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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83화 (1,383/1,404)

#1383화 침공 (12)

두 개의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마왕군 군단이라…….

그것도 그중 한쪽은 다른 한쪽의 성과를 홀라당 벗겨 먹기 위해 산맥을 넘어오는 중이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딱히 그 일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만약 이대로 흘러간다면.

에센시아 제국 북부가 어떤 식으로 변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아마도 황소 녀석의 말대로라면 새로 오는 군단장은 기존의 히칸 마왕의 계획에 제대로 반대할 예정인 것 같으니까.

뭐 혹은 같이 손을 잡고 전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 가능성은 굉장히 희박해 보였다.

만약 이번에 오는 마왕이 협조적인 성향의 마왕이었다면 저 황소 녀석이 굳이 마왕 헤르게니아에게까지 무릎 꿇고 애원하는 상황까진 오지 않았을 것이다.

갑자기 황소 녀석이 무릎을 꿇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그를 넌지시 내려다보았다.

“마왕 하킨에게 힘을 빌려 달라?”

“네. 그렇습니다.”

그때 마왕 헤르게니아가 조금은 의외의 질문을 했다.

속을 알 수 없는 꽤 묘한 웃음을 지으며.

“지금 이 부탁은 단순히 네 생각일까? 아니면 마왕 하킨의 생각일까나?”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에 순간 황소 녀석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 그건…….”

“네 주제를 안다면. 고작 마왕군 정찰병의 대장 정도가 함부로 내뱉을 수 없는 말인 건 너무 잘 알고 있겠지?”

듣고 보니 확실히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이 맞았다.

감히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지금의 발언은 주제를 넘어선 부탁이었다.

일개 정찰병이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말이기도 하고.

“마왕의 말에 걸린 책임은 무거워. 설마 이게 마왕 하킨이 정식적으로 요청한 사안인가? 만약 그렇다면 진지하게 한 번 고민해보도록 하지.”

“……아닙니다.”

“그럼 당장 내가 네 목을 날려버려도 되겠네?”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의 엄포에 황소 녀석의 머리가 바로 바닥에 찍혔다.

쿵!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주제넘게 나섰습니다.”

“응. 그러니까 네 선에서 책임지지 못할 말은 아예 하지 않는 게 좋아.”

잠시 황소 녀석의 처분을 생각하는 듯 하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손을 휘휘 저으면서 말했다.

“네 녀석의 목을 여기서 바로 날려버릴 수도 있지만. 내게 정보를 넘겨준 공을 사서 목숨은 거두지 않으마.”

“감사합니다!”

결국 도가 넘친 황소의 부탁은 없던 일로 넘어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감탄의 투로 말을 꺼냈다.

<불멸> 자칫 곤란해 질 뻔한 요청을 잘 넘겼어. 만약 여기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마왕 하킨의 편에 선다고 확언이라도 했다면 그 말은 그대로 다른 마족들의 입을 타고 넘어가 나중에 넘어올 마왕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을 테니까.

<주호> 정말 그렇네요.

두 군단장들의 관계가 어떤지 확실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한쪽 말만 들어보고 편을 들어주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긴 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는 마왕 하킨의 손을 들어주는 게 맞긴 하겠지만.

굳이 여기서 못을 박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잘못하다가 발목을 잡힐 일을 만들 필요도 없고.

그런 의미에서 마왕 헤르게니아의 대처는 상당히 괜찮다고 볼 수 있었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황소 녀석을 빤히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차피 네 선에서는 결정하지 못할 이야기잖아.”

“네. 맞습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겠지? 나, 기다리는 건 별로 안 좋아해.”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화들짝 놀란 황소 녀석이 벌떡 일어서더니 바로 정찰병들에게 달려가 뭔가를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찰병들이 일제히 좌우로 갈라지면서 우리의 옆으로 섰다.

“곧장 마왕님들에게 안내하겠습니다. 이동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날 보면서 물었다.

“비공정으로 갈 거야?”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동해야 한다면 굳이 비공정을 두고 갈 이유는 없었다.

곧 마왕 헤르게니아와 함께 안내를 위해 황소 녀석이 비공정에 올라탔다.

잠시 두리번거리는 걸 보니 아마도 마왕군의 비공정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듯 했다.

슬쩍 황소 녀석에게 가서 말을 걸었다.

“많이 다르지?”

“흠. 이건 제국군의 비공정인가?”

