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1화 키메라 (17)
현재 보유하고 있던 무기들이 다 그렇듯.
마검 역시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조건들이 필요했다.
르아 카르테야 초반부터 공을 들여서 그런 제한을 다 푼 상태지만.
용신검 아스카론 같이 죽어라 고생해도 그 조건들이 풀리지 않는 무기도 있었다.
당장 카샤스 대공이 손에 쥐는 것만으로 용신검에 걸린 제한들이 죄다 풀리는 걸 보고 얼마나 황당했는지.
그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카샤스 대공에게 쥐여주는 편이 나았을지도.
애초에 성마대전에서 용신검 아스카론은 카샤스 대공의 고유 무기이기도 한데다가.
타란 제국의 성물이기도 했으니 딱히 할 말은 없긴 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중간에 용신검을 가로챈 것도 사실이라.
반대로 이 마검은 원래의 주인을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마검을 얻은 장소도 그렇지만.
이놈의 마검이 따로 주인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게.
성마대전에서는 제대로 등장하지도 않은 데다가.
마왕 바이카르의 카르페디움 마왕성에 있는 비밀 창고에 처박혀 있었으니.
거기다 주인의 체력을 갉아먹는 특성상.
쉽게 들고 다니긴 힘든 무기 중에 하나였다.
일종의 저주에 가까우니까.
당연히 마검을 제대로 키워내는 것 역시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간 마검을 인벤에 넣어두고 잘 꺼내 쓰지 않는 것도 어느 정도 그런 점을 감안한 일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금 이곳은.
그야말로 마검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는 장소였다.
특히 저 오벨리스크.
타란 제국에 펼쳐진 제물의 결계로 수많은 제물들의 피를 삼킨 오벨리스크는.
그야말로 마검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만찬이나 다름없었다.
그걸 확인한 건.
키메라가 변형시켜 만들어낸 오벨리스크 검과 마검이 닿았을 때 확실히 알았다.
피를 다루는데 있어 둘 중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
검신들이 맞닿을 때마다 상대측의 피를 뺏어오는 건.
다름 아닌 마검이었다.
한 마디로 등급상 마검이 오벨리스크 검을 상회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오벨리스크의 가장 큰 장점인 축척된 피의 힘이.
마검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사실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 마검의 특성이 타란 제국에 펼쳐진 제물의 결계에 완전히 저항합니다. 》
조금 전부터 뜨고 있는 이 시스템 메시지.
그리고 제물의 결계로 스멀스멀 한 방울씩 깎여나가던 체력이 지금은 전혀 깎이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키메라에게 천적이 있다면.
바로 이 마검이 아닐까.
내가 마검들을 들고 앞으로 한 발자국을 내밀자 그만큼 키메라가 한 발자국을 뒤로 물렸다.
꺼림칙함.
당황함.
그런 표정들이 키메라의 얼굴에 드러나는 것만 같았다.
지금껏 그 어떤 존재들도 자신의 앞에서 제대로 대항하지 못했는데.
심지어 저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 마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체력이 깎여서 결국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그런데 눈앞의 난 전혀 다르다.
제물의 결계에 체력이 깎이지도 않을뿐더러.
맞부딪힐 때마다 오히려 자신의 오벨리스크가 깎여나갔으니까.
“카하악!”
결국 키메라가 낼 수 있는 건 저항의 외침 정도가 전부였다.
심지어 키메라의 등 뒤의 마룡의 날개와 천사의 날개가 동시에 펼쳐졌다.
그런데 이건 초고속 기동을 해서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고.
반대로 뒤돌아서 도망가기 위함이었다.
곧장 몸을 돌린 키메라가 이 자리를 이탈하기 위해 빠르게 몸을 날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이 일대에는 마왕 헤르게니아가 자신의 마력을 바탕으로 일대를 내리누르는 강력한 중력장이 펼쳐져 있었다.
아무리 키메라라고 하더라도.
이런 곳에서는 제대로 된 속도를 내지 못한다.
특히 비행은 아예 불가능했고.
키메라가 몸을 날리려다가 생각대로 날아가질 못하자 이제 그 사실을 떠올렸는지 마왕 헤르게니아 쪽을 노려보았다.
“카하악!”
그리고는 그대로 검은 용암들을 시전해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날렸다.
그러자 바로 테이밍된 고대 마룡이 중간을 가로막으며 똑같이 검은 용암을 소환해 그런 키메라의 폭격을 막아내었다.
콰아아앙!!
쿠아앙!!
중간에서 수십 발에 달하는 검은 용암들이 동시에 터져나가며 그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몇 발 남은 건 카샤스 대공이 용신검을 휘둘러서 갈라버렸고.
