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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50화 (50/200)

50화

0.01초 소드마스터 50화

“신기하네요. 비행을 하는 몬스터들은 조련하는 게 굉장히 힘들다고 들었는데. 저희 엘프족도 몬스터와 교감을 많이 하지만, 비행 몬스터들은 유독 힘들거든요.”

정령의 힘을 사용하는 엘프는 몬스터와도 교감을 통해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자쿤 같이 포악한 놈들은 애초에 교감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제가 알기로 자쿤은 드래곤을 따르는 몬스터 중 하나라고 해요. 그래서 가끔 드래곤 뒤로 자쿤 무리가 따라 붙기도 하죠. 그런데 인간을 따르는 자쿤은 처음 보네요.”

라파엘은 아까부터 내가 툭툭 발로 밀어내도 내게 얼굴을 비비고 있는 자쿤에게 치유 마법을 걸어 주었다.

“이 자쿤은 혹시 대기사단장님을 드래곤으로 생각하는 거 아닐까요?”

그러자 기사들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드, 드래곤?”

“하긴. 우리 대기사단장님이라면······.”

“······.”

아주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있다.

나는 사파이어 자쿤과 눈을 마주쳤다.

“키룩-.”

그러자 놈은 잔망스럽게 얼굴을 비빌 뿐이다.

‘설마 혼돈의 피어 때문인가.’

정말 그 스킬 때문에 나를 드래곤으로 착각하는 건가?

‘웃기는 놈이네.’

나는 놈의 머리에서 반짝이고 있는 보석을 살펴보았다.

저걸 떼다 팔면 꽤나 돈이 나올 텐데.

그럼 내 주머니도 두둑해질 테고.

‘이걸 지금 죽여, 말어.’

잠시 고민하는 사이에 치유 마법이 끝났다.

“회복력이 무척 뛰어난 아이네요.”

라파엘은 벌써부터 애완펫이 생긴 것마냥 놈을 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이렇게 덩치 큰 놈을 펫으로 데리고 다니고 싶지 않다.

언제 이놈이 돌변해서 저 날카로운 발톱으로 나를 공격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여기서 죽일 수도 없고.’

일단 놔둬 볼까.

정말 나를 잘 따라만 준다면 자쿤 정도의 펫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중에 필요가 없어지면 그땐-.

‘보석이랑 비늘만 쏙 빼서 팔아야지.’

내 주머니를 가득 채워 줄 수 있는 비상금으로 딱 맞았다.

“그만 비벼대라.”

“키룩-.”

“어허.”

“키룩······.”

사파이어 자쿤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이 조금 귀엽게 보이다가도 저 무시무시한 발톱과 이빨을 보면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간다.

“말썽부리지 말고 따라오도록. 방해된다면 가차 없이 목을 베어 버릴 것이다.”

“키룩-!”

내 말을 알아듣는 것인지, 사파이어 자쿤은 날개를 쫙 펴며 울부짖었다.

나는 멍하니 우리 둘을 바라보고 있던 막투르에게 말했다.

“앞장서거라. 너희들의 영토로 가겠다.”

* * *

검의 왕국 ‘만’

검이 대륙 최고의 무기이며, 오직 검만을 신성시 하는 왕국.

그들에게 검은 전쟁은 찬란한 무대이고, 그곳에서 맞이하는 죽음은 영광스러운 명예였다. 그러므로 오래 이어지는 왕국 간의 평화는 이들의 좀을 쑤실 뿐이었다.

“호드가 또 침범을 했다는 것이냐?”

“예! 경계선에 있던 기사단 수십 명이 호드와 함께 경계를 넘어온 자쿤에게 큰 부상을 당했다고 합니다!”

‘만’ 왕국에 존재하는 3명의 소드마스터.

그래서 이 3명 모두 대기사단장직을 맡아 군을 이끌고 있었다.

그중 하나인 키엔이 입술을 짓씹었다.

“이 건방진 놈들이 우리 왕국을 우습게 보는군. 이걸 언제까지 가만히 지켜만 봐야 하는 거지?”

그런 키엔의 말에, 또 다른 소드마스터인 라이에르가 천천히 술잔을 들며 말했다.

