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16화 (1,316/1,404)

#1316화 내전의 끝 (4)

분명히 전에 타란 제국 황제 주변에 세 명의 최상급 천사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마엘리타에게만 신경이 쓰여서 나머지 둘은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기도 했고.

그도 그럴 것이 천사들 셋 중에서 가장 강한 천사가 마엘리타인데다가 지금 이 일을 계획하고 벌이고 있는 중심이 마엘리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굳이 다르게 표현하자면.

나머지 두 최상급 천사들은 마엘리타에게 일종의 부하 정도라고 해야 하려나?

물론 그들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으니까 확신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보였다.

지금까지는 말이지.

당연히 마엘리타가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우리 눈앞에 있는 녀석들 중에 마엘리타는 없었다.

거기다 나머지 두 천사 녀석들의 태도는.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꽤 많은 차이가 있었다.

슬쩍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말했다.

“배신…… 일까요?”

그러자 재중이 형도 같은 의견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이 시점에서 마엘리타를 배제한다는 의미는 그것밖에 없을 테니까.”

재중이 형이 말한 배제는.

마엘리타의 죽음을 뜻할 것이다.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했으니까.

아니.

이건 정확하게 모른다는 뜻이기도 한가?

재중이 형이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저 녀석들도 마엘리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라…… 일단 배신을 해서 뒤를 쳤는데. 확실히 죽이지 못했다는 거겠지. 그리고는 마엘리타를 놓쳤을 테고.”

나 역시 같은 생각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마엘리타가 정말 죽었다면.

확실히 죽었다고 했을 것이다.

굳이 저들이 우리에게 그런 것으로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으니까.

우리를 방심시키기 위해서 위장을 하는 거라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굳이?

무엇보다 마엘리타가 우리와 접점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

정확하게는 그게 나였지만.

그때 문득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건 가정이긴 한데.

혹시 마엘리타가 저들에게 내 존재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거라면 또 어떨까…….

아니.

같은 편이라 생각했으면 먼저 이야기했을 텐데?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대천사라고 여겼다면.

무조건 그들에게 언급을 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지금.

저 두 최상급 천사들의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런 느낌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그냥 평범한 인간을 보는 것 같은.

딱 그런 느낌이랄까.

다시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말했다.

“형. 이 녀석들 아무래도 내가 대천사인 걸 모르나 본데요?”

그러자 재중이 형도 이상한 점을 눈치챘는지 두 최상급 천사들을 쳐다보았다.

“흐음? 정말 그러네. 네가 대천사인 걸 알고도 저런 식으로 나올 순 없을 텐데 말이야.”

“아마도 마엘리타가 말을 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 보이네. 같은 편인데 말을 하지 않았다라……”.

그리고는 재중이 형이 한 가지 사실을 추측해냈다.

“마엘리타 이 녀석. 처음부터 저 두 천사들을 믿지 않은 거 아냐?”

“역시 그럴까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들 사이에 무언가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게 나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이유가 될 수도 있을 지도.

여기서는 한 번 슬쩍 떠봐야 하나?

“마엘리타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니. 무슨 말이지?”

내 물음에 두 최상급 천사 중 하나인 쉬에르가 날 의심스런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쭉 찢어진 눈매가 매섭게 느껴지는 게 천사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녀석의 등에 달린 백색의 날개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이 녀석이 천사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흠. 네 녀석이 아까 마엘리타와 대화하던 녀석이군.”

내 쪽에서 반말로 나가자 녀석도 딱히 존댓말을 이어가진 않았다.

그런 쉬에르 녀석의 말을 듣고는 재중이 형과 눈빛이 마주쳤다.

“저 녀석. 모르네.”

“네. 모르네요.”

설마 했는데 아예 설명조차 하지 않은 듯 했다.

당연히 내가 대천사의 검을 가졌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

그러니 지금 저렇게 뻣뻣하게 나오는 거겠지.

우리 둘의 대화에 쉬에르가 다시 의심스런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무슨 말이지?”

“아. 넌 알 것 없고. 그래서 마엘리타가 어디 있는지 너도 모른다는 거군.”

