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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49화 (1,349/1,404)

#1349화. 재건 (8)

지금 타란 제국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후보는 크게 셋 정도.

에센시아 제국.

천사군.

왕국들의 연합.

베르마 제국과 요하스 성국까지 고려해보면 숫자야 더 늘어나겠지만.

당장 견제해야 할 곳은 저 셋이면 된다.

그중 하나인 에센시아 제국.

“아직 저쪽에 연락이 닿나?”

내 물음에 베인 테스가 살짝 고개를 돌려 카샤스 대공.

아니 이제는 황제인 카샤스 쪽을 흘깃 쳐다봤다.

“따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뭐 좋을 대로.”

아무래도 타란 제국의 새 황제 앞에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기도 했고.

나 역시 거기에는 동의하는 바였다.

카샤스 황제와 한 배를 탔다고는 하지만.

이런 관계까지 알려줄 정도는 아니니까.

우리 대화를 들은 듯 카샤스 황제가 한 발자국 물러섰다.

“서로 할 게 많아 보이는군.”

“역시 그렇지?”

카샤스 황제는 당장 무너진 제국성에서부터 수도 전반에 걸쳐 복구해야 하는 일까지.

처리해야 하는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거기에 흩어진 타란 제국의 병력을 다시 규합하는 일도 해야 하니.

어떻게 보면 나보다는 몇 배는 더 바쁘다고 할 수 있었다.

나야 카샤스 황제가 맡아오던 대공령을 그대로 이어받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

“대공령을 직접 인수인계를 해주고 싶지만. 보다시피 여기가 이 꼴이라.”

그러면서 카샤스 황제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네가 어지간히 잘해놨을까. 아 호칭을 바꿔야 하나? 대공이고 황제 사인데?”

내 물음에 입가에 슬쩍 미소를 짓더니 답했다.

“하라면 할 거냐?”

“아니.”

어차피 표면적으로 난 로가슈 왕국의 대표였다.

그러니까 대공이라고 하나 카샤스 황제의 신하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너라면 그럴 것 같았다. 아무튼 난 귀족들을 모아서 할 일이 많군. 대공령의 처리가 끝나는 대로 연락해. 앞으로의 일들을 의논해야 하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곧장 카샤스 대공이 무너진 타란 제국성 쪽으로 걸어갔다.

아이샤 타란은 내 쪽을 향해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정말 감사드려요.”

딱히 무엇이 감사하다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태도에서 그녀의 진심은 충분히 느껴졌다.

그리고 아이샤 타란이 말을 이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부탁하세요. 그대의 부탁이라면 조건 없이 처리해드릴게요.”

“흠. 그거 꽤 위험한 약속인 것 압니까?”

“그럼요.”

이건 조건 없이 부탁을 다 들어준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그만큼 아이샤 타란이 이번 일에 대해 내게 가지고 있는 감사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 아이샤 타란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아이샤 타란과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

앞으로 카샤스 황제를 대신해 타란 제국의 황제 대리를 할지도 모르는 인물과의 친밀도가 상승하는 건 나쁘지 않았다.

그것도 제한 없는 부탁까지 들어줄 정도라면 더할 나위 없지.

물론 얼토당토않은 무리한 요구까지 들어주진 않겠지만.

지금은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따라가 보시죠. 기다릴 텐데.”

카샤스 대공은 내정까지 완벽하게 처리할 정도의 밸런스를 가지고 있진 않았다.

오히려 전쟁과 전투에 특화된 쪽이지.

그럼 타란 제국의 중요한 안건은 여기 눈앞에 있는 아이샤 타란이 처리할 확률이 높았다.

실질적인 타란 제국의 2인자나 마찬가지다.

“그래요. 조만간 다시 뵙죠.”

곧 아이샤 타란까지 카샤스 황제를 따라나섰다.

그러자 주변에 있는 모든 타란 제국의 병력이 썰물 빠지듯 그들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곧 이곳이 휑하게 비어버리자 재중이 형이 다가왔다.

“이쪽 먼저 처리할 거냐?”

“네. 뭐… 지금쯤 에센시아 제국으로 연락이 들어갔을 것 같아서요.”

여기서 연락은 NPC들의 그것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타란 제국에 있던 유저 중 누구라도 손가락만 까딱하면 바로 에센시아 제국까지 소식이 전해지게 된다.

