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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82화 (1,382/1,404)

#1382화 침공 (11)

에센시아 제국 황제는 우리의 시선을 헤르마늄 광산에서 완전히 떼어 놓기 위해 일부러 북부 암흑 지대까지 우리를 보냈을 테지만.

사실 그건 정말 큰 실수였다.

우리가 단순히 정찰 임무만 할 거라고 여긴 에센시아 제국 황제의 삽질이지.

설마 이렇게 콘서트라도 열 듯 마왕군 정찰병들을 잔뜩 모아놓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뭐 이건 누구라도 똑같았겠지만.

곧 황소 녀석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대답했다.

“마왕님들에게 말입니까?”

“응. 현시대의 마왕은 어떤가 보고 싶기도 하니까.”

그러자 황소 녀석의 이마에 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뭔가 우려하는 일이 있는 듯.

꽤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어보았다.

“설마. 헤르게니아 님께선 마왕 서열을 새로 고치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그런 황소 녀석의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나 우리나 잠시 벙찐 표정을 지었다.

응?

딱히 그런 의도로 마왕을 보자고 하는 건 아닌데…….

아무래도 이 황소 녀석은 우리의 의도를 굉장히 오해한 듯 했다.

“흐응. 내가 봉인 기간이 길긴 했지.”

“예. 그렇습니다.”

“그럼 내 마왕 서열은 완전히 빠져 있겠지?”

황소 녀석이 잠시 머뭇거리면서 대답을 하지 못하다가 결국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 맞습니다.”

자신의 서열이 없어졌다고 마왕에게 말하는 순간.

대부분의 마왕은 제 성질을 못 이겨 황소 녀석의 목을 날려버리겠지만.

“흐응. 그래서 내가 마왕 서열을 되찾을 거라고 생각한 거다, 이거야?”

그러자 자신의 목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걸 다행으로 여기는지 황소 녀석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보통의 마왕님들은 그러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마왕 헤르게니아가 잠시 생각하는 척하더니 그다지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마왕 서열이 있으면 편하긴 하지. 그런데 지금은 딱히 필요 없어.”

그리고는 싱긋 웃으면서 황소 녀석에게 다시 말을 이었다.

“어차피 마계에 내 마왕성도 없는데 뭘.”

“음……!”

“굳이 지금 와서 마왕성을 하나 내놓으라고 하고 싶지도 않아. 귀찮거든.”

“하지만 마왕성은…… 마왕님들의 가장 큰 자산 중 하나가 아닙니까. 마왕 서열만 찾으시면…….”

“헤에. 지금 나 생각해주는 거냐?”

“주제넘었다면…… 죄송합니다.”

그런데 황소 녀석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마왕 헤르게니아가 했다.

“그런 마왕성 따위 없어도 돼. 난 이미 가진 게 많거든.”

“네……?”

아마 황소 녀석에게는 절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겠지만.

확실히 마왕 헤르게니아가 가진 건 적지 않았다.

그리고 딱히 그녀가 마왕성이 있어서 아크 드래곤 같은 걸 만들어낸 건 또 아니니까.

다른 마왕과 그녀는 애초에 입장 자체가 많이 달랐다.

정말 그녀의 말대로 마왕성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 아쉬울 게 없을 것이다.

그 말을 믿는지 황소 녀석이 안심하는 투로 말했다.

“안 그래도 마왕군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데 마왕 서열전까지 일어나나 싶어 당황했습니다.”

뜻밖의 이야기가 나오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멈칫했다.

“왜? 분위기가 좋지 않은데?”

확실히 이건 이상했다.

지금은 한참 분위기가 올라와야 하는 상황 아니었던가?

베링턴 산맥을 그냥 넘어온 데다가 에센시아 제국 북구 레손 후작령을 그냥 공짜로 삼킨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에센시아 제국의 헤르마늄 광산까지 날려버렸고.

마왕군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데?

분위기가 좋았으면 좋았지.

나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자 말실수라도 했다는 듯 황소 녀석의 이마가 다시 땀으로 흠뻑 젖었다.

“아…… 그러니까…… 이걸 제게 들었다고 절대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일단 무슨 내용인지 들어 보고.”