“우리가 대응을 미적지근하게 하고 있으니, 호드가 겁도 없이 우리 국경을 넘는 것이겠지.”

“그래. 내 말이 바로 그거다! 대체 우리 ‘만’ 왕국이 왜 그런 미물들에게 모욕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아무래도 안 되겠어.”

키엔은 상을 쾅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당장 기사단을 이끌고 자스트라 경계선을 넘어 호드를 도륙하고 오겠다.”

“······진심인가? 크라엘이 그리 되는 걸 원치 않을 텐데.”

크라엘.

이들과 똑같은 소드마스터이자, ‘만’ 왕국의 대기사단장이었다.

“그놈은 너무 생각이 많고 겁도 많아. 호드 따위가 무서워서 여기 박혀 있으라는 건, 우리 기사의 나라 ‘만’에 대한 모욕이다!”

“호드가 최근 대족장이 생기면서 그 영향력이 심상치 않게 달라졌다고 들었다.”

“그래 봐야 호드가 호드지. 그들이 두렵나?”

“글쎄. 나는 호드 보다는······.”

라이에르는 잔을 내려 놓으며 말을 이었다.

“일라이 왕국이 더 신경 쓰이는군. 정확히 말하자면 일라이 왕국의 아슬란이 말이다.”

“······!”

아슬란이란 이름에 키엔은 잠시 멈칫 거렸다.

검의 원탁에서 봤던 그 강렬한 인상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크라엘도 그것 때문에 망설이는 것이 아니겠나?”

호드를 잡겠다고 나섰다가 괜한 오해를 불러 일으켜 일라이 왕국과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염려하는 것이었다.

국경 쪽에 있는 자스트라 경계선이 하필이면 일라이 왕국 경계선과 걸쳐져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일라이 왕국은 아슬란 말고는 내세울 게 없는 놈들이다. 거기다 아슬란 그자가 혼자 우리 ‘만’ 왕국의 힘을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만’ 왕국에는 무려 3명의 소드마스터가 있다.

거기다 이들이 이끄는 기사단의 전투력 역시 최강이다.

제 아무리 아슬란이라고 해도 이들의 공격을 혼자 막아낼 순 없을 터.

“그놈들을 두려워할 필요 없다. 그 겁쟁이 크라엘에게 내가 직접 행동으로 나서서 보여 줄 것이다. 우리 왕국의 기사단이 얼마나 강한지를.”

“그 말은 자스트라 경계선을 기어코 넘어 보겠다는 뜻인가?”

“싫으면 따라오지 마라. 어차피 나 혼자 기사단을 끌고 갈 생각이었으니까.”

키엔의 말에 라이에르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내 친우를 전장에 혼자 보낼 수는 없지. 그리고 사실 나도 자네가 나서주기를 은근 기다리고 있었거든.”

키엔도 함께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그래. 네가 이런 싸움을 피할 녀석이 아니지.”

“그럼 크라엘 그놈이 우리를 방해하기 전에 얼른 움직이지. 그놈도 우리가 빠르게 기사단을 끌고 떠나 버리면 어찌하지 못할 게야.”

“크크. 우리가 호드의 대족장 목을 가져오면 크라엘 그놈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지는군.”

키엔의 음흉한 웃음 소리가 오늘은 왠지 좋게 들리는 라이에르였다.

* * *

‘여길 이렇게나 빨리 넘게 되다니.’

미지의 땅, 자스트라.

물론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수도 없이 넘어본 곳이지만, 아슬란처럼 이렇게 나약한 몸으로 이곳을 넘는 건 처음이었다.

자스트라는 스토리 중후반쯤에 넘어가야 하는 곳으로, 그때가 되면 어느 정도 스펙이 다 맞춰져 있을 시기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네임드들이 내 곁에 있다는 거지.’

아론, 알렉산더, 라파엘, 그리고 막투르까지.

이 가이드 퀘스트를 깨는 데에는 무리가 없는 인원 구성이었다.

‘가서 그 술사라는 놈부터 잡아 족치고, 검은 구슬만 깨면 되자 않나?’