전사 형 역시 타이탄 라지 쉴드를 앞으로 세워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날아오는 검은 용암을 완벽하게 차단해주었다.
“어딜!”
카샤스 대공과 전사 형의 방어력을 고려해본다면.
아무리 키메라라고 하더라도 절대 저 방어선은 뚫지 못할 것이다.
한 마디로.
이곳을 날아서 벗어나는 건.
키메라에게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마왕 헤르게니아를 죽이지 못하는 한에야.
그리고 키메라가 마왕 헤르게니아를 공격한다고 한 눈을 판 틈을 놓치지 않았다.
바로 키메라에게 거리를 좁히면서 두 마검들을 키메라의 허리를 향해 휘둘렀다.
당황한 키메라가 바로 오벨리스크 검들을 휘둘러서 내 마검들을 막아냈지만.
마치 오벨리스크 검신을 타고 흐르듯이 스쳐 지나가면서 마검들이 키메라의 어깨들을 크게 베어내었다.
촤아악!!
“키아악!!”
동시에 그만큼 키메라의 몸에 상처가 생기며 나오는 피들이 마검의 검신으로 빨려들 듯 흡수되었다.
《 마검이 높은 등급의 몬스터의 피를 다량 흡수해 원래 보유한 힘의 일부를 회복합니다. 》
그리고 반원을 그리듯 키메라 주위를 돌면서 마검으로 키메라의 허리를 크게 갈라놓았다.
마검 중 하나는 키메라의 몸을 감싼 오벨리스크를 갈라놓으면서 지나갔고.
그렇게 벌려진 틈을 따라 정확한 위치에 다시 마검이 파고들면서 완벽하게 키메라의 허리를 갈라냈다.
키기긱!!
촤아악!!
어깨를 가를 때 이상으로 확실하게 느껴지는 손맛에 마검이 부르르 몸을 떠는 것 같았다.
《 마검이 높은 등급의 몬스터의 피를 다량 흡수해 원래 보유한 힘의 일부를 회복합니다. 》
정말 몬스터 수백 마리를 죽여도 반응이 없는 마검 녀석이.
지금은 유효타가 들어갈 때마다 시스템 메시지로 화답하는 중이었다.
그만큼 눈앞의 키메라가 높은 등급이기도 했고.
동시에 어마어마한 피를 보유한 녀석이기도 했다.
마검 입장에서는 이보다 좋은 만찬을 찾아보기는 힘들 것이다.
마치 곳간에서 식량을 빼어다 쓰듯.
야금야금 키메라의 체력을 빼먹는 중이다.
《 봉인된 마검이 높은 등급의 피를 흡수했습니다. 》
《 소유자의 체력 대신 흡수한 피를 소모합니다. 》
《 마검이 소유자에게 피의 고유 버프를 시전합니다. 》
《 마검이 소유자에게 피의 회복을 시전합니다. 》
《 마검이 체력을 회복시킵니다. 잔여 체력 100/100% 》
동시에 마검이 내게 자신의 등급에 맞는 고유 버프를 새로 걸어주었다.
그것도 내 피를 소모하는 게 아닌 상대방의 피를 매개체로.
그러자 내 등 뒤로 펼쳐진 피의 날개가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그만큼 내 능력치도 함께 끌어 올려졌다.
각종 버프들도 마찬가지.
특히 체력 회복과 근력, 마력에 관련된 능력들이 일제히 상향되면 치솟았다.
원래 민첩 위주의 스탯이라 다른 것들은 부족한 부분인데.
그런 다소 모자란 스탯들을 마검은 화끈하게 끌어 올려주었다.
그러자 모든 스탯들이 균형을 잡으면서 몸을 움직이는 게 더욱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과도할 정도의 빠른 움직임을 제대로 신체가 받쳐준다고 해야 하나?
이젠 무리가 없다는 느낌이 들자 더욱더 키메라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그렇게 아예 달라붙다시피 해서 키메라와 공방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특히 사소하게 스쳐 맞는 공격은.
그냥 무시할 정도로.
예전 같았으면 체력의 소모 때문에라도 거의 모든 공격들을 피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만큼 움직임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을 테고.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맞아줄 건 맞아주는 대신.
콰드득!!
촤아악!!
더욱 과감한 움직임으로 파고 들어 억지로 오벨리스크 갑옷을 깨부수고는 그 사이로 마검을 구겨 넣었다.
“카하악!!”
그렇게 키메라 주변을 돌면서 연신 마검을 휘둘러 오벨리스크 갑옷과 검들을 찢어냈다.
키이이익!!
드드득!!
촤아악!!
오벨리스크들이 잘려나가면서 그만큼 피들이 줄줄 새어 나왔고.