“끙…… 알겠습니다.”

곧 황소 녀석이 몇 가지 말을 꺼내 들었다.

“사실은 베링턴 산맥을 넘어올 때부터 이미 문제가 많았습니다.”

“문제?”

나나 마왕 헤르게니아 모두 의아하다는 듯 황소 녀석을 봤다.

흐음.

베인 녀석이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게 있었나?

분명 뭔가 문제가 생겼다면 베인이 보고하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혹시 베인이라고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에센시아 제국에 밀정으로 침투해 있던 녀석인데…….”

갑자기 베인 녀석의 이름이 나오자 깜짝 놀랐지만 애써 밖으로 표시를 내진 않았다.

마왕 헤르게니아도 마찬가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 황소 녀석을 쳐다보자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다.

“아, 마왕께서 고작 마족 하나를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으시겠죠.”

가만히 있자 알아서 의심을 풀어버리는 황소 녀석을 보고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설마 여기서 베인의 이름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베인이 처음 마왕군 내에 베링턴 산맥 비밀 통로의 정보를 전달했을 때 꽤 말이 많았습니다.”

“어째서?”

“음. 말도 안 되니까 믿지 못하겠다는 쪽이 마왕군 내에서 우세했거든요. 그래서 거의 묻힐 뻔했는데…….”

“했는데?”

“지금의 6군단 군단장이신 하킨 마왕님께서 베인의 정보를 전해 듣고는 고심 끝에 6군단 전체를 이끌고 출정하신 겁니다.”

듣기에 따라서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베인 녀석이 정보를 마왕군에 잘 전달했고.

그래서 그 정보를 토대로 6군단의 군단장이 나섰다.

실제로 현재 에세시아 제국 북부는 마왕군 6군단이 차지했으니.

딱히 문제가 될 만한 여지 자체가 없어.

“그래서 뭐가 문제라는 거야?”

답답한지 마왕 헤르게니아가 재촉하자 깜짝 놀란 황소 녀석이 곧 다음 정보를 풀어놓았다.

“아, 사실 6군단은 현재 성마대전에서 마왕군의 후방 수비군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자마자 대충 무슨 말인지 감이 왔다.

마왕 헤르게니아 역시도 알아들었는지 말을 꺼냈고.

“수비군 중 하나가 멋대로 움직였다, 이거야?”

“네. 그 때문에 지금 마왕군 내의 다른 군단들이 6군단에 대한 불만을 토해놓는다고 정신없을 정도입니다.”

“만약에 6군단이 베링턴 산맥을 넘지 못하고 삽질이라도 하고 왔다면?”

“아마 잘못되었다면 하킨 마왕님께서 마왕 자리를 내놓으셔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군단장 자리에서 물러나던가.”

그 말을 들은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불멸> 하킨이라는 마왕 놈. 나긴 난 놈이네.

<주호> 어떻게 보면 도박에 가깝죠.

<불멸> 결과적으로 그 도박을 대박으로 만들었잖아.

<주호> 그렇긴 하죠.

만약 내가 하킨 마왕의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과연 자신이 수비하는 지역을 비워놓고 나설 만큼의 메리트가 있는 정보라고 판단했을까?

아니면 혹시 그만큼 자신의 입지가 부족했기 때문일까.

뭐 어떤 이유가 중간에 있었든지 결과적으로 하킨 마왕은 도박에 성공했다.

그것도 초대박을 냈지.

이젠 마왕군의 그 누구도 6군단장인 하킨 마왕에게 잘못했다고 따질 수가 없을 것이다.

결국 마왕군에선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니까.

“하킨이라는 녀석이 결국 이겼네.”

“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문제가 생겼습니다.”

“또 있어?”

황소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게…… 6군단의 뒤를 이어서 다른 마왕군 군단이 현재 베링턴 산맥을 넘어오는 중입니다.”

그 말에 우리는 물론 마왕 헤르게니아까지도 몸이 움찔했다.

이건 우리가 들었던 것과 정보가 다르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살짝 당황한 듯 내 쪽을 쳐다보자 할 수 없다는 듯 내가 앞으로 나섰다.

