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나 혼자 최강 괴력스킬 19화
탁-!
나타샤는 닫힌 문을 슬쩍 뒤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언젠가는 내 밑에서 매달리게 만들어 주마, 아슬란.”
그러고는 밖을 나오는데, 누군가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나는 보았는가?”
“응. 만나봤지.”
“그래서? 아슬란은 뭐라고 대답했지?”
“할라즈 왕국을 치는 거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던데?”
“······그렇군.”
그녀는 짜증 섞인 눈동자로 레이어스 교단 제사장, 이스마엘을 쏘아붙였다.
“그게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지 그랬어?”
“나보다는 자네가 그래도 조금은 아슬란과 가깝다고 생각했으니까. 아카데미에서의 인연이 있지 않은가? 난 아슬란의 의도를 알아야 했네.”
“의도?”
“그가 정말로 개인적인 탐욕을 일삼아 전쟁을 벌이는 그저 그런 기사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을 가진 영웅인지 말일세.”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스마엘은 잠시 주변을 스윽 살펴보았다.
그러자 나타샤는 손가락을 튕겨 마력으로 방벽을 만들었다.
“괜찮아. 이제 아무도 못 들어.”
“······사실 교단에서 받은 정보가 하나 있네.”
“어떤 정보?”
“유한이 악마와 연관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정보 말일세.”
악마라는 말에 나타샤는 비웃음 젖은 입가를 보였다.
“또 시작이네. 대체 레이어스 교단은 이미 다 봉인 돼서 사라진 악마 타령을 얼마나 더 할 예정이야?”
“이번에는 다르네.”
“그 말도 여럿 들어봤지. 무려 100년이 넘도록.”
악마라면 이제 지긋지긋하게 들었다.
350년 전을 마지막으로 잔당 세력 이외의 대륙에 위협이 될 만한 악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니 누구든 이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레파토리를 좀 바꿀 때도 되지 않았나?”
나타샤는 파이프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지폈다.
이스마엘이 미간을 찌푸리자 그녀는 연기를 가득 내뿜으며 말했다.
“이해해줘. 달아오른 몸을 진정시키기에는 이게 딱이거든.”
“아슬란이 마음에 들었나 보군.”
“예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나한테 안 넘어 오더라고. 근데 이상하게 아슬란 그놈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멋있어지는 거 있지? 너랑은 다르게.”
“······.”
“그런데 악마랑 아슬란이 무슨 상관이라도 있는 거야?”
악마가 다시 나타나는 건 상관 없었지만, 교단이 아슬란에게 왜 관심을 갖는 건지는 궁금했다.
“그저 시기가 절묘하다고 해야 할지.”
“뭐가?”
“유한이 악마 세력과 결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정보가 들어온 뒤 얼마 안 있어 아슬란이 갑자기 유한에게 대결을 요청했네.”
“그래?”
뭔가 얘기가 흥미진진할 것 같아 나타샤는 귀를 쫑긋 열었다.
“전장에 제대로 나선 적도 없고, 그저 뒤에만 있던 그가 갑작스레 할라즈 왕국에게 전쟁 선포를 하고 유한과의 대결을 청했네. 자네가 보기에도 뭔가 묘하지 않나?”
“네 말은 그러니까 아슬란이 뭔가를 알고 나섰다는 거야?”
“그래. 그렇게 유한을 일격에 죽이고 아슬란은 망설임 없이 왕국으로 돌아갔지. 자기 할 일은 끝났다는 듯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나? 보통 전쟁이었다면 할라즈 왕국을 단숨에 끝장냈었을 거야.”
그건 나타샤도 의문이었다.
아슬란은 유한을 죽이고 아론까지 잡는 대승을 거뒀는데도 할라즈 왕국을 공격하지 않고 가만히 놔두고만 있다.
충분히 그들을 쓸어 버릴 수 있는 전력이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난 하리엘의 보고를 듣고 그리 생각했네. 사실 아슬란은 악의 세력과 유한이 서로 결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잠깐. 하리엘?”
“그래. 하리엘이 교단의 명을 받고 아슬란을 여기까지 데려왔다네.”
그 말에 나타샤가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아~ 그래서 그랬던 거였어? 아슬란. 이 앙큼한 놈.”
“······?”
“내가 마력까지 쓰면서 유혹을 한 건데, 왠지 끝까지 안 넘어오더라고. 이 독한 놈이. 그게 다 이유가 있었구나.”
“마력으로 유혹을? 지금 그게 대마법사가 할 짓인가?”
“야. 나도 너 같이 늙고 병든 닭한테는 내 아까운 마력 안 써. 괜히 잘못 먹고 탈 날 일 있나.”
