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9화 마계 장인 (5)
마왕 케만.
과거 성마대전이 아닌 미래의 원래 시대에서는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는 말은.
이 마왕은 아마도 성마대전 도중 적에게 죽었을 확률이 굉장히 높을 것이다.
뭐 꼭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마왕들 중 누군가에게는 밀려서 중간에 죽었을 확률도 있을 테고.
그리고 지금 내 옆에 있는 마왕 하킨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이 마왕의 이름 역시도 미래에 없다는 건.
결국 둘 다 어떤 방식으로든 죽는다는 거지.
어쩌면.
마왕 하킨이 죽는 원인 중에 하나에 저 마왕 케만이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베링턴 산맥을 넘어와 마왕 하킨을 보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이곳의 지휘를 자신이 맡겠다라…….
그것도 마왕 하킨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마왕 하킨 역시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마왕 케만을 노려보듯 쳐다보는 것 역시 마찬가지.
사이가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서로 원수라고 해도 믿을 수 있겠는데?
일단 마왕 케만이 어떤 유형의 녀석인지 궁금해서 나와 보긴 했지만.
딱히 그와 뭔가의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마주치자마자 저렇게 서로 노려보고 있는데 말이지.
거기다 마왕 케만이 마왕 하킨의 군단 지휘까지 맡는다는 말을 곱게 들어줄 리가 없었다.
결구 마왕 하킨이 어림도 없다는 듯 대응했다.
“4군단과 6군단은 엄연히 다른 군단이다. 지휘권은 각자 알아서 하도록 하지.”
마왕 하킨 입장에서는 에센시아 제국 북부를 차지한 게 자신의 공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숟가락 올리러 온 마왕 케만이 지휘권을 운운한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거슬리는 일일 것이다.
만약 저 마왕 케만의 마왕 서열이 자신보다 낮았다면 벌써 녀석을 반으로 갈라놨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먼저 받은 정보는.
마왕 케만의 마왕 서열은 4위.
마왕 하킨은 6위다.
어떻게 보면 고작 두 단계 차이긴 하지만 분명히 상대의 서열이 높긴 하다.
서로 간의 힘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는 뜻이고.
마왕 케만이 대놓고 저렇게 나오는 건 역시 서열이 높기 때문이겠지.
당장 둘이 정면으로 붙게 되면 마왕 케만이 아주 높은 확률로 이길 테니까.
물론 여기서 그런 싸움까지 가게 될 확률은 매우 낮았다.
적어도 외부의 적과 전쟁 중인 지금 같은 경우는 말이지.
4군단과 6군단의 지휘권을 알아서 하자는 마왕 하킨의 말을 들은 마왕 케만이 아주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적들이 눈앞에 산적해 있는데 그들을 효과적으로 상대하려면 지휘권은 하나여야 하지 않겠나.”
그러자 마왕 하킨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그리고는 결국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한마디 내뱉었다.
“네가 여기까지 온 일을 용인한 것만 해도 이미 많이 참았다. 그러니까 더 이상 내 인내를 시험하지 마라. 당장 내 녀석의 목을 날려버릴 수도 있으니까.”
동시에 마왕 하킨이 강렬한 기세를 내뿜자 주변에 폭풍과도 같은 기류가 몰아쳤다.
그와 동시에 마왕 케만의 옆에 따라왔던 다른 마왕들이 자신들의 무기에 손을 올렸다.
언제라도 뽑을 수 있도록.
당연히 마왕 하킨의 옆에 있던 세 마왕들도 자신들의 무기에 손을 올렸다.
이대로 여기서 한 발자국만 더 나서면.
바로 내전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마왕 케만이 한 손을 들어 그들의 행동을 막아섰다.
마치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아주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그리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마왕 하킨을 쳐다보며 말을 꺼냈다.
“할 수 있으면 어디 한 번 해보든지.”
자신은 언제라도 싸울 수 있다는 듯 두 팔을 쫙 펼치면서 기세등등하게 말하자 마왕 하킨의 표정이 다시 구겨졌다.
이건 어떻게 보면 그를 향한 도발이나 마찬가지였다.
꼬우면 덤비라는 딱 그런 느낌.
마왕 케만이나 마왕 하킨 둘 다 아직 전투형으로 변하지 않아서 당장 손을 쓰지 않을 것 같지만.
누구 하나 칼을 빼 들면.
결코 전투를 마다하지 않을 터.
칼날 위에 선 것마냥 서로의 군단을 노려보고 있는 대치 상황이 얼마나 지났을까.