“그래, 마왕께서 쭉 대륙에 있었으니까.”

“흠. 역시 그렇군.”

내 설명을 듣고는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는 듯 했다.

대륙에 있었으니 대륙의 비공정을 타고 왔다는 건 일견 타당해 보이니까.

그렇게 황소 녀석의 안내를 받아 이동한 곳은 에센시아 제국 북부의 후작령의 수도인 레손이었다.

레손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 나르샤 누나가 조금은 의외라는 듯 말을 꺼냈다.

“너무 멀쩡한데?”

“네?”

“후작령의 수도라면 마왕군에 저항한 흔적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성벽이 너무 깨끗해.”

그리고 그 사실을 확인시켜준 건 바로 황소 녀석이었다.

“우리 마왕군이 레손의 성벽에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성안이 싹 비워져 있었다. 인간들의 방위군도 사라지고 없더군.”

“북부 후작군이 저항도 해 보지 않고 도망갔다는 건가?”

“덕분에 주둔할 곳을 쉽게 차지했지.”

황소 녀석이 너무 당당히 말해서 오히려 이쪽이 할 말이 없어질 정도였다.

옆에서 재중이 형이 킥킥거리면서 웃어버렸다.

“황제가 레손 후작의 목을 날려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는데?”

“그러게요. 설마 농성조차 해보지 않고 후작령을 버렸을 줄은 몰랐어요.”

그러고 보니 유난히 에센시아 제국 수도로 향하는 행렬이 길었던 것 같았다.

비공정을 타고 지나가면서도 한참 동안 줄이 이어져 있던 걸 고려해본다면.

애초에 마왕군과 싸워보지도 죄다 내뺀 셈이었다.

뭐 인명 피해가 적었다고 하면 보기에 따라 공이 될 수도 있겠지만.

후작령을 통째로 내준 건 또 이야기가 달라지니까.

재중이 형이 대략적인 상황을 유추해서 말을 꺼냈다.

“베링턴 산맥 협곡 관문이 무너지자마자 바로 내뺐거나 그게 아니라면 처음부터 수도에서 지원이 오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던가. 둘 중 하나인데…….”

“황제가 굳이 후작에게 헤르마늄 광산에 대해서 말해주진 않았을 테니까. 아마도 전자이겠네요.”

결국 레손 후작이 저 죽기 싫어서 내뺐다는 말이었다.

그 때문인지 지휘부가 사라져 후작령의 방어군이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을 테고.

“어차피 황제 앞에 가면 모가지일 텐데…….”

“네. 황제가 그냥 놔둘 리는 없죠.”

“그래. 에센시아 제국의 북부의 귀족들이 썩을 대로 썩었다는 사실을 굳이 외부로 알리고 싶지 않겠지. 황제 입장에선 북부의 상황을 레손 후작의 목을 날리는 걸로 책임을 넘겨버리면 일이 편해지기도 할 테고.”

결국 레손 후작은 자기 죽을 자리를 찾아 들어간 셈이었다.

어쩌면 중간에 외국으로 튀었을지도 모르겠다.

레손 후작이 바보가 아니라면 돌아가는 순간 황제에게 죽을 걸 잘 알 테니.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레손에 들어서자 곳곳에 마왕군의 군사들이 진을 치고 주둔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황소 녀석에게 물어보았다.

“영지에 남아 있는 인간들도 꽤 있었을 텐데?”

레손 후작이 북부 수도를 버리고 도망칠 때 굳이 영지민들을 챙겼을 리가 없지.

만약에 레손 후작이 그런 성향이었다면 처음부터 성벽을 두고 영지민들을 지켰을 것이다.

자기 살길 찾아 제일 먼저 도망간 녀석에게 거기까지 기대하는 건 역시 무리다.

잠시 생각해보던 황소 녀석이 기억난다는 듯 대답했다.

“아마 노역을 시킨다고 들었다.”

“전부 다 죽이진 않았군?”

“일꾼은 어디에나 필요하니까.”

딱히 영지민들이 살아 있든지 죽든지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6군단의 군단장인 마왕 하킨의 성향을 겉으로 알아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만약 학살을 즐기는 마왕이었다면 이미 영지민들을 싹 죽여 버렸을 테니.

그리고 죽일 수 있음에도 살려서 노역으로 쓴다는 건 그만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는 거다.

슬쩍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말했다.

<주호> 말이 안 통하진 않을 것 같은데요.

