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7화 내전의 끝 (5)
이전에 만난 중급과 하급 천사들은 대천사의 검을 보자마자 바로 알아서 고개를 숙인 기억이 있었다.
쉬에르와 에멘스가 최상급 천사 등급이라는 걸 고려해보면.
지금 우리 눈앞에서 길을 막고 있는 녀석들의 등급은 아무리 높아 봐야 상급일 테고.
대천사의 검을 알아본다면 반드시 반응을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대천사의 검을 꺼내들며 외치는 순간.
카샤스 대공을 상대하고 있던 천사들을 제외한 모든 천사들의 시선이 내게 모여졌다.
“카악……?”
“키긱?”
그런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천사들의 반응이 죄다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성과는 거리가 먼 아주 이질적인.
마치 몬스터의 그것을 보는 것마냥 기괴한 소리를 천사들이 내기 시작했다.
뭐지?
이전에 봤던 중하급 천사들하고는 반응부터가 너무 달랐다.
천사들의 얼굴은 하얀 가면에 가려져 보이지 않아 표정을 볼 수도 없었고.
곧 재중이 형 역시도 이상한 것을 눈치 챘는지 내게 말했다.
“저 녀석들. 정상적인 천사들이 아니야.”
“역시 이상하죠?”
“그래. 아마 뭔가 세뇌라도 당한 것 같은 모습인데.”
대천사의 검은 천사들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위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지금의 저 천사들의 모습은 그것과는 너무 차이가 있었다.
단순히 등급이 낮아서 못 알아보는 거라면 이전의 녀석들도 알아보지 못했어야 한다.
심지어 지금 녀석들은 그 녀석들보다 등급이 높을 거라는 걸 예상해본다면.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지.
그때 옆에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마치 신기한 물건을 본 것 마냥 내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쟤들. 전부 죽어 있는데?”
“뭐?”
“아예 생명력이 없어.”
그 말에는 나와 재중이 형도 놀란 눈빛으로 마왕 헤르게니아를 쳐다보았다.
생명력이 없다라는 건.
곧 다른 말로 죽었다는 뜻과 같은데.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천사들은 멀쩡히 두 발로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천사들 고유의 날개를 활짝 편 상태로 말이지.
심지어 저들이 지금 내뿜고 있는 기운은 아무리 봐도 성 속성에 가까운 기운들이었다.
누가 봐도 그냥 천사 같아 보이는데.
만약 이미 죽어 있는 녀석들이라면.
저렇게 성 속성의 기운을 뿜어내는 건 비정상적인 일이었다.
재중이 형도 그 점을 말했다.
“저 녀석들 아무리 봐도 그냥 천사 같은데?”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도 신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니까. 무슨 수를 쓴 건지 모르겠다니까?”
“흐음. 마왕인 너도 모르는 건가?”
“마왕이라고 다 아는 건 줄 알아? 천사들이 쟤들 데리고 뭔 짓을 했는지 알게 뭐람.”
솔직히 맞는 말이긴 했다.
마왕이라고 다른 천사들의 마법이나 기술들을 전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하지만 그럼에도 단서는 있었다.
곧장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어보았다.
“전에 너도 헤르마늄으로 만든 타락 천사를 쓰지 않았었어?”
“응. 했었지.”
“그럼 만약 그 반대로라면 어떨까?”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잠시 생각하다가 곧 뭔가 짚이는 게 있는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것도 짜증 가득한 목소리를 담아.
“아이씨. 그 새끼가 여기서 나올 리가 없는데.”
역시 마왕 헤르게니아는 뭔가를 알고 있는 거려나.
“알고 있어?”
“짚이는 건 있어. 그런데 여기 올 만한 녀석은 아니야. 그리고 이런 일에는 관심도 없을 텐데.”
마왕 헤르게니아가 저렇게 질색하듯이 말하는 걸 보면…….
“혹시 그게 대천사 중에 하나야?”
“맞아.”
역시 예상이 맞았다.
그렇다는 말은.
마왕 헤르게니아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어떤 녀석이 천사 진영에 있다는 뜻이었다.
곧 마왕 헤르게니아가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하나 잡아서 좀 뜯어봐야겠는데?”
어지간해서는 먼저 나서는 일이 없는 마왕 헤르게니아가 저렇게 앞에 나서는 걸 봐서는 그녀도 상당히 궁금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앞으로 빠르게 쇄도하더니 정면에 있던 천사의 가면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움켜잡았다.
