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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15화 (1,315/1,404)

#1315화 내전의 끝 (3)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브레스는 타란 제국성에 예상 이상으로 피해를 입혔다.

외곽의 성벽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중앙의 성까지 반파되어 원래의 그 웅장한 성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게 무너져갔다.

그 와중에 타란 제국군들도 무너지는 성벽 잔해와 브레스가 옮긴 불구덩이들을 피해 도망 다닌다고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런 제국군들을 통솔하는 용기사단들은 혼비백산한 와중에도 어떻게든 진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군! 자리를 이탈하지 말고 성벽을 사수하라!”

하지만 이미 사수해야 할 성벽은 처참하게 무너지고 난 뒤였다.

거기다 온 사방이 불구덩이라 그런 명령 몇 마디로 제국군들의 병력들이 쉽게 진정될 리도 없었고.

무엇보다 제국성 바로 위 하늘로 고대 마룡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날아가면서 그 공포감을 더 해주었다.

파아아아!!

지상에 근접한 거대한 고대 마룡의 날개짓 몇 번에 땅 전체가 태풍이라도 온 것마냥 거센 바람에 뒤흔들렸다.

그리고 제국군 병사들의 수준으로는 단순히 저 바람에도 버티지 못하고 진형이 무너지며 바닥을 뒹굴었다.

애초에 제국군 정도의 능력으로는 고대 마룡을 상대하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마법적인 결계와 배리어로 지켜주는 성벽과 방어포가 있다면 또 모를까.

그런 외부적인 요인이 무너진 지금.

제국군은 포식자 앞에 남겨진 먹이가 될 뿐이었다.

카샤스 대공이 빠르게 병력들을 후퇴시킨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랄까.

타란 제국군은 당장 어디로든 도망갈 곳도 없었다.

다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무기를 쥐어 들고 하늘만 올려볼 뿐.

전의를 상실한 그 모습에 용기사단들이 혀를 찼다.

절대적인 공포 앞에서 버티는 것도 능력이 받쳐줘야 하니까.

그걸 잘 아는 듯 몇몇 용기사단장들이 각자의 용들을 이끌고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그들은 카샤스 대공군을 상대해야 했지만.

그 카샤스 대공군은 타란 제국 황제가 상당수 죽여버린 데다가.

지금은 카샤스 대공의 명령으로 전군 후퇴를 준비 중이었다.

더 이상은 그들과의 대체 힘을 쏟을 이유가 없었다.

“어떻게든 고대 마룡을 제국성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

하지만 그들 역시 잘 알 것이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고대 마룡을 저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물론 그런 그들에게도 믿을 구석은 있었다.

용기사단이 하늘에 날아올라 고대 마룡의 시선을 끄는 동안.

어느새 타란 제국 황제의 키로아가 제국성의 상공으로 돌아와 그들 사이에 섰다.

그리고는 용기사단장들에게 명령했다.

“고대 마룡의 시선을 끌어라.”

“명령 받듭니다!”

“알겠습니다!”

곧 용기사단의 용들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날아올라 고대 마룡의 시선을 흩어놓기 시작했다.

아마도 타란 제국 황제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주기 위해 자신들을 희생하려는 모습 같아 보였다.

몇 번의 기회만 있다면 타란 제국 황제가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랄까.

그간 고대 황제를 상대로 싸우는 모습을 본 상황이라 그런 믿음은 아직 건재한 모양이었다.

실상은 그렇지 않을 텐데…….

화마에 휩싸여 끓어오르는 타란 제국성을 가리키며 카샤스 대공에게 말했다.

“지금 제국성으로 진입하자.”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가 아니라면 기회가 없겠지.”

확실히 카샤스 대공 말대로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면 우리가 타란 제국성에 들어갈 기회가 없긴 했다.

성벽이 무너진 데다가 원래 성벽을 지키고 있던 제국군들은 정신이 나가 있는 상태였고.

그들을 지휘해야 할 용기사단들은 전부 하늘로 날아올랐다.

거기다 타란 제국 황제는 더 이상 이쪽에 신경을 쓸 수 없게 되었으니.

바로 은신이 가능한 망토를 걸치자 카샤스 대공 역시 똑같이 망토를 뒤집어써 은신을 걸었다.

마왕 헤르게니아는 자체적으로 마법을 써서 모습을 숨겼고.

재중이 형 역시 모습을 숨기고 옆에 붙었다.

