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화
#폴란드 위즈소카 수용소 (7)
“여기서 ‘간수’라면 나치 독일군인데. 그들을 이용한다고요?”
방고리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죽은 자들은 출신을 불문하고 성불하고 싶어 하죠. 만약 수감자 악귀가 간수들에 대한 원한 때문에 그들을 죽여 놓고도 이곳에 그들의 영혼을 묶어두고 있다면요?”
“복수로 죽여 놓고 그 영혼까지도 구속시킨다고요? 그게 가능해요?”
“우리나라에 귀신을 막는 부적이 있다면 이곳 문화권에도 그런 방법 정도는 있겠죠.”
“아아.”
일행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서로의 원한이 서로 뒤엉켜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 시작은 독일군의 학살이었다.
거기서 이어진 복수는 참혹했고 광기에 젖어 있었으며 비인간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살해당한 간수들 또한 원한에 휩싸인 귀신이 되어 이곳 어디엔가 갇혀 있다면, 현재로썬 그 간수 귀신들이 갇힌 장소에서 악귀들을 구속하거나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그래도 수감자였던 귀신들은 피해자니까 무고한 사람들을 건드리진 않을 것 같은데.”
“네. 제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귀신들은 그래요. 하지만 밑에서 본 수술복의 귀신들은 아니에요. 그들은 저희를 보고 살의 띤 미소를 지었어요. 간수들을 처참하게 죽이면서 악귀에 쓰인 게 분명해요.”
현수가 말했다.
“뭐가 뭔 소린지.”
TTP 카메라 스태프가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소장실에 있던 것처럼 간수들의 시신도 어딘가에 모여 있을 거예요. 일단 그걸 찾으면 뭔가 방법이 있을 거예요.”
현수가 말했다.
일행들은 말없이 현수를 보았다.
* * *
- 미드나잇 게임은 저리 꺼져네.
- 진짜 생존게임 같아요.
- 지금 어떤 상황이에요?
- 아직 확실한 건 아닌데 캡틴님 추측에 의하면 이러함. 독일군이 저곳에서 수감자를 인체실험함 -> 수감자들이 폭동을 일으킴 -> 독일군 간수들이 죽음 -> 수감자들 중 일부가 악귀에 쓰여 간수들에게 똑같이 복수함 -> 수감자들이 죽은 간수들의 시신을 어디다 봉인해 영혼을 구속시킴 -> 그 수감자들이 죽어 악귀가 돼 여기 떠돌고 있음 -> 간수들의 귀신을 찾으면 여길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 같음.
- 주작이든 아니든 결말이 궁금하긴 하다.
- 그러게요.
- 덕분에 날밤 까고 있음.
현수는 세정과 함께 채팅을 확인하며 1층 복도를 가로질렀다.
뒤로 일행들이 쫓아오며 주변을 계속 살폈다.
이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계속 느껴지는 한기에 소름이 끼치고 있었다.
“인사과. 보급과. 총무과. 의무과. 화학과.”
수정은 현수의 뒤를 졸졸 쫓아가며 1층 행정부서들의 팻말을 읽어주었다.
그러던 중, 현수가 걸음을 멈추었다.
“어?”
바로 뒤쫓아 오던 방고리와 하날하날이 현수의 등에 부딪쳤다.
“아코.”
하날하날도 놀라 소리를 냈다.
“화학과?”
현수가 옆에 굳게 닫혀있는 문을 보며 중얼거렸다.
“화학과?”
“여기에 왜 화학과가 있어요?”
너도캠핑과 혜련이 번갈아 물었다.
현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다.
사아아아아
먼지 냄새와 함께 회색 연기들이 자욱해 보였다.
이내 죄수복을 입은 수감자 귀신들이 사무실 곳곳에서 눈에 띄기 시작했다.
현수는 이들이 해코지를 할까 가만히 서서 지켜보다 천천히 다가갔다.
책상 위에는 두꺼운 장부가 올려져 있었다.
“여기에 이것저것 장부나 일지가 되게 많네.”
수정이 중얼거렸다.
“뭐 기록이 되게 많네요.”
하날하날도 같은 말을 했다.
“이렇게 기록이 많은데 여기에 대해 제대로 밝혀진 게 없다고? 말이 되나?”
