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1초만 소드마스터 20화
“······.”
충격으로 휩싸인 전각 안은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모두 눈알이 튀어 나올 것만 같이 놀란 표정으로 나와 기둥에 처박혀 쓰러져 있는 미뉴엘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미, 미친······.’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미뉴엘이 내게 칼을 겨누고, 내가 그것을 손가락으로 살짝 튕겼을 뿐인데.
고작 그거 한 방으로 미뉴엘이 저 멀리까지 날아가 버리다니!
‘이왕 칠 거면 칼이 아니라 저 볼때기를 때렸어야지!’
그 정도 위력이면 충분히 미뉴엘을 즉사시킬 수 있었을 터.
대체 이놈의 허세가 뭐라고.
‘지금이라도 일어날까?’
각만 잘 보면 대충 말로 떼우고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어차피 회의를 진행하기에는 어렵지 않나?
그런데 바로 그때.
“크으으-.”
기둥이 움푹 파일 정도로 처박혔던 미뉴엘이 이를 갈며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잘근잘근 씹은 그의 입술에서는 피가 흘러나왔고,
“아슬란······ 네놈······.”
눈동자에는 지독한 살기가 아우러졌다.
찰나의 괴력은 방금 써버린 탓에 쿨타임이 200초도 넘게 더 남아 있는 상황.
즉, 내게는 그와 싸울 무기가 더는 없다는 것이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끝까지 칼을 놓지 않은 점은 높이 평가해 주지, 미뉴엘.”
팔팔한 허세뿐이었다.
“내가 잠시 방심했지만, 이번에는 그냥 당하지 않는다! 고작 내가 그걸로 쓰러질 줄 알았느냐!?”
물론 칼을 놓을 새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손가락으로 칼끝을 때리자마자 총알처럼 순식간에 저 먼 곳까지 날아가 버렸으니 말이다.
“그냥 누워 있거라.”
“왜? 내가 또 똑같은 것에 당할 줄 아느냐?”
“그 이상으로 선을 넘는다면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이 정도 허세면 미뉴엘도 조금은 물러설 줄 알았는데, 놈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바닥에 퉤 뱉으며 말했다.
“어디 한번 죽여 봐라. 넌 방금 전 그 일격으로 날 죽였어야 했다. 두 번 다시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 테니까.”
미뉴엘의 말대로 그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다.
그러나 아슬란의 허세가 그런 걸 따지겠는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끝까지 혓바닥을 놀리다 죽을 놈이다.
“어리석어 깨닫지를 못하는구나, 미뉴엘. 네가 방심을 하든, 하지 않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과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네 목을 베고 그 몸을 쪼갤 수 있다. 넌, 네 목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죽을 것이다.”
“이게 끝까지 개소리를······!”
“그럼 어디 그 칼을 들어 보거라. 내가 장담하지. 그 칼이 네 목 위로 올라오는 순간, 그것이 너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
끝까지 당당한 헛소리였다.
뻔뻔하고 기가 차는 개소리였다.
누가 들어도 금방 망언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그런 말도 안 되는 허세였다.
“칼을 들어라, 미뉴엘.”
하지만 우습게도,
“······크윽.”
미뉴엘은 끝끝내 검을 들지 못했다.
저 광견이라 불리는 미뉴엘이, 무려 대륙 다섯 번째 소드마스터라는 기사가 아슬란의 허세에 완전히 속아 넘어가 버린 것이었다.
‘이게 먹힌다고?’
기뻐하긴 이르다.
왜냐하면 이것은 마치 화약고에 불을 질러 버리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아슬란의 허세라는 화약고 말이다.
“그래도 네가 재롱을 부린다면 귀엽게 봐주려고 했으나, 그것도 못 하겠군. 한심한 놈.”
이놈의 정신 나간 허세가 기어코 가까스로 진정이 된 미뉴엘의 코털을 건드리고 말았다.
“아슬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미뉴엘이 이를 바득 갈았다.
“감히 네놈 따위가 나를······!”
활화산처럼 폭발해 버린 미뉴엘의 분노가 느껴진다.
그 무시무시한 투기는 내 피부를 따갑게 만들 정도였다.
그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나를 노려보았다.
“오냐. 네가 원하는 대로 검을 들어 주마.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여기서 죽이겠다, 아슬란!”
그런 미뉴엘이 칼을 들어 강한 기운을 발산하려는 찰나.
“거기까지 하거라, 미뉴엘.”
