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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21화 (21/200)

21화

1초만 소드마스터 21화

‘땡 잡았다.’

나는 퀘스트 완료창을 보면서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내가 저들에게 말한 어떤 이의 부탁.

그게 누구겠는가.

바로 이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퀘스트다.

이놈만 아니었어도 여기 올 일도 없었거니와, 이런 심장 떨리는 일을 경험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이제 아무도 안 붙잡겠지?’

카르만이나, 미뉴엘이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빡쳐서 쫓아오기 전에 얼른 여기서 빠져 나가고 싶었다.

퀘스트 보상도 받았겠다, 더는 여기 머무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오. 제발 좀 빨리 걸어라, 새끼야.’

곳곳에 깔린 경비병들이 지켜보고 있는 통에 아슬란의 허세가 여전히 몸에 가득 남아 있는 터라 내 마음대로 빨리 걸을 수가 없었다.

한 걸음을 걸어도 품격 있게.

덕분에 회의장에서 나온지 꽤 됐는데도 여전히 숙소에 도착하지 못했다.

모델도 이렇게까진 안 걷겠다.

“아슬란 대기사단장님.”

누군가의 목소리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아까 나한테 협박을 받았던 대마법사 켈린이었다.

회의가 벌써 끝났나?

아마 끝나마자 여기로 부리나케 달려온 듯싶었다.

[켈린]

무력: 45

지력: 87

마력: 93

“······.”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시면 내 몸이 숯덩이가 되도 이상할 게 없는 스텟이었다.

당연히 머리부터 박고 아깐 죄송했다고 비는 것이 순서였지만,

“무슨 일이지?”

헬파이어가 떨어진다고 해도 이놈의 허세가 고개를 숙일 일은 절대 없다.

거기다 눈에도 힘을 빡줘서 상대를 잡아 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하하. 누, 눈매에서부터 그 용맹함이 드러나시는군요.”

“용건만 말해라.”

“그······ 아까 회의장에서 하셨던 말씀 있지 않습니까.”

“내 수하들의 가족 말인가?”

“예.”

“난 이미 내 뜻을 다 전했을 텐데?”

켈린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예. 저도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슬란님의 말씀이 옳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말은?”

“말씀하신 요청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이것으로 우리 할라즈 왕국은 아슬란님과 절대로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절대로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다라.

예상 외의 대답이었다.

여기까지 쫓아와서 저리 말하는 것을 보면······.

‘아까 일이 효과가 있긴 했나 보네.’

광견 미뉴엘이 그렇게 깨진 것을 보고 아마 많은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이놈도 내가 사실은 허세만 부릴 줄 아는 텅 빈 강정이라는 걸 알면 가만 놔두지 않겠지?

“나 아슬란은 할라즈 왕국과 평화를 약속한다.”

“정말이십니까?”

“내 이름을 건 약속이다. 결코 가볍지 않다.”

“감사합니다, 아슬라님.”

“조속히 가족들을 보내라. 그럼 우리가 더는 얼굴 붉히며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켈린은 연신 내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떠나갔다.

대마법사란 족속은 자존심이 무척 강하기에 함부로 고개를 숙이지도 더더욱 허리를 숙이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저 켈린이 내게 저렇게까지 공손하게 나오는 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대기사단장님.”

켈린이 떠나가고 나서 아론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 감사······ 감사합니다.”

나는 그런 아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고개를 들거라, 아론.”

“······.”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오히려 조금 늦어진 거 같아 미안하구나.”

“아, 아닙니다. 기억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막고 있었다.

아론.

이제 넌 완전히 코 꿰인 거다.

“아론. 너는 나의 검이다.”

“······!”

“대기사단장이라는 자리에 오르면 기사는 함부로 검을 뽑지 않는다. 그 무게감이 다르기 때문이지. 그러므로 네가 날 위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앞으로 나를 대신해,

“용맹하게 돌진해 적군과 싸우고,”

내 퀘스트 달성을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그리고

“오직 왕국의 평안과 백성들을 위해.”

전쟁터에서도, 밖에서도 오직 나를 지키기 위해

“검을 들어라, 아론.”

그러자 아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그 말씀, 뼈에 새기겠습니다.”

이제야 마음이 든든해진다.

