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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81화 (1,381/1,404)

#1381화 침공 (10)

현재 에센시아 제국 수도에서 북부로 향하는 지상 길은 모두 막혀 있는 상태였다.

정확하게는 북부의 대도시로 이어지는 대로를 막아버렸다.

그리고 이건 에센시아 제국에서 북부의 후작령을 버렸다는 뜻과 다름없었다.

북부를 탈환하기보다는 아예 포기해버린.

이후의 승리를 위한 전략적인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겠지만.

그 방법이 북부의 제국민들을 위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

지금도 쭉 이어진 대로를 따라 수많은 피난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만약 제국 황실에서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관심이 있었다면.

이미 에센시아 기사단과 병사들을 보내 그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해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제국민들은 마왕군에게 언제 공격당할지 모르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비공정에서 지상을 쳐다보던 이쁜소녀가 그들이 불쌍하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북부를 버렸나 봐요.”

그런 이쁜소녀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들 모두 같은 생각일 거다.

그나마 재력이 있어 보이는 북부의 귀족들은 각자의 귀족 깃발이 걸린 비공정을 타고 수도로 향하면서 우리의 비공정을 스쳐 지나갔다.

개중 우리를 발견한 귀족들은 자신들과 반대로 북부로 올라가는 비공정을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에센시아 제국의 비공정이 아닌 다른 국가의 깃발을 단 비공정이 북부로 올라가고 있으니 이상하게 보는 건 당연하려나.

그러다 눈썰미가 있는 한 귀족이 타란 제국의 국기임을 알아보고는 크게 외쳤다.

“타란 제국?!”

“설마 지원군이 온 건가?”

하지만 단순히 지원군이라고 하기에는 비공정의 숫자가 너무 적었기에 그들도 크게 기대를 하진 않는지 곧 가던 길을 그대로 가기 시작했다.

이미 에센시아 제국에서 그들을 버렸다는 걸.

북부 귀족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너무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만약 정말 정상적인 지원군이었다면 이보다는 훨씬 규모가 컸어야 한다.

마왕군을 상대하는데 고작 비공정 몇 대만 보내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라.

아마도 다른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뭐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든 버려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재중이 형 역시 지나가는 비공정들과 지상의 피난민들을 보면서 한마디 했다.

“북부로 지원 가야 했던 병력을 다 돌렸군.”

“헤르마늄 광산으로 말이죠?”

“그래. 황제는 북부를 버리고 헤르마늄 광산을 선택한 거다.”

그런 재중이 형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원래라면 대규모의 지원군이 북부로 향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뜬금없이 생각지도 못한 헤르마늄 광산에 마왕군이 대거 몰려왔으니까.

“이미 점령되어버린 북부와. 앞으로 전쟁에 쓸 자원이 몰려 있는 헤르마늄 광산. 누가 봐도 답은 뻔하지.”

재중이 형도 딱히 황제의 결정을 탓하거나 하진 않았다.

한정된 자원으로 양쪽을 전부 지원할 수 없다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곳을 버리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

오히려 북부와 헤르마늄 광산을 동시에 지켜보겠다고 병력을 나눴다가 이도 저도 아닌 결과가 나오게 되면.

그게 더 문제다.

“아마 저 같아도 헤르마늄 광산을 택했을 거예요.”

애초에 그러라고 마왕군에게 헤르마늄 광산 위치를 알려준 셈이라.

헤르마늄 광산의 운용이 흔들리면.

에센시아 제국 황제는 무조건 이곳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뭐 그래 봐야 어차피 헤르마늄 광석은 캐지 못할 테지만.

“덕분에 북부가 아주 휑하게 비었겠는데. 북부 귀족 나리들도 저렇게 다 피난 가는 중이니까.”

“북부를 알아서 지키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나 봐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어버렸다.

“그게 가능했으면 에센시아 제국이 최강이 되었겠지.”

“하긴 그렇네요.”

사실 에센시아 북부의 후작령은 베링턴 산맥에서 내려오는 몬스터를 처리하는 게 주된 임무였다.

그나마 전력이 강한 곳은 베링턴 산맥 입구의 수비군 정도일 텐데.

이곳은 비밀통로를 통해 넘어온 마왕이 넘어오자마자 바로 박살 내버렸다.

다음은 북부 전체가 그대로 마왕군에 휩쓸려버렸고.