워낙 빠른 속도라 천사들은 그 속도를 따라 잡지도 못 했다.
애초에 상급 천사 정도의 능력으로 마왕 헤르게니아의 속도를 따라잡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라.
그 순간 마왕 헤르게니아가 한쪽 손으로 녀석의 목을 틀어쥐더니 그대로 천사 가면을 얼굴에서 뜯어내었다.
그런데 천사 얼굴 위로 덮여 있어야 하는 천사 가면이 뜯어지지 않고 그대로 얼굴의 피부를 따라 쭉 찢어지듯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크엑!”
고통스러운 듯 천사 녀석이 괴성을 질러댔고.
마치 신체의 일부분일 것마냥 떨어지지 않는 천사 가면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 뜯겨 나오자 마왕 헤르게니아도 잡아 뜯는 걸 멈추고는 기묘한 웃음을 지었다.
“헤에…… 이거 봐라? 아예 갑옷을 신체에 융합시켜놨잖아?”
융합?
그렇다는 말은 갑옷과 신체가 일체가 됐다는 뜻인가?
그리고는 곧장 마왕 헤르게니아가 천사 녀석의 갑옷 사이로 손을 집어넣더니 그대로 잡아 뜯었다.
우드득!!
찌이익!!
“카아악!!”
“이쪽도 마찬가지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마왕 헤르게니아가 잔뜩 힘을 주어 갑옷을 잡아 뜯자 곧 신체가 일자로 쭉 찢어지면서 기괴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마왕의 팔 힘을 이길 수준은 아니라서 반으로 뜯어진 천사 녀석이 곧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천사 녀석이 자신의 몸에 힐을 걸어서 찢어진 몸을 점점 복구시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마왕 헤르게니아가 혀를 찼다.
“하. 이건 뭐 좀비도 아니고.”
천사에게 좀비라고 하다니.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그 말이 딱히 틀리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진짜 반으로 갈라져 죽어버렸던 천사 녀석이 그대로 살아나는 중이었으니까.
힐로 스스로 몸을 복구한다는 점까지 고려해보면.
좀비보다 이쪽이 한 수 위려나.
곧 카샤스 대공 역시 이상한 점을 느꼈는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것들 죽지 않는다.”
카샤스 대공의 대검이 휘둘러진 장소에는 몸이 반 토막 난 천사들이 차곡차곡 쓰러져 있었는데.
그들 모두가 다시 자신의 몸에 힐을 걸면서 그대로 다시 일어났다.
심지어 몸이 분리되어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거기까지 기어가 합쳐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카샤스 대공에게 말해 주었다.
“핵을 찾아서 부셔.”
“핵?”
“심장 말이야. 아니다. 그냥 머리를 부셔 버려.”
그 말에 카샤스 대공이 그대로 대검을 휘둘러 천사들의 머리를 하나둘 박살 내기 시작했다.
“크엑!”
“카악!!”
그때마다 기괴한 비명을 지르면서 천사들이 달려들었는데 그들 모두 카샤스 대공의 공속과 파워를 따라잡지 못해 그대로 머리를 내어주며 바닥에 쓰러졌다.
천사들에게 재생능력이 있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렇다고 그게 전투 능력을 압도적으로 올려주는 건 또 아니니까.
어중이떠중이 천사들 백 마리가 모인다 한들.
카샤스 대공에게는 상대가 안 된다.
곧 카샤스 대공의 대검에서 적색 오러가 생기며 횡으로 크게 휘두르자 그 궤적 안에 들어오는 모든 천사들의 머리가 녹아내렸다.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대로 머리가 날아간 천사들은 이번에는 회복하지 못하며 죄다 쓰러졌다.
당연히 마왕 헤르게니아의 공격도 마찬가지였고.
귀찮다는 듯이 마왕 헤르게니아가 손을 한 번 휘두르자.
그 손의 궤적을 따라 검은 불꽃이 크게 일어나면서 천사들의 날개와 몸통을 그대로 새까맣게 태워버리며 지나갔다.
“어디서 반쪽짜리들이 귀찮게.”
머리를 노리는 것조차 귀찮다는 듯 휘두르는 손길에 천사들이 쓰러져 포위망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키아악!!”
곧 남아 있는 천사들이 한꺼번에 기괴한 몬스터의 비명을 지르며 카샤스 대공과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달려들었지만.
이미 파훼법을 알아버린 이상 그들에게는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대검과 손을 휘두르면 휘두르는 족족.