“느, 늙고 병든 닭······.”
충격을 받은 이스마엘은 제자리에 경직되었다.
“아무튼, 네 말은 아슬란이 뭔가를 알고 유한을 죽였다는 거지?”
“······그게 우리의 추측이네. 확실하진 않아.”
“이런. 그게 사실이라면 난 더 아슬란한테 끌릴 거 같은데? 호호.”
그렇게 실실 웃으며 이스마엘을 지나쳐 가던 중, 나타샤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 맞다. 난 네 부탁 들어줬다. 나중에 너도 내 부탁 하나 들어줘.”
“그러지.”
“그래. 다음에 또 만났을 때 아는 척하지 말고. 늙은 닭이랑은 얘기 나누는 걸 꺼려해서.”
“······.”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떠나가는 그녀의 향수와 담배 냄새는 코끝을 자극할 만큼 향기로웠다.
평생 신에게 인생을 바치는 제사장의 금욕마저 건들만큼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유혹의 향기는 강렬했다.
그런데 저 여자가 작정하고 달려들었는데도 아슬란은 넘어가지 않았다라······.
“하리엘의 말이 사실이었나.”
아슬란이 정말로 달라졌다는 하리엘의 보고를 듣고 이스마엘은 긴가민가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확인을 하고자 일부러 나타샤를 이용해 그의 마음을 떠본 것이었으나, 역시 그는 하리엘의 말처럼 사사로운 욕심을 위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그럼 정말로 뭔가 알고 있는 것은······.”
그가 미리 알았든, 미리 알지 못하였든, 이거 하나만큼은 알 수 있었다.
아슬란. 그는 확실히 달라졌다.
그리고 어쩌면 이 대륙이 그에게 의지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이스마엘이었다.
* * *
‘전부 괴물 천지로구나.’
검의 원탁 회의가 시작되는 당일.
나는 부하들과 함께 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온갖 스텟 떡칠을 하신 네임드들께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계셨다.
그냥 앉아만 있으면 다행인데, 내가 안으로 들어오자 그들의 시신이 일제히 내게 꽂혔다.
“······.”
나였으면 숨도 못 쉬고 밖으로 나갔겠지만, 아슬란의 허세는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이 정신 나간 캐릭터는 그들의 시선을 즐기고 있었다.
모두가 날 바라보는 것이 옳다는 듯이,
저들은 모두 자신의 아래라는 듯이,
격조 있고 품격 있는 발걸음과 그렇지 못 한 교만한 눈동자로 그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리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펄럭~
망토를 멋들어지게 펄럭이며 앉는 것도 잊지 않았다.
웃긴 건 이런 허세 가득한 아슬란의 모습을 대부분 감탄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놈도 있었다.
“지가 무슨 주인공인 줄 아나? 혼자만 제일 늦게 도착하셨네?”
볼멘 목소리가 나오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거만한 자세의 대표는 아슬란이라고 하지만, 그는 귀족스러운 품위를 잃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냥 거만함을 표방한 천박스러운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미뉴엘]
무력: 94
지력: 55
미뉴엘.
칼라 왕국의 대기사단장이자 대륙 다섯 번째 소드마스터.
사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가 중요하지, 그 아래부터는 실력이 비슷비슷 하다고 볼 수 있다.
그중에서 미뉴엘은 상대방과 싸우는 걸 좋아하는 놈이라 소드마스터가 되기 전에는 광견이라는 별명을 달고 살았다.
즉, 지금 절대 시비가 걸려서는 안 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광견이라는 별명답게 저놈한테 잘못 걸리면 나를 계속 물고 늘어지려 할 것이다.
“나는 회의가 시작되는 정각에 왔다만. 내가 혹시 늦었나?”
“다른 사람들은 미리 와서 다 기다리는데, 너 혼자만 마지막에 오니까 그렇지. 사실상 여기서는 네가 이번 회의에 처음 참석하는 신참 아닌가?”
초장부터 시비를 거는 미친개였다.
문제는 그냥 무시하려고 해도 아슬란의 허세가 저걸 그냥 넘길 리 없다는 것이다.
“그런 같잖은 소리를 들으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다, 미뉴엘.”
“······뭐야?”
미뉴엘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스멀스멀 투기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상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쿵! 상을 내리 찍었다.
“모두 조용.”
대륙의 최강자,
대륙 최강의 검,
그는 무려 기사도, 왕자도 아닌, 칼라 왕국의 국왕, 카르만이었다.
그의 일갈에 회의장 안이 고요해졌다.
“다들 모였으니, 검의 원탁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카르만]
무력: 99
지력: 85
마력: 80
스텟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는 가히 대륙 최강이었다.