아론은 현재 내가 가진 최고의 무력 캐릭터다.

퀘스트를 위해, 혹은 앞으로의 여정을 위해 그는 크게 쓰일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되겠지만, 당분간 그가 날 배신할 일은 없어 보였다.

“돌아가겠다.”

퀘스트도 끝나고 골드도 벌었으니, 이제 돌아갈 일만 남았다.

나의 집, 일라이 왕국으로.

* * *

“역시 아슬란 그자는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더구나.”

이스마엘 제사장은 오늘 아슬란이 보여 준 행동으로 확신했다.

특히 그가 했던 말을 곱씹어 보면 무언가를 알고 있는 자가 아니면 절대 꺼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의외로군. 다른 곳도 아니고 최약체로 평가받는 일라이 왕국에서, 그것도 평판이 매우 좋지 못한 아슬란이 악마와 싸우고자 검을 들다니.”

하지만 이스마엘의 말에 대꾸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허공에 흩뿌려지는 자신의 목소리가 무안하여 그는 고개를 돌렸다.

“하리엘?”

“예? 아, 예.”

아까부터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것만 같은 하리엘이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느냐?”

“아닙니다. 송구합니다, 제사장님.”

“하긴. 너도 충격이었겠지. 200년을 지켜온 검의 원탁이 그리 허무하게 깨져 버렸으니 말이다. 대체 아슬란 그자의 힘이 얼마나 강하기에 고작 파공음만으로 원탁이 깨질 수 있단 말이냐?”

하리엘도 그것이 의문이었다.

그토록 강대한 힘을 가진 자가, 무려 소드마스터를 손가락 하나만으로 제압할 수 있는 자가 하리엘의 호위를 약속 받고 이곳에 왔었다.

사막지대의 몬스터들이 무서워서?

아니. 그가 작정하고 검을 들었다면 사막을 몇 번이고 뒤집어 놓았을 것이다.

거기다······.

‘이 회의를 소중하게 여기는 어떤 이의 부탁 때문이었다.’

마지막 그가 남긴 말이 뇌리에 박혀 잊혀지질 않는다.

어떤 이의 부탁이라는 건 설마······ 나?

‘진짜 나 때문에?’

대체 왜?

설마 아직도 날······ 좋아하나?

10년 전이랑 똑같이?

아, 아니겠지?

“······.”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 있는지, 시시각각 바뀌는 하리엘의 표정을 이스마엘은 가만히 쳐다만 보았다.

뭔가 달콤한 상상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달빛 같은 미소가 걸렸다.

* * *

일라이 왕국으로 돌아온 이후.

나는 나태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으레 RPG 게임이라는 건 나태함과 어울리지 않는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하고, 할 게 없으면 찾아다녀야 했다.

그래야 스펙업을 통해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씨발. 근데 난 다른 이유 때문이잖아.”

하지만 나는 생존을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움직인다.

“슬슬 히든 아이템 같은 것도 찾을 때가 된 거 같은데.”

문제는 그 히든 아이템이라는 것들이 일라이 왕국에 모여 있지 않고 대륙 곳곳에 뿌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이름 그대로 히든.

숨겨진 아이템들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찾기 쉽고 스펙업에도 무난한 건 역시······.”

보석 종류겠지?

몸을 치장하기 위해 끼는 보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검, 혹은 견갑이나 장갑 등에 장착하는 보석을 뜻한다.

이걸 게임에서는 마법 보석이라 부르는데, 아이템을 모아 제작할 수도 있고 아니면 숨겨진 마법 보석을 찾을 수도 있다.

“제작하는 건 복잡하니까 패스.”

우리 왕국에 대마법사가 하나 있었으면 그놈을 데려다가 마구 부려 먹으며 써먹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여기 왕국에는 쓸만한 마법사가 없었다.

“그럼 찾아 다녀야 한다는 거네.”

마법 보석은 색깔별로 구분이 가능하다.

붉은색, 푸른색, 검은색 등등.

다양한 색깔의 보석이 존재하며, 그 보석마다 갖는 특징도 다르다.

스킬의 데미지를 올려 줄 수도 있고, 장비의 방어구를 높여 줄 수도 있으며, 특별한 능력을 주기도 한다.

“아무래도 나한테 중요한 건······.”