내 물음에 쉬에르가 살짝 짜증 난다는 듯이 옆에 있는 에멘스를 쳐다보면서 투덜거렸다.

“그 녀석이 눈치는 더럽게 빨라서 말이야. 한 뼘만 더 들어가면 잡을 수 있었는데.”

에멘스라는 녀석은 무표정한 눈빛으로 그저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쉬에르가 확연히 표정이 드러난다면.

오히려 에멘스는 그와 반대였다.

좀처럼 표정을 읽을 방법이 없어 보였다.

아예 굳은 표정이라.

그리고 저 말만 들어보면 아무래도 마엘리타가 중상을 입은 상태로 녀석들에게서 어떻게든 도망친 모양이었다.

흐음.

마엘리타를 찾아봐야 하나.

하지만 당장 녀석이 어디로 갔는지 우리들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일단은 정보를 좀 캐봐야겠는데.

최대한 녀석들에게 민감한 정보로 시작해볼까.

“오벨리스크 때문에 마엘리타를 배신한 건가?”

적어도 이 정도는 언급해야 녀석들도 반응이 나올 터.

아니나 다를까.

오벨리스크라는 말을 듣자마자 쉬에르 녀석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

거기다 입가가 실룩이듯 얼핏 보였다 사라지는 표정에서 불편한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저건.

누군가 오벨리스크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불편한 거려나.

자신들 말고는 모르고 있어야 정상이라는 듯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너. 어떻게 오벨리스크를 알고 있지?”

뭐 이쪽은 대답할 말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 쪽에도 천사는 있어서 말이야. 작전대 소속이라던데?”

작전대 소속을 언급하자 순간 쉬에르의 표정이 크게 흔들렸다.

“역시 꼬리가 너무 길었나…… 마엘리타 녀석을 진작 처리했어야 했는데.”

진작 처리했어야 했다라…….

쉬에르 녀석의 말을 들어보면.

한참 전부터 마엘리타를 죽이려고 마음먹고 있었던 듯 했다.

아니.

어쩌면 녀석들의 계획을 시작할 때부터일 수도 있고.

그보다 더 전일 수도 있었다.

“마엘리타는 너희들과 한 팀 아니었나?”

내 물음에 쉬에르가 바로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감히 그런 출신도 비천한 녀석과 우리가 한 팀이라고? 웃기는군.”

마엘리타가 뒷배가 없는 건 맞다.

전사 형이 말해주었던 것도 그러했고.

아마도 개천에서 용 나는 딱 그런 느낌이려나.

반면 이 두 최상급 천사들에 대해서는 딱히 정보가 없었다.

그 말은 즉 슨.

성마대전이 치러지는 동안 어딘가 한적한 곳에서 죽거나.

아예 활약조차 못하는 이류 같은 놈들이라는 뜻이었다.

최상급 천사임에도 역사에 한줄 언급조차 없다면 말이지.

이번에도 마엘리타가 아니면 이런 자리에까지 나오지도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마엘리타가 제물의 결계로 만든 오벨리스크를 중간에 가로채기라도 할 작정이었나?”

내 지적에 쉬에르가 불편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여전히 에멘스는 표정 변화가 없었고.

이쯤 언급했으면 반응 정도는 나올 법도 한데…….

적어도 한 번쯤은 쳐다보기라도 해야 정상 아닌가?

그래서인지 반응이 바로 나오는 쉬에르보다 에멘스 쪽이 오히려 더 신경이 쓰였다.

“너.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냐?”

쉬에르의 반응을 보니 대충 맞는 것 같네.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정곡을 찔렀나?”

“그런가 보네요.”

대충 찔러본 건데.

바로 맞출 줄이야.

곧장 쉬에르 녀석에게서 살기와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만 하고 보내려고 했는데. 그렇게 보내서는 안 될 녀석들이었군.”

애초에 우리 목적은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오벨리스크를 찾는 게 아니었지만.

막상 찾아버린 이상.

그것도 가까이 있다는 걸 안 이상에야 여기서 돌아가는 건 힘들겠지.