그중 귀족들과 선이 닿는 녀석들이 있다면.

이 소식이 에센시아 황제의 귀에 들어가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꼭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터.

곧바로 베인 테스를 바라봤다.

베인 녀석 역시도 주변에 걸리는 사람이 없으니 대놓고 물었다.

“에센시아 제국에 연락을 넣어야 하는 일입니까?”

일단 표면적으로 베인 녀석은 에센시아 기사단의 단장이니 연락을 넣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그쪽이 아니었다.

“아니. 그쪽은 아냐.”

“그럼?”

“마왕군.”

마왕군을 언급하자 베인 녀석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밀명이군요.”

“그렇지.”

이전에 에센시아 제국에 정체를 숨겨 지내던 마왕군의 간자를 통해서 연락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번에는 직접 움직여야 하니까.

다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확실한 쪽을 택하는 게 좋았다.

그럼 면에서 베인 녀석은 괜찮은 선택지였다.

적어도 중간에서 의도가 빗나가는 일은 없을 테니까.

“어떤 식으로 전달하면 되겠습니까? 혹시 따로 자리를 만들어드려야 하니까?”

“자리?”

“네. 다른 마왕님과의…”

아마도 베인 녀석은 내가 직접 다른 마왕들과의 대화 자리를 원한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한 번도 베인 녀석을 통해 마왕군과 연락을 할 시도를 하지 않았으니까.

중요한 사안이니만큼 나름 신경 쓴 것 같지만.

내가 원하는 건 거기까지는 아니었다.

아직은.

다른 마왕들과 접촉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피하는 쪽이 낫겠지.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그렇다면?”

그리고는 잠시 고민을 했다.

과연 이걸 지금 이 시점에 베인 녀석에게 말해줘도 되는가 싶은…

솔직히 이걸 지금 풀면.

성마대전의 역사가 바뀐다.

그것도 아주 크게.

한 마디로 지금 난.

전체 전쟁의 방향을 뒤집으려고 시도하는 거다.

슬쩍 재중이 형을 쳐다보며 물었다.

<주호> 에센시아 제국의 협곡. 이거 지금 풀어도 될까요?

그러자 재중이 형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놀라움보다는 마치 때가 됐나 싶은 딱 그런 눈빛이라.

<불멸> 협곡이라… 지금 상황이라면… 나쁘진 않겠네. 아니. 오히려 딱 괜찮은 타이밍이다. 에센시아 제국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려면 이만한 패가 없어.

지금 재중이 형과 말하고 있는 에센시아 제국의 협곡은.

다름 아닌.

마왕군과의 성마대전의 경계를 형성하는.

대륙 최대의 협곡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 형태가 워낙 험준해서 군사를 끌고는 절대 넘을 수 없는.

기껏해야 비공정을 띄워야 겨우 넘어갈 수 있는 정도의 협곡인데.

그렇게 비공정으로 넘어가 봐야 비공정이 넘어올 수 있는 낮은 고도의 경로는 이미 파악이 끝난 상태여서.

협곡에 배치되어 있는 서로의 요새에서 격추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넘어오면서 벌집이 될 생각이 아니라면.

절대로 넘어오지 못한다.

그러니까 애초에 협곡을 통해 상대방의 진영으로 병력을 보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왕군이 에센시아 제국을 직접 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마왕군 군사들은 평지에 가까운 베르마 제국 쪽으로 몰려 진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험준한 협곡을 넘어가 봐야 병력만 날리고 끝나는데 미쳤다고 거길 밀어 넣겠는가.

아무리 마왕들이 대충 병력을 굴린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병력을 날릴 정도로 멍청이들은 아니었다.

뭐 성마대전 초기에는 몇 번 그런 식으로 시도한 멍청이가 있긴 했다던데.

아마 다른 마왕들의 조롱을 받아서 그만뒀다고 하던가.

성마대전의 역사를 보면 관련된 내용이 조금 언급되어 있는 정도였다.

그만큼 에센시아의 협곡은.

난공불락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왕들조차 쉽게 넘볼 생각을 할 수 없는.

재중이 형 역시 괜찮다는 의견을 표하자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는 베인 녀석에게 말해주었다.

“에센시아 제국과 마왕군을 가로지르는 협곡에 대해서 아나?”