동시에 마검들이 다시 그걸 흡수해버렸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내가 입은 피해를 피의 회복 스킬로 빠르게 복구해주었다.
키메라 녀석의 체력은 계속 깎이는데 반해.
반대로 내 체력은 처음의 그 상태와 전혀 다름없었다.
체력 게이지 100%.
이렇게 항상 풀로 체력을 채우고 싸워본 게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안정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다 키메라가 한 번씩 무리를 하면서 날 떼어내기 위해 큰 공격을 할 때면.
그 공격의 카운터를 그대로 먹이면서 보다 큰 대미지를 키메라에게 먹여주었다.
촤아악!!
촤아악!!
특히 타격을 당해 오벨리스크가 복구가 안 된.
이전에 내가 길게 갈라놓은 갑옷들 사이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격을 집어넣기를 수십 번.
결국 키메라의 몸 전체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이전까지 키메라가 보여주었던 오벨리스크의 힘으로 만든 재생력은.
지금은 전혀 쓸모가 없었다.
회복하는 속도보다.
마검이 뺏어오는 속도가 월등히 빨랐다.
그리고 마검이 피를 머금으며 점점 성장을 하면서 새로운 옵션들이 계속 열렸다.
여기엔 정말 미친 옵션들도 존재했다.
개중 가장 도움이 되는 옵션은.
크리티컬 시 상대의 체력 회복을 아예 막아버리는 저주를 거는 옵션도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절대 회복이 불가능한 절대적인 옵션.
다른 말로 오벨리스크의 힘으로도 키메라의 체력을 회복시켜주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무한의 체력을 자랑하던 키메라도.
이 옵션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급격하게 본신의 체력이 빠져나가는데도 불구하고 오벨리스크로 회복을 못 시키자 키메라가 크게 당황한 듯 동공이 흔들렸다.
심지어 지금 피의 축제로 퍼센트 단위로 체력이 계속 빠져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내 공격에 맞을 때마다 드레인 블러드로 피가 빨리는 것 역시 마찬가지.
그 와중에 회복까지 안 되니 당황할 수밖에.
그야말로 천적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오벨리스크의 힘으로 무한한 체력을 가지고 용과 천사들의 강력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것 외에는.
키메라가 가진 무기가 없었다.
그리고 브레스 같은 계열의 스킬을 쓰려고 해도.
절대 그 틈을 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초근접전을 하는 와중에 그렇게 큰 스킬을 썼다가는.
이 자리에서 마검에 바로 목이 날아갈 판이라.
아무리 키메라가 재생이 가능한 능력이 있다고 한들.
목이 날아가는 순간.
일단은 전투 불가능이다.
그 와중에 핵이 공격당하면 키메라고 뭐고 죽음을 면치 못할 테고.
“키하악!!”
결국 키메라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는 날 억지로 뿌리친 다음 도망가기 시작했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듯 했다.
아니면 일단 빠져나갔다가 힘을 모아서 다시 상대할 생각일 수도 있고.
하지만 그런 판단을 할 거였으면.
진작 했어야 했다.
거기다 도망가는 적을 공격하는 게.
가장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빠르게 뒤따르면서 마검들을 휘둘러 키메라의 마룡의 날개와 천사의 날개를 동시에 난도질했다.
그러자 걸레짝이 된 날개들이 결국 그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구어졌다.
이걸로 날개들을 이용한 초고속 기동은 더 이상 쓰지 못한다.
무엇보다 하늘로 날 수도 없을 테고.
여기서 도망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 셈이다.
그때 마왕 헤르게니아가 펼쳐놓은 메가 그래비티의 효과가 사라져갔다.
“여기까지. 더 이상은 유지 못 해.”
아마 시전 시간이 끝났거나 마력이 전부 소모되었거나 둘 중 하나 같았다.
곧 챠밍이 스킬을 지원해주었다.
【 데몬 글래시어! 】
어떻게든 키메라를 이곳에 붙잡아놔야 한다는 사실을 다들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지금 도망가면 회복해서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다.
끝낼 수 있을 때 끝내는 게 최선이겠지.
챠밍의 빙계 마법이 키메라의 발을 묶는 동안.
키메라를 끝낼 수 있는 마검의 스킬을 꺼내 들었다.
오벨리스크로 모아둔 피를 최대치로 머금은 마검이라면.
분명히 키메라를 한 방에 보낼 수도 있을 터.
그대로 신형을 날려 데몬 글래시어 안으로 파고든 뒤.
억지로 잡혀 있던 키메라의 가슴과 복부에 마검들을 찔러 넣었다.
푸우욱!!
핵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면.
그냥 녀석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밖에.
“잘 가라!”
【 블러드 스트라이크! 】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지은이 : 란델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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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181-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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