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0.01초 소드마스터 49화
‘이, 이게 대체 무슨······!’
난생처음 느껴보는 공포다.
어깨가 부서져 버릴 것만 같고, 모든 장기가 뒤틀려 피를 토할 것만 같았다.
눈앞은 초점을 잡을 수 없을만큼 회오리 치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보이는 것은 단 하나.
자신을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동자로 내려다보고 있는 저 사내였다.
“꿇어라.”
쿠웅-!!
여기서 더 위압감이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인가.
필사적으로 이를 악 물고 버텨 보려 했으나,
“크헉!”
콰직-!
결국 막투르는 무릎을 꿇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대는 자신을 무심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것이 너와 나의 눈높이다, 미물이여.”
이런 치욕을 겪어본 적이 있던가.
피가 거꾸로 솟으며 분노가 치밀었지만,
“크읍-!”
단단하고 두꺼운 두 어금니가 부서질 것만 같은 위압감에 감히 고개조차 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
뭐지?
심장을 움켜쥐며 숨을 막히게 만들었던 위압감이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올려 보았다.
여전히 상대는 영험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 도끼를 들어 놈의 머리를 쪼갠다면······.’
입을 세게 다물어 흐르는 피가 그의 분노를 일깨워 준다.
자신은 숲의 전사, 호드임을.
그들을 이끄는 대족장임을.
그러므로 그 모든 분노를 담아 한번에······!
“누가 고개를 들라고 했지?”
그런 생각도 잠시.
“크악-!”
쿠웅-!!
마치 상대는 자신의 모든 생각을 다 읽고 있다는 듯,
너 따위는 내 털끝조차 닿을 수 없다는 듯,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뿜어내며 막투르와 그의 전사들을 짓눌렀다.
“감히 네가 나와 눈을 마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이겨내야 한다.
이것을 뚫고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당당히 보여줘야 한다.
내가 바로 호드의 대족장, 막투르임을!
하지만-.
“크으읍-!”
일어날 수가 없다.
저 힘을, 저 압도하는 기세를 이겨낼 수가 없다.
이것이 죽음의 공포인가.
이대로 더 있다가는 정말 심장이 터져 버려 죽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서서히 정신이 끊어지려고 할 때쯤.
“······?”
모든 걸 압도하던 피어가 다시 한번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푸하-!”
“크윽-!”
간신히 살아난 부하들과 짐승들도 막혔던 숨을 토해내며 신음을 터트렸다.
‘일부러 그런 건가?’
저자가 여기서 조금만 더 힘을 발산했다면 막투르와 그의 부하들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걸 분명 상대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죽이지 않은 거지?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기회다.’
상대의 의도가 무엇이든, 막투르는 옆에 있던 도끼에 시선을 옮겼다.
저것만 잡는다면, 저것을 잡아 앞에 있는 저 무시무시한 작자를 단번에 처단한다면-.
“그 도끼로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나?”
하지만 그때 들리는 묵직한 음성에 도끼를 향해 뻗던 팔을 멈췄다.
“이 몸 앞에서 재롱을 피울 생각이라면 말리지 않겠다.”
재롱?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그따위 소리를!
이를 악다물며 도끼에 손을 뻗어 잡았다.
그러나 그것을 들진 못했다.
“허나, 네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저 중후한 음성이 자신의 이성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내 허리춤에서 칼이 뽑히는 순간, 너와 너의 부하들은 오늘 전부 죽을 것이다.”
“!?”
그 말을 듣고 차마 도끼를 들 수가 없었다.
상대는 무려 위압만으로 자신과 부하들을 공포 상태에 빠뜨린 무시무시한 자다.
고작 기세만으로 사람을 능히 죽일 수 있을진데, 여기서 만약 도끼를 들었다가는-.
‘전부 죽는다···!’
하지만 자신은 호드의 대족장, 막투르다.
적을 눈앞에 두고 겁을 먹어 도망쳤다는 오명을 뒤집어 쓸 순 없다.
부족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그래서는 안 된다.
“······.”
그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자랑스러운 호드의 전사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움을 즐기는 그들의 얼굴이 지금은,
“대, 대족장.”
온통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해 있었다.
끓어 넘치던 전사의 영혼 역시 찾아볼 수가 없었다.
“뭘 하고 있지?”
“?”
“얼른 도끼를 들어라.”
바로 그때였다.
우우웅-!!
저자의 허리춤에 있는 검이 강하게 진동하며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그것에 응답하듯,
우웅-!!
바닥에 떨어져 있던 막투르의 도끼도 잘게 몸을 떨며 울음을 터트렸다.
‘이, 이게 검명인가?’
오직 검의 끝을 보았다는 자만이 다다를 수 있는 경지.
