조금 아쉬웠거든.”
나타샤는 그때 사건 이후 봉인해 둔 자신의 붉은 마력을 사방에 퍼뜨렸다.
“!?”
붉은 마녀, 나타샤.
그녀가 가진 매혹의 힘은 사람의 정신을 뒤흔들고 오직 그녀에게 복종하게 만든다.
과연 그녀의 마법이 퍼지자마자 칼라 왕국의 병사들이 털썩 앞으로 쓰러지며 나타샤 앞에 천천히 기어오기 시작했다.
라일라칸 역시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강렬한 매혹 마법은 라일라칸의 뛰어난 정신력까지 침투했다.
“대단하군. 이 정도의 광역 정신 마법이라니.”
“자존심 그만 부리고 당신도 나한테 그만 복종하지 그래? 혹시 알아? 이 달콤한 몸을 품을 수 있을지.”
라일라칸은 잠시 주변을 바라보았다.
칼라 왕국의 기사들은 벌써 나타샤의 이름을 목청껏 외치며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것이 나타샤가 가진 매혹 마법인가.
정신 계열 마법에는 면역이라고 알려진 자신의 머릿속이 온통 나타샤로 가득 채워지는 중이었다.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파지직-!!
라일라칸은 마력을 끌어올려 강한 전류를 일으켰다.
뇌격은 나타샤가 아닌, 라일라칸 바로 자신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콰아앙-!!
“······?”
나타샤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스스로를 공격하다니.
그녀의 마법이 시킨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제야 정신이 드는군.”
라일라칸은 매혹 마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모습이었다.
그는 나타샤에게 달려가 그녀의 목을 붙잡았다.
“윽-!”
“나타샤 님!!”
나타샤의 부하들이 라일라칸에게 마법을 날렸으나, 그는 가볍게 그것들을 쳐낸 뒤, 마력장으로 그들을 순식간에 쓸어 버렸다.
과연 엄청난 힘이었다.
“당황한 얼굴이군. 내가 네 매혹 마법 하나 벗어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나?”
“아니. 라일라칸 정도면 내 마법이 먹히지 않을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어. 다만, 풀려 나는 게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고 해야 하나?”
한 마디를 지지 않는 나타샤였다.
“아슬란은 아예 그 마법이 걸리지도 않았거든.”
그 말에 라일라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목을 붙잡은 손이 떨려 오는 것을 느낀 나타샤는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너도 그 사람을 이미 만났구나? 그럼 이렇게 활개를 쳐서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꽈악-!
라일라칸은 나타샤의 목을 더욱 강하게 붙잡았다.
“난······. 이 대륙의 최강자다.”
숨이 막혀 얼굴이 시퍼렇게 변하고 있었지만, 나타샤는 끝까지 자기 할 말을 했다.
“이젠······. 아니야. 병신아.”
화가 머리끝까지 난 라일라칸은 나타샤를 땅에 처박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라일라칸을 향해 마법을 펼쳤다.
하지만-
스걱-!
섬뜩한 절삭음이 울려 퍼지고, 나타샤의 몸에 피가 튀어 올랐다.
“아······.”
그녀는 털썩 제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아름답게 꾸며온 몸에 직선으로 길게 검상이 새겨졌다.
라일라칸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나타샤에게 다가갔다.
“이래도 내가 그놈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나?”
나타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발끝에도 못 미치지. 그 사람이 널······. 반드시 죽이러 올 거야.”
“아슬란과 각별한 사이였나?”
“스승과 제자의 은밀한 사생활이라고만 해두지.”
“······?”
나타샤는 곧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쓰러졌다.
“먼저 가서······. 기다리마.”
그렇게 눈을 뜬 채로 싸늘하게 식어 가고 있는 나타샤를 카르만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라일라칸 님. 설마 나타샤까지······.”
“악마를 처단하는 일에 있어 반기를 드는 자는 죽인다. 이것이 내 원칙이다.”
“나타샤는 마법계에서 크게 존경을 받는 인물입니다. 이런 자를 함부로 죽인다면······.”
“그럼 그놈들도 한꺼번에 다 죽여 버리는 수밖에. 적과 아군도 구분하지 못 하는 멍청이들이 아니냐? 내가 이 대륙을 구원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거늘.”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카르만은 헛소리를 지껄이며 폭주하고 있는 라일라칸이 두려워지고 있었다.
“나타샤 님!!”
“이럴 수가! 나타샤 님이!?”
라일라칸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저 앞에서 나타샤의 이름을 외치고 있는 샤나 왕국의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아직 끄나풀들이 남아 있었군.”
그가 손을 들자, 대기 중이던 라일라칸의 충성스러운 원혼 기사단이 괴성을 지르며 진격했다.
* * *
[타락한 원혼의 불]
-어둠의 저주가 걸린 원혼의 불입니다.
-저주를 받은 원혼의 불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단, 원혼의 불을 사용할 시 타락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
-원혼의 불 능력은 하루에 한 번만 사용이 가능하며, 시전자의 힘에 비례합니다.
타락한 원혼의 불?
이건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제까지 라일라칸이 부하들을 살리려고 영원의 불을 쓸 때마다 엘티히를 비롯한 여러 마법사가 영원의 불이 폭주하는 걸 억누르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이 아이템을 가질 기회가 없었다.
‘설마 네크로맨시 같은 건가?’
한번 가볍게 써볼까 싶다가도-
‘타락의 저주는 또 뭐야?’
이걸 한번 쓰게 되면 타락의 저주라는 이상한 디버프가 걸리게 된다.
가뜩이나 아슬란은 스텟도 약해서 저런 디버프에 한번 걸리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결국 쓸 수가 없다는 건가?’