그렇다는 건 저 두 최상급 천사 녀석들을 눌러야 한다는 뜻과 동일했다.

당연히 여기서는 딱히 걱정하지는 않았다.

“쉬에르. 지금 내 옆에 있는 게 누구인지는 알고 그렇게 말하는 건가?”

그러자 자동적으로 쉬에르를 시선이 내 옆으로 가서 멈췄다.

지금 은신을 풀고 있는 건 나와 재중이 형 정도였다.

곧장 쉬에르가 디텍팅 마법을 쓰자마자 마왕 헤르게니아와 함께 카샤스 대공이 그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최상급 천사라고 해 봐야.

어차피 대천사보다는 훨씬 못한 존재다.

그리고 지금 내 옆에 있는 카샤스 대공은 그런 대천사들과도 맞짱 뜰 수 있는 녀석이지.

타란 제국에 침투해 있는 두 천사 녀석들이.

그런 카샤스 대공을 모를 리가 없었다.

“으음. 네 녀석이 어떻게 여기에…….”

원래라면 바깥에서 카샤스 대공군을 지휘하고 있어야 하지만.

그 카샤스 대공군은 이미 후퇴한 지 오래였다.

제국성 안에만 있어서 그걸 모르는 모양이었고.

곧 카샤스 대공이 자신의 커다란 전용 대검을 꺼내 들어 두 최상급 천사들에게 겨누었다.

“막을 생각이라면. 베고 지나가겠다.”

동시에 폭발적인 기세가 카샤스 대공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당연히 최상급 천사 수준인 쉬에르의 표정이 확연하게 굳어져 버렸다.

일단 둘은 체급 차이가 너무 난다.

상대 자체가 안 된다는 뜻이지.

만약 숨겨놓은 실력이 있다면 또 모를까.

거기다가 내 옆에 다른 괴물도 있거든.

마왕 헤르게니아는 굳이 원래의 실력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쉬에르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숫자 역시 우리가 앞서고.

그때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우리를 노려보던 쉬에르 옆으로 에멘스가 다가갔다.

“물러나지.”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바로 오벨리스크가……!”

순간 에멘스의 눈빛이 살짝 차가운 기운이 도는 것 같이 번쩍이더니 낮게 읊었다.

“물러난다. 어차피 시간만 벌면 된다.”

“칫. 알겠다. 밑에 녀석들을 풀지.”

곧 쉬에르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들 주변으로 수많은 천사들이 소환 마법진을 만들어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대략 백은 넘는 거려나?

천사 전용의 순백의 방어구와 무기를 맞춰 입은 그들은 군대의 그것과 다름없어 보였다.

특유의 얼굴 전체를 가리는 천사들의 마스크 역시 그들의 표정을 확인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천사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쉬에르와 에멘스가 다시 마법진을 형성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는 천사들이 일제히 우리를 포위하듯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모습을 본 카샤스 대공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귀찮게…….”

곧 카샤스 대공이 앞으로 빠르게 쇄도하더니 자신의 대검을 휘둘러 천사들의 진형을 뚫기 시작했다.

당연하겠지만.

카샤스 대공의 공격을 막은 천사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개중에는 위력을 이기지 못해 멀리 튕겨나가는 녀석들까지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다른 녀석들이 블록을 짜면서 카샤스 대공을 막아섰다.

거기다 아까 공격을 받은 녀석들조차 자신들에게 회복 마법을 걸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다.

그리곤 곧장 합류해버렸고.

한 번에 완전히 죽이지 않으면.

그들을 쉽게 떨쳐낼 수 없어 보였다.

재중이 형이 날 보면서 말했다.

“아까 에멘스 녀석이 시간만 끌면 된다고 했던가?”

“네.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요.”

“그럼 최대한 빨리 뚫어야겠네.”

곧 재중이 형도 고대 마룡의 창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마왕 헤르게니아 역시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품에서 대천사의 검을 꺼내 들었다.

흐음.

과연 이것도 되려나?

안되면 어쩔 수 없고.

바로 천사군들을 돌아보며 크게 외쳤다.

“전부 꿇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