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4화 밀수 (7)
바그날 대장로가 혹할만한 조건들을 줄줄이 내세우자 계속 고심하던 그에게서 결국 한 가지 대답이 나왔다.
“정말 에센시아 제국에 마왕군이 침략을 한다면…… 대공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제안을 수락하는 바그날 대장로의 대답에 웃음을 보이려는 찰나.
그에게서 하나의 조건이 더 추가되었다.
“하지만 내가 이 제안을 허락한다고 하더라도 에센시아 제국에 있는 모든 드워프들이 내 의견에 따르진 않을 걸세.”
“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아무리 대장로라고 해도 그를 따르는 드워프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녀석들도 분명히 존재할 테니까.
에센시아 제국에서 잘 정착해 있는데 갑자기 국가를 옮기라고 하면 반발하는 드워프가 나온다.
그렇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어차피 그들이 아니다.
고개를 돌려 레오나 에센시아를 보면서 물었다.
“맥크라이를 따르는 인원이 얼마나 될까요?”
내 질문에 레오나 에센시아가 대략적인 수치를 알려주었다.
“현재 에센시아에 머무르는 드워프 중에 절반 정도에요.”
흐음.
생각보다 많은 거려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절반밖에 안 되는 거긴 한데…….
“나머지 반절은 뭐죠? 맥크라이 장로의 뜻을 거스르는 겁니까?”
내 물음에 레오나 에센시아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뇨. 에센시아 제국에는 맥크라이 장로 외에도 장로가 더 있으니까요.”
“그들 중에 에센시아 제국에 충성을 바치는 이들이 있다는 말로 해석해도 될까요?”
그게 아니라면 전부 다 맥크라이 장로의 말대로 움직여야 했다.
그러자 레오나 에센시아가 슬쩍 바그날 대장로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충성을 바친다든가 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다만 맥크라이 장로와는 의견 충돌이 많은 편이죠.”
“맥크라이 장로의 뜻과 반대로 움직일 거라는 거죠?”
“아마도요.”
“그게 드워프 대장로의 뜻이라고 하더라도?”
다시 레오나 에센시아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맥크라이 장로와 바그날 대장로의 사이를 알고 있어서……."
분명 둘이 사제 관계라고 했던가.
“아마도 드워프 왕이 아니라면 중재하기 힘들 거예요.”
“뭐 그렇군요.”
이건 딱히 크게 신경 쓸 만한 내용은 아닌 듯 했다.
오히려 다른 쪽을 신경 써야 하겠지.
“맥크라이 장로의 반대 세력에 정보를 전달했다가 에센시아 제국에 흘러 들어갈 확률은요?”
“……꽤 높아요.”
“그건 곤란하군요.”
솔직히 드워프들만 정보를 알고 빠르게 빼돌리는 게 우리 목적이었다.
하지만 레오나 에센시아의 말에 따르면 그들에게 정보를 넘겼다가는 중간에 계획이 다 들키고 만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일을 제대로 시작해보기도 전에 망하는 셈이다.
바그날 대장로를 쳐다보자 그 역시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명 우리가 말한 조건들 중 에센시아 제국에 있는 드워프들을 안전하게 타란 제국으로 빼돌린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만 보면 그게 불가능해 보이니까.
솔직히 모든 드워프들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것 자체가 무리다.
곧장 바그날 대장로에게 의견을 말했다.
“전부 다 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일부는 버리겠다는 뜻인가?”
“네. 만약 드워프 중에 하나라도 에센시아 제국에 알렸을 경우. 단 한 명의 드워프도 타란 제국의 국경을 구경조차 하지 못할 겁니다.”
“흐음…….”
무엇보다 드워프들에게 맡겨야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헤르마늄 광산을 무너뜨리는데 있었다.
이 사실이 새어나가는 순간.
에센시아 제국과 타란 제국은 바로 전쟁이다.
아니.
전쟁 이전에.
헤르마늄 광산을 붕괴하는 일이 무산된다면.
앞으로 얻게 될 엄청난 자원을 날리는 셈이라.
고작 드워프 몇을 더 건져 보겠다고 위험을 감수한다?
삽질도 이런 삽질이 없을 터.
잠시 고민을 하던 바그날 대장로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내게 말했다.
