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0화 마계 장인 (6)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헤르마늄 광산으로 부랴부랴 제국군을 투입한 건.
다른 곳의 이목을 끌지 않고 빠르게 헤르마늄 광산을 되찾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간에 귀찮은 파리가 꼬이지 않도록.
그리고 그중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가장 우려하는 큰 파리는 바로 대천사들이었다.
자신들 이상으로 헤르마늄 광산을 원하는.
대륙 최대 규모의 헤르마늄 광산이라면 그들이 욕심을 내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대천사들이 냄새를 맡았다는 마왕 케만의 이야기에 재중이 형이 혀를 찼다.
<불멸> 이번에 에센시아 제국이 움직이면서 꼬리를 남긴 모양인데?
<주호> 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불멸> 하긴. 그 정도의 규모로 움직이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게 더 무리겠지.
재중이 형 말대로 몰래 움직이려던 에센시아 제국 황제의 의도와는 달리, 이번에 헤르마늄 광산으로 투입된 병력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았다.
문제는 그렇게 수도를 떠난 제국군의 이동 방향이 에센시아 북부가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만약 그대로 북부로 출발했다면 누가 봐도 마왕군을 치러 가는 것으로 보였을 텐데.
너무 급한 나머지 헤르마늄 광산으로 바로 가버린 게 문제였다.
평소에 관심이 없던 이라 하더라도 이런 변화는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을 터.
하물며 그게 대천사라면.
거기다 타란 제국과 달리.
에센시아 제국은 천사군과 관련이 밀접하게 있었다.
그들에게서 기술을 받거나 사 와서 쓰고 있었으니.
천사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분명히 눈에 띄었을 것이다.
마왕 하킨이 놀란 눈빛으로 마왕 케만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 날파리들이 어떻게?”
으음.
마왕 하킨은 대천사들을 날파리라고 부르는 건가.
뭐 엄청나게 싫어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
나 역시 대천사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감정이 있진 않았다.
만나는 대천사들마다 반쯤 나사 빠진 이상한 녀석들밖에 없었으니까.
한 놈은 봉인지에서 날 죽이려 했고.
타란 제국에서 더미로 만난 다른 한 놈도 마찬가지였던가.
보는 놈들마다 어떻게든 날 죽이려는 하는데 좋은 감정이 있을 리가 있나.
솔직히 그런 면에서는 대천사들보다 오히려 마왕들이 더 친근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실제로 친한 마왕들이 훨씬 많은 편이기도 했고.
당장 마왕 헤르게니아만 해도 그렇다.
마왕 벨라라던가…….
다른 몇몇 마왕들도 딱히 나쁜 관계는 아니지.
이러다 보니 오히려 마왕들이 대천사들보다 더 정상으로 보인다고 해야 하나?
마왕 하킨의 물음에 마왕 케만이 당연하다는 듯 답해주었다.
“그 얍삽한 대천사들이 에센시아 제국에 심어둔 귀가 있었다.”
그런 마왕 케만의 대답에 마왕 하킨이 바로 수긍했다.
“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녀석들이긴 하지.”
평소에 마주치기만 해도 싸우려던 두 마왕들도 이번만은 마음이 맞는지, 대천사들을 욕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건 재중이 형도 마찬가지.
<불멸> 큭. 지들끼리 첩자 심어둔 건 생각도 안 하나 본데?
<주호> 하하. 정말 그러네요.
아까 전까지만 해도 서로 첩자를 심어놨다고 욕을 했던 것 같은데.
그 대상이 대천사로 바뀌니 좀 전의 일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두 마왕이었다.
<불멸> 당장 상황이 어찌 됐든 일단은 공동의 적이라는 소리지.
투닥거려도 결국은 둘 다 마왕이었다.
큰 전쟁으로 따지면 이쪽이 더 큰 문제랄까.
마왕 하킨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대천사라니…… 귀찮게 됐군.”
그 말에 마왕 케만이 대수롭지 않은 듯 말을 꺼냈다.
“어차피 우리가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이상 마주칠 일이었다. 그 시점이 조금 빨라졌을 뿐.”