거기다 칼라 왕국은 국왕을 포함해 소드마스터가 2명, 대마법사가 3명이나 있기 때문에 전투력이나 자원 측면에서도 다른 왕국들보다 훨씬 더 우위에 서 있다.
그래서 초보자들에게 이 게임을 권할 때 쉽게 깨고 싶으면 칼라 왕국을 선택해 카르만으로 플레이를 하라고 조언한다.
광견이라 불리는 저 미친놈도 카르만 앞에서는 금방 꼬리를 내릴 정도였다.
“그럼 첫 번째 안건부터 해결하겠소.”
검의 원탁 회의는 소드마스터와 대마법사, 그리고 회의를 주관하는 교단의 제사장만 자리에 앉을 수 있고 나머지는 그 뒤에 서 있어야 한다.
발언권 역시 이들만 가질 수 있는 회의였다.
내 뒤에는 아론과 하리엘, 단 두 명만이 있을 수 있었다.
“할라즈 왕국과 일라이 왕국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지?”
대외적으로는 대륙의 평화를 유지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인 만큼 전쟁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계속 전쟁을 한다고 해서 이들이 물리적으로 제재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할라즈 왕국은 더 이상의 다툼을 원하지 않습니다.”
할라즈 왕국의 대표로 나온 대마법사, 켈린의 발언이었다.
부럽다. 유한이 죽었어도 저기는 대마법사가 하나 남아 있어서 건재하구나.
“할라즈 왕국의 뜻이 저러한데, 아슬란. 그대는 어떻지?”
나도 할라즈 왕국과 전쟁을 할 생각은 없었다.
딱 하나 원하는 것이 하나 있긴 했다.
“나 역시 전쟁을 벌일 생각은 없다. 다만.”
“다만?”
“내게 투항한 아론과 그의 기사들이 가족을 그리워 하고 있다. 그들을 일라이 왕국으로 보내라.”
내게 투항했던 아론과 그 외 기사들.
그들이 날 절대 배신할 수 없도록 하려면 가족이라는 인질을 잡아야만 한다.
나중에 또 할라즈 왕국과 싸움이 일어났을 때 저놈들이 가족을 데리고 협박을 한다면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켈린이 어이가 없다는 듯 받아쳤다.
“그들은 우리 왕국을 배신한 배신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가족을 넘겨달라는 겁니까?”
쉽사리 넘겨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요리스의 어깨를 그 지경으로 만든 이후 결심했듯, 여기서는 뒤로 물러나기보다 뻔뻔하게 나가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조금만 방심하면 머리 끝까지 차올라 꿈틀 거리려 하는 허세를 억누르지 않고 풀어 주었다.
“싫은가?”
그러자 내 몸이 의자 뒤로 기대었고, 턱은 상대를 하찮게 여기듯 높아졌다.
“뭐, 협상을 원하신다면 적당한 가격으로 내어 드릴 순······.”
“전쟁.”
“예?”
“그들을 내놓지 않으면 이번에는 내가 먼저 군을 출정시킬 것이다.”
그 말에 회의장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켈린도 당황한 듯 말을 절었다.
“지금 저, 전쟁을 또 하겠다는······.”
“난 분명 아량을 베풀어 유한을 죽인 뒤에도 할라즈 왕국을 추가로 공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은혜를 모르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 만큼 난 너그럽지 않다.”
“······.”
“그러니 선택해라. 그들을 내게 넘겨 평화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할라즈 왕국이 멸망하는 것을 볼 것인지.”
켈린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카르만이 입을 열었다.
“아슬란. 너무 극단으로 치닫는군. 다른 방법은 없겠나?”
“극단으로 치닫게 만든 건 내가 아니라 저놈이다.”
허세로 무장해 뻔뻔하게 나가는 것은 좋았으나,
“그리고······ 이건 제 3자가 끼어들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나와 할라즈 왕국, 둘이서 풀 문제다.”
이건 뻔뻔한 것을 넘어 겁대가리를 상실한 발언이었다.
아무리 허세에 미쳤어도 위아래는 구분할 줄 알아야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카르만한테 저런 소리를···!
후회한들 늦었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 않은가.
아슬란의 충동적인 허세를 조절하지 않고 내비둔 결과였다.
“감히 우리 국왕께 그 무슨 무례더냐?”
과연 벌써부터 입질이 왔다.
카르만을 주군으로 모시는 미뉴엘이 이빨을 드러냈다.
그러나 폭주하기 시작한 아슬란의 허세가 여기서 멈출 리 없었다.
“너에게는 국왕이겠지만, 내겐 아니다.”
“넌 왕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없느냐?”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게 하지 마라, 미뉴엘. 예나 지금이나 머리가 안 좋은 건 똑같군.”