“드워프 왕께서 안 계시니 이런 일이 일어나는군.”
그 말대로 아마 드워프 왕이 있었다면 조금의 망설임 없이 드워프 왕의 말을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대장로는 그와는 다르다.
반드시라고 할 명령권이 없다.
뭐 드워프 왕이 없다면 대장로가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하는 건 맞겠지만.
저렇게 파벌로 갈려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도 어렵지 싶었다.
결국 한숨을 쉰 바그날 대장로가 우리에게 공을 넘겼다.
“에센시아 제국에 남는다고 하더라도 바로 죽진 않을 테니…….”
바그날 대장로는 그들의 목숨과 앞으로 얻게 될 이득 사이에서 저울질했다가 한쪽으로 기운 듯 했다.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딱히 바그날 대장로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에센시아 제국에서도 유용한 연구 자원인 드워프들을 마냥 죽게 내버려 둘 리는 없으니까.
정말 수도가 함락되는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는 이상은.
그때까지 그들의 목숨은 보장될 것이다.
만약 그들이 바로 죽을 것 같았다면 바그날 대장로도 생각을 바꿨을지도 모르겠다만.
일단 바그날 대장로를 설득했으니 절반의 성공이려나.
이제 남은 건.
“레오나 황녀께서 맥크라이 장로를 설득해주시면 됩니다.”
“알았어요.”
“그리고 절대 이 일이 새어나가선 안 됩니다.”
“네. 명심할게요.”
곧 카샤스 황제와 레오나 에센시아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그럼. 두 사람 약혼부터 발표합시다.”
내 말에 카샤스 황제는 올 게 왔구나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나 에센시아 역시 꽤 덤덤한 듯 같은 표정이었다.
“아이샤 황녀께선 에센시아 제국에 정식으로 연락을 취해 주세요.”
“시간을 벌어달라는 말이죠?”
“네. 마왕군이 아무리 빨리 침략해도 넘어오는데 걸리는 기간이 있으니까. 그때까지만 시간을 벌어주시면 충분합니다.”
아이샤 황녀 역시도 이 약혼 발표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당장 에센시아 제국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
이보다 더 확실하게 전쟁을 누를 방법이 없을 테니.
“조금 있다가 다시 뵙죠.”
그리고는 재중이 형에게 신호하자 재중이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 그래. 다시 접속해서 보자.
접속 시간이 빠듯하게 남아 일단은 접속을 종료했다.
VRS에서 나오자 꽤 서늘한 공기가 몸에 닿는 기분이었다.
“꽤 지치네.”
이번에는 종일 전투만 치르고 나온 터라.
몸이 축 처지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바로 샤워를 한 뒤 TV를 틀어보니 방송에서 현재의 성마대전 상황을 보여주는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타란 제국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성마대전에 참가한 모든 유저들이 타란 제국에 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서버 전체의 숫자에 비하면 소수라고 불러도 될 인원만 타란 제국에 온 셈이었다.
물론 그들 중 다수가 이번 제물의 결계에 묶여 죽어버렸기에 꽤 많은 원성을 사고 있는 듯 했다.
특히 운영자들에게 말도 안 되는 난이도라고 하며 불만을 토한 게시글들을 하나씩 읽어주는 것도 보였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억울하게 죽었다면서 성마대전에 다시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었던가.
과연 저 항의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만약 정말 타란 제국에서 죽은 유저들을 성마대전에 복귀 시켜준다면 형평성 이야기가 분명히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정작 죽어야 하는 녀석들은 하나도 안 죽은 모양인데.”
타란 제국에서 작업을 했던 몇몇 상위의 유명 길드들은.
우리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이미 타란 제국을 빠져나간 뒤였다.
흐음.
어떻게 알고 빠졌는지 모르겠네.
이걸 내가 알 수 있게 된 이유는.
방송에서 그들의 활약을 뻔히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여전히 성마대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만 봐도 죽지 않았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마 천사들이 알려준 거려나…….”
준비한 결계에 자신들의 세력을 갈아 넣을 생각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확실하진 않고.
한참 성마대전에 연관된 각 지역의 상황을 방송을 통해 지켜보다 이내 타란 제국을 특집으로 해서 올라온 방송을 보게 되었다.
타란 제국에 나타난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와 키메라 등장.