묵직한 음성이 회장 안을 갈랐다.
아무리 미친개라도 위아래는 구분할 줄 아는 법.
“주, 주군. 전 아직 괜찮습니다. 기회를 주신다면 아슬란 저놈의 목을······.”
“미뉴엘.”
그는 거부할 수 없는 카르만의 음성에 몸을 떨었다.
“검을 잃은 기사가 어찌 싸운다는 것이냐?”
“······예?”
검?
미뉴엘은 천천히 고개를 내려 자신의 칼을 바라보았다.
그는 검끝에 나 있는 균열 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균열은,
쩌쩍-!
점점 퍼져나가,
콰직-!
마침내 검 전체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
미뉴엘은 그 자리에서 얼어 버린 채, 바닥에 흩뿌려진 검 조각들을 멍하니 내려다볼 뿐이었다.
“거, 검이 부러지다니!”
“저, 저런······!”
회장에 있는 사람들은 기겁하며 웅성거렸다.
거기에 대고 카르만이 못을 박았다.
“오늘 목숨을 잃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하게 여기거라. 아슬란이 손속의 정을 두지 않았다면 검이 아닌 네 몸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
미뉴엘은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망연자실한 그의 얼굴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이제 저놈이 날뛸 일은 없겠지?
“아슬란.”
하지만 한 놈이 가면 다른 놈이 오기 마련.
카르만은 지그시 고개를 들어 내게 말했다.
“이 정도 했으면 그대의 역량을 충분히 보여 준 거 같은데. 이제 그만 다시 자리에 앉는 것이 어떤가.”
나 역시 그러고 싶지만, 아슬란의 허세는 아직 식지 않았다.
그 울컥 하는 뜨거움을 여전히 유지한 채 나는 감히 카르만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역량이라-.”
이 대륙에 있는 온갖 괴물들을 모아 놓은 검의 원탁 회의에서, 그것도 저 대륙 최강이라 불리는 카르만 앞에서 나는,
“너흰 아직 내 힘의 일부분도 보지 못했다.”
병신 같은 허세를 부렸다.
“······!”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1초가 내게는 1년처럼 느껴질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병적인 허세와 심취는 저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저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즐겼다.
나 역시 그러한 감정에 동화되어 저들의 경외와 두려움 섞인 눈동자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겠다.”
나는 회장 입구를 향해 걸었다.
그래. 차라리 이게 낫다.
아주 자연스러웠다.
뚜벅- 뚜벅-
회장 안은 오직 내가 바닥을 밟는 발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제발 아무도 잡지 마라.
제발.
그렇게 입구까지 몇 걸음 남지 않았을 때.
“정말로 가려는 건가?”
카르만이 나를 붙잡았다.
서서히 가라 앉는 것 같았던 허세가 다시 요동쳤다.
“그래. 잠시나마 너희들과 뭔가를 나눌 수 있다고 기대한 내가 어리석었다.”
“네가 뭐라고 감히 그따위 말을 하는 거지?”
그의 음성에 화가 깃들어 있었다.
“음지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으며 뒤에서 관망만 하던 네가 그럴 자격이 있느냐?”
그가 내뿜는 위압감이 몸을 짓눌렀다.
내 숨통을 조이고, 목구멍을 도려내는 것만 같았다.
이것이 대륙 최강자의 힘인가.
하지만 이상하게도,
“너희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 한다.”
그런 그조차 내겐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내가 무얼 위해 사는지, 그리고 내가 무얼 위해 이제서야 검을 들었는지.”
난 카르만과 회중에 모인 사람들을 돌아보며,
“너흰 알지 못 한다.”
마지막 허세를 날렸다.
“숲을 바라보지 못 하고 나무만 바라보는 너희들이 무얼 알겠느냐?”
그러고는 그들에게서 등을 돌려 회장 입구를 향해 걸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뒤에서 소리쳤다.
“이럴 거면 대체 여긴 왜 온 것이오?”
그 누군가의 목소리에 나는 대답했다.
“이 회의를 소중하게 여기는 어떤 이의 부탁 때문이었다.”
“······.”
“이것으로 만족을 했으면 좋겠군.”
그 대답을 끝으로 회장 입구가 열렸다.
그리고 동시에,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 10골드를 얻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퀘스트가 완료되었다.
* * *
“허-.”
“진짜 가버렸잖아?”