세상 모든 무기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달인.
그 경악스러운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 있던 막투르의 손발이 부르르 떨려왔다.
‘대체 이 괴물은 누구란 말이냐!’
* * *
입가에 피를 흘리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던 대족장 막투르는,
“······크윽!”
완전히 싸울 의지를 버린 듯, 결국 손을 거두었다.
‘좆 되는 줄 알았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쓸 스킬도 없었는데.’
쿨타임 초기화까지 해서 혼돈의 피어를 무려 2번이나 써버리는 바람에 막투르를 상대할 수 있는 수단이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
남은 것이 있다면,
“현명한 선택이다. 부하들의 생명을 아낄 줄 아는 놈이군.”
아슬란의 병신 같은 허세 뿐.
“네가 정녕 싸우고자 했다면 단칼에 네놈들을 절멸 시키려 했으나······ 오늘은 봐주도록 하지.”
우우웅-!!
아. 이놈도 잊고 있었구나.
아슬란의 허세에 물들어 버린 허세 소드가 아쉽다는 듯 울음을 터트렸다.
이제 시끄러우니까 그만 울어.
“놈들의 무기를 전부 거두어라.”
“예!”
나는 이놈들이 난동을 피우기 전에 기사단을 시켜 무기부터 거두었다.
다행히 막투르를 비롯해 호드들은 어떤 반항도 하지 않고 순순히 무기를 내주었다.
물론, 막투르가 쓰는 도끼는 한 사람이 들기 벅차서 몇 명이 달려들어야 간신히 들 수가 있었다.
“허락 없이 국경을 넘는 일이 중죄라는 것을 아나?”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대답에 허세가 들끓으면서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말이 짧구나. 죽고 싶으냐?”
“······알고 있었습니다.”
막투르는 주먹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이놈의 허세가 자꾸 성질을 긁어대다 크게 한 방 맞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수호신의 방패도 없어서 막투르한테 한 대라도 맞으면 그냥 즉사일 텐데.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 엄중한 규율에 따라 네놈의 두 다리를 잘라 버리는 것이 옳을 터.”
한번 끓어 오르기 시작한 허세는 상대가 누구라도 얄짤 없었다.
“무슨 이유인지 한번 들어는 보지. 그 대답의 여하에 따라 네 처우를 결정하겠다.”
호드와 척을 져서 좋을 건 없다.
특히 각성한 호드라면 더더욱 사이가 험악해져서는 안 된다.
이미 첫 조우부터 사이가 틀어져 버린 거 같긴 하다만, 여기서 더 발전해 전쟁까지 번지는 건 곤란하다.
“악의적인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저 몬스터를 추적하느라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나오게 된 겁니다.”
사파이어 자쿤은 날개 한쪽을 상처 입은 채로 꿈틀 거렸다.
나는 지그시 놈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사파이어 자쿤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키룩?”
“······.”
딱히 쓸만 한 아이템은 보이지 않는다만, 저 머리에 박혀 있는 푸른 보석이 내 눈길을 끌었다.
저걸 빼서 팔면 돈이 꽤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놈의 비늘과 가죽은 귀하기 때문에 분명 비싼 값에 팔 수 있으리라.
“이놈을 죽여서 돈을 벌려고 했던 건가?”
“아닙니다.”
“그럼?”
“우리 부족을 위해서였습니다.”
부족을 위해 사파이어 자쿤을 잡으려 했다고?
“우리 호드족이 사는 바쿰이란 곳은 아름다운 숲입니다.”
막투르의 말을 듣고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이거 설마-.
“하지만 어디에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마기가 숲을 잠식하기 시작하면서 수풀이 말라 죽고 나무는 썩어 버렸습니다.”
내 착각이 아니었다.
엘티히 때와 마찬가지로 이건 주인공이 처음으로 호드의 대족장, 막투르를 대면했을 때 받게 되는 퀘스트였다.
그것도,
“우리 호드족에 있는 술사가 말하기를, 이 악한 마기를 정화하기 위해서는 사파이어 자쿤의 피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가이드 퀘스트: 깨져 버린 봉인]
-봉인을 깨고 나타난 악마를 호드족과 함께 정화하십시오.
-보상으로 10골드를 얻습니다.
무려 가이드 퀘스트였다.
가이드 퀘스트가 무엇인가.
그건 바로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주인공을 플레이 하는 플레이어를 위해 만들어진 퀘스트라고 할 수 있다.
원활한 스토리 전개를 이어 가기 위해서는 가이드 퀘스트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이것을 깨야만 게임 클리어에 다다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시기가 너무 빠르다.’
호드의 대족장이 나온 것도 그렇고, 호드와 관련된 가이드 퀘스트가 나온 것도 그렇고. 전부 속도위반 수준이었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이번 가이드 퀘스트는 별로 어렵지 않다는 거야.’
