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스트리머 퇴마사-81화 (81/227)

제81화

#81화 - 폴란드 위즈소카 수용소 (6)

현재 시청자 수 63871명.

현수는 두 눈으로 연구실의 귀신들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철제 의자의 소년 귀신.

그 주변으로 수술복을 입은 성인 귀신들.

세정도 그들의 형태를 흐릿하게 보았지만 촬영 카메라에는 담기지 않았다.

대신 방고리가 심령카메라를 통해 이들이 서 있는 위치를 포착해 주었다.

하날하날은 레이니로 귀신의 얼굴을 포착해보려 했지만 모두 뒤돌아 소년 귀신을 살피고 있는 구도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지금 무슨 상황이죠?”

방고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현수가 말했다.

“확실히 이곳에서 인체실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현수는 소년 귀신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 순간이었다.

수술복을 입은 귀신들이 천천히 현수 일행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스크를 쓴 그들의 눈은 눈동자가 없이 흰자위뿐이었다.

하지만 현수는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동시에 TTP 카메라 스태프는 본인의 카메라에 문제가 생겼는지 이것저것 조작해보기 시작했다.

“어? 이거 갑자기 왜 이러지?”

녹화 화면을 실시간으로 확인해주는 액정이 깜빡거리며 노이즈가 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현수는 카메라 스태프가 당황해 하는 것을 보며 이곳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었다.

EMF 탐지기 역시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5개 불빛이 빠르게 깜빡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탐지 반응 중 가장 강렬한 것이었다.

끼히히히히히힛

이어 고스트돌도 요란하게 울기 시작했다.

콰광-

그 순간, 엄청나게 둔탁하고 큰 소리가 복도 전체에 울렸다.

2연구실 안팎에 서있던 현수 일행과 혜련, TTP 스태프들 모두 깜짝 놀라 주저앉고 말았다.

“꺄아아악!”

혜련이 복도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연구실 밖으로 나가보았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보였다.

굳게 닫혀 있던 모든 문들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었다.

현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 복도를 바라보았다.

한 겨울 같은 강렬한 추위가 휘몰아쳤다.

- ㅎㄷㄷㄷㄷㄷㄷ

- ㅋㅋㅋ솔직히 이번 편은 너무 빼박 조작 아님????

- 맞음. 너무 간 것 같음.

- 말도 안 돼.

- 랩터도 멀쩡한데 연기하고 있는 것 같음.

- 이건 아니짘ㅋㅋㅋ

- 사람이 다쳤는데 구조대가 안 오는 게 말이 됨???

- 완전 고립된 상황을 보여주려는 연출임.

6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동시 시청하고 있는 만큼 조작 논란이 다시 한번 불거지고 있었다.

세정은 현수의 눈치를 보았지만, 현수는 별 의식하지 않는 듯 채팅창을 슥 보고는 다음 연구실로 다가갔다.

그렇게 여러 연구실과 복도를 거닐면서, 현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모든 연구실마다 2연구실에서 보았던 그런 형태의 귀신들이 있다는 것이다!

각 연구실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 명씩 철제 의자에 누워있었고, 주변에는 수술복을 입은 귀신이 서있었다.

수술복에 피가 묻은 귀신도, 묻지 않은 귀신도 있었다.

그 장면은 현수의 눈과 심령카메라가 모두 동시에 잡아냈다.

휘이이이잉-

찬 공기는 아까보다도 더 심하게 지하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렇게 복도를 걷던 현수는 불현듯, 찬 공기가 더 강하게 새어 나오고 있는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에도 역시 철제 의자에는 여자 귀신이 누워있었고, 그 옆에는 수술복의 귀신들이 서있었다.

현수는 그 귀신들을 가만히 보며 철제 의자에 다가갔다.

사아아아아

그러자 귀신들이 회색 연기로 변하며 사라졌다.

현수는 철제 의자를 유심히 보았다.

의자 곳곳에 검은 것이 묻어 있었다.

녹이 슨 흔적과 함께 피가 검게 굳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낡아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가죽이 철제 의자의 손과 발 위치에 매달려 있었다.

아마 손발을 결속하는 용도였던 듯했다.

현수는 뒤로 물러서다 책장에 걸린 장부를 꺼내 보았다.

[15연구실 이용 일지]

장부 표지에는 독일어로 글씨 제목이 적혀 있었다.