<불멸> 그러게. 이런 성향의 마왕이라면 자신에게 필요하다 싶을 때 적당히 타협할 줄도 알겠지. 더 확실한 건 대화를 해봐야 알겠지만.

재중이 형 역시도 같은 생각이었다.

얼마 뒤 비공정이 레손 후작령의 성벽을 넘자 호위를 하던 정찰부대는 일제히 돌아갔다.

아마 녀석들이 여기까지는 들어오지 못하는 듯 했다.

황소 녀석은 우리의 안내를 위해 남았고.

비공정이 영지에 내리자 황소 녀석이 바로 뛰어 내려가 대기 중이던 병사들과 뭔가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더니 그 병사들이 화들짝 놀란 듯 우리 쪽을 올려다보더니 경례를 올렸다.

“빽이 좋긴 좋네.”

“정말요.”

그렇게 다시 병사들의 안내를 받아 원래 후작의 본성이었던 곳으로 들어가 대전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신답니다.”

대전의 문을 열고 들어간 곳엔.

상석에 하나.

그리고 양쪽에 하나씩.

다 마왕으로 추정되는 녀석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분명 넷이라고 들었는데.

그러자 곧 헤르마늄 광산에 있던 마왕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 녀석은 아직 돌아오진 않은 모양이네.

가운데 있는 마왕 하킨.

예상과 다르게.

마치 보고 있으면.

흐릿한 인상을 준다고 해야 하나?

똑바로 보고 있는데도 왜곡된 형상이 보이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의 마왕이었다.

시야 교란?

아님 다른 기술인가?

아무튼 일반적인 형태의 마왕은 아닌 듯 했다.

괜히 서열이 높은 마왕이 아니라는 거려나…….

잠시 한눈을 팔면 시야에서 사라져버릴 것 같은 존재감에 오히려 더 긴장이 되는 듯 했다.

마왕 하킨의 시선이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가서 멈췄다.

빤히 쳐다만 보고 있는 걸 봐서 혹시나 아는 사이인가 싶어 물어보았다.

“아는 사이야?”

“아니. 오늘 처음 봐.”

“그런데 왜 저렇게 쳐다보고 있어?”

“모르지.”

곧 마왕 하킨이 놀랍다는 듯 먼저 자리에 일어나 마왕 헤르게니아를 맞았다.

“놀랍군요. 정말 그 마왕 헤르게니아라니…….”

흠.

그녀의 존재가 이렇게 놀랄 정도인가?

슬쩍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었다.

“너, 의외로 유명한가 본데?”

“흥. 이제 알았어?”

마왕 헤르게니아가 한참 때도 마왕 서열은 그다지 높지 않았을 텐데.

지금의 마왕 하킨의 반응만 보면.

그렇지도 않은 거였나?

아님 단순히 마왕 서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거나.

거기다 정말 이상한 건.

마왕 헤르게니아가 몇백 년 전의 마왕이라고는 하나.

현재 마왕군의 군단장을 맡을 정도로 마왕 서열이 압도적으로 높은 마왕 하킨이 마왕 헤르게니아에게는 존대를 한다는 점이었다.

딱히 마왕들이 자신보다 약한 마왕에게 이렇게 우대를 할 이유가 없을 텐데 말이지.

뭐 당장 마왕 하킨의 상황만 고려해보면 마왕 하나의 가세가 도움이 되는 건 맞겠지만…….

그런데 갑자기 옆에 있던 다른 마왕 중에 하나가 의문을 제기했다.

외형이 날카로운 수정 같은 장식들로 온몸을 감싸고 있는 특이한 개체의 마왕이었다.

아마도 이놈은 마법 계열의 마왕이려나?

“대천사들의 봉인 결계를 어떻게 들키지 않고 나오셨는지 매우 궁금하군요.”

반면에 또 다른 마왕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야말로 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한 몸이 단단한 마왕의 갑주 바깥으로 불끈대는 모습이라.

저건 어떤 성향의 마왕인지 안 봐도 알겠네.

갑주 사이로 보이는 강렬한 눈빛은 어떤 경고를 보내는 듯 했다.

잠시 그들을 빤히 쳐다보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김이 샌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돌아서면서 내게 말했다.

“나가자.”

그리고는 마왕들에게 아주 잘 들리게 말했다.

“아무래도 얘들은 우리가 별로 필요 없나 봐. 청문회나 하려고 하고. 기분 나빠서 못 해 먹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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