일단 혹시 모르니 챙겨는 두겠다만.
‘완전 요물단지가 따로 없는 거네.’
나는 원혼의 불을 넣어 두었다.
“어떻게 영원의 불을······.”
엘티히는 여전히 놀란 얼굴이었다.
나도 혹한의 룬이 설마 영원의 불마저 얼려 버릴 만큼의 힘을 가졌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찰나의 괴력일 것이다.
그 힘에 비례하여 혹한의 룬이 발동을 한 것이니까.
“고작 불일 뿐이다.”
“영원의 불은 태초부터 있었던 신의 성물 같은 것이다. 그런데 고작 불이다?”
엘티히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무언가 교신이라도 받고 있는 것인지, 갑자기 인상을 굳히며 말했다.
“뭐? 그게 정말이냐? 그래. 알겠다.”
엘티히의 표정이 한껏 어두워졌다.
“방금 우리 애들로부터 소식이 하나 왔다, 아슬란. 같이 가볼 테냐?”
“······?”
내가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엘티히의 공간 이동 마법이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은 아까 라일라칸이 휩쓸고 있던 샤나 왕국의 마을이었다.
아주 위에 뭐 하나 남김없이 쓸어 버린 터라 여기가 큰 마을이었는지, 작은 마을이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가루처럼 만들어 버렸다.
“아슬란. 저곳을 보거라.”
그런데 그곳에 한 시체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시체 주변으로 수많은 마법사가 죽어 있었다.
“······?”
눈에 익숙한 붉은 머리카락에 살결이 드러난 드레스.
나는 설마 하는 마음에 천천히 다가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나타샤?!’
라일라칸 이 미친놈이 설마 나타샤까지 죽였다고?
믿기지 않았다.
라일라칸이 이렇게 폭주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러다가 악마들이 대륙을 먹어 치우기 전에 라일라칸이 먼저 죄다 죽여 버리는 건 아닌지······.
파직-!
엘티히는 나타샤의 몸에 손을 가져다 대다 튀어 오르는 스파크에 얼른 뗐다.
“마력장이구나.”
나타샤 몸 주변으로 펼쳐져 있는 마력장.
라일라칸의 전매특허 마법이라 할 수 있었다.
그의 칼에 의해 상처가 입은 사람은 몸 주변에서 마력장이 생성되는데, 그 몸을 누구도 만질 수가 없게 된다.
즉, 마력장으로 인해 상처를 치료할 수도 없고, 힐링 마법을 쓸 수가 없다는 것.
그로 인해 상대방은 천천히 고통 속에 죽게 된다.
‘생각해 보니 처음부터 미친 또라이 새끼긴 했네.’
그 마력장이 나타샤의 몸 주변에 나 있었다.
여기 마법사들 시체는 그런 나타샤를 치료하려다 봉변을 당한 것일까.
엘티히는 다시 한번 나타샤의 몸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러자 이번에는 더 강한 스파크가 튀었다.
“라일라칸. 이 지독한 놈. 대체 얼마나 큰 분노와 원한이 있다고 이 정도로 강력한 마력장을······.”
엘티히는 마력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보통 마법으로는 안 되겠구나.”
그녀는 크게 마력을 끌어올리려 하고 있었다.
엘티히 정도 되는 수준의 마법사라면, 큰 마법을 부릴 때마다 주변에 마력 폭풍이 일어난다. 그래서 나약한 놈은 거기에 잘못 끼어 있다가 폭풍에 휩쓸려 쥐도 새도 모르게 죽기 일쑤였다.
‘어어. 여기서 갑자기?’
그만큼 마력장이 강하다는 건가?
“어차피 넌 강하니, 내 마력 폭풍에는 꿈쩍도 하지 않겠지?”
아니요. 잘못하면 저도 죽는데요.
바로 그때였다.
“그만.”
나는 낮게 음성을 깔며 엘티히에게 말했다.
“소란 피울 거 없다, 엘티히.”
그러고는 나타샤 앞에 쭈그려 앉아 손을 뻗었다.
“잠깐. 그 마력장은 굉장히 강한······.”
파직-! 파지직-!!
마력장 안에 담긴 라일라칸의 마력이 내게 적개심을 드러내며 단순히 경고하는 것이 아닌, 필사적으로 공격을 해왔다.
콰콰콱-!!
그 마력들은 내 몸을 타고 올라 이대로 바싹 나를 태워 버리려고 했으나.
촤아아아-!!
내 몸에서 빛나는 찬란한 빛이 그 마력들을 전부 지워 버렸다.
하루에 한 번, 즉사급 데미지를 흡수해 주는 신성한 보호가 나를 지켜 준 것이었다. 그리고 마력장이 한꺼번에 나한테 덤벼든 덕분에 나타샤의 몸에 있던 마력장은 완전히 사라졌다.
“대체 어떻게······.”
엘티히는 보면 볼수록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을 띠었다.
나는 싸늘하게 식어 버린 나타샤를 바라보다 그녀의 눈을 감겨 주었다.
‘라일라칸을 이대로 두면 진짜 위험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엘티히에게 말했다.
“나타샤를 고향으로 돌려 보내 줄 수 있겠나?”
“······그러지.”
난 몸을 돌려 이제 그만 왕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 나를 엘티히가 붙잡았다.
“라일라칸은 이미 선을 넘었다, 아슬란.”
“······.”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지. 그는 어쩌면 악마보다 더 위험한 존재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을 막아야 돼.”
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간 이동을 통해 왕국으로 돌아왔다.
빛에 기둥을 타고 돌아온 나는 곧바로 기사들과 신하들을 불러 모으려 했으나-
“기다리고 있었다, 아슬란.”
그곳에서 라일라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