현수가 펼쳐보자 이름과 이용 날짜, 시간, 그리고 무슨 연구를 했는지에 대한 메모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거기 뭐라고 적혀 있어요?”

하날하날이 다가와 물었다.

현수는 이름을 제외하고 하나씩 소리 내어 읽어보기 시작했다.

“1941년 2월 3일. 신체 봉합시술 실험. 손목 절단 10분 후 재접합 실시.”

“네?”

“재봉합 후 3일이 경과되어도 신경부위 재생 불가.”

“세상에.”

현수 일행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었다.

“실험의 효율을 위해 마취를 진행하지 않았다.”

“다른 이의 신체를 결합할 수 있는지에 대한 162차 실험.”

“성 전환이 가능한지에 대한 물리적 거세 실시.”

“생화학전에 대비한 가스 실험.”

“호흡기 손상 가스가 혈액에 미치는 영향 테스트.”

현수가 한 문장씩 읊을 때마다 일행들의 표정은 점점 더 일그러졌다.

채팅창 역시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 여기가 거대한 실험실이었던 거네.

- 얘기 봐선 가스실 학살도 있었을 것 같다.

- 샤워실. 샤워실이 그거네.

- 맞음. 홀로코스트 때 가스실을 샤워실이라고 불렀다고 했던 것 같음.

- 겁내 끔찍하다.

- 이러니까 인간이 제일 잔인하다는 거임.

현수는 일지에 적힌 내역을 읽다 고개를 들어 의자를 보았다.

그러자 수술복을 입은 귀신들이 현수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원한이 죽임과 실험을 당한 사람들의 것이라면 저 수술복을 입은 귀신들은 여기 간수들이었던 건가? 직원들?’

현수는 수술복을 입은 귀신들을 응시했다.

“박현수. 여기 이상한 게 있다?”

그때 현수 옆에서 일지를 보던 수정이 말했다.

현수가 다시 일지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수정이 일지의 맨 최신 부분을 가리켰다.

Teraz nasza kolej.

“폴란드어로 ‘이제 우리 차례다.’라고 적힌 거야.”

수정이 말했다.

현수는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다시 의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무표정하게 쳐다보고 있던 수술복의 귀신들이 씩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흰자위만 뜬 눈이 웃고 있는 것이었다.

엄청나게 소름이 끼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주륵

그때부터 그들의 입에 쓰인 마스크에 피가 배어나기 시작했다.

현수는 뒷걸음질로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일행들도 현수의 뒤를 따라 복도에 나와 섰다.

“일지 마지막에 ‘이제 우리 차례다.’라고 적힌 폴란드어 문장이 발견됐어요.”

현수의 말에 너도캠핑이 다가와 물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 거죠?”

“어쩌면 ‘복수’가 자행되었던 게 아닐까요?”

현수가 너도캠핑을 보며 되물었다.

세정은 이 모습을 그대로 촬영하고 있었다.

- ㅅㅂ 맞네. 거기 수감되어 있던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면서 소장이랑 간수를 잡았고, 자기들이 당했던 걸 그대로 복수한 거 아님? 자기들이 실험당했던 곳에서?????

- 맞는 것 같음.

- 이제 우리 차례라는 말이 그거인 것 같은데. 확실히.

- 와. 개무섭다, 진짜.

- 한 마디로 학살과 인체실험을 하고, 그 피실험체가 복수를 하고, 모두가 귀신이 돼서 여기 뒤엉켜 있단 거????

- ......쌉소름.

시청자들의 추리가 이어졌다.

“진짜인지 확인을 해봐야겠어요.”

현수는 바로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확인을 해보다뇨?”

혜련이 쫓아오며 물었다.

“만약 정말 여기서 실험당했던 사람들이 복수로 간수들을 죽이고 모두 귀신이 된 거라면 여기에 악귀와 귀신들이 모두 뒤엉켜 있는 걸 거예요.”

현수는 바쁘게 걸음을 옮기며 대답했다.

“그게 무슨 의미죠?”

“여기 오면서 계속 이상했어요. 사방에 악귀들이 판을 치는데 우리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악귀가 없다는 게. 저는 그게 어쩌면 이 악귀들이 바라는 것이 따로 있어서 우리를 안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런데요?”

“수술복의 귀신. 수술복의 귀신.”

현수는 로비로 올라가는 계단에 서자마자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마스크에 배어난 피.