방고리는 의아한 생각을 감추지 못했다.
현수 일행 역시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모두 파악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역시 우리 예상대로 바깥에 있는 ‘샤워실’에서 가스 학살이 벌어졌던 것 같습니다.”
현수는 장부를 읽으며 중얼거렸다.
“이 장부는 가스실에서 학살당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어요. 역시 그랬군요. 시설 규모에 비해 입소자가 이상하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하나씩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다.
그때 너도캠핑이 유리 찬장 안에 들어있는 작은 캔을 보고 말했다.
“이게 뭐죠?”
그녀의 질문에 현수와 세정을 비롯한 일행이 그녀 주변으로 다가갔다.
“치클론B 가스.”
수정이 현수의 옆에서 속삭였다.
“독일이 홀로코스트 때 사용했던 독가스로 유명해. 살충제로 개발이 돼서 사이안화수소가 주 성분이야.”
그녀의 설명에 현수가 어깨를 으쓱였다.
“누나가 그걸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귀신이 되면 알고자 하는 건 다 알게 돼. 우린 뇌세포가 없잖아.”
수정은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혼자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그때 TTP 카메라 스태프이 화가 난 목소리로 물었다.
수정이 보이지 않는 그들에겐 현수 혼자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이 가스는 치클론B 가스로 독일군이 유대인을 학살할 때 썼던 가스래요. 살충제였고.”
“살충제? 성분이 뭔데요?”
TTP 카메라 스태프이 물었다.
“사이안화수소요.”
“그게 뭔데요?”
“그게-”
현수가 머뭇거리자 옆에서 수정이 속삭였다.
“청산가스.”
“청산가스요.”
그러자 현수가 바로 전달했다.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는 맹독인 ‘청산가리’가 떠올랐다.
바로 그 청산가리를 기체화시킨 것이었다.
대답을 들은 TTP 카메라 스태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곳에서 가스실 학살이 있었던 건 분명해 보입니다.”
현수가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끼기기기긱
그러자 화학과 부서 안에 있던 귀신들이 일제히 현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수감자들은 간수들이 자신들에게 했던 짓을 그대로 돌려주며 잔인하게 살인을 했어요.”
현수가 창밖으로 몸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이곳에 온 수많은 사람들이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었을 거고요.”
현수의 말에 너도캠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가스실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이곳을 점령한 수감자들이 간수들을 가스실에서 죽였을 가능성이 크죠. 자신들이 당했던 것과 같이.”
현수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 순간이었다.
콰차차창-
화학과의 모든 창문들이 일제히 깨지며 유리 파편이 쏟아져 들어왔다.
“큭!”
현수를 비롯한 일행들이 몸을 움츠렸다.
사아아아아아
이어 안에 있던 귀신들의 몸이 마리오네트처럼 꺾이면서 기괴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뭔가 귀신들을 크게 자극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가요. 나가!”
현수가 말했다.
그러자 일행들은 허겁지겁 복도로 뛰어나갔다.
방고리가 들고 있는 심령카메라에도 온통 회색 형체가 잡혔고, 하날하날이 레이니 앱으로 이곳저곳을 볼 때마다 이목구비가 포착되었다.
사방에서 귀신과 악귀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현수는 이들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하며 다시 베이스캠프를 향해 돌아갔다.
1층 행정부서가 있는 복도에서 베이스캠프가 있는 로비로 향하는 모퉁이를 도는 순간, ‘퍽’하는 소리가 들렸다.
일행 모두가 걸음을 멈추고 앞을 보았다.
위에서 사람 형체의 무언가 바닥에 떨어져 물풍선처럼 터졌다.
하지만 피가 터지는 것이 아닌, 회색 먼지가 되어 사그라졌다.
퍽-
이어 같은 것이 또 보였다.
로비가 내려다보이는 2층과 3층 난간에서 사람 형태의 귀신들이 로비를 향해 투신하고 있는 것이었다.
“으으으으.”
그리고 이 모습은 현수 뿐 아니라 모두에게 확실히 보이고 있었다.
겁에 질린 스태프들과 현수 일행은 발이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했다.
“그대로 뚫고 달려요!”
뒤에서 현수가 외치자 TTP 카메라 스태프부터 눈을 질끈 감고 내달렸다.
