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나 혼자 최강 괴력스킬 17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카르팰은 끔찍하게 부서져 버리다 못 해 바람 빠진 고무처럼 늘어진 요리스를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애처럼 비명만 지르고 있던 요리스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아슬란의 위압적인 시선에 결국 정신을 잃고 기절해 버렸다.
“공께서는 부하 관리를 잘하셔야겠소.”
“······?”
“허우대만 좋고 입만 산 놈들의 결과는 항상 같지.”
허우대만 좋다고?
입만 살았다고?
요리스는 그런 덩치만 좋은 기사가 아니다.
그는 왕국에서 자랑하는 최고의 돌격대장이며, 카르팰 자신 다음으로 가장 강한 무력을 가진 최고의 기사란 말이다!
“······.”
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종잇장처럼 찌그러진 요리스의 모습에 그저 할 말을 잃었다.
“가겠다.”
붉은 망토를 펄럭이며 아슬란은 부하들을 데리고 떠났다.
그저 허세만 많고 실력은 좁쌀만큼도 없는 자라 여겼거늘.
오늘은 그 모습이 무척 달라 보였다.
“와, 왕자님. 지, 지금이라도 쫓을까요?”
“쫓아서 무얼 하려고?”
“그거야······.”
“요리스의 꼴을 보거라. 아슬란이 고작 한 손으로 저렇게 만들어 놓았다. 너희들이라고 다를 것 같은가?”
요리스가 그저 그런 기사였다면 이 정도로 반응하진 않을 것이다.
요리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건 바로,
“대체 철쇄를 어떻게 한 손만으로 뚫은 거지?”
철쇄.
강철보다도 훨씬 더 단단한 내구성을 가진 몸을 뜻한다.
요리스가 카르팰의 눈에 들었던 건 바로 그 능력 때문이다.
그동안 그가 날아오는 창칼과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용맹하게 돌격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철쇄다.
그런데도 아슬란은 저 무식하게 단단한 몸을······.
“크크.”
카르팰은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와, 왕자님?”
“크하하! 이거 오랜만에 피가 끓는군. 그래. 내가 너무 일라이 왕국에 신경을 쓰지 않긴 했어.”
아슬란.
그래. 너 같은 놈이 그동안 일라이 왕국에서 건재했던 이유가 있었구나.
설마 저런 괴물이 그 약하디 약한 왕국에 웅크려 있었을 줄이야.
내가 그동안 너무 무시를 했던 건가?
“요리스를 데리고 가서 치료해라.”
“아, 예.”
기사들 열 명이 간신히 달라붙어서 요리스를 옮겼다.
카르팰은 아슬란이 지나간 길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흥미가 가는 사내로군.”
앞으로 저자가 밟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이 대륙에 어떤 충격이 가해질지, 생각만 해도 지루함이 싹 가시는 것 같았다.
* * *
“저기······ 대기사단장님.”
내 뒤를 따르는 아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로 인해 일라이 왕국과 에인소프 왕국의 관계가 험악해진다면······.”
“아론.”
“아, 예.”
“넌 너의 본분을 다했을 뿐이다.”
“······.”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아론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주군.”
그러자 이번에는 하리엘이 걱정과 놀라움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슬란. 괜찮겠어요? 에인소프 왕국은 강대국 중 하나에요. 만약 카르팰 왕자가 이번 일로 앙심을 품고 전쟁을 벌인다면······.”
“하리엘.”
“네?”
“넌 너의 본분을 잊지 마라. 날 경호해 준다더니, 하는 게 없군.”
“바, 방금 거긴 경호할 새도 없었잖아요.”
나는 짧게 미소를 지었다.
“농담이다.”
농담이 아니라 사실 진담이었다.
“그리고 왕국 간의 전쟁은 걱정할 필요 없다. 설령 에인소프 왕국이 대군을 이끌고 온다 해도 일라이 왕국은 저런 놈들에게 패배하지 않아. 왜인지 아는가?”
“······?”
“놈들에게는 명분도, 기사의 명예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나는 내게 주목된 시선을 바라보며,
“일라이 왕국에는 나 아슬란이 있다.”
정점을 찍은 허세를 분출했다.