그리고 잔인한 미소.

“산 사람을 해코지하는 악귀가 있어요. 이곳에도.”

현수가 뒤따라오는 일행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 * *

다시 베이스캠프에 모인 일행들은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여전히 구조대는 올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이쯤 되니 정말 신고가 제대로 접수된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아직도 전화하면 신고 접수돼서 가고 있다는 회신만 들려와요.”

가이드가 말했다.

랩터의 매니저는 답답했는지 자신이 직접 로밍된 가이드의 폰을 뺏어 들고 전화를 해보았다.

하지만 가이드가 말한 답변 그대로 돌아올 뿐이었다.

“사람을 해코지하는 악귀가 있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혜련이 구석에 서 있는 현수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러자 일행들 모두 현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추측인데요. 사람에게 해코지하는 악귀는 보통 연쇄살인범이나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많았어요. 강한 원한을 가진 사람들도 악귀처럼 변하기는 하고요.”

“네, 네.”

“이곳에 들어올 때 보였던 대부분의 귀신들은 모두 회색 형체. 즉 악귀의 형태였죠.”

“맞아요. 심령카메라에 그렇게 찍혔어요.”

방고리가 구형 스마트폰을 들고 흔들며 말했다.

“그런데 제가 느꼈던 것처럼 우리에게 뭔가를 말해주고 싶어 하는 듯한 느낌도 있고 사람을 다치게 하고 싶어 하는 느낌도 공존했거든요.”

“네.”

“지하 연구실을 보니 한 가지를 더 추측할 수 있겠더라고요.”

현수가 자세를 고쳐 서서 말을 이었다.

“이곳은 나치 독일이 유대인이나 공산주의자를 잡아들였던 수용소는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서 학살과 인체실험이 이루어진 것도 사실인 것 같고요. 그런데 지금 저희가 찾아냈다시피 이곳에서 폭동이 일어났고, 이곳 상황은 뒤집어지죠.”

“‘죄수’라 불리던 수감자들이 간수와 소장을 죽였던 것.”

너도캠핑이 덧붙였다.

“네. 그런데 단순히 죽인 게 아니었던 거 같아요. 일부 수감자들은 소장을 토막내버리고 간수들을 지하 연구실로 데려가 ‘복수 실험’을 했던 겁니다.”

“복수 실험.”

“네. 연구실 일지에는 어떤 실험을 했었는지 적혀 있었죠. 수감자들은 간수들을 눕혀놓고 자신들이 당했던 인체실험을 일지 내용 그대로 똑같이 간수들에게 가한 거죠.”

“맙소사.”

혜련이 입을 틀어막고 중얼거렸다.

“잠깐. 그 연구실 철제 의자에는 어린아이도 앉아 있었다며요. 어린아이가 간수는 아니었을 거 아니에요?”

“그 의자에 묶여 있던 사람들 중에는 진짜 나치 독일군에게 살해당한 귀신도 있었던 거죠.”

현수의 대답에 하날하날이 팔짱을 끼고 물었다.

“그렇다면 사람을 해코지할 악귀라 하면-?”

“간수들을 처참하게 죽였던 수감자 귀신들. 그 수술복의 귀신들이에요. 아마 랩터님을 다치게 하고 차에 있던 스태프들을 놀라게 한 자들도 그들이겠죠.”

현수가 대답했다.

“모든 수감자들이 그런 끔찍한 일을 하진 않았겠죠. 그 인체실험 복수를 한 수감자들이 저희를 위협하는 악귀가 될 것 같아요. 우리를 살아남은 간수로 생각할 수도 있는 거죠.”

현수는 자신이 본 것을 토대로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마네킹처럼 서 있는 회색 악귀들은 이곳에서 죽어 나갔던 수감자들.

그리고 지하 연구실에서 수술복을 입고 있던 악귀들은 폭동 이후 간수들을 처참히 살해한 수감자들.

이쯤 되니 한 가지 의문이 더 들었다.

“현수 씨 말을 듣다 보니 이상한 건데. 그럼 간수들의 귀신은 어디 있는 거죠? 그 몇몇 수감자들의 인체실험으로 죽은 간수들도 원한이 생겼을 거 아니에요?”

혜련이 물었다.

“맞아요. 그게 키포인트일 것 같아요. 어쩌면 그들을 이용할 수 있을지도요.”

현수는 수정을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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