만약 그때 마왕의 공격을 버텨낼 수 있었다면.

지금의 전쟁과는 그 양상이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헤르마늄 광산이 공격당하는 일도 없었을 테고.

마왕군이 북부에 주둔하는 일 역시도 마찬가지.

어느 정도 비공정이 북부로 들어서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에센시아 제국 북부 레손 후작령에 들어왔습니다. 》

그와 동시에.

또 다른 메시지도 울렸다.

《 마왕군의 암흑 지대에 돌입했습니다. 》

《 암흑 지대에 들어온 모든 이에게 암흑 지대 디버프가 적용됩니다. 》

완전한 어둠은 아니었지만 암흑 지대를 경계로 확실히 공기가 달라졌다.

거기다 암흑 지대의 디버프로 인해 체력과 신체 능력 등이 일제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디버프가 적용되지 않는 이가 딱 한 명 있었다.

“하~ 오랜만에 맡아보는 고향의 향기잖아.”

마왕 헤르게니아.

그녀는 지금의 디버프가 전혀 적용되지 않는 데다가.

오히려 그녀를 중심으로 검은 마력이 급격히 휘몰아치고 있었다.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력이 한 번에 돌아오는 것 같달까.

“좋아?”

“응. 너무. 이제 숨 쉴 만하네.”

“그동안은 아니었다는 거야?”

“으음. 그냥 적당히 죽지는 않을 정도?”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의 즐거운 표정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일반적으로 마왕이 주변 환경에 방해를 안 받을 정도로 강하다고 해도.

암흑 지대가 보다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으니까.

거의 모든 신체적인 부분이 이곳에서 더 강할 것이다.

이러니 굳이 마왕군이 북부에 암흑 지대를 만들었겠지.

마왕을 비롯해 모든 마왕군이 이런 환경에 영향을 받을 거니까.

반대로 에센시아 제국군을 포함한 연합군은 암흑 지대에서 패널티를 안고 가야 한다.

그렇게 암흑 지대 경계를 통과하자마자 바로 신호를 줬다.

“착륙하죠.”

여기서부터는 다른 마왕군들에게 공격받을 확률이 아주 높았다.

지금처럼 타란 제국의 깃발을 달고 있는 상황에서는 말이지.

곧 지상에 비공정이 착륙하자 곧장 미리 준비한 깃발로 변경했다.

통상적으로 마왕군의 깃발은 검은색 계열이 많았다.

그리고 마왕 헤르게니아가 즐겨 쓰던 용이 포효하는 문장의 깃발을 그대로 썼고.

어떻게 보면 타란 제국의 그것과 꽤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지도.

“이제 어떻게 하면 돼?”

여기서부터는 우리보다는 마왕 헤르게니아가 훨씬 잘 알 것이다.

“으음. 잠시만.”

그러고는 마왕 헤르게니아가 전신에서 그대로 강한 기운을 일으켰다.

그러자 검은 날개가 등 뒤로 활짝 펼쳐졌고 곧 사방으로 암흑의 기운을 펼쳐냈다.

완전히 전투 형태로 변한 것은 아니었고.

아마도 무언가를 불러내기 위해 마왕의 존재감을 떨치는 것으로 보였다.

“흠. 정말 이걸로 되는 건가?”

“응. 이제 곧 신호가 올 거야.”

그렇게 얼마나 가만히 서서 기다렸을까.

갑자기 저 멀리서 수많은 진동이 울려대며 뭔가가 달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거의 몇백 단위의 병력인데.

감각을 펼치면서 살펴보니 우리를 중심으로 해서 부채꼴로 있던 병력들이 일제히 우리 방향으로 달려오는 모양새였다.

“이거 괜찮은 거 맞냐? 아무래도 근처의 정찰병들이 죄다 달려오는 것 같은데.”

“맞아. 내가 재들 다 불렀어.”

설마하니 마왕 헤르게니아가 이렇게 대놓고 마왕군을 불러들일 줄은 몰라서 조금은 당황했지만.

그녀가 괜찮다고 하면 아마도 괜찮을 것이다.

우리 팀들도 다소 긴장했다가 곧 평안한 나와 재중이 형을 보고는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마왕군 적진 한가운데서 이렇게 안심할 수 있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겠지.