이번 가이드 퀘스트는 사실상 테키나 족속이 봉인을 깨고 본격적으로 대륙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려 주는 전조 퀘스트 같은 것이기 때문에 난이도가 어렵지 않았다.

“더 빨리 달려라!!”

“우우-!!”

대족장 막투르는 빠른 속도로 먼저 달려가고 있었다.

그 술사라는 놈이 자신을 속였다는 걸 알아차린 뒤부터 마음이 급해져 있는 듯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쉬지 않고 달린 덕분에 금방 호드족이 모여 있는 부족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우-! 대족장!”

“대족장이 돌아왔다!”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가.

생각 이상으로 규모가 크다.

성벽처럼 높지는 않지만, 이들은 나무로 높게 벽을 세워 나름 성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대족장. 이놈들은 누구입니까?”

“이놈들이라니. 말을 삼가라.”

“······?”

막투르의 일갈에 그에게 몰려 들었던 호드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키에에에!”

“자, 자쿤!”

“몬스터다!!”

아까부터 줄곧 우리 뒤를 따라 비행하고 있던 사파이어 자쿤을 보며 각자 무기를 들었다.

“괜찮다. 저건······ 아슬란님의 애완 자쿤이다.”

“예?”

“애완 자쿤?”

“그보다 리락투는 지금 어디에 있나?”

“술사라면 제단에 가 있습니다.”

“마기를 없애는 기도를 올려야 한다면서 부족민들을 함께 데려갔습니다.”

거기서 막투르의 얼굴에 금이 갔다.

“이런!”

그는 쿵쾅쿵쾅 발소리를 내며 제단을 향해 뛰어갔다.

막투르가 달려간 곳은 게임 플레이를 하며 수백 번도 더 넘게 봤던 호드들의 제단 동굴이었다.

그곳에 들어가 보니,

콰아아아-!!

술사 리락투가 부족민들을 제물 삼아 흑마법을 부리고 있었다.

“리락투!!”

분노한 막투르의 목소리에 리락투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것이냐!!”

“뭐지? 이, 이렇게나 빨리 오다니.”

막투르는 검은 불길 위에 녹아내리고 있는 부족민들을 발견하고는 분노의 괴성을 질러댔다.

“크오오오-!!”

그는 리락투에게 뛰어가 놈의 목을 붙잡은 뒤 동굴벽에다 던져 버렸다.

“크악!”

하지만 놈의 머리통을 그 자리에서 터트려 버리진 않았다.

“네놈을 당장 죽이고 싶지만, 기다려라. 이 일이 끝난 뒤에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널 죽일 것이다.”

지금은 급한 불부터 처리를 해야만 했다.

검은 불길을 일으키고 있는 건 바로 저 거대한 암흑 구슬을 말이다.

“이건 대체······.”

동굴 천장과 바닥을 가득 채운 저 암흑 구슬을 깨야만 이 의식을 멈출 수가 있다.

만약 여기서 저 구슬을 깨뜨리지 못 하면 봉인되어 있던 문이 계속해서 열려 아비규환이 펼쳐지게 된다.

나는 당황해 하는 막투르에게 말했다.

“막투르. 얼른 저 구슬부터 깨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도끼를 높이 들었다.

‘쉽네. 역시.’

원래 스토리대로 상황이 잘 풀어지고 있었다.

여기서 막투르가 도끼로 구슬을 깨면 봉인이 풀리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되고, 그럼 퀘스트도 완료가 된다.

분명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크워어어-!!”

콰아아앙-!!

힘껏 막투르가 구슬을 내려쳤지만, 오히려 암흑 구슬은 더욱 어둠의 기운을 뿌리며 그를 멀리 밀어냈다.

“크헉-!”

하마터면 날아오는 저 거대한 몸뚱이에 부딪혀 내가 깔려 죽을 뻔했다.

나는 여전히 멀쩡하게 검은 기운을 퍼트리고 있는 암흑 구슬을 바라보았다.

‘뭐지? 원래는 막투르가 깨야 하는 게 맞는데.’

거기다 거인 막투르를 밀어내는 저 마법의 힘은······.