의외로 먼저 발을 뺀 것은 마왕 케만이었다.
능글맞은 표정으로 두 손을 들더니 마왕 하킨을 보고 말했다.
“그만두도록 하지. 우리 잘난 서열 1위께서 여기 와서 싸우진 말라고 했거든. 적을 앞에 두고 일을 망치면 다 엎어버린다던가…… 아무튼 그렇게 됐다.”
“……젠장.”
보아하니 마왕 하킨도 그 서열 1위라는 마왕 녀석의 성향을 잘 아는 듯 했다.
다 엎어버린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수긍하는 걸 보면.
그리고 그 마왕 서열 1위라는 녀석은.
우리 시대의 마왕과는 달랐다.
바로 1군단장 마왕 데칸.
베인 녀석이 모시는 바로 그 마왕이지.
성마대전 중간에 죽어버리는 마왕이기도 하고.
미리 말을 해주진 않았지만.
아니.
말을 한다고 해도 미래에 네가 모시는 마왕이 죽는다고 말해봐야 얼마나 믿겠는가.
미친놈 소리를 듣지 않으면 다행이지.
어차피 말해봐야 믿지도 않을 걸 언급해봐야 입만 아프다.
무엇보다 거기 휘말려 같이 죽는 것보다야 자력으로 마왕이 되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
그런데 서열 4위와 6위 마왕에게 동시에 영향력을 줄 만한 마왕이 대체 어떻게 죽는 거지?
성마대전에서 그에 관련된 내용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아 유저들 중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 역시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고.
따로 한 번 알아봐야 하려나…….
하지만 정보가 워낙 제한적이다 보니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긴 어려울 것이다.
지금이 아닌 미래의 일이기도 하니.
어쩌면 일어나지 않을 일일 수도 있다.
유저들이 지금 성마대전 역사를 너무 많이 바꿔놔서 흐름 자체가 달라졌으니까.
그러다 보니 죽어야 할 녀석들이 살아 있거나.
살아야 할 녀석들이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당장 나만 해도.
타란 제국에서 이미 죽었어야 할 아이샤 황녀를 살려내지 않았던가.
그녀의 위치가 주는 영향력이 적지 않다는 걸 고려해보면.
이미 타란 제국의 역사를 상당히 많이 뒤집어놓은 셈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당장 마왕군에도 일어나고 있었다.
원래라면 에센시아 제국 북부에 마왕군이 발을 딛는 건.
한참이나 미래에 일어날 일이다.
거기다 두 개의 마왕군 군단이 동시에 넘어오는 것도 마찬가지.
만약 원래 죽지 않았어야 할 마왕이 여기서 죽게 된다면.
이번 역시도 역사가 상당히 뒤틀리게 될 터.
아니.
이미 뒤틀릴 예정이다.
난 이곳에서 마왕 몇 놈을 죽여 버릴 작정이니까.
과연 그게 어느 군단의 마왕들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마왕 케만이 손을 휘저으면서 말했다.
“지휘권은 서로 알아서 하도록 하지. 어차피 너도 내가 지휘한다고 들어먹을 것 같지도 않군.”
“그걸 잘 아는 새끼가…….”
두 손을 꽉 쥐며 마왕 하킨이 애써 평정을 찾는 동안 마왕 케만이 말을 꺼냈다.
“지휘권은 그렇다 치고. 진행 상황은 알아야겠는데? 적어도 이곳에 있는 동안은 결국 너나 나나 한 배를 탄 셈 아닌가.”
저 마왕 케만이라는 녀석.
말을 해도 정말 상대가 열 받을 만한 말만 골라서 하는 습관이 있었다.
원래 성격이 그렇던가.
아니면 노리면서 하는 말이던가.
어느 쪽이 되었든 듣는 입장에서는 짜증 나는 스타일이지.
남의 밥그릇 뺏으러 온 놈이 한 배 타령을 하고 있으니.
마왕 하킨이 당장 칼을 빼 들지 않는 것만 해도 정말 많이 참는 셈이었다.
“하아, 상식이 통하지 않는군. 스스로 알아내라. 그 정도는 알아서 할 수 있지 않나?”
여기서 마왕 하킨이 상황 보고까지 하는 건.
자존심에 완전히 스크래치가 나는 일일 거다.
그래서인지 마왕 케만의 요청을 그대로 묵살해버렸다.