그리고는 재중이 형이 우리 팀에게 말했다.

“다들 대기해. 안에서는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하니까. 전사는 애들 챙기고. 챠밍은 여차하면 한꺼번에 빠져나갈 수 있게 준비해놔.”

그러자 전사 형과 챠밍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알았어요.”

카샤스 대공은 레오나 에센시아를 보면서 부탁했다.

“저 대신 남은 병력들의 통솔을 부탁합니다.”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레오나 에센시아 역시 대군을 통솔할 수 있는 능력치를 지니고 있었다.

이미 에센시아 제국 전체를 이끌어본 경험도 있었고.

이 정도 상황을 수습하는 건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걸 잘 알기에 그녀에게 일을 맡겼을 터.

내 쪽에서는 천사들을 불러들였다.

“이베스, 로엔.”

“네. 말씀하십시오.”

“둘은 대기하고 있다가 문제가 생기면 이쪽을 지원해주도록.”

그러면서 우리 팀을 가리켰다.

둘 다 명령이니 따르지만 딱히 내킨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천사들보고 인간들을 지키라고 하는 명령이니까.

그런 그들에게 확실히 명령했다.

“저들 중 누구 하나 죽으면 각오해야 할 거야.”

천사들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보다는.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는 편이 나았다.

여기서 죽을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으니.

내 경고에 이베스와 로엔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진입합시다.”

곧 카샤스 대공을 선두로 나와 재중이 형, 마왕 헤르게니아가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국성의 성벽 외곽으로 진입했는데도 우리를 알아채는 이들은 없어 보였다.

이미 제국성을 감싸고 있던 마법적인 장치들은 전부 파괴가 된 상황이라.

전과 달리 은신을 알아챌 만한 방법이 없었다.

카샤스 대공이 손가락으로 앞으로 진입한다는 표시를 하자 다들 성벽을 넘어 바로 제국성으로 내달렸다.

혹시라도 하늘에서 고대 마룡이 브레스라도 날리면 어쩌나 해서 올라도 봤는데.

타란 제국 황제를 비롯한 용기사단과의 공중 전투를 벌인다고 브레스를 쓸 여유까지는 없어 보였다.

아마 고대 마룡도 방금 전과 같이 브레스를 썼다가는.

브레스 후 경직 타임 때문에 타란 제국 황제에게 당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을까.

일단 한시름 놓게 되어 달리다 보니 무너진 본성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잠시 멈춘 카샤스 대공이 주변을 잠시 둘러보다가 내게 말했다.

“방어 시스템이 전부 멈췄군.”

“그건 다행이네.”

이미 성이 반파된 상황에 제대로 굴러갈 거라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그럼 쭉 들어가면 되나?”

“그래. 가용한 병력들은 전부 전투에 나섰을 테니까.”

“이전에 지하에도 지키고 있던 병력이 있던데?”

“지금은 없겠지.”

“좋은 소식이네.”

혹시나 싶어 감각을 퍼트려봤는데 제국성 외곽에서는 제법 많은 움직임이 느껴졌지만 반대로 제국성 내부는 잡히는 병력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카샤스 대공의 안내에 따라 제국성 내부를 계속 달리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까지 도달했다.

옆에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자 그녀 역시도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없어.”

“좋아.”

혹시나 모를 마법적인 장치가 없다는 뜻이니.

은신은 계속 유지하고 가도 될 것 같았다.

완전히 지하로 들어가자 전에 봤던 지하 통로들이 나왔다.

카샤스 대공이 내게 말했다.

“원하는 걸 찾으려면 중앙까지 들어가야 한다.”

전에 챠밍과 함께 왔을 때는 지하의 중앙까지는 들어가지 않았었다.

어차피 베르탈륨 광석을 보관하는 창고가 중앙에 있을 필요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가려는 곳이…….”

“타란 제국에서 귀한 물품들을 보관하는 장소지.”

그러자 재중이 형이 물었다.

“황제의 창고라도 되는 겁니까?”

그 물음에 카샤스 대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다. 타란 제국의 보고지.”

답변이 나오자 곧장 재중이 형이 날 쳐다보았다.

<불멸> 호오. 이거 마지막에 꽤 느낌이 좋은데?

<주호> 그렇죠.

타란 제국의 보고라니.