확실히 이건 마왕 케만의 말이 맞긴 했다.
베링턴 산맥을 넘어와 에센시아 제국 북부에 마왕군이 떡하니 주둔하고 있는데 대천사들이 이걸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있나.
당장 에센시아 제국이 마왕군에게 뚫리게 되면.
그들에게는 허리가 노출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어차피 헤르마늄 광산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대천사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하긴 했을 것이다.
그런 마왕 케만의 말에 살짝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투로 마왕 하킨이 물었다.
“그래서 너를 이곳에 파견한 건가? 대천사들이 지원 온다고?”
마왕 하킨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지금 마왕 하킨의 마왕군의 규모로 에센시아 제국은 상대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에센시아 제국에 지원군이 더 늘어가게 되면 분명히 부담이 된다.
잘못하다간 애써 확보한 에센시아 제국 북부를 내어주고 다시 베링턴 산맥이 막혀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그러면 이후엔 지금보다 훨씬 베링턴 산맥에 대한 수비가 보강될 것이다.
비밀 통로 역시 막혀버릴 테고.
그렇게 됐을 경우 다시 베링턴 산맥을 뚫기에는 마왕군 입장에서도 정말 부담되는 일이겠지.
“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다른 뜻이 있다는 건가?”
그러자 마왕 케만이 자신이 이곳에 온 의도 중 하나를 더 꺼내놓았다.
어쩌면 이쪽이 더 핵심일 지도 모르겠지만.
“마왕 헤르게니아. 그녀를 마왕군에 복귀시키라는 부탁을 받았다.”
“명령이겠지.”
“딱히 부정하고 싶진 않군.”
에센시아 제국 북부에 대한 지원.
그리고 마왕 헤르게니아의 복귀.
이게 저 마왕 케만이 부랴부랴 베링턴 산맥을 넘어온 이유였다.
그중 두 번째는 우리에게 그다지 달갑지 않은 내용이었다.
재중이 형 역시도 마찬가지.
마왕 케만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불멸> 흐음. 헤르게니아를 복귀시킨다라…… 미래의 일이 벌써 일어나는 건가?
역사가 또 바뀌었다.
원래라면 마왕 헤르게니아가 마왕군에 복귀하는 건.
성마대전이 한참 진행된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아직은 아니라는 거지.
뭐 우리가 마왕 헤르게니아를 봉인 결계에서 꺼낸 일도 영향을 끼친 모양이다만.
<주호> 설마 벌써 마왕들이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어요.
정확히는 그녀의 특성이 문제가 된 셈이었다.
바로 마계 최고의 장인이라는 특수함.
사실 여기 오기 전까지는 마왕 헤르게니아가 다른 마왕들의 무구를 손봤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아마 그 말을 좀 더 일찍 들었다면.
그녀를 에센시아 제국으로 데려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다른 마왕들의 시선을 끌게 될 테니.
마왕 케만의 의도를 알게 되자 마왕 하킨 역시 바쁘게 머리를 굴리는 듯 했다.
아무래도 마왕 하킨은 자신의 무구를 고치기 위해 마왕 헤르게니아를 찾은 거니까.
당장 마왕 헤르게니아가 마왕군에 복귀하게 된다면.
그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손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최우선적으로 마왕 헤르게니아가 마왕 하킨을 도와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긴 하겠지만.
보아하니 다른 마왕들도 그녀에게 관심이 있다 못해 넘쳐흐르는 모양이니.
<불멸> 마왕 하킨 입장에선 죽 쒀서 개 주는 느낌일 거다.
<주호> 네. 그간 공들인 걸 고스란히 내주는 거죠.
어쩌면 마왕 하킨에게는 이것조차도 밥그릇 싸움의 연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는 그렇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마왕 하킨이 자신의 의도를 숨기면서 말했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마왕군으로 복귀를 원할지는 잘 모르겠군.”
“무슨 뜻이지?”
“사실 그렇지 않나. 그동안 마왕 헤르게니아가 봉인당해 있는 동안 아무도 그녀를 찾지 않았다고. 그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고 나서야 우르르 달라붙는 꼴이라니. 꼴이 우습지 않은가.”