그런 마왕 하킨을 빤히 쳐다보던 마왕 케만이 다시 능글맞은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흠. 헤르마늄 광산에 대해선 말해주고 싶진 않다 이거지?”
그러자 옆에 있던 재중이 형이 슬쩍 말했다.
<불멸> 호오. 벌써 거기까지 알아낸 건가?
<주호> 생각보다 빠르네요.
<불멸> 북부로 넘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사실을 안다는 건…… 6군단에 첩자를 심어놨군.
<주호> 네. 당장 알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을 테니까요.
마왕 케만이 천리안 같은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이상.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헤르마늄 광산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긴 힘들었다.
만약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진작 헤르마늄 광산의 위치를 알아내서 작업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남은 건 마왕 하킨의 마왕군에 첩자를 심어놓은 방법밖에 없었다.
<불멸> 과연 저 마왕 케만이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가 더 궁금해지는데?
그 말을 끝으로 둘 다 마왕 케만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부터 저 녀석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따라.
우리도 행동을 달리해야 하니까.
마왕 하킨이 짜증난다는 듯 말했다.
“내 군단에 첩자를 심어뒀나?”
“흠. 그건 피차 마찬가지 아니던가? 너도 내 군단에 첩자를 심어놨을 텐데?”
딱히 부정하지 않는 걸 보면.
마왕 케만의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하긴 서로 못 믿을만한 녀석들이니.
가만 보고 있으니 같은 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적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지금은 그냥 공동의 적이 있으니 잠시 손을 잡고 있는 딱 그럼 모습이랄까.
“그러니 까놓고 말해보자고. 마왕 헤르게니아는 지금 어디에 있지?”
마왕 헤르게니아를 언급하자 마왕 하킨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어떻게 보면 이미 예견된 일이긴 했다.
우리가 암흑 지대에 들어올 때부터 마왕 헤르게니아가 자신의 정체를 알렸으니까.
그 정찰병들 중 누군가가 첩자라면.
이곳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있다는 사실을 알렸을 것이다.
굳이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찰병들의 입을 타고 레손 후작령에 주둔하고 있는 마왕군 내에 정보가 퍼졌을 테니.
새로운 마왕의 등장은 그만큼 이슈가 되니까.
어지간한 녀석들은 다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네가 마왕 헤르게니아는 왜 찾는 거지?”
불편한 표정과 더불어 경계하는 얼굴로 마왕 하킨이 말하자 마왕 데칸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농담이라면 그만두지. 상위 마왕들이 마왕 헤르게니아를 계속 찾아온 이유가 하나밖에 더 있나.”
“마왕 헤르게니아를 만나서 어쩔 작정이냐?”
“하. 너무 경계하듯 날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 나 역시 그녀 앞에서는 너와 같은 입장일 테니. 아무리 막 나가는 마왕도 그녀에게는 한 수 접어주지 않나.”
“흠. 설마 다른 마왕군에도 소문이 퍼진 거냐?”
그 질문에 마왕 케만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은. 하지만 곧 모두가 알게 되겠지. 6군단에 첩자를 심어둔 건 나만이 아니니까.”
“젠장. 한 번 다 갈아엎던가 해야겠군.”
“그래 봐야 소용없다는 건 잘 알 텐데?”
“……지배의 눈.”
“그래. 조무래기 몇 홀리는 건 일도 아니다. 바꿔봐야 결과는 똑같아.”
“그럼 그 년의 귀에도 들어갔겠군.”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러더니 마왕 케만도 살짝 짜증 난다는 듯 말을 이었다.
“너, 내가 여기 올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렇게 군단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고. 더군다나 성마대전의 최전선에 있는 군단을 말이야. 지금쯤 천사 새끼들이 좋다고 칼춤 추고 있을 거다.”
“그건 네가…… 아니다.”
뭔가 따라갈 수 없는 내용들이 두 마왕 사이에 오가자 나나 재중이 형 모두 표정을 굳혔다.
<불멸> 우리가 모르는 내용이 있는 모양인데?
<주호> 네. 아무래도 마왕 케만이 자신의 의지로 여기 온 게 아닌 것 같아요.
처음에는 마왕 케만이 마왕 하킨의 공적을 뺏으러 왔다고 생각했었다.
마왕 하킨 역시도 같은 생각이었고.
그런데 막상 마주치고 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 가는 중이었다.
곧 마왕 케만이 본론을 꺼내 들었다.
“대천사들이 냄새를 맡았다.”
“설마?”
“이제 헤르마늄 광산의 위치를 알게 된 건. 우리만이 아니라는 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