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1화 먹고 먹히는 싸움 (5)
타란 제국은 넓다.
그것도 아주.
대륙에서 가장 큰 나라 중에 하나인데다가.
자원이 자급자족이 가능한 유일한 제국이었다.
당연히 제국 내에는 자원을 캐기 위한 광산이 많이 존재했다.
제일 유명하고 대표적인 곳은 고대 마룡이 있던 베르탈륨 광산이었다.
이곳은 베르탈륨 매장량으로는 대륙 4대 광산 안에 들어갈 정도였다.
그렇다고 제국 내 다른 베르탈륨 광산들은 어떨까?
우리가 갔던 베르탈륨 광산이 발견되기 전에도 이미 제국은 충분한 베르탈륨을 비축해 뒀었다.
그 여타의 광산들에서 나오는 베르탈륨 광석들도 절대 무시 못한다는 뜻이 된다.
물론 마왕의 무구를 만들 수 있는 고순도의 베르탈륨 광석은 거의 캘 수 없을 테지만.
일반적으로 소모되는 저순도의 베르탈륨 광석을 구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카샤스 대공에게 언급하고 있는 광산들은 바로 그곳들이었다.
“보급로를 끊으라는 말인가?”
“맞아. 정확하게는 베르탈륨이 나는 광산을 탈환하는 게 목적이지.”
보급로를 끊는 것은 과정이다.
최종 목표는 베르탈륨 광산을 차지하는 것.
그 후엔 보급로를 다시 뺏겨도 된다.
애초에 베르탈륨 광석을 캐거나 가져가질 못하는데 보급로가 다 무슨 소용인가.
그러자 카샤스 대공이 살짝 고개를 저어보였다.
“각 베르탈륨 광산마다 주둔하고 있는 용기사단들이 있다. 그리고 그 규모가 클수록 더 많은 병력들이 주둔하고 있지.”
이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전에 에센시아 제국에서 대륙 최대 규모의 헤르마늄 광산을 발견했을 때.
투입된 기사단 숫자가 얼마나 됐던가.
뭐 그때는 신의 파편을 찾기 위해 좀 과다하게 투입된 경향이 없잖아 있지만.
적어도 그런 규모의 광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이상의 기사단은 꼭 필요했다.
현재 타란 제국 수도에 난리가 났음에도 광산을 지키는 용기사단들이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그만큼 베르탈륨의 보급을 중요시 여긴다는 뜻이기도 했고.
만약 이곳을 차지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누군가는 피를 흘려야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러니까. 그 일을 모험가들에게 맡기라고.”
원래라면 카샤스 대공의 용기사단들 중 일부가 나서서 해야 했겠지만.
지들이 알아서 찾아와 싸워준다고 하지 않는가.
그것도 왕국의 병력을 투입해서 말이지.
그럼 이럴 때 써먹어야지 또 언제 써먹을까.
“흠. 모험가들이라…….”
잠시 고민하는 카샤스 대공에게 대놓고 말했다.
“네 입장에서는 그들을 실험하는 셈이 되겠지.”
그것도 퀘스트로.
그걸 받아들이는 유저들 입장에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미션이 된다.
만약 이걸 대충 하려는 놈이 있다?
다 방법이 있었다.
“이거 제대로 못 해내는 놈들은 대공 자격에서 탈락시켜버려.”
“패널티를 주라는 거군.”
카샤스 대공의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멀리서 간만 보고 설렁설렁 하려는 왕국 놈들이 있을 거야. 그러면 어떻게 된다는 걸 확실히 보여줘야지.”
이건 우리가 유저이기 때문에 더 잘 안다.
남들이 하는 걸 지켜보다가 끼어들지 말지 간을 보는 것.
특히 목적이 숨겨져 있는 연합이나 길드 녀석들 같은 경우는 더 할 테고.
그런데 여기에 패널티를 걸어버리면?
좋든 싫은 일단은 해야 한다.
뒤에 무슨 속셈이 있든 말이지.
퀘스트의 강제성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다.
뭐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겠지만.
그럼 중도 탈락이라.
앞으로 걸려 있는 파이를 고려해본다면.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조건이 어떻게 되었든.
울며 겨자 먹기로 무조건 뛰어들어야겠지.
<불멸> 일종의 연계 퀘스트겠네.
<주호> 네. 이거 못 해내면 다음이 없는 거죠.
<불멸> 큭. 유저들이 제일 까다로워하는 방법이겠군. 안할 수 없으니.
재중이 형 말대로 이건 피할 방법 자체가 없는 퀘스트다.
“지금 타란 제국 수도로 들어가는 보급로는 어디, 어디야?”
그 말에 옆에 있던 아이샤 황녀가 일어서더니 집무실 한쪽에 크게 걸려 있는 지도로 다가가 몇 군데 포인트를 집어 주었다.
“스무 곳이나 되나요?”
“이곳도 최소한으로 잡은 거예요. 나머지 베르탈륨 광산들은 채산성이 부족하거나 워낙 품질이 떨어져서 쓸모가 없으니까요.”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에 용기사단이 하나씩만 배치되어 있어도…….”