물론 이런 식의 만남은 처음이긴 했다.
거기다 게임마다 막투르가 쫓는 몬스터의 종류도 달랐다.
왜냐하면,
‘술사, 그놈이 구라를 친 거니까.’
대족장 막투르에게 사파이어 자쿤의 피로 마기를 정화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한 술사. 그놈이 악마의 끄나풀이었다.
그놈의 목적은 하나였다.
막투르를 부추겨 놈을 부족민들과 멀어지게 만드는 것.
‘가이드 퀘스트에, 보상도 10골드나 주는 거면 해야지.’
수백 번도 더 깨본 퀘스트다.
그리고 난이도도 클리어 방법만 알면 어렵지 않았다.
심지어 내 옆에는 새로운 네임드 캐릭터, 막투르가 있다.
악마와 싸울 일이 있으면 이놈을 보내서 뚝배기를 깨게 만들면 된다.
“그 술사라는 놈이 거짓을 말했군.”
“······예?”
“사파이어 자쿤의 피로 어떻게 마기를 정화한다는 것이냐.”
“그가 제게 거짓을 고할 리 없습니다.”
“하지만 사실이다. 그놈이 네게 거짓을 고했다.”
“다, 당신도 마기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은 없지 않습니까!”
깜짝이야.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통에 하마터면 뒤로 자빠질 뻔했다.
그러나 이 정신병 같은 허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막투르를 거대한 몸집을 내려다보았다.
놈도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얼른 고개를 다시 숙였다.
그런 그의 앞에서 나는,
스르릉-!
“!?”
칼을 뽑아 들었다.
“마기라고 했느냐?”
레길로트의 팔찌에서부터 솟아 나오는 성스러운 빛이 곧 칼에 스며 들었다.
“내가 그것도 모를 거라 생각하다니. 건방지구나.”
“!?”
모든 공격이 성속성으로 변하게 해주는 레길로트의 팔찌 효과.
호드는 예부터 빛을 따르고 빛을 섬기는 족속이라 했던가.
그래서 원래 스토리의 주인공이 라할에게 받은 빛을 보여 주어 그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물론, 이건 라할의 빛이 아니지만, 그와 비슷해 보이는 덕분에 나는 이런 허장성세를 부릴 수 있었다.
“보거라. 그 술사라는 놈이 나보다 더 악마에 대해 알 거 같은가?”
“이, 이 힘은······!”
막투르는 놀란 얼굴로 내 검에서 번쩍이고 있는 빛을 바라보았다.
“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이토록 성스러운 힘을 쓰시는 겁니까?”
두려움이 담겨 있던 그의 목소리에 이제는 경외심마저 느껴졌다.
병적인 허세는 그것에 자극을 받아 더욱 고개를 높이 들고 거만하게 대답했다.
“나는 일라이 왕국의 대기사단장, 아슬란이다.”
그런데도 막투르의 자세는 한없이 낮아졌다.
“역시 당신이 그 소문의 기사······. 이야기는 종종 들었습니다. 과연 그 영광스러운 힘이 사실이었군요.”
“이제 누가 거짓을 말하는 건지 알겠나?”
“하지만 대체 왜 술사가 제게 그런 거짓을······.”
“네가 부족에 없기를 바랐던 것이겠지.”
“그, 그런!?”
크게 충격을 먹은 듯한 막투르는 내게 간곡히 청했다.
“부디 저희를 도와 주십시오. 마기를 어떻게 정화해야 하는지 저는 도저히 알지 못합니다.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그래. 절대 잊으면 안 된다.
“한번 봐보도록 하지.”
원래 스토리대로 쭉쭉 진행이 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일라이 왕국과 호드 간의 사이가 원만하게 풀렸다고 봐도 괜찮겠지?
‘그러고 보니······.’
사파이어 자쿤.
아직 이놈을 처리 안 했구나.
그냥 부하들을 시켜서 마무리를 지으면 되려나.
“키루룩-.”
그런데 그때 옆에 있던 사파이어 자쿤이 비틀 거리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이놈이 설마 날 물어 뜯으려는 건가 싶어 경계했으나,
“키루룩······.”
놈은 머리를 빼꼼 내밀어 내 다리에 비벼댔다.
그 모습을 보고 라파엘이 웃으며 말했다.
“저 몬스터가 대기사단장님이 좋은가 봐요.”
“······?”
이 대륙에는 조련이 가능한 몬스터들이 있다.
하지만 자쿤 같은 놈은 완전히 정반대다.
절대 길들일 수 없는 몬스터.
그중 하나가 바로 자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놈은,
“키룩?”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진난만한 눈동자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