내 물음에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베인 녀석이 눈동자가 흔들렸다.

굳이 지금 이 시점에서 그 협곡에 대해서 내가 언급할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곧 눈빛을 날카롭게 가다듬은 베인 녀석이 답했다.

“알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제게 말씀하시려는 내용이 평범하진 않은 모양입니다만…”

“맞아. 듣기에 따라서 꽤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내용이다.”

그것도 지금의 성마대전을 엎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정보이기도 했다.

“문제라… 흥미가 생기는군요.”

현재의 고착화된 성마대전에서.

무언가 불씨가 될만한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인지 베인 녀석도 굉장한 흥미를 보였다.

불쑥 베인 녀석에게 한 가지를 물어보았다.

“지금 마왕군에서 네 입지가 어느 정도지?”

“입지 말씀입니까…”

갑자기 전혀 관련 없는 내용을 물어보자 베인 녀석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곧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말을 꺼냈다.

다소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제국에 침투조 조장으로 나설 만큼의 능력은 인정받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꽤 자신을 포장하는 듯하면서도.

확신까지는 없는.

조금은 애매한 대답이었다.

그러자 슬쩍 운을 떼 보았다.

“언제라도 버릴 수 있는 위치이기도 하고?”

“큭.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요직에 있을 거라면. 이곳이 아니라 마왕군 본진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

약간 자존심을 긁을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베인 녀석은 날 마왕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발끈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속이 상한 것은 분명할 것이다.

실제로.

침투조라는 건.

상황에 따라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위치니까.

들키는 순간.

목이 언제라도 날아갈 수 있는 자리에.

진짜 중요한 인물을 보내는 멍청이들은 없다.

다른 말로.

마왕군의 요직에 앉지 못한 녀석이 밀려나듯 억지로 떠맡는 자리가.

지금의 베인 녀석의 위치일 것이다.

딱 그만큼의 존재감과 입지.

처음에 베인이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대답한 것만 봐도.

본인이 제일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가만히 잘 있다가 갑자기 왜 이런 식으로 자신을 긁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지 베인이 살짝 인상을 구겼다.

솔직히 나도 베인 녀석을 완전히 신뢰하는 건 아니었다.

에센시아 제국의 광산을 차지하려다가 중간에 얻어걸린 마왕군의 침투 조장을 신뢰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기도 했고.

그리고 만약.

이런 신뢰할 수 없는 녀석을 완전히 내 손에 넣으려면.

과연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빤히 베인 녀석을 내려다보면서 운을 띄었다.

이 녀석이 혹할 수밖에 없는.

딱 그런 스케일이라면.

나쁘지 않을 터.

“너, 나랑 큰일 하나 하자.”

“큰… 일 말입니까?”

“그래. 기사단에 붙어서 어설픈 에센시아 제국의 겉에 흩어진 정보 몇 개 넘겨주는 걸로는 그냥 딱 침투조만 하고 끝나. 평생 그 자리만 하고 끝낼래?”

내 속삭이듯 말하는 꼬임은 아주 작지만.

베인 녀석의 심정에는 꽤 큰 파동을 남겼다.

녀석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면서 나를 빤히 쳐다봤으니까.

그리고는 곧 눈빛을 강하게 하며 내게 물었다.

욕망.

욕심.

이런 감정들이 한 데 모여 있는.

딱 그런 눈빛이다.

만년 최상급 마족만 하다 끝내고 싶은 녀석은 없으니까.

그런 녀석의 욕심에 불을 지르기에는 이 땔감은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베인 녀석의 위치에서는 절대 없을 수 없는.

그야말로 최상의 정보다.

“하명하십시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돌았다.

그럼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썰을 풀어줄까.

“에센시아 제국의 협곡. 이곳을 지나지 못한다는 건 잘 알고 있지?”

“네. 난공불락이죠.”

“그런데. 그 협곡을 그냥 넘어갈 수 있다면 어떨까?”

“네?”

“협곡에 통로가 있어. 고대 시대에 만들어진.”

그래.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성마대전의 끝에 가서야 알려지는 비밀이다.

화들짝 놀란 입을 쩍 벌린 베인 녀석을 보고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이 정도 정보면. 네가 마왕군을 움직일 수 있나?”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지은이 : 란델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181-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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