특별한 능력을 주는 화이트 마법 보석.

엄청난 S급 능력을 주는 건 아니다.

그것보다 한 단계 위라는 황금 보석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만, 그건 지금 구하기가 불가능하니 패스.

보석이라는 건 결국 보조 역할을 하는 장비이기 때문에 거기서 나오는 옵션은 한계가 있다.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지.”

그러므로 모을 수 있는 보석은 최대한 많이 모으는 게 좋다.

“가만 보자.”

나는 지도를 펼쳐 놓고 일라이 왕국 주변을 살펴보았다.

게임으로만 보던 맵을 이렇게 직접 펼쳐서 보니까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지금 당장 위협이 될 만한 왕국은 없는 거 같고.”

할라즈 왕국은 이미 꼬리를 내렸으며, 할라즈 왕국 옆에 있는 샤나 왕국도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은 없다.

거기다······.

“여긴 지금 한창 시끄러울 때인가?”

오메르 왕국.

이 왕국에서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인물은 두 명이 있다.

쫓겨난 왕자 엘버스테인과 소드마스터 루시안.

“지금은 어떻게 됐으려나?”

기본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면 오메르 왕국은 형제들끼리 내전이 일어난다.

엘버스테인은 막내였지만, 그 능력이 출중하다는 이유로 왕이 죽으면서 그에게 왕좌를 물려 준다. 하지만 그걸 가만 두고 볼 리 없는 다른 형제들이 반란을 일으켜 그를 몰아 내기에 이른다.

하필이면 소드마스터 루시안이 첫째 왕자 편을 드는 바람에 엘버스테인은 결국 도망치게 되고 떠돌이 신세가 되는데······.

“거기서 엘버스테인을 만나면 퀘스트가 열렸었지?”

퀘스트를 받는 건 자유다.

그리고 플레이어에게는 선택권이 주어진다.

엘버스테인을 도와 그를 왕으로 만들 것이냐, 아니면 그를 죽여서 보상금을 얻을 것이냐.

추후 게임 플레이를 위해서라면 엘버스테인을 도와 왕으로 만드는 것이 이득이지만,

“나는 보통 그냥 죽여서 보상금 챙겼는데.”

딱히 놈을 도와 왕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그냥 오메르 왕국에서 건 두둑한 보상금을 받아 챙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아론 정도면 엘버스테인 쯤은 일격에 죽일 수 있지 않나?”

엘버스테인은 성장형 캐릭터다.

그것도 무시무시한 성장력을 가진 재능충 캐릭터라 지금 스텟은 비록 평범해 보여도 조금만 놔둬도 알아서 크게 성장할 것이며, 훗날 그는 왕의 신분으로 소드마스터가 되어 그 이름을 펼친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나중에 써먹으려고 장기 투자 하듯 엘버스테인을 돕는 것이었다.

“근데 그걸 언제 키워 먹어.”

그러니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

“밖에 누구 없느냐?”

“예!”

나는 안으로 들어온 기사에게 명령했다.

“오메르 왕국의 최근 상황이 어떤지 알아야겠다.”

“정보국에 가서 알아보겠습니다.”

“신속하게 알아오도록.”

“명!”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위대한 분이시여. 말씀하신 것을 가져왔습니다.”

나는 기사가 건네는 양피지를 받아 그곳에 적힌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오메르 왕국에서 첫째 왕자 우미르가 루시안을 필두로 반란을 일으킴. 즉위식을 앞두고 있던 엘버스테인은 현재 실종 상태.

-오메르 왕국은 엘버스테인의 목에 큰 현상금을 걸음.

내 예상대로 오메르 왕국에서는 반란이 일어났고, 현재 엘버스테인은 사라진 상태.

게임 플레이를 했을 때 수없이 많이 봤던 상황이다.

그리고 난 고인물답게 엘버스테인이 어디쯤에 숨어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잘 알았다.”

“더 필요하신 것은 없습니까?”

“아론을 불러라.”

“예!”

그렇다면 이제 행선지는 어느 정도 결정이 된 건가.

그때 할라즈 왕국이 쪼잔하게 값을 안 줘서 못 얻었던 아론에 대한 목숨값을 엘버스테인으로 대신 받아야겠다.

일단,

“마법 보석부터 찾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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