곧 마왕군의 정찰병들이 일제히 몰려왔다가 일정 거리를 두고 더 이상 다가오지 않고 가만히 우리를 포위하듯 열을 맞추고 섰다.

마치 무언가 걸리는 것 때문에 더 접근하기 힘든 딱 그런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 원인을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여기 존재감을 풀어내며 버티고 있으니까.

오히려 마왕군들이 멀리서 우리를 쳐다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모양새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전사 형이 슬쩍 한 마디를 했다.

“여길 가나 저길 가나 빽이 최고네.”

“정말 그렇네요.”

만약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없었다면.

지금쯤 저 많은 마왕군을 썰어대며 전진한다고 아주 개고생을 했을 것이다.

그때 가만히 서 있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가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뎠을 뿐인데 반대로 마왕군 정찰병들이 일제히 뒤로 한 발씩 물러나 버렸다.

“여기 누가 책임자야?”

정면으로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마왕 헤르게니아의 하울링에 마왕군 정찰병들이 일제히 어깨를 움츠리면서 기세가 죽어버렸다.

그러다가 한 개체가 위압감을 이기면서 앞으로 걸어 나와 자신을 소개했다.

“마왕군 6군단 정찰대 대장입니다.”

마치 황소와 같은 우람한 상체를 자랑하는 덩치의 녀석이 풀 장착한 검은 갑주를 뽐내면서 나왔지만.

막상 마왕 헤르게니아의 서늘한 눈빛과 마주치자마자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고는 고개를 조아렸다.

본능적인 움직임.

“혹시…… 마왕님이십니까?”

어디 소속의 마왕인지는 모르는 듯한데.

마왕 특유의 위압감만 해도 그들에게는 충분히 위협이 되는 듯 했다.

이러니 다들 마왕이 되려고 저 난리지.

당장 베인 녀석만 봐도 마왕 달아준다고 하면 내 발까지 핥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번에 너희가 베링턴 산맥을 넘어왔더구나.”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에 황소 녀석의 눈알이 좌우로 지진이라도 난 듯 데굴데굴 굴러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방금 한 말의 진의를 알고 싶어 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분명 자신들의 마왕들은 베링턴 산맥을 이제 넘어왔는데.

방금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만 들어보면 이미 그녀는 이곳에 있었다는 것처럼 들릴 테니까.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판단에 혼돈이 생긴 듯 했다.

옆에서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 말을 꺼냈다.

“저 녀석 지금 마왕들 족보 다 뒤져본다고 머리가 정신없을걸? 아마 마왕군 정찰부대 대장 정도면 어지간한 마왕들 족보 정도는 다 꿰고 있을 거야.”

“그럼 알지도 모르겠네요.”

현재 인간계 쪽에 본체 상태로 존재하는 마왕은 그렇게 많지 않다.

아니.

특정하자면 딱 그녀밖에 없을지도.

물론 이것도 몇백 년 전 봉인된 마왕까지도 알고 있을 때의 얘기겠지만.

잠시 머리를 굴리던 황소 녀석이 고개를 들며 놀라움 가득한 눈빛으로 마왕 헤르게니아를 올려다보았다.

“혹시 마왕 헤르게니아 님이십니까?”

그러자 그녀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세대가 지난 나까지 알 정도면 공부 많이 했나 봐?”

이건 칭찬이자 확답이었다.

“미천한 종이 마왕 헤르게니아 님을 뵙습니다!”

그러자 곧 모든 마왕군 정찰병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면서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경의를 표했다.

“마왕 헤르게니아 님을 뵙습니다!”

“마왕 헤르게니아 님을 뵙습니다!”

.

.

.

마왕들의 숫자가 많다고 하나.

그 하나하나가 전부 다 이들에게는 경외로 우러러봐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올라서고 싶은 자리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게 한 세대를 지난 마왕이라 할지라도.

그 강함이 사라지는 건 절대 아니다.

곧 마왕 헤르게니아가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면서 신난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봤지? 내가 이 정도야.”

“그러게. 이제 좀 마왕 같이 보인다.”

이전에도 마왕이라는 건 잘 느끼고 있었지만.

막상 저렇게 다 무릎 꿇는 걸 보면.

역시 빽이 최고다 싶다.

내 반응을 잠시 살펴보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그럭저럭 만족한 듯 시선을 돌려 황소 녀석에게 명령했다.

“마왕들에게 안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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