“네. 최소 스무 개죠.”
만약 온전한 숫자의 용기사단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어쨌든 용기사단은 용기사단이었다.
유저들 입장에서는 부담되는 건 매한가지다.
용기사 하나가 유저들 수십을 썰어댈 수 있을 테니까.
특히 공중전으로 간다면.
유저들은 절대 못 이긴다.
기동력에서 너무 차이가 나.
아마 가지고 놀다시피 굴리다가 죽여 버릴 지도.
흠.
이건 내가 걱정할 게 아니긴 하네.
가는 놈들이 걱정해야지.
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놔버리면 안 되는 일이라.
여기서는 조금 풀어 줘 볼까.
아예 가능성이 없게 해버려 중도에 다 포기해버리면 그것도 난감하다.
곧장 카샤스 대공을 보면서 말했다.
“아, 그리고 혹시라도 베르탈륨 광산들을 차지하지 못하게 된다면. 최소한 보급로를 도는 보급 마차라도 박살내라고 해.”
“어떻게 하던지 보급은 막겠다는 거군.”
“일차적 목적은 거기 있으니까.”
최우선 과제는 베르탈륨 광석이 타란 제국 수도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것.
광산을 차지하지 못한다면 차선책으로 이것도 나쁘지 않는 방법이었다.
물론 그것도 용기사단이 지키고 있을 테니.
쉽지 않은 미션일 테지만.
“베르탈륨 광석의 공급이 완전히 끊기면…….”
“고대 마룡이 친히 찾아가주실 거야. 시위하러.”
“그럼 억지로라도 베르탈륨 광석을 사겠군.”
“그래. 그게 얼마가 되었든. 제국 수도가 날아가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추가로 용기사단들이 죽어나가는 값도 포함이고.”
아직은 본격적인 내전이라기보다는 고대 마룡과 타란 제국 황제와의 싸움이었다.
이렇게 일단 최대한 힘을 빼둔 상태로 시작해야지.
황제의 자금줄을 뽑아먹는 것도 마찬가지.
결국 전쟁은 돈이 한다.
뽑아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뽑아먹어야겠지.
설명이 끝나자 나를 빤히 쳐다보던 카샤스 대공이 결국 헛웃음을 터트려버렸다.
“하하. 네가 그 카베스를 완전히 가지고 노는군. 제국 귀족들이 무서워서 쩔쩔 매는 그 녀석을.”
“칭찬이라면 감사하고.”
황제든 뭐든.
벗겨먹을 수 있다면.
나에겐 고객일 뿐이다.
그것도 돈 많은 고객.
아.
고객은 또 있었지.
이쪽은 잠시 협력 관계이긴 하지만.
“잠시만.”
정리할 시간 동안 화련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혹시 바빠요?
<화련> 응. 매우.
<주호> 아. 그럼 안 되는데.
<화련> 또 왜? 안 그래도 일이 꼬여서 피곤해.
화련에게 일이 꼬였다는 건.
아마 마신의 파편 관련한 퀘스트가 날아갔다는 뜻이지 않을까.
아니.
어쨌든 베르탈륨 광산을 클리어 한 셈이라 해결됐나?
이건 물어보기 난감해서 일단은 말을 아꼈다.
그런데 마신의 파편은 있긴 했었던가?
무엇보다 고대 마룡이 난장판을 치는 바람에 완전히 묻힌 감도 있었고.
다 무너진 광산을 다시 다 파내서 찾으려면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른다.
뭐 꼬인 건 꼬인 거고.
일은 해야지.
<주호> 화련. 큰 돈 좀 안 만져 볼래요?
<화련> 응? 갑자기 왠 돈?
아마 화련도 이번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베르탈륨 광산이 멀쩡했다면 잘 굴리면서 돈을 쓸어 담았을 건데.
현재는 투자 대비 나오는 게 없다고 해야 하나.
한 마디로 마이너스다.
그것도 꽤 많이.
<주호> 중간 과정은 됐고요. 고대 마룡이 타란 제국 수도를 덮친 건 알죠?
<화련> 알아. 그게 왜? 혹시 그것도 네 작품이야?
눈치 하나는 귀신이다.
하지만 이건 인정하면 안 되는 일이라.
<주호> 설마 고대 마룡을 제가 조정이라도 하게요?
<화련> 역시 그렇지? 난 또.
여기선 바로 화제 전환.
<주호> 그런데 아직 화련네 영지에 베르탈륨 광석 정제 시설 그대로 있죠?
<화련> 있지. 돈만 잡아먹는 기계들.
<주호> 그럼 그거 좀 풀로 돌려봐요. 베르탈륨 광산으로 가서요.
<화련> 왜? 지금 돌려봐야 쓸 만한 건 안 나올 거야. 고작해야 1층 정도 캘 수 있을 건데.
그래.
지금은 그런 저순도의 광석이 필요했다.
그것도 대량으로.
<주호> 그거 제가 최소 열 배는 뻥튀기 해줄게요.
<화련> 뭐? 그게 가능해?
<주호> 타란 제국 수도를 방어하는 시스템을 돌리려면 그 저순도의 베르탈륨 광석이 필요하거든요.
<화련> 방어 시스템? 안 돌던데? 그럼 지금은 동났고?
<주호> 정확해요.
화련이 바로 주판을 튕겼다.
<화련> 고대 마룡은 계속 공격할 거고, 베르탈륨 광석은 텅 비었다라……. 그런데 다른 쪽에서도 공급하면 망하는데?
<주호> 그건 카샤스 대공 쪽에서 조절할 겁니다. 그리고 남은 베르탈륨 광산들은 이제 못 써요. 다 박살낼 거라.
<화련> 헤에. 독점이라 이거네? 그것도 잘 하면 수십 배가 되는 가격에?
역시 돈 이야기가 나오면 톤부터 달라진다.
그것도 엄청나게 돈 되는 이야기니까.
<화련> 그런데 알면서도 네가 직접 하지 않는 건. 중간상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주호> 바로 그겁니다.
<화련> 그래서 얼마 떼어 주면 되는데?
<주호> 통 크게 반…….
<화련> 됐어. 안 해!
<주호> 음. 그럼 40프로…….
<화련> 광석 캐는 거랑 운반. 판매도 다 내가 하는데?
<주호> 하하…… 수익에 30프로만 주시죠. 그리고 이거 판은 제가 다 깔아둔 겁니다.
<화련> 그러지 뭐.
음.
화련도 요즘 너무 튕긴다니까.
사실 30프로만 해도 엄청나게 남는 장사다.
가만히 앉아서 버는 거라.
<화련> 그런데 고대 마룡. 지금 다른데 있지 않아? 유저들이 잡으려고 난리더라.
<주호> 아. 뭐 그렇죠.
<화련> 다들 죽으려면 무슨 짓을 못 해.
고대 마룡이 타란 제국 함대를 상대로 싸우던 걸 이미 봤었던 화련이 보기에는 미친 짓 같아 보인 모양이다.
<화련>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그거 네가 한 거 아니지?
<주호> 설마요. 아까도 말했지만 저 고대 마룡하고 안 친해요.
<화련> 그건 또 모르잖아. 네가 하도 이상한 짓을 많이 벌이고 다녀서.
음.
요즘 너무 예리한데?
<화련> 그나저나 불나방처럼 가서 많이 죽겠네. 설마 거기 상위 길드 애들도 간 거 아냐? 멍청하게.
<주호> 그래 주면 좋고요.
그러자 화련이 바로 한 마디를 꺼냈다.
<화련> 으음. 역시 네 작품이구나?
<주호> 아니라니까요.
<화련> 아씨. 수상한데. 아무튼 알았어. 준비 되는대로 연락할게.
이쪽은 일단 된 건가.
안정적인 공급처 하나는 있어야 하거든.
그리고 이미 무너진 광산에 카샤스 대공도.
제국 황제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테니.
캐는 족족 둘이 해먹으면 된다.
나중에 문제 삼으면…….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고.
화련하고 이야기를 마친 뒤 카샤스 대공에게 말했다.
“그럼. 왕국 녀석들 잘 굴려 보라고.”
판은 다 짜놨으니.
이제 구경할 일만 남았을 뿐이다.
* * * * *
카샤스 대공과의 대화를 마친 뒤 집무실을 나와 다시 별채로 돌아갔다.
“화련하고 잘 끝냈냐?”
재중이 형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잖아요.”
“그렇지. 그럼 한 쪽은 해결이고.”
“고대 마룡 쪽은 어때요?”
솔직히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지만.
궁금하긴 했다.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화면 하나를 보여주었다.
“아수라장. 아마 처음 상대 해봤으니 기겁할 거다.”
그리고 그 화면에는 검은 용암의 샤워 속에서 무참히 녹아내리는 유저들의 절규가 아주 멋들어지게 들어가 있었다.
“살살 녹네요.”
“어. 안 그래도 널 놓쳐서 짜증났을 건데.”
“유저들이 가서 불을 질렀죠.”
그러다 우연히 BJ들이 돌리는 화면 속에서 몇몇 아는 인물들의 모습이 보였다.
저 멀리서 유저들이 죽어나가는 걸 구경만 하고 있는.
상위 연합 길드들의 장들.
그것도 각 왕국의 국기를 뒤에 달고 있었다.
개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몇 보였다.
짧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역시 이런 걸로는 안 낚이겠죠.”
“쟤들도 바보들은 아니니까. 먼저 나서서 총알받이가 될 녀석들도 아니지.”
“숨겨놓은 저력을 좀 보려고 했는데 아쉽네요.”
아마 이번에 고대 마룡의 전력을 보기 위해 온 것일 뿐.
직접 나서지는 않을 터.
하지만 저들도 절대 피해갈 수 없는 게 있다.
카샤스 대공의 퀘스트.
과연 타란 제국의 용기사단을 상대로 얼마나 잘 싸울 수 있는지 한 번 보자고.