“모두 쉬도록.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
나는 신전에서 배정해 준 숙소로 먼저 들어갔다.
10명 밖에 없는 소드마스터들을 위한 방은 역시 특별했다.
넓고, 화려했지만 지금 그것들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
열기를 뿜어낼 정도로 몸에 가득 차 있던 허세가 주르륵 사라지면서 나는 두 다리가 풀려 버렸다.
그대로 문을 닫은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강행군의 피로와 방금 전 있었던 사건에 의한 긴장감이 한꺼번에 풀렸기 때문이다.
“이런 미친.”
오늘 강대국 에인소프 왕국과 일라이 왕국은 사실상 적대국이 되었다.
잠깐 10골드에 눈이 멀어 하필이면 카르팰과 척을 지다니.
아이고. 내가 미쳤지.
“카르팰이 거기서 칼이라도 휘둘렀다면······.”
그 가벼운 손짓 한번에 내 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다행인 건 카르팰이 건방진 내 일침을 듣고도 칼을 뽑지 않았다는 것이었따.
“이거 곤란한데.”
회의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이 난리가 났다.
최대한 주목받지 않으려고 마음먹었건만, 과연 아슬란답게 시작부터 화끈하게 저질러 주었다.
“그러니까 요리스 그 새끼는 왜 사람 성질을 건드려 가지고.”
아슬란의 허세가 발동한 것도 있지만, 나도 분노를 참지 못 하고 저지른 것도 있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어.”
이왕 이렇게 된 거,
“진짜 뻔뻔하게 나가야지.”
허세로 무장해 아무도 날 건들 수 없게 말이다.
일단 내가 여기서 무사히 살아나가야 뭐라도 할 수 있으니까.
* * *
“아슬란에 대한 교단의 정보를 바꿔야 할 거 같습니다.”
에길론의 말에 옆에 있던 타샤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그러게. 저번에 너 진짜 잘 참았다. 그때 대들었으면 찍소리도 못 내보고 죽었겠는데?”
에길론은 그날 일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그때까진 아직 아슬란을 무시하고 있을 때라 참지 못 하고 칼을 뽑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철쇄의 기사라고 불리는 요리스의 걸레짝이 된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근데 대체 힘이 얼마나 강하면 사람 어깨를······.”
몇 번을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되는 괴력이었다.
견갑으로 보호되고 있는 어깨를 부수기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철쇄의 명성을 가진 요리스의 몸을 그렇게 쉽게 찌그러뜨릴 수 있단 말인가.
“아슬란 대기사단장님께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네?”
“상대방의 몸이 얼마나 단단하든, 얼마나 두꺼운 갑옷을 입고 있든, 그분께는 그저 진흙처럼 나약할 뿐입니다.”
아론은 그리 말하면서 허리춤에 있던 자신의 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반쯤 부러진 그의 검은 여전히 영롱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미스릴?”
“맞습니다. 미스릴로 만들어진 명검입니다. 하지만 아슬란 대기사단장님께서 이것을 맨손으로 부수셨지요.”
쿨럭-.
얘기를 듣던 타샤가 기침을 터트렸다.
“미, 미스릴을 맨손으로요?”
“예. 너무나도 가볍게 부러뜨리셔서 저도 처음에는 미스릴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미스릴은 보통 물질이 아니다.
근데 그냥 미스릴도 아니고 검으로 제작된 것을 맨손으로 부술 정도면 대체 아슬란은 평소에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근데 그걸 왜 들고 다녀요?”
“그날 대기사단장님께서 주신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러자 타샤는 짜게 식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슬란도 아슬란이지만, 그쪽도 정상은 아니네요.”
아론은 미간을 좁혔다.
“저는 괜찮아도 대기사단장님을 모욕하는 건 참을 수 없습니다.”
“아, 예. 그러시겠죠.”
그는 타샤를 한번 흘깃 노려본 뒤 하리엘에게 인사를 올렸다.
“아무튼, 저희도 그만 배정된 곳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네. 들어가서 편히 쉬세요.”
타샤는 기사들과 함께 떠나는 아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흥.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타샤. 너무 상대를 자극하지 말아라.”