“저희가 깨뜨리겠습니다!”

그때 알렉산더와 아론이 동시에 앞으로 내달렸다.

그 뒤로는 라파엘이 마법진을 펼쳤다.

콰아앙-!! 콰콰쾅-!!

하지만,

“으헉!”

“꺄아아-!”

알렉산더과 아론의 공격도, 라파엘의 마법도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을 받은 구슬이 반격을 하며 그들이 펼친 공격을 그대로 돌려 주었다.

날아오는 공을 스파이크 치는 것만 같은 저 이펙트.

저건 분명-.

‘반사 마법?’

상대가 가하는 힘의 강도에 따라 그대로 돌려주는 반사 마법.

테키나 족속 중에서 대악마에 속해 있는 몇몇 네임드 보스들이 이런 마법을 가지고 있어서 알고 있다.

저 암흑 구슬에 그 악랄한 마법이 심어져 있는 것이다.

‘아무리 난이도가 극악이라지만, 이건 미친 거 아니야?’

반사 마법이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악랄하다고 불리는 이유는, 그 어떤 공격이든, 그 어떤 마법이든 무조건 튕겨내는 판정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 말은 즉슨,

‘내 찰나의 괴력도 튕겨낸다는 거잖아.’

찰나의 괴력이라고 이 개발진이 정해 놓은 게임의 규칙을 깰 순 없다.

그래서 반사 마법 패턴이 나왔을 땐 공격을 하지 않고 잠시 뒤로 빠져 있는 것이 기본적인 플레이 방법이다.

그래야 반사 마법이 끝난 뒤에 파상공세를 퍼부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저건 왜 안 꺼지는 거야?’

암흑 구슬에 걸려 있는 반사 마법은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었다.

“크오오!!”

“흐아압-!”

콰쾅!!

막투르와 기사들이 몇 번을 다시 일어나 공격해 봐도 똑같았다.

점점 늘어나는 건 그들의 상처일 뿐.

‘이걸 어떡하면 좋지?’

반사 마법만 아니었으면 내 찰나의 괴력으로 진작 깨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무한으로 지속 되는 반사 마법이라니.

그건 존재서는 안 되는 마법이다.

왜냐하면 저게 무한 지속이 되는 거라면 구슬을 깨뜨릴 방법도 없어지거니와, 게임을 클리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버그 아니야?’

난이도가 극악이라고 해도 최소한 깰 수 있는 구멍은 만들어 줘야 할 거 아닌가?

대체 저걸 무슨 수로 깨라고!

“크하하하! 이런 멍청한 놈들. 위대하신 카야라트 님의 마법을 너희들이 깨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그때 술사 놈이 우리를 비웃으며 소리쳤다.

“너희들은 절대로 그분의 마법을 깰 수 없다! 그 누가 와도 결과는 똑같다. 이제 악의 힘이 이 대륙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 순간.

“감히 그따위 소리를 하다니.”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단전에서부터 끓어 오르는 허세가 몸 전체에 퍼져 나가더니,

“절대 깰 수 없다고 했느냐?”

허세에 찌들어 버린 내 목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 나갔다.

“건방지구나.”

나는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우우우웅-!!

검이 울음을 터트리며 내 손을 타고 강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나는 머리 끝까지 차오른 허세에 취해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뚜벅- 뚜벅-

살갗이 타들어 갈 것만 같은 어둠의 불꽃에도, 그 위협적인 광경에도 내 걸음걸이는 흔들림 없이 격조 있고 품격 있게 이어졌다.

“감히 흑마법 따위가, 악마의 힘 따위가 내 칼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나는 벽에 처박혀 있는 리락투를 내려다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놈은 몸을 움찔 거렸다.

“네, 네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아, 아무것도 없다!”

놈은 저 구슬이 부서지지 않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날 바라보는 저 조롱 섞인 눈빛에 내 허세는 더욱더 뜨겁게 끓어 올랐다.

“그렇다면 오늘 내가 주는 가르침을 네 뼛속에 깊이 새기거라.”

잠깐.

설마.

“나 아슬란의 칼을 막을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나는 그대로 구슬을 향해 칼을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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