천사들의 머리가 오러에 터져 나가거나 마법에 몸통이 녹아내리며 점점 서 있는 천사들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재중이 형이 그 모습을 보고는 웃음 지었다.
“굳이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되겠는데?”
“네. 뭐…… 둘 다 마왕에 영웅이잖아요.”
어지간한 잔챙이들은 애초에 그들에게 상대도 되지 않는다.
아마 마왕과 영웅이 동시에 같은 편을 먹고 싸우고 있는 걸 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리라.
이어 마왕 헤르게니아가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손상이 적어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천사 녀석 중 하나를 잡아 자신의 아공간에 집어넣는 모습이 보였다.
“이건 연구용.”
이 상황에서 할 건 다 하네.
“어때?”
“흐응. 천사들의 신체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걸 봐서는 죽은 지 얼마 안 된 녀석들이야.”
“그래?”
“보통은 이렇게 시체를 모으려면 오래 걸리니까 개중에는 상태가 안 좋은 녀석들도 있어야 하거든? 그런데 다 상태가 좋다? 이게 뭘 뜻하는 것 같아?”
내가 고개를 저어 보이자 곧 마왕 헤르게니아의 눈빛이 반짝이면서 말을 이었다.
“아마 강제로 죽였을 테니까.”
“강제로라고?”
“응. 그것도 한꺼번에 죽였어.”
분명히 이베스와 로엔 같은 녀석들도 자신들 휘하의 천사들을 이끌고 왔으니까.
이 녀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그 천사들을 전부 죽였다고?
왜?
고작 우리의 전진을 막기 위한 용도로 쓰기에는.
너무 무식한 방법이었다.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내게 말해 주었다.
“오벨리스크에 쓰려고 했으려나?”
“응?”
“이 천사들. 제물로 썼을 거라고.”
“천사를? 그 정도로 제물이 모자라진 않았을 텐데?”
무려 타란 제국 수도 전체에 걸어둔 제물의 결계였다.
제물의 양이 적다고는 보기 힘들었다.
고작 백여 명의 천사라 해봐야 어차피 그들 전체에 비하면 크게 의미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굳이?
물론 타란 제국 황제가 마력을 많이 가져다 쓰고 있으니 빠르게 잔량이 줄어들고 있긴 하겠지만.
좀 전에 타란 황제가 그만큼 많은 숫자의 군대를 죽이기도 했었다.
타란 제국성이 고대 마룡에게 공격받을 때도 마찬가지고.
숫자가 부족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나야 모르지. 아래로 가봐야 알 것 같은데.”
그 말과 함께 마왕 헤르게니아가 바닥을 쳐다보았다.
분명히 이 아래에 있다고 했던가.
천사들의 정리가 끝나자 카샤스 대공도 돌아와서 내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흐음. 아무래도 계획을 변경해야 할 것 같네. 저 아래서 뭔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니까.”
내 말에 카샤스 대공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천사 부대를 꺼내놓은 것만 봐도 수상한데.
특히.
그 에멘스라는 천사 녀석이 시간만 끌면 된다고 말한 것이 더 마음에 걸렸다.
다른 말로.
시간만 있다면.
지금의 상황을 역전시킬 무언가가 있다는 뜻일 테니까.
마엘리타는 큰 피해를 입고 사라졌고.
꿍꿍이를 알 수 없는 두 천사 녀석들이라…….
차라리 마엘리타가 투명해서 더 나을 뻔했나.
적어도 그 녀석이 원하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는데.
곧 카샤스 대공이 내게 말했다.
“넌 먼저 내려가라. 난 보고에서 필요한 물건을 챙기도록 하지.”
“흠. 상황이 그래야겠네.”
전부 내려가면 보고에서 물건을 가져올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놓치기에는 아쉽지.
무엇보다 카샤스 대공은 보고의 구조를 제일 잘 알기도 한데다가 필요한 물건을 빠르게 찾아낼 수 있었다.
타란 제국의 보고가 궁금하긴 하지만.
일단은 아래의 상황이 먼저였다.
그렇게 카샤스 대공과 갈라져 재중이 형, 마왕 헤르게니아와 함께 지하로 향하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마왕 헤르게니아가 나와 재중이 형의 팔을 동시에 잡아당겼다.
“왜?”
내 시선에 곧 눈을 가늘게 뜬 마왕 헤르게니아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너네 둘 다.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무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