깜빡 깜빡-
베이스캠프에 설치한 조명도 기괴하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나가요! 나가요!”
일행 모두가 베이스캠프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끼기기기기긱
사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확실히 기이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현수는 베이스캠프로 달려가며 뒤를 보았다.
그러자 수술복에 피를 잔뜩 묻힌 악귀가 복도 끝에 서있는 것이 보였다.
사아아아아아
그의 몸 주변에서는 회색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철수 준비 해!”
TTP 카메라 스태프이 소리쳤다.
현수가 놀라 앞을 잠시 보았다가 다시 뒤로 고개를 돌렸다.
쿵!
그러자 수술복 악귀가 현수의 바로 등 뒤에 나타나 있었다.
콰당!
현수가 깜짝 놀라 넘어졌다.
사아아아아아아
악귀가 메스를 들고 팔을 치켜들었다.
“으으으!”
현수가 누운 채로 솔트샷건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팡-
소금에 맞은 악귀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자취를 감췄다.
이곳에서도 소금이 효과가 있는 것이었다.
“뭐해요!”
그 사이 방고리가 달려와 현수를 일으켜 주었다.
“악귀가 엄청 화가 났어요. 아니, 화가 난 건지 신이 난 건지.”
현수는 방고리와 함께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그 사이, 스태프들이 베이스캠프의 조명을 해체하고 배터리들을 챙겼다.
그러자 일행들 모두 손전등을 켜 바로 주변을 비추었다.
“읏챠!”
남자 스태프 중 한 명은 랩터를 등에 업고 빠져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 사이 TTP 카메라 스태프가 출입문으로 달려가 문을 열려 했다.
쿵 쿵 쿵
하지만 아무리 두드려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분명 잠겨 있지 않음에도 밀리지 않는 것이었다.
“이거 왜 이래! 왜 이래!”
TTP 카메라 스태프가 버럭 다급하게 소리쳤다.
너도캠핑이 달려가 문을 딸려 하자 방고리가 성큼 다가갔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닌 것 같아요!”
그는 온 체중을 실어 문고리 바로 옆을 발로 밀어 찼다.
콰아앙-
하지만 소리만 요란하게 울릴 뿐, 열리지 않았다.
“저, 저기! 저기!”
그때 혜련이 로비 한쪽에 놓인 커다란 나무 장의자를 가리켰다.
남자들이 달려가 장의자를 번쩍 들고는 충차처럼 커다란 출입문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콰아앙 콰아앙-
세정은 이 모습을 실시간으로 촬영하고 있었다.
사아아아아아
사방에서 한기가 몰아치고, 수술복을 입은 악귀들의 모습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었다.
세정은 자신의 눈으로도 보이는 이 귀신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 했지만 담기지 않았다.
손전등으로 인해 생기는 제한적인 시야.
마이크에 잡히는 괴상한 소리.
반쯤 미친 듯한 사람들의 모습.
말 그대로 아비규환의 상황이 생방송에 그대로 송출이 되었다.
모든 걸 지켜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현수 옆으로 수정이 다가왔다.
“저자들. 많이 위험하다. 쟤네들한테 ‘먹히면’ 큰일 나.”
수정의 말에 현수가 바로 장의자를 같이 잡고 힘을 보탰다.
우지끈
콰아아앙-
문이 부서지며 열렸다.
그러자 모두가 출입문 밖 앞마당으로 달려 나왔다.
현수는 아직도 앞마당 곳곳에 회색 형체의 악귀들이 서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수술복 악귀들과 달리 여전히 현수 일행을 가만히 지켜만 볼 뿐이었다.
“뭐야! 뭐야!”
TTP 스태프들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허겁지겁 대문으로 달려갔다.
심지어 현지 가이드까지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도망쳤다.
“나가시면 안 돼요! 돌아오세요!”
현수가 외쳤다.
하지만 그들은 귀를 막은 채 전력으로 달려 나갔다.
문이 열리자마자 참아왔던 공포감이 폭발하며 나온 행동이었다.
“저 사람들, 저렇게 두면 안 되는데!”
현수가 혜련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혜련 역시 귀를 틀어막은 채 주저앉아 있었다.
한 마디로 촬영장 상황이 엉망진창으로 변해버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