“새 군단이 나선다는 건. 마왕군에서 직접적으로 이 루트를 이용하겠다는 뜻인가?”

갑자기 뜬금없이 내가 나서자 다소 불쾌한 듯이 나를 쳐다보던 황소 녀석에게 마왕 헤르게니아가 말했다.

“내 보좌관이다. 같은 직급이라 생각하고 대하도록.”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솔직히 마왕인 척 나서 보려고 했는데.

고작 이런 자리에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듯 했다.

어차피 마왕 헤르게니아가 자리를 주도하고 있으니까.

“흠흠. 그건 아니다.”

“마왕군 전체가 나선 게 아니라고?”

뭐지?

분명히 이쯤 되면 마왕군 전체가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성마대전의 경계를 더 늘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일 텐데.

다른 이유가 있는 거려나?

“아니. 사실은 하킨 마왕님과 마왕군에서 서로 진영이 다른 마왕님이 있는데…….”

황소 녀석의 말을 듣는 순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략적으로 알 것 같았다.

재중이 형 역시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불멸> 이거 웃기게 돌아가는데?

<주호> 그러게요. 아무래도 집안싸움인 것 같아요.

그것도 친척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픈.

딱 그런 심보가 아닐까.

그래서 아예 그 땅을 엎어 버리거나.

혹은 자신이 차지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해 볼 법한 일이다.

“설마 하킨 마왕의 공을 가로채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곧 황소 녀석이 분노에 찬 듯 두 손을 부르르 떨면서 외쳤다.

“그래. 감히 우리 6군단의 공을 가로채려고 하다니! 처음에는 그렇게 반대하던 녀석들이 말이야!”

황소 녀석이 화가 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6군단의 마왕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모험을 걸었는데.

그걸 지금 다른 군단의 마왕이 와서 낼름 숟가락을 얻겠다는 거다.

그것도 6군단의 마왕과 달리 베링턴 산맥을 넘는데 반대했던 마왕이라면 더 열 받는 일이겠지.

“그런데 6군단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나?”

자신이 다 차려놓은 밥상이다.

여기다 숟가락을 쳐올린다면.

걷어찰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아마 군단장이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은 꽤 상식 밖의 일이었다.

“젠장. 그래. 우리 마왕님도 손댈 수 없는 마왕이 넘어오는 중이라…….”

“설마 훨씬 윗 서열의 마왕이 넘어온다는 건가?”

내 말에 분하다는 듯 황소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소 녀석의 말대로라면.

이건 회사에서 자신이 우여곡절 끝에 밤을 새며 고생해 성공시킨 프로젝트를 상사에게 고스란히 넘기라는 것과 다름없는 짓 아닌가.

슬쩍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보며 말했다.

다소 난감한 뜻을 보이며.

<주호> 아무래도 계획을 많이 변경시켜야겠어요.

<불멸> 어. 설마하니 새로운 군단장이 넘어올 거라고는 우리도 예상 못 했으니까.

원래라면 한 개의 군단 정도가 산맥을 넘어와서 에센시아 제국을 흔들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지금 넘어오는 군단까지 추가로 올려놓으면 에센시아 제국과의 추가 확 기울게 된다.

그것도 지금 있는 군단보다도 상위의 군단이 넘어오는 거니까.

잘못하다가는 에센시아 제국이 버텨보지도 못하고 끝날 수도 있다.

그럼 우리 장사도 다 망하는 거지.

이제 겨우 판을 벌여놨는데 여기서 망하는 건 우리에겐 절대 좋지 않은 일이다.

다시 황소 녀석을 보면서 물었다.

“그럼 이제부터 에센시아 북부의 군단들은 누가 지휘하는 거야?”

만약 6군단장이 아닌.

새로 오는 녀석이 지휘봉을 잡게 되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움직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군단의 영역은 침범할 수는 없으니까 괜찮겠지만…….”

꽤 우려 섞인 목소리라.

이건 잘못했다가 패가 넘어갈 수도 있다는 뜻일까.

그때 뭔가를 결심한 듯 황소 녀석이 갑자기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다.

“마왕님. 제발 하킨 마왕님에게 힘을 실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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