“뭐야?”
벌떡 일어난 미뉴엘에게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의 이글 거리는 눈동자는 오롯이 내게 향했다.
보통 이 정도 했으면 말릴 법도 하지만······.
‘안 말리네. 미친.’
카르만은 상황이 어찌되나 끝까지 보려는 것인지, 흥분한 미뉴엘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가 나서지 않으니,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로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이거 잘하면 진짜 칼부림 한번 나겠는데.
“아카데미 시절부터 내 눈은 쳐다도 보지 못했던 놈이 감히······.”
미뉴엘과 아슬란이 같은 아카데미 출신이었나.
뭐가 어찌 되었든, 미뉴엘이 진짜 칼을 뽑아 들기 전에 이 위기를 넘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원래 상종하기 어려운 천박한 자의 눈을 보지 않는다, 미뉴엘. 전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네가 감히 내 눈을 마주할 자격이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아슬란은 끝없이 선을 넘고 있었다.
결국 거기서 폭발한 미뉴엘은,
“아슬란!!”
어느새 내 코앞까지 달려와 칼을 휘둘렀다.
콰앙-!
하지만 그의 칼은 하리엘의 단검에 막히고 말았다.
“······.”
겉은 무덤덤하게 있지만, 속은 심장이 벌렁거려 토악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체 뭐지?
미뉴엘이 아슬란의 이름을 외치는 것까지만 봤다.
그가 칼을 뽑고, 저 멀리서 여기까지 달려오는 건 보지도 못했다.
이 아슬란의 눈으로는 차마 쫓을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하리엘이 막아 주지 않았다면 단번에 목이 날아가 버렸을 터.
“뭐하는 짓이냐? 누가 내 검을 막으라고 했지?”
“칼을 거두십시오. 신성한 회의 중입니다.”
“신성한 회의 같은 소리하네. 너도 이 새끼랑 같이 죽여 줄까?”
하리엘이 한번은 막아 줬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막아 줄 수 있을까.
아무리 하리엘이라고 해도 상대는 대륙에 10명 밖에 없는 소드마스터다.
하리엘로는 놈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걸 대체 어떻게 하면······.
“하리엘.”
바로 그때였다.
“예?”
“칼을 거둬라.”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을 것만 같았던 아슬란의 허세가 무언가를 초월한듯, 알 수 없는 고양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벌렁거리던 심장은 침착해지고, 빠르게 흐르던 혈맥도 안정이 되었다.
“하지만······.”
“쓸데없는 짓을 했구나. 네가 막아 줄 필요가 없었다, 하리엘.”
그러자 미뉴엘이 비웃음을 터트렸다.
“크크. 허세 부리기는. 예전이랑 다를 바가 없구나, 아슬란. 하리엘 덕분에 목숨을 건진 놈이.”
“미뉴엘.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군.”
“뭐?”
“하리엘은 내 목숨을 구한 것이 아니다. 네 목숨을 구한 것이지.”
“······?”
“하리엘이 막지 않았다면 방금 전 일격으로 넌, 죽었을 것이다.”
미뉴엘은 멍하니 잠깐 나를 바라보더니,
“크하하하!”
미친놈마냥 크게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놈은 하리엘과 맞대던 칼을 거두더니, 그 끝을 내게 겨누었다.
“이거 완전 미친 새끼 아니야. 그래. 어디 보여 보거라. 그 유한을 일격에 죽였다지? 과연 어떤 일격으로 죽였을지 무척 궁금하군. 허세는 그만 부리고, 행동을 보여라.”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허세의 고양감에 젖어 버린 내 몸은 더 이상 상대방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하리엘.”
“네?”
“내가 이래서 여기를 오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나는 내 앞에 있는 미뉴엘의 칼끝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놈은 여전히 내게 빈정대듯 말하고 있었다.
“뭐하고 있느냐? 얼른 잘난 네 힘을 보여 보라니깐?”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하나 밖에 없었다.
“꺼져라.”
그리고 손가락을 가볍게 튕겨 그의 칼끝을 때렸다.
그러자,
터엉-!!
허공을 찢는 파공음이 울려 퍼지면서,
콰콱-!
그것이 그 밑에 있던 원탁을 갈랐다.
“으, 으아아아!!”
내 손가락을 타고 나간 찰나의 괴력은 검을 붙잡고 있던 미뉴엘을 저 먼발치까지 보낸 뒤,
콰아앙-!
그대로 기둥에 처박아 버렸다.
“······”
회의장 안은 경악과 충격에 휩싸인 정적으로 가득 찼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하리엘을 향해 말했다.
"내가 대체 저런 자들과 무엇을 도모하라는 것이냐, 하리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