그리고 타란 제국의 새 황제가 나온 것까지.
방금 전 내용까지 따끈따끈하게 올라오는 걸 보면 확실히 생방송이 빠르긴 빠르다.
이건 아예 실시간으로 올려주니 뭐…….
그리고 우리에 대한 내용도 중간에 잠시 언급되었다.
비록 키메라와 마주 싸우는 장면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키메라가 죽고, 제물의 결계가 사라졌으니.
남아 있는 우리가 키메라를 잡았다고 여기는 듯 했다.
결정적인 건.
- 이번에 주호가 타란 제국의 새 대공으로 올랐다는군요.
- 정말 대단하네요. 유저가 성마대전에서 제국의 대공에 오른 일은 최초 아닌가요?
- 네. 다른 왕국에서도 이미 유저들로 왕이 선출되긴 했지만. 제국은 아예 난이도가 다르거든요.
- 어렵죠. 그것도 가장 폐쇄적이라는 타란 제국의 대공이라니.
- 그러고 보니 타란 제국의 역사도 몇 년은 빨리진 셈이죠?
- 그렇습니다. 성마대전의 전설적인 영웅인 카샤스 대공이 벌써 황제가 되었으니까요.
- 이 사건이 향후 성마대전의 전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까?
- 저도 거기까진 알 수 없죠. 이미 너무 많은 역사가 바뀌었어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습니다.
- 네. 그래서 더 재밌어지겠죠? 역사대로만 흘러가지 않아서요.
- 맞습니다. 거기다 천사군과 마왕군의 진형도 갈수록 긴장감이 더해지더군요.
- 베르마 제국 말씀이시죠?
- 그렇습니다. 지금은 초반이라 눈치 싸움을 하는 듯 하지만. 각 광산들을 끼고 있는 지역은 그야말로 하루가 멀다 하고 진영이 갈아 치워지고 있어요.
- 헤르마늄과 베르탈륨 광산은 서로 필요하니까요.
- 네. 자원 쟁탈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 그럼 유저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까요?
- 제국이나 왕국에서 세력을 쌓거나 칭호를 따는 것도 괜찮겠지만……. 아무래도 최전선이 가장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 그만큼 위험하겠죠?
- 아이구. 위험만 할까요. 자신보다 강한 적이 즐비한 곳이라 조금만 긴장을 풀면 목이 날아갑니다.
- 그래도 성장하기에는 좋다는 말이네요?
- 네. 버틸 수만 있다면요. 실제로 버티고 있는 길드들도 있어요.
- 우와. 벌써 진출한 길드들이 있군요?
- 아무래도 초기에 진출한 길드들이 지금은 상당히 높은 위치까지 올라갔죠. 조만간 베르마 제국에서도 유저가 대공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하던데요?
- 굉장하네요.
그 밖에도 다른 국가들의 상황도 간간히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요하스 성국에 대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흐음.
유저들이 제대로 진출하지 못한 곳이라 그런가…….
타란 제국만큼이나 베일에 싸여 있던 국가니까.
그만큼 속이 시커먼 녀석들이 잔뜩 숨겨져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전에 봤던 그 대천사 같은 녀석들…….
천사들이 본거지로 삼기에 요하스 성국은 천국 같은 환경일 테니.
그리고 아주 잠깐 타란 제국의 베르탈륨 광산에 대한 정보도 나오긴 했었다.
뭐 이쪽은 고대 마룡에 완전히 무너져서 재건이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되려나?
화련이 들키지 않게 채굴을 잘하고 있는 듯 했다.
이것도 언젠가는 욕심이 있는 유저들이 접근해 들키긴 하겠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카샤스 황제가 대공령으로 지정해두었으니 아예 대놓고 타란 제국군을 주둔시켜버리면 그만이다.
그럼 유저들은 타란 제국에 반기를 들지 않는 이상은 절대 접근할 수 없다.
괜히 독점 채굴권이 있는 게 아니니까.
거기다 유저들은 이제.
그쪽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것이다.
- 속보. 방금 카샤스 황제와 에센시아 황녀의 약혼 발표됨.
이전 성마대전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은.
이 사건을 보면 과연 유저들은 어떻게 생각하려나?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지은이 : 란델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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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181-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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