이건 그간의 수고를 다 녹여줄 수 있을 만한 달콤한 보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주호> 뭐 카샤스 대공이 황제가 되면 어차피 다 받겠지만요.

<불멸> 아닐 때도 대비해야지.

확실히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니긴 했다.

지금과 같이 어수선한 상황이 아니라면 말이지.

그렇게 제국성 지하의 구조를 잘 알고 있는 카샤스 대공 덕에 딱히 헤매지 않고 바로 중앙까지 내달릴 수 있었다.

중간에 몇몇 병력들과 마주치긴 했지만.

그들은 은신 상태로 누군가 진입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딱히 경계를 하진 않았다.

그리고 알았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상대할만한 병력이 아니기도 했고.

얼마나 지하 통로를 달렸을까.

곧 넓고 환한 지형이 나오면서 눈앞에 황금빛으로 된 거대한 문이 들어왔다.

그런데 여기는 이전과 달리 상당수의 용기사단이 배치되어 있었다.

<주호> 아무래도 여긴 그냥 지나가긴 힘들겠는데요.

<불멸> 흐음. 역시 죽여야 하나?

타란 제국의 보고에 그냥 들어가라고 문을 열어줄 리는 없고.

그렇다는 건 결국 이 녀석들을 전부 죽여야 한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결국 소란이 일어날 테고.

어떤 방식으로든 외부로 연락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라.

“흐음. 어쩐다…….”

용기사단의 숫자가 제법 되는 만큼 소란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 마왕 헤르게니아가 내 옆으로 붙으면서 말했다.

“처리해줄까?”

“네가?”

“응. 조용히 지나가려는 거잖아.”

“할 수 있다면.”

이거 은근히 빚지는 기분인데?

곧 마왕 헤르게니아가 미소를 짓더니 뭔가의 마법을 시전하는 순간.

“으으…… 왜 이러지?”

“갑자기…….”

“정신을 차려야…….”

황금문을 지키고 있던 용기사단들이 하나, 둘 픽픽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정확하게는 제 자리에서 잠들어 버렸다고 해야 하나?

“슬립?”

“맞아. 꽤 쓸 만하지?”

이건 쓸 만한 정도가 아니다.

제국의 용기사단 정도를 바로 재워버릴 정도의 능력이라니.

그것도 한둘도 아니고 무더기로.

얼마나 마법적인 능력이 높으면 마법 저항력이 제법 있는 용기사단을 저렇게 무력화시킬까 싶기도 하고.

“나쁘지 않네.”

“겨우?”

내 말에 삐진 것마냥 입을 삐죽한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고는 웃음이 나왔다.

그 웃음을 보고는 마왕 헤르게니아도 알겠다는 듯 웃었다.

“좋으면서 튕기기는.”

“하하. 그래.”

카샤스 대공은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아마 이런 능력을 가진 마법사는 타란 제국 내에서도 흔치 않을 테니까.

아니다.

그냥 없다고 보면 될지도.

“문제없으면 가자.”

“흠. 그래.”

그때 마왕 헤르게니아가 내 팔을 붙들었다.

“응? 왜?”

“여기 아래.”

그러면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발로 바닥을 퉁퉁 쳤다.

아무리 봐도 아무것도 없는데.

“이 아래에 뭐가…….”

그 순간 그녀가 말하려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오벨리스크?”

“응. 아까부터 기운이 강해진다 싶었는데. 여기까지 오니까 확실히 알겠네.”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에 시선을 돌려 카샤스 대공을 쳐다보았다.

“알고 있었어?”

그러자 카샤스 대공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 황궁 보고 아래에 있겠지.”

아무 곳에나 오벨리스크를 둘 리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곳이 황궁 보고의 바로 아래라…….

방금 이곳을 지키고 있던 녀석들이 예상보다 많았던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황금문 앞으로 뭔가가 전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이건…….

천사?

“마엘리타……?”

아니다.

전에 봤던 그 녀석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뭔가 좀 더…….

꺼림칙한…….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 녀석이 동시에 나타났다.

그 중 한 녀석이 나를 알아보듯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습니다. 전 쉬에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건 반갑다는 인사가 아니라.

적의가 풀풀 넘치는 미소에 가까웠다.

마엘리타 이 녀석…….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마엘리타가 보냈나?”

“흐음. 글쎄요. 그녀를 찾는 거라면…… 이미 죽었을 지도 모르겠군요.”

“뭐?”

대체 뭐지?

이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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