“그래도 저자가 왕국을 배신하고 아슬란의 밑으로 들어간 건 맞잖아요?”
“아론을 오래 겪어보진 못했지만, 그가 강직하고 굳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런 마음마저 녹여 내릴 만큼 아슬란이 대단한 거겠지.”
하리엘은 아슬란과 여러 날을 보내면서 왜 아론과 기사들이 그를 충직하게 따르는지, 왜 백성들이 그에게 환호하는지 알 것 같았다.
“너희들도 가서 쉬어라. 난 제사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가겠다.”
“예, 하리엘님.”
그녀는 부하들을 보내 놓고 성전 안에 있는 제사장실로 들어갔다.
“하리엘.”
인자한 노년의 목소리에 하리엘은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정중하게 예의를 차렸다.
“이스마엘 제사장님.”
“그래. 임무는 잘 끝마치고 왔느냐?”
“예. 라할께서 지켜 주신 덕분에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구나. 성전 안에서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다는데?”
“아, 예. 그것이······.”
하리엘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보고했다.
딱 하나.
하리엘도 일부러 빠뜨려 놓고 말한 것이 있었다.
아슬란은 하리엘이 함께 간다는 조건으로 이곳까지 따라왔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만큼은 이상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부끄러웠기 때문일까.
“허어-.”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던 이스마엘은 짧게 기함을 터트렸다.
“아슬란이 정녕 그렇단 말이지?”
“예. 그동안 교단에서 기록한 그의 정보를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글로만 읽은 모습과 너무나도 많은 것이 달랐습니다.”
“흐음. 그래. 그건 네게 맡기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리엘.”
이스마엘의 목소리가 갑자기 착 낮아졌다.
“아슬란은······ 믿을 만한 인물이더냐?”
“그것이 무슨 뜻인지-.”
“교단에 그닥 좋지 않은 소식이 들어왔다.”
그는 뒤에 있던 라할의 동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악의 기운이 발견되고 있다는 소식이었지.”
“악의 기운이라고 하시면 설마······.”
“그래. 악마들이 다시 이 대륙으로 나타나려는 조짐일 것이다.”
악마라는 말에 하리엘은 눈가를 꿈틀거렸다.
지금도 이 대륙에는 악마의 잔당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세력이 굉장히 미미하여 신경 쓸 수준도 못 되었다.
여러 차례 교단에서 그들을 정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스마엘이 저렇게 말한다는 건 오랜 전투 끝에 간신히 무저갱으로 봉인시켜 놓은 악마들이 다시 지상으로 올라오려는 것을 뜻한다.
“지금 이 대륙은 서로 싸울 때가 아니다. 350년 전 그날처럼 다시 모든 종족이 힘을 합쳐야 할 때지. 그래서 내가 네게 묻는 것이다. 아슬란은 믿을 만 하더냐? 그와 등을 맞대고 싸울 수 있겠느냐?”
그러한 제사장의 물음에 하리엘은 한 치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
“제가 봤던 아슬란은,”
그녀는 왕국에서 보았던 아슬란의 모습을 기억한다.
“제 등을 맡기고 싸울 수 있을 정도로 믿음직스러웠습니다.”
그가 백성들을 대하는 자세를,
“만약 그가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결코,”
백성들이 그를 바라보는 뜨거운 눈빛을,
“사사로운 감정이나 욕심을 위한 것이 아닐 겁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들도 아슬란을 믿고 있습니다.”
만약 다시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면 그때 세상은 영웅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리고 하리엘은 그 영웅이 될 사람이 바로,
“아슬란은 그런 사람입니다.”
아슬란이라고 믿었다.
“흠-.”
제사장은 하리엘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교단에 명령을 받고 떠나기 전만 하더라도 그녀는 아슬란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찼다.
그가 절대 소드마스터일 리 없다는 확신이 있었고, 그의 불손한 행동거지는 교단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가 대륙의 영웅이 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대체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바뀌게 만든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다.
“항상 이랬지.”
“네?”
“세상은 혼돈으로 가득 차기 시작할 때마다 영웅이 탄생한다. 어쩌면 네가······.”
그렇기에 이스마엘도
“그 영웅을 만나고 온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아슬란이라는 사람을 다시 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