아슬란이 회장에 던져 주고 간 충격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가 보여 준 그 엄청난 힘은 저 미친개라 불리는 미뉴엘을 무릎 꿇게 만들었다.
그 역시도 충격이 컸는지, 조각난 검 앞에서 일어나지를 못 하고 있었다.
“쯧. 아주 자기 마음대로군.”
카르만은 잔을 들어 입을 축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카르팰이 말했다.
“크게 혼쭐을 내지 그러셨습니까?”
“그러려고 했지. 그 건방진 혓바닥을 놀리지 못 하게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던 아슬란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끝까지 꺾이질 않더군.”
“그 말씀은 능력을 사용하셨다는 겁니까?”
카르만은 아무 대답 없이 잔을 들었다.
침묵은 곧 긍정.
그의 반응에 카르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카르만의 위압을 버텨냈다는 건가?’
카르만이 아직도 굳건하게 첫 번째 소드마스터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있는 건 그가 가진 능력 때문이었다.
위압.
드래곤의 피어처럼 상대방의 정신에 강한 공포를 심어 주고 나아가 육체까지 짓누르는 능력이다.
카르만의 무력도 무력이지만, 그의 위압은 검조차 들 수 없게 상대방을 굴복시킨다.
카르팰도 예전에 한번 당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능력이 가진 파괴력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슬란 그놈은 대체······.’
카르만을 눈을 보고도 저런 말을 지껄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이 대륙에 몇이나 될까. 이 회장에 모인 사람 중에서도 찾기 힘들 것이다.
“아슬란. 내가 너무 그를 과소평가했군.”
“예.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예전에 카르만님을 처음 봤던 때가 떠오르더군요.”
카르만은 눈살을 찌푸리며 카르팰을 노려보았다.
“그게 무슨 뜻이지?”
“아아. 물론, 아슬란이 당신과 동일 선상에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과 마찬가지로 아슬란도 이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지 않았습니까?”
회장에 모인 사람들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들인 계속 아슬란 얘기만 하고 있다.
회의가 끝난 뒤에도 쭉 아슬란에 대한 것만 입방아에 오를 것이다.
아무리 충격적인 안건이 회의 중에 나와도 이들은 끝까지 아슬란 얘기만 하고, 아슬란 얘기로 마무리를 지을 것이다.
그만큼 아슬란이 남기고 간 강렬한 인상은 쉽사리 머릿속에서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카르만님께서도 궁금하지 않습니까? 아슬란 그자가 무엇을 말하는지.”
왜 그가 검을 들었는지, 그런 무지막지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뒷전에만 물러나 있었는지.
그랬던 그가 왜 이제서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는지.
날이 갈수록 물음표만 가득 남기는 사내였다.
“이래서야 회의를 진행할 수 없겠군.”
도저히 회의를 이어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 카르만은 손을 들어 말했다.
“오늘의 원탁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소. 추후 다시 일정을 공지할 것이니 그때······.”
하지만 그가 말을 다 끝맺기도 전에,
콰직-! 콰콱-!
원탁이 큰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쿵-!
이윽고 원탁은 몇 갈래로 나뉘어 바닥에 널브러졌다.
“!?”
“워, 원탁이 부서졌어?”
“200년을 지켜온 원탁이 어떻게······!”
“지금까지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검의 원탁.
200년을 지켜온 평화의 상징.
회장 안에서 싸움이 일어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소드마스터 몇 명의 목숨이 날아갈 정도의 큰 싸움이 일어났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때도 원탁은 항상 멀쩡했었다.
그런데 그 원탁이 무너졌다.
"······."
카르만도 멍하니 무너진 원탁을 바라보았다.
아까 그것 때문인가.
아슬란이 손가락 튕겨 미뉴엘을 날려 버렸을 때 말이다.
그때 일어난 파동이 원탁을 찌그러뜨리더니, 기어코 200년 동안 이어온 신성한 원탁을 부서뜨렸다.
그래. 직접 힘을 가하지 않았으면서 고작 손가락 하나로 그동안 수많은 역경을 버텨낸 원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것이지, 아슬란.
“으하하하!”
그는 곧 참지 못 하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카, 카르만님?”
카르만은 한참을 웃다 고개를 저었다.
“이거 엄청난 거물이 들어왔군. 앞으로가 재미 있겠어.”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슬란······.”
카르만은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피가 끓는 것을 느꼈다.
대륙 최강자가 된 이후로 느껴보지 못한 이 감정.
처음으로 누군가와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싸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