“아니. 그건 마왕 헤르게니아의 봉인된 위치를 찾지 못해서……!”
“그녀 입장에선 그것조차 변명으로 들릴 것이다. 무려 봉인 된 지 몇백 년이 지났지 않나.”
“음……!”
마왕 하킨의 말은 딱히 틀린 말이 아니었다.
듣기에도 일리가 있는 말이고.
만약 이전 성마대전 시대에서처럼 마왕들이 합심해서 그녀를 빼냈다면야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겠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마왕 헤르게니아를 봉인에서 꺼내준 건 다름 아닌 우리 쪽이니까.
그런데 아무런 기여도가 없는 마왕들이 마왕군에 복귀하라고 재촉하는 일은.
마왕 헤르게니아 입장에서는 충분히 불쾌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마왕 하킨이 그 점을 물고 늘어진 셈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그녀가 원하지 않을 경우.
마왕들은 아무런 명분이 없게 된다.
<불멸> 저 마왕 하킨 녀석. 꽤 하는데?
<주호> 네. 헤르게니아가 선택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상황을 잘 만들었어요.
어쩌면 마왕 하킨이 당장 꺼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마왕 하칸의 방법은 잘 먹힌 듯 했고.
마왕 케만이 난감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일단……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부터 들어봐야겠군.”
저건 아마도 한 발짝 물러난 듯한 제스쳐랄까.
<주호> 생각보다 너무 쉽게 물러나네요.
<불멸> 케만의 입장에서도 헤르게니아에게 마왕군 복귀를 강요할 순 없을 테니까. 잘못하다가 그녀의 눈에 나기라도 하면…….
<주호> 자기도 손해다 이거죠?
<불멸> 그렇겠지. 아마 마왕의 무구를 가진 모든 마왕들이 여기서 자유롭진 못할 거다. 그러니까 굳이 마왕 케만 자신이 나서서 총대를 메긴 싫다는 뜻이지.
미운털 박히지 않기 위한 꼼수.
이건 마왕 케만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당장은 우리도 걱정하진 않아도 되겠지만.
<주호> 혹시라도 헤르게니아가 마왕군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어쩌죠?
이전 성마대전 시대에서처럼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만약 혹시라도 상황이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내 우려 섞인 말에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묘한 미소가 섞인 말투로.
<불멸> 정말 그렇게 생각해?
<주호> 네?
<불멸> 아냐, 됐다. 넌 가끔 네 가치를 너무 모르는 것 같기도 해.
<주호> 흐음.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재중이 형은 딱히 걱정하진 않는 듯 하니.
일단 우려할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일까.
곧 마왕 케만이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생각이지? 내 마왕군은 행군한다고 고생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군.”
저건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안내해달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자 마왕 하킨이 바로 응수했다.
“흠. 레손 후작령에는 4군단이 전부 주둔할만한 공간이 없다. 대신 근처 영지에 자리를 마련해주지.”
일단은 시간을 벌겠다는 건가.
마왕 케만은 그런 마왕 하킨을 빤히 쳐다보다가 수긍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먼저 온 마왕 하킨이 조금 우세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4군단의 안내를 휘하의 부하에게 맡긴 뒤 마왕 하킨이 내게 다가왔다.
“직접 보니 어떤가?”
“뭐…… 나쁘진 않군요.”
솔직한 감상으로는 조금 의외의 상황도 있긴 했지만.
크게 문제 될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상황.
“헤르마늄 광산 일은…….”
아.
마왕 케만을 그곳에 보내 에센시아 제국군과 싸우게 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좀 묘하게 바뀌었지.
굳이 성과를 내려고 온 것 같지도 않고.
아마 중간에 욕심을 부추기려고 해도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일단 그런 성향은 아닌 모양이라.
“아. 그건 굳이 우리가 나서지 않더라도 될 겁니다.”
“음? 무슨 뜻인가?”
궁금함 가득한 마왕 하킨의 모습에 손가락으로 헤르마늄 광산 방향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마 지들끼리 신나게 싸울 거니까요.”
누가 